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완독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일부 문장과 문단이 인상 깊어 공유합니다. 긴글 주의하시고, 읽는 것도 자유롭게, 패스도 자유롭게, 생각도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시리즈 0 로 제목에 표기되어 있고 2019년 12월에 출판되었으나, 시리즈 1,2는 2017년에 먼저 나왔습니다 (개정판이 2020년 나왔지만..). 프리퀄 아닌 프리퀄인데요. 개인적으로 저자인 사랑하는 작가 채사장의 책은 다 읽었고, <열한계단>은 인문학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위로 받아 한참을 울었던 책이지만..... 이 책은 추천하기 어렵네요. 채사장 특유의 후려치기에 대한 비판은 원래 있었던 얘기이지만, 저는 후려치기의 필요성을 찬양하던 타입이라 그 부분은 넘어갈 수 있습니다. 추천하기 어렵다 한 건, 채사장 작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쓰고 싶은 것만 썼다는 게 너무너무 강해서, 인문학 책에서 이리 쓸 수 있다는 본인에 대한 확신이 놀라울 정도 라는 점입니다. 논리적 비약을 위해 점프의 수준이 상당했어요.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친구에게 얘기했었는데, 한 때 저처럼 지대넓얕을 좋아했던 친구는 팟캐스트 마지막 즈음에 애정이 식다가, 이 책은 중간에 포기?를 했다고 하네요. 친구의 말로는 채사장 작가의 관심사가 사후세계이다 보니, 현실에 기반을 둔 티벳불교등 여러 가지 건에서 자가당착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채사장 작가에 대한 응원과 짠함과 애정은 접을 수 없어 몇몇 구절들을 살포시 가져와 공유합니다. 아, 그리고 저는 11차원등은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데, 유튜브에서도 시각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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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이전의 시간, 시간 이전의 시간에 대해 말이다. 최신의 물리학 이론들은 도저히 논리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 시간 이전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38p
잠시 당신 눈앞에 펼쳐진 비어 있는 공간 한곳을 응시하자. 물론 그곳은 산소나 질소 혹은 전자기파로 가득하겠지만, 어쨌거나 우리가 도화지처럼 텅 빈 배경이라고 생각해왔던 시공간은 부글부글 끓으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 51p
미시 공간에서 1과 -1이 0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뭔가 어긋나며 0.000000001 정도의 차이가 남은것이다. 실제로 우리 우주도 반물질 입자 10억 개에 물질 입자 한 개 정도가 살아남음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52p
이 설명이 흥미로운 것은 철학의 오랜 질문인 ‘무(無)에서 유(有)가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과학이 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유‘는 ‘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신기한 현상을 동양적으로 표현해보면, 고요한 ‘무‘의 공간이 사실은 음(陰)‘과 양(陽)의 생성과 소멸로 들끓고 있는 잠재적 유‘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52p
아무래도 세계는 생각보다 신비한 무엇인 듯하다. 그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중첩되어 있으며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기이한 세계의 매우 일부분만을 단순하게 이해하도록 태어났다. 67p
추가 차원이라는 더 높은 단계의 세계를 경험하는 존재는 낮은 차원에서 분리되어 있는 존재들을 미분리의 통합적인 존재로 볼 것이고, 3차원의 우리에게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이는 사물들이 그 근원에서는 하나임을 쉽게 직관할지 모른다. 2차원의 존재에게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다른 것으로 경험될테지만, 우리에게는 한 동전의 다른 측면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말이다. 75p
만약 지금의 수치와 달리 아주 작은 차이만 있었더라도 우리 우주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 질량이 이미 정확하게 밝혀져 있는데,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조금 더 무겁다.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미세해서 고작 전자 2개 정도의 질량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너무도 미미하다. 그런데 이 미세한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차이를 만들었다. 78p
우주의 크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월적 거대함 앞에서 내 일상의 사소함은 너무도 하찮게 느껴진다. 111p
우리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알아본 것은 고대인의 삶과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이해함으로써인 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성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는 비슷한 고민과 슬픔을 가졌으리라.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해답은 없는 것인가? 166p
우리가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려 할 때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질문을 멈추라. 그것은 먹고사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따랐다.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했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했다. 모든 인류가 그러했듯 우리는 어느 곳에서는 매 맞는 코끼리였고, 어느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자였다. 173p
우리가 굳이 낯선 세계관인 《베다》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나의 세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181p
우선 실재론의 세계관에서는 세계와 자아가 분리된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세계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세계와 자아의 존재는 서로 독립되어 있다. 하지만 관념론의 세계관에서는 세계와 자아가 분리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수정구슬과 그 안에 왜곡되어 담긴 세계의 이미지는 떼어지지 않는다. 즉, 자아가 사라지면 세계도 함께 사라진다. 209p
이에 대해 크리슈나는 지혜롭게 답해준다. 세속과 탈속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세상이 너에게 쥐여준 의무를 행하라. 그리고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 231p
어린 시절에는 어떤 의미인지 와 닿지 않고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는데, 사회 생활을 하고 경제 활동을 하고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집단들을 거치면서 노자의 통찰이 새삼 날카롭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렇지 않던가? 274p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는가? 에둘러 말하니까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데, 실은 이런 말이다. 너 세상 구한답시고 여기저기 얼굴 알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진짜 능력자들은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다. 그리고 너 교만하고 욕심 많아 보이니까, 앞으로 조심해라.‘ 282p
공자와 노자의 차이 – 관직에 나아가서는 유교의 신봉자가 되고,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도교의 신봉자가 된다. 303p
불변의 자아를 생각하는 사람의 삶과, 끝없이 변화하는 자아의 실체를 고민하는 사람의 삶과,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사람의 삶과, 이 모든 세계관의 의미를 이해한 이의 삶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세계관을 건너왔으니, 남은 숙제는 자기 내면 안에서 진지하게 자신의 답을 길어 올리는 것일 테다. 386p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확실한 것이란 애당초 없다. 이러한 입장을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질문 자체를 무력화한다.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은 뭔가 쿨해 보이는 면이 있다. 그리고어려운 질문을 그럴싸하게 회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편하고 효율적인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의주의는 선택하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 없이 선택하는, 가장 무성의한 대답이기도 하다. 서양 철학이 오늘날까지도 학문의 기초가 되고 높게 평가되는 것은 무수히 많았던 회의주의적 대답 속에서 어렵게 진리의 토대를 꿈아온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456p
에필로그 - 어떤 면에서 세계관은 감옥이다. 감옥 안에 있는 자에게는 감옥 밖의 한 줌의 공간도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은 당신 내면의 감옥이다. 54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