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완독한 문학동네시인선 100기념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일부 문장이 인상 깊어 공유합니다.
시는 어떤구절은 너무 마음이 가지만, 제게는 대부분 모를 낯설말이라 지루한 얘기를 듣는듯 했어요
긴글 주의하시고, 제 취향 pick이니 읽고 싶은 부분만 각자 자유롭게, 패스도 각자 자유롭게요.
기우뚱거리고
쏟아져도 괜찮아
낙관도 포기도 아닌 말이 마음에 닿기도 한다
- 남지은 시인 <테라스> 중에서
어린이 병원에서 일할때 한 아이와 자주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비가 오지 않는날도 장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였다. 우린 창가에 앉아 기차가 오가는 걸 바라보거나 비행기가 지날 때를 기다렸다. 기다리면 기자와 비행기는 어김없이 지나갔고 아이는 기뻐했다.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여겼던 나도 기차가 달리면,
비행기가 날면 어느새 기쁨을 느끼게 됐다. 무엇이 사람을기쁘게 할까.
- 남지은 시인 <그리운 미래> 산문 중에서
그이의 뜰에는 돌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 돌을 한참 마주하곤 했다.
돌에는 아무것도 새긴 게 없었다.
돌은 투박하고 늙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그 돌에 매번 설레었다.
아침 햇살이 새소리와 함께 들어설 때나바람이 꽃가루와 함께 불어올 때에돌 위에 표정이 가만하게 생겨나고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리하여 푸른 모과가 열린 오늘 저녁에는그이의 뜰에 두고 가는 무슨 마음이라도 있는 듯이돌 쪽으로 자꾸만 돌아보고 돌아보는 것이었다.
- 문태준 시인 <입석 立石> 전문
가끔은 우울하냐는 질문이 새삼스럽고, 슬픔은 남몰래 귀신같이 내 몸을빌려 청승을 떨었다.
- 서윤후 시인 <그대로 두면 그대로 되지 않는> 산문 중에서
하루하루 죽어간다고 해서 죽음을 만난 것이 아니듯이,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해서 인생을 만났다고 할 수 없으니까. 아직 나는 인생을 만난 적 없으니까.
- 신용목 시인 <결정적인,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산문 중에서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 오병량 시인 <편지의 공원> 중에서
죽고 싶은 것과 살고 싶지 않은 것은 달라요
둘 사이의 공백을 견디는 게 삶이죠
- 이용한 시인 <불안들>중에서
우리의 말, 늦가을에 다시 피어나는
봄꽃처럼 얇아서 늘 조마조마하던걸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는 안타까운 주름
그걸로 충분하네 이해가 오고 있네
측은하고 반갑고 또 많이 고맙네.
- 한영옥 시인 <측은하고, 반갑고> 중에서
곧 닥쳐올 무서리의 아침을, 무자비한 기습을 조마조마내다보는 꽃송이들에게 ‘내 앞에 와주어 고맙다고 중얼거리고 있는 스스로의 저의를 살핀다. 아무래도 뜨겁게 ‘고맙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본심이 아니었다고, 말이 잘못 나왔었다고 그 누군가 진심을 시원하게 털어놔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리라. ‘고맙다‘는 말을앞질러 준비해놓고서.
- 한영옥 시인 <괜찮네, 고맙네> 산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