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힘들 때면 주기도문을 외워라" 라는 유언을 남기셨단다. 그래서 이제껏 자신은 교회도성당도 가본 적이 없지만 주기도문만큼은 애국가보다 더 잘외운다고 하셨다. - P94

 어디선가 읽은 명제가 떠올랐다. "연민은 쉽게 지친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한 즉각적인 연민은 너무나 얕아서 저렇듯 세 번을 넘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 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타인을 위해 기도했던 그 아침의 몇 십 분이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없는 세상보다는 따스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얕음을 부끄러워하되 마음 자체에 대해서는 냉소하지 않으려 한다. 성자가 아닌 내가 고아와 과부의 얼굴로 온 타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은 참으로 작고 비루할테지만 매번 조금씩 더디게 지치기를, 다음에는 세 번째 아난 네 번째에, 그다음엔 다섯 번째에. 그렇게 생을 통해 "연민은 더디게 지친다"는 명제를 만들어가고 싶다.
- P96

가진 자들이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에 분개하지 않는 나는,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그건 ‘만족한 자‘의 윤리적 책무가 아닐까. 이를 저버리는 순간 나는 물욕 없음을 내세우며 안빈낙도 운운하는 배부른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P100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뒤이어조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불평등과 빈곤은 단발성 봉사로 해결할 수 없는 전 지구적인 문제인데, 잠시 동안의 선의는 어떤 면에선 무책임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그분의 답변이 예상과 달랐다. 문구를 정확하게 복기할 순없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맞아요. 이걸로 세상이 바뀌진 않아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거, 당연히 맞죠.
그렇게 되길 저도 진심으로 바라요. 근데 그건 제가 지금 당장 어떻게 못해요. 오늘 한 명 더 먹고 입게 하는 데엔 뭐라도하나 보탤 수 있으니까 일단 저는 한 명 더 먹이고 입힐래요."
차갑게 비웃는 나의 심장에 더운 물을 끼얹는 대답이었다.
- P102

빈곤과 부조리를 미담으로 덮으려는 사회가 문제적이란데에 동의한다. ‘신사와 노숙인‘으로 대비되는 이미지가 자첫 후자를 온정에 감사해야 할 수혜자로 박제화할 수 있음도, 아름다운 한순간을 이렇게나 많이 기억하며, 우리가 어제와 다음 날의 서울역은 마치 없는 것인 양 착각할 가능성도, 문제의 원인을 치열하게 파고들어 투쟁해야 할 사안에서약자를 동정하는 데 그치게 만드는 ‘분노 없는 연민‘은, 문제의 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써손쉽게 정의감을 얻는 ‘연민 없는 분노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난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제해진 세상에 비해 그 크기만큼은 나을 거라 생각해서다. 설령 이를 통해 부당하게가진 자들이 회개하거나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 호주머니를열거나 서울역 노숙인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당장 바뀌는것은 아닐지라도 찰나의 선의는 그 자체로 귀하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 P103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인 골을 뛰어넘어 더 다가가지는 않은 채각자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써 상대의 아픔을 보듬어보려는 그것이 너일 수 없는 나와
‘나일 수 없는 너‘가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선물 아닐까.
- P117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세심증을 앓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다. 어서 만회하려 애쓰지 않고 매일의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관계가 제자리를 찾기도 하더라고 말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조급함이 그대 안의 좋은 것들을 시들게 하지 않기를, 자책과 절망으로 그대를 몰아가지 않았으면한다.
- P146

기뻐 어쩔 줄 몰랐던 찰나부터 작은 웃음 조각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기를, 각별했던 관계가 더 이상 파도 더미처럼 자신을 휘감지 않더라도 그가 한때 새겨 넣어준 고유한 색채를 억지로 지우진 않기를. - P162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
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 P167

 아마도 나의 두 고양이는 언제가 되었든 인간인 나보다 일찍 세상 너머로 떠날 것이고, 그 친구들의 생명이 서서히 잦아드는 순간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내 애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슬픔이다.
나는 법정스님보다 조금은 더 강해서, 혹은 더 약해서, 애착의 고리를 끊어 내기보다 끌어안으려 한다. 깨어지는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두려움 없이 그것을 끌어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라지만, 각별한 대상들과의 관계 안에서 매 순간 사랑의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쪽을 택하련다. 아낌없이 사랑함으로써 도리어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고양이와 가족을 이루며 갖게 된 생의 지향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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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 냄새와 비 냄새가 훅 끼쳐오는 그 자리에 서서 이어폰 안의 연주에 귀 기울인 채, 나는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했다. 단순한 음률이 미세하게 즉흥 변주되며 고조되는 찰나, 연주자의 감정이 서서히 차오르는 찰나를 느꼈다. 온몸의 솜털 하나하나가 일어 그것을 오롯이 감지했다. 빗물에 구겨진 낡은주름치마 입고도 난 세상 저편 어딘가로 펄펄 날고 있었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지금 이 선율을 느끼고 있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 P61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내가 살아 있음을 충만히 느끼게 해준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그 기억이 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빈다.
- P62

이렇듯 한심하고 불완전한 존재로도 누군가에겐 신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 그건 그가 자기 한계를알면서도 사제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끔 하는 동인이 되었으리라.
- P69

다만 60이면서 90인척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70, 80을 다시금 채워가는 지난한길에서 이탈하지 않는 묵묵함을 지니려 한다. 길게 내다봤을때 축복인 지금이 우리에게 항상 열려 있기를.
- P78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88

이 글을 쓰던 중에도 또 한 건의 아동학대에 대해 들었다.
극악한 부모라는 자들에게 더 무거운 형이 언도되길 바라는청원에 목소리를 얹기보다는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가 "그러니까 집안 내력이 중요한 거야", "아무튼 화목한 가정에서사랑받으며 자란 사람과 사귀어야 해"라는 식의, 선량한 이웃이 무심코 던진 말과 시선에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게 더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내겐 그게 더 절실하게 여겨져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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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을 잠시 의자에 누이도록 해준 것은특별히 선하거나 자비롭지 않은 한 인간이 건넨,
별것 아닌 호의였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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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고구마를 능가하는 에피소드는 없지만, 최근 멘탈의 연금술과 비즈니스 경제관련 책들을 읽었던지라, 그 반대되는 책이 균형을 잘 잡아주었다. 적당히 게으르고 소심한 작가의 모습이 멘탈의 연금술의 작가가 보면 한탄?하겠지만,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아, 이 책의 장점은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다는 것. 뭔가 작은 성공을 하고 싶을 때, 완독의 기쁨을 줄 수 있음. 이번에 알게된게, 한게 없는것 같을 때 서점에서 그림책 사지말고 앉은 자리서 읽으면, 그 달에 책 한권 완독이 되며, 무언가 뿌듯한걸 완성한 느낌이 아주 좋았다.
이런 소심한 그러나 의기양양하고 싶은 작가와 친구가 되고싶다.


인생이 온통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쏟고 있던 열띤 관심을 잠시 접는 게 좋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읍시다….
177p

기껏 복숭아가 되었으나 맛없는 복숭아도 있는 것이다. 복숭아의 삶도 그런 식이다. 사람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저마다힘든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아 무언가를 이루더라도 그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대단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아니다. 결국 그게 삶이다. 나에게만 닥치는 유난한 시련이 아니라, 그냥그게 삶인 것이다.
179p

알고 지내던 어느 분이 모든 일엔 의미가 있고 배울 게 있다. 지금 힘든 시기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긴 얘길 나누고싶은 기분이 아니던 때라 네, 네 대답하고 말았지만....
나는 모든 일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며 차라리 겪지 않는 편이훨씬 나은 일도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가 나중에 돌아봤을 때아무 의미 없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내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어 때로는 무섭기도 했지만,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에 쏟은 내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판명이 되더라도,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다시 다음 일을 시작할 것이다.
실패했을 때 오래 기죽지 않고 흠, 그렇단 말이지‘ 하고 다음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182p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좋지 않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그럼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이에요?˝라고 묻는다. 그러나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지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시기가 있는 것이다. 219p

멀리서 봐야 빛나는 달과 별처럼,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아름답다고 느끼며 위로받는다. 저마다 다른 슬픔을 가진 채, 단지 밤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 어느 밤 내가 서러운 일로 목 놓아 울고 있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방의 불빛을보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 반짝이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234p

그제야 깨달았다. 평소 나의 평온한 마음은 나 혼자서 유지하는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매일 마트나 식당을 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택배기사나 이웃들과 마주치면서도 그럭저럭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예의 바른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만, 나의 평온한 일상은 누군가의 예의 바름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235p

인생이라는 고단한 여정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들은 기어이 아름다운 것들을 남기고 죽는다. 아름다운 것을 찾고 보고 들어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존재란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238p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돌아가신 후에 보니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 좋은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세요. 좋은 사람들과 웃으면서 사진 많이 찍고 지내시길 바라요.˝
그 말을 듣고 울컥하고 말았다. 나도 미처 잘 나온 사진 한 장 함께 찍지 못하고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이 없어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이야 잊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안타까웠다. 그것은 어쩌면 사진이라는 물건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 사진을같이 찍는 행위를 함께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에 가까우리라.
239p

사진만이 아니라 아마도 우리는 서로가 사라진 후에 많은 것이아쉬워질 것이다. 사진을 많이 찍을걸. 함께 여행을 갈걸. 고맙다고 할걸, 맛있는 것을 먹을걸, 또 저마다의 사연이 얽힌 아쉬움이 남겠지. 그중에는 그때 당근 케이크 한 조각을 사다 줄걸쳐럼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은 그렇게 사적인 사연의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니 그렇다. 지금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일들 대부분은지금 하지 않아도 사실 괜찮았다. 대체로 당시에 생각도 못한 일이 나중에 무척 아쉬워진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늘도 사소하고 중요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240p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고있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용기를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43p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내가 바늘에 찔려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바늘은 왜 하필거기 있었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생각하다보면 예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예술가들에겐 미안하지만 예술가는 망한 것이다.
250p

우리는 서로를 꼭 완전히 이해해야 할 의무도, 이해시켜야 할 의무도 없다. 그냥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걔는 그런 사람인가 보구나‘ 하며,
253p

해파리에 대해 찾아보니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떠돌며 생활한다고 나와 있었다.
어쩐지 울컥했다.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수면을 떠돌며 살면 된다.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255p

그럴싸한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어릴 때 누군가 해주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늦더라도 살면서 스스로 깨달았으니괜찮다. 저 생각을 한 그 밤, 나는 펑펑 울었다. 서운한 감정 한편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남은 삶을 좀 더 가볍게, 그러나 착실히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257p

아, 별이 쏟아지는 곳에서 매일 밤 다른 모든 것들이 저 별들에 비해 얼마나 시시한지 떠올리며 살고 싶다.
2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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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6-09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맛있는걸 먹읍시다.^^
여기에 꽂히네요~
 

인생이 온통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쏟고 있던 열띤 관심을 잠시 접는 게 좋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읍시다….
- P177

기껏 복숭아가 되었으나 맛없는 복숭아도 있는 것이다. 복숭아의 삶도 그런 식이다. 사람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저마다힘든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아 무언가를 이루더라도 그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대단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아니다. 결국 그게 삶이다. 나에게만 닥치는 유난한 시련이 아니라, 그냥그게 삶인 것이다.
- P179

괜찮습니다, 의미가 없어도

알고 지내던 어느 분이 모든 일엔 의미가 있고 배울 게 있다. 지금 힘든 시기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긴 얘길 나누고싶은 기분이 아니던 때라 네, 네 대답하고 말았지만....
나는 모든 일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며 차라리 겪지 않는 편이훨씬 나은 일도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가 나중에 돌아봤을 때아무 의미 없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내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어 때로는 무섭기도 했지만,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에 쏟은 내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판명이 되더라도,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다시 다음 일을 시작할 것이다.
실패했을 때 오래 기죽지 않고 흠, 그렇단 말이지‘ 하고 다음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P182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좋지 않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그럼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이에요?"라고 묻는다. 그러나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지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시기가 있는 것이다.  - P219

멀리서 봐야 빛나는 달과 별처럼,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아름답다고 느끼며 위로받는다. 저마다 다른 슬픔을 가진 채, 단지 밤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 어느 밤 내가 서러운 일로 목 놓아 울고 있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방의 불빛을보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 반짝이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 P234

그제야 깨달았다. 평소 나의 평온한 마음은 나 혼자서 유지하는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매일 마트나 식당을 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택배기사나 이웃들과 마주치면서도 그럭저럭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예의 바른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만, 나의 평온한 일상은 누군가의 예의 바름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 P235

인생이라는 고단한 여정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들은 기어이 아름다운 것들을 남기고 죽는다. 아름다운 것을 찾고 보고 들어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존재란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 P238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돌아가신 후에 보니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 좋은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세요. 좋은 사람들과 웃으면서 사진 많이 찍고 지내시길 바라요."
그 말을 듣고 울컥하고 말았다. 나도 미처 잘 나온 사진 한 장 함께 찍지 못하고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이 없어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이야 잊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안타까웠다. 그것은 어쩌면 사진이라는 물건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 사진을같이 찍는 행위를 함께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에 가까우리라.
- P239

사진만이 아니라 아마도 우리는 서로가 사라진 후에 많은 것이아쉬워질 것이다. 사진을 많이 찍을걸. 함께 여행을 갈걸. 고맙다고 할걸, 맛있는 것을 먹을걸, 또 저마다의 사연이 얽힌 아쉬움이 남겠지. 그중에는 그때 당근 케이크 한 조각을 사다 줄걸쳐럼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은 그렇게 사적인 사연의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니 그렇다. 지금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일들 대부분은지금 하지 않아도 사실 괜찮았다. 대체로 당시에 생각도 못한 일이 나중에 무척 아쉬워진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늘도 사소하고 중요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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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고있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용기를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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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내가 바늘에 찔려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바늘은 왜 하필거기 있었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생각하다보면 예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예술가들에겐 미안하지만 예술가는 망한 것이다.
- P250

우리는 서로를 꼭 완전히 이해해야 할 의무도, 이해시켜야 할 의무도 없다. 그냥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걔는 그런 사람인가 보구나‘ 하며,
- P253

해파리에 대해 찾아보니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떠돌며 생활한다고 나와 있었다.
어쩐지 울컥했다.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수면을 떠돌며 살면 된다.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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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한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어릴 때 누군가 해주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늦더라도 살면서 스스로 깨달았으니괜찮다. 저 생각을 한 그 밤, 나는 펑펑 울었다. 서운한 감정 한편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남은 삶을 좀 더 가볍게, 그러나 착실히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 P257

아, 별이 쏟아지는 곳에서 매일 밤 다른 모든 것들이 저 별들에 비해 얼마나 시시한지 떠올리며 살고 싶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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