아기 고양이는 집을 찾았을까. 책 마지막엔 엄마 아빠 고양이와 같이 아이가 잠든걸 보는 그림이 있었지만,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큰 개도 검은 고양이도 숨어있던 쥐도 알고보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대화, 그리고 다가간다는건 얼마나 중요한건지.
그렇다면 미래에는 버튼을 누르면 내가 원하는 대로 기억을 꺼내볼 수 있는 장치를발명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게 과거란 뒤로 길게 뻗은대로다. 장면과 정서의 기다란 띠, 그 대로의 맨 끝에 여전히 정원과 보육실이 있다. 여기서 장면 하나, 저기서 소리 하나를 기억해내지 말고, 벽 적당한 곳에 플러그를 꽂고 과거에 귀를 기울여봐야겠다. - P262
충격을 수용하는 그런 능력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 P272
검은 바탕에 찍힌 푸른색과 보라색의 커다란 얼룩만을 구분하던 아기를, 13년 후 1895년 5월 5일 - 오늘로 딱 44년이 되었다 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느꼈던 그 모든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아이로 탈바꿈시키는 삶의 기운이란 얼마나 대단한 걸까. - P275
나는 오히려 슬퍼 보였다. 어머니는 뒤편에 늘 자신만의 슬픔을가지고 있었고 혼자 있을 때 마음 놓고 슬픔에 젖어들었다. - P281
차분하면서도 슬펐고, 어떤 최후의 느낌이 찾아들었다. 아름답고 푸르른 봄날 아침이었고 무척 고요했다. 그런날이면 모든 것이 끝났다는 그 느낌이 다시 내게 찾아든다. - P285
아버지는 왜 여자가 필요했을까? 철학자로서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다. 실패했다는 그 사실이아버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자신의 신조나 행동거지에 따르면, 그러니까 공적인 관계에서 아버지가 취했던 기준에 따르면 자신에게 칭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그래서 프레드 메이트런드와 허버트 피셔 앞에서는 오로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었고, 자기 자신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사람인 양 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칭찬을 받아낼 때는 정말 염치도 없고 무자비하고 탐욕스러웠다. - P292
말하자면 우리는 1910년에 살고 있는데 그들은 1860년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 P295
웃음이란 우리 안에 존재하는 희극적인 정신의 표현이고 희극적인 정신은 널리 알려진 방식에서 벗어나는 특이하고 별난면과 관련이 있다. 왜 그러는 건지, 언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게부지불식간에 난데없이 터지는 웃음은 그 정신이 내보이는 일종의 견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살펴본다면, 그러니까 이 희극적 정신에서 받는 인상을 분석한다면, 겉보기에 희극적인 것이 근본적으로는 비극적이라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으면서도눈에 눈물이 어린다는 사실을 분명 알게 될 것이다. 번연이 말했던 이것은 해학의 정의로 받아들여져왔다. - P209
웃음은 무엇보다 우리의 균형감각을 유지해준다. 우리 모두그저 인간일 뿐임을, 누구도 전적으로 대단한 영웅이거나 전적으로 악한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 P210
실제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최악의 실수는 균형감각의 부족에서 생겨난다. 지나친 진지함은 삶과 예술 모두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경향이다. - P212
우리 자신의 삶이 바뀌지 않는 다음에야 규칙적인 부두의일과에 변화가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 P225
또한 저녁 시간에는 어둠과 불빛의도움으로 무모한 일도 한번 벌여볼 수 있다. 우리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날 좋은 저녁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집을 나선다. 지인들이 아는 나의 자아를 훌훌 벗어던지고 익명의 뚜벅이들이 이루는 공화적 무리에 합류한다. - P230
서점을 둘러보며 그렇게 우리는 무명의 존재들, 사라진 손재들과 변덕스럽게 갑작스러운 우정을 쌓게 된다. - P243
따라서 내방식을 찾느라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시작하려 한다. 내방식이 저절로 생겨나리라 확신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다. - P256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삶은 ‘이런 식‘과는 딴판으로 보인다. 평범한 날, 평범한 사람의 마음을 잠깐 살펴봊ᆢ. 그 마음은 수만 가지 인상을 받아들인다. 사소한 인상, 놀라운 인상, 순간적인 인상, 강철에 새기듯이 뚜렷한 인상, 수많은 원자가 한없이쏟아져 내리듯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그렇게 쏟아져 내릴 때,그렇게 월요일이나 화요일의 삶의 면모를 이룰 때, 그 강조점은예전과는 다르다. 중요한 순간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다. - P188
삶이란 대칭을 이루며 놓인 마차의 불빛이 아니다.삶은 빛을 발산하는 후광이자, 의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감싸는 반투명의 봉투다. 아무리 상궤(常軌)를 벗어나고 복잡해보일지라도 이렇게 순간순간 변하는, 가둬지지 않는 미지의 정신을 가능한 한 이질적이거나 외적인 요소를 섞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 소설가의 임무가 아닐까? 단지 용기와 진지함이 요구된다는 뜻이 아니다. 소설에 적절한 재료는 우리가 관습에 비추어 믿는 바와는 조금 다르다는 말이다. - P188
모든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에게서 우리는 성인의자질을 알아본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그들을 향한 사랑, 영혼의 가장 가혹한 요구에 값하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는노력이 성인의 자질을 이룬다면 말이다. - P193
소설의 적합한 내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195
그래서 세상에 나오는 것은 다들 마땅히 기대하는 진솔한 진실이 아니라 수필의 형식을 빌려 소심하게 곁눈질하는 글일뿐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진정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결여하고 있다. - P204
과거에는 희극이 인간 본성의 결함을 재현하고 비극이 실제보다 위대한 모습의 인간을 그려낸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을진실하게 그려내려면 희극과 비극의 중간쯤 위치를 잡아야 할테고, 그 결과물은 희극이라기엔 너무 진지하고 비극이라기엔 너무 불완전한 어떤 것이 될 듯하다. -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