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완독한 <별건 아닌 선의>의 일부 문장과 문단이 인상 깊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 취향 pick이나 패스는 자유롭게, 골라 읽기도 자유롭게입니다 : )
저는 선한 사람은 아니고, 중간에서 선한 사람을 사랑하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는 건은 그 경계 어디선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담스럽지 않은 선의라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작가 이소영 교수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책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진도가 잘 안나갔지만, 표지에 나와 있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 이 문장에 계속 책을 읽을 힘이 났습니다 : )
지친 몸을 잠시 의자에 누이도록 해준 것은 특별히 선하거나 자비롭지 않은 한 인간이 건넨,
별것 아닌 호의였다.
18p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내가 살아 있음을 충만히 느끼게 해준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 그 기억이 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빈다.
62p
이렇듯 한심하고 불완전한 존재로도 누군가에겐 신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 그건 그가 자기 한계를 알면서도 사제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끔 하는 동인이 되었으리라.
69p
다만 60이면서 90인 척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70, 80을 다시금 채워가는 지난한 길에서 이탈하지 않는 묵묵함을 지니려 한다. 길게 내다봤을 때 축복인 지금이 우리에게 항상 열려 있기를.
78p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88p
이 글을 쓰던 중에도 또 한 건의 아동학대에 대해 들었다.
극악한 부모라는 자들에게 더 무거운 형이 언도되길 바라는 청원에 목소리를 얹기보다는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가 ˝그러니까 집안 내력이 중요한 거야˝, ˝아무튼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과 사귀어야 해˝라는 식의, 선량한 이웃이 무심코 던진 말과 시선에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게 더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내겐 그게 더 절실하게 여겨져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92p
어디선가 읽은 명제가 떠올랐다. ˝연민은 쉽게 지친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한 즉각적인 연민은 너무나 얕아서 저렇듯 세 번을 넘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 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타인을 위해 기도했던 그 아침의 몇 십 분이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없는 세상보다는 따스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얕음을 부끄러워하되 마음 자체에 대해서는 냉소하지 않으려 한다. 성자가 아닌 내가 고아와 과부의 얼굴로 온 타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은 참으로 작고 비루할테지만 매번 조금씩 더디게 지치기를, 다음에는 세 번째 아닌 네 번째에, 그다음엔 다섯 번째에. 그렇게 생을 통해 ˝연민은 더디게 지친다˝는 명제를 만들어가고 싶다.
96p
가진 자들이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에 분개하지 않는 나는,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그건 ‘만족한 자‘의 윤리적 책무가 아닐까. 이를 저버리는 순간 나는 물욕 없음을 내세우며 안빈낙도 운운하는 배부른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100p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뒤이어 조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불평등과 빈곤은 단발성 봉사로 해결할 수 없는 전 지구적인 문제인데, 잠시 동안의 선의는 어떤 면에선 무책임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분의 답변이 예상과 달랐다. 문구를 정확하게 복기할 순없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맞아요. 이걸로 세상이 바뀌진 않아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거, 당연히 맞죠. 그렇게 되길 저도 진심으로 바라요. 근데 그건 제가 지금 당장 어떻게 못해요. 오늘 한 명 더 먹고 입게 하는 데엔 뭐라도 하나 보탤 수 있으니까 일단 저는 한 명 더 먹이고 입힐래요.˝
차갑게 비웃는 나의 심장에 더운 물을 끼얹는 대답이었다.
102p
빈곤과 부조리를 미담으로 덮으려는 사회가 문제적이란데에 동의한다. ‘신사와 노숙인‘으로 대비되는 이미지가 자칫 후자를 온정에 감사해야 할 수혜자로 박제화할 수 있음도, 아름다운 한순간을 이렇게나 많이 기억하며, 우리가 어제와 다음 날의 서울역은 마치 없는 것인 양 착각할 가능성도, 문제의 원인을 치열하게 파고들어 투쟁해야 할 사안에서 약자를 동정하는 데 그치게 만드는 ‘분노 없는 연민‘은, 문제의 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손쉽게 정의감을 얻는 ‘연민 없는 분노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난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제해진 세상에 비해 그 크기만큼은 나을 거라 생각해서다. 설령 이를 통해 부당하게 가진 자들이 회개하거나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 호주머니를 열거나 서울역 노숙인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닐지라도 찰나의 선의는 그 자체로 귀하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103p
환승역 계단에서 그녀를 보았다 팔다리가 뒤틀려 온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어 보이는 그녀와 등에 업힌 아기 그 앞을 지날 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돈을 건넨 적도 없다 나의 설부른 동정에 내가 머뭇거려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그래서 더 그녀와 아기가 맘에 걸렸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늦은 밤 그곳을 지나다 또 그녀를 보았다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바닥에서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자, 집에 가자 등에 업힌 아기의게 백년을 참다 터진 말처럼 입을 열었다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 하나가 쿵 내려앉았다 놀라워라! 배신감보다는...
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멀쩡한 그녀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두부사세요 내 마음을 건넸다 그녀가 자신의 주머니에 내 마음을 받아 넣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아기에게 먹일 것이다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뼛속까지 서늘하게 하는 말 다행이다.
- 천양희, 다행이라는 말〉,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재인용
111~112p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인 골을 뛰어넘어 더 다가가지는 않은 채 각자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써 상대의 아픔을 보듬어보려는 그것이 너일 수 없는 나와
‘나일 수 없는 너‘가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선물 아닐까.
117p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세심증을 앓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다. 어서 만회하려 애쓰지 않고 매일의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관계가 제자리를 찾기도 하더라고 말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조급함이 그대 안의 좋은 것들을 시들게 하지 않기를, 자책과 절망으로 그대를 몰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146p
기뻐 어쩔 줄 몰랐던 찰나부터 작은 웃음 조각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기를, 각별했던 관계가 더 이상 파도 더미처럼 자신을 휘감지 않더라도 그가 한때 새겨 넣어준 고유한 색채를 억지로 지우진 않기를.
162p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167p
아마도 나의 두 고양이는 언제가 되었든 인간인 나보다 일찍 세상 너머로 떠날 것이고, 그 친구들의 생명이 서서히 잦아드는 순간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내 애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슬픔이다. 나는 법정스님 보다 조금은 더 강해서, 혹은 더 약해서, 애착의 고리를 끊어 내기보다 끌어안으려 한다. 깨어지는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두려움 없이 그것을 끌어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라지만, 각별한 대상들과의 관계 안에서 매 순간 사랑의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쪽을 택하련다. 아낌없이 사랑함으로써 도리어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고양이와 가족을 이루며 갖게 된 생의 지향이다.
171~172p
돌이켜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을 막연히 동경하는 것은 상대의 매력과 장점 때문일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빈틈을 통해서였다.
182p
심지어 ˝그대 표정에 정 떨어졌소˝라는 말을 어디서 듣더라도 상처 받지 않을 것 같다. 정 떨어지는 표정을 두고 매력‘이라 말해준 속 깊은 우정을 한번 가져본 적 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사한 이해의 선물은 이토록 값진 것이다.
187p
미래가 오래 조속되는 것이라면,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아픈 배움들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니기를, 오늘보다는 내일 더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인용하며)
192p
갖가지 기억들을 길어내어 글로 쓰면서도 끝내 건드리지 못할 어떤 시기가 있었다. 버둥거리던 나는 어느 고래 등에 올라 그 시간을 횡단해 대지에 다시 발 디뎠다. 이제는 내륙 깊숙이 들어온 듯도 하다. 그렇지만 행여 큰 풍랑이 일어 나의 고래가 파도에 떠밀려오면, 해변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이 바닷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나의 힘이 밀알보다 작음을 인정하고 큰 코끼리를 불러올 엽렵함을 갖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내가 은혜 갚은 생쥐 역할을 못해도 괜찮으니 그 고래는 일생 동안 풍랑 같은 것을 만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197p
그악스럽게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역시 서로에 대해 그러리라. 그렇게 믿으려 한다. 약한 척하더니 생명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함부로 냉소하는 대신 안도의 숨을 내쉴 거라고 말이다.
217p
어두운 터널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깨닫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터널이야말로 찬란했음을, 그리움에 사로잡혀 뒤돌아보던 우리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었다는 사실을, 이 역시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임을. 나는 안다. 끝이라 생각해온 어느 지점은 끝이 아니다. 거기에 빛나는 것들이 새로이 채워 넣어질 것이다. 두근거리며 기다릴 무엇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에도 우린 저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일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그럴지 모른다.
241p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창 상담 모드로 들어서 있던 나는 무방비상태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선생인데, 뭐든 내 쪽에서 해주어야 하는데 하며 울먹였다. 위로의 순간은 도둑처럼 왔다. 도움과 조언을 내줄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던 중에, 뜻밖의 상대로부터 기습적으로, 손윗 사람의표정과 자세로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26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