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 P71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 P83

 아마도 대부분의사람들은 떠돌이 무리 내에서 두터운 교분을 향유했겠지만, 무리내에서 적개심이나 비웃음을 받는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것이다.
- P87

이들은 어린이나 병자, 노인을 살해하는 행위를 오늘날 많은사람들이 낙태나 안락사를 보는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 P88

생각과 믿음과 느낌의 서계는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려운 법이다
- P90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선구자들이 그 신세계에서저지른 짓이다. 최초의 수렵채집인이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특정 대륙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가고 이후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된 순간이었다.
- P104

 산업혁명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 P117

세상의 대형동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인간 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뿐일 것이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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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1장 서론

전체적으로 두가지 부분에 놀랐다. 하나는 정말 이글이 여성의 참정권도 겨우 의견을 내던 시절에 쓰였던 글인가. 지금 쓰여져있다 하더라도 진보적이고 논리적이라, 지금의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는것.
또 하나는 이 글이 아직 서론밖에 되지않았단 말인가. 할 말 다하고, 의견 다 낸거같은데 왜 이게 서론이지 하는 놀람. (그래. 어디 다음 장 어떻게 진행되나 지켜보고 말리라!)
자유에 대한 부분이 무조건 보장하라 식도 아니고, 효용 즉 이익이 중요하나 그렇다고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해할만큼 중요하지 않다는것을 젠틀하게 설명한 느낌이었다. 그 시절을 살진 않았지만, 아마 존 스튜어트 밀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을거다. (유시민을 같은 반열에 올리려할 의도는 아니지만) 지금 유시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 하나는 틀린소리는 아닌것같은데 얄미워서, 주는거 없이 미워서, 지만 잘났다고 떠들어서도 있을텐데..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과 망상을 하며 혼자 재미있어했다. 자유론을 읽으며 혼자 예능보듯이 했음을 살짝 반성한다.
읽는 도중 놀랐던 부분은, 도덕성 , 도덕률이라는 것도 가진자의 이해관계에서 나왔다는거. 그러니 법적 문제가 없는 내 죄책감의 어떤 부분은 상당 부분 조작된걸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단순히 이해관계가 아닌 공감과 비공감이 더 큰 역할을 했다는 부분은.. 뭐지 이 책 심리학인가하는 놀라움도.
뭔가 앞으로가 설렌다!

인상깊은 구절: 개개인들을 강제해서 인류에 이익이 되어 보이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보다는, 개개인들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 보이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인류에게 더 큰이익이 된다. 53p

이유: 자유를 옹호하는게 너희가 말하는 인류의 이익을 저해하는게 아니라, 더 큰 이익을 만든다는 저 명분과, 보이지 않는 반대자들을 어린이로 만드는 자신감!

발제: 부모가 자식에게, 그보다는 약하지만 선배가 후배에게 (직속상사가 아끼는 부하직원 이라던가) 등등.. 다 너 잘되라고 강제하는거..때론 그게 맞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데 자식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게 아니고, 그냥 내가 이렇게 가고싶다는데.. 혹은 팀원이. 이런것도 자유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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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1.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옳을 경우(현대지성출판사 57-93)

소감 왜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하는지를 진리가 억압받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입장에서 조목조목 논리를 펼치는데, 그 논리에 압도당했다. 많은 사람들, 아니 ‘나‘라는 기준에서 당연히 진리가 억압받지 않게 토론의 자유가 있어야지 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 토론을 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건 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논리일 것이다. 그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의 논리 도덕 진리에 의해 범죄자로 사형당했으며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형을 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를 박해한건 도독적인 현인 마르쿠스아울렐리우스 황제였다, 내가 믿는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이들이 쓸데없는생각(?)을 못하게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는건 얼마나 무서운 무지인가

구절 : 정통기독교인들은 최초의 순교자들을 돌로 쳐죽인 자들이 그들보다 더 나쁜자들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박해자들 중 한 사람이 사도바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생각이 달라질것이다 75

이유 : 저 구절을 나에게 계속 심어주어 나로하여금 무지의 단호함을 경계하게 하고 싶고 우리가족에도 주고싶다.. 근데 못주겠지

발제 : 우리는 나는 얼마까지 어느선까지 자유로운 토론을 용인할 수 있는가? 시간 낭비라고 상대방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검은 마음이라고 미리 결론 내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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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인류의 복리를 위해 필수적인 개성

소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자유를 허용 해야한다는 저자의 논리에 우리 사회의 배타성과 나와 우리들의 꼰대기질을 반성해봤다. 저자는 나보다, 지금 여기보다 더 진보적이었구나 라는 감탄을 했는데.. 그랬는데.. 바로 이어지는 논리에서 감탄 뿐 아니라 큰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잘 발휘하지도 못하고 기계보다 능력도 떨어지지만,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 왜 이리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 모자라고 약한 인간의 내면의 힘을 믿는다고, 그러니 타인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개성과 삶의 방향을 인정해주자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발전이라고
저자는 저자가 살던 배타적 상황이 영웅적 인물을 출현할 수 없게 한다고 탄식한다. 지금의 시대에도 저자의 탄식은 그대로 적용 된다.

구절:
반면에, 오늘날 이 세계의 좀더 개화된 지역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고 앞으로도 만들어낼 수많은 생물의 종들 가운데서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그런 자동기계로 대체해버린다면, 그것은 이득이 아니라, 상당한 손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어떤 정해진 모형을 따라 만들어져서 정해진 곳에 배치되어 정해진 일을 정확히 해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내면의 힘을 따라 사방으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게 되어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141-142p

이유: 자유론이란 책이 이런 따뜻한? 책인지 몰랐다. 이 앞 부분에서 저자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논리를 이끌어 간다. 각 사람의 능력이 떨어 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사람이 그 스스로를 인정하고 개성을 발휘해 나가고 성장시켜야 하는 일이 단지 효용성의 문제만은 아닌 것에서 무언가 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데 위로를 받았다.  

발제 1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자유와 다양한 상황˝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이 결합될 때, ˝개개인의 활력과 갖가지 다양성이 생겨나고, 이 둘이 합쳐져서 ˝독창성˝을 이루게 된다.
독일의 빌헬름 폰 훔볼트 남작이 쓴 <정부의 활동범위와 의무들> 11-13쪽 저자가 인용 , 138p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가정과 직장) 어떻게 이 두 조건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한다.

발제 2
저자가 쓴 169p 논리를 보고 다음가 같은 의문이 들었다.
1800년대의 영국과 다르게, 지금은 대중의 의견을 무시하는 특권이 사라진 건 아닌가?
정말 대중의 의지에 저항하고자 하는 생각이 정치인에게서 사라진 것인가?
정말 대중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하는 그 어떤 사회적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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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가지는 한계

소감:
내가 나의 문제라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함해 내맘대로 내 모든것을 다 정하고 행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느 누구도 본인자신보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에게 엄청난 책임을 주는 무한책임의 표현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문제를 내 마음대로 무조건 할 수 있는 간단한게 아니고, 사회 또한 그런 개인의 무거운 책임을 함부로 개입도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여전히 쉬운문제가 아니나.
이 개입이 지금의 복지라던가 참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제한에 관해서인데..이 제한을 제일 좋게하는건 존 스튜어트 밀의 의견처럼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관에 세삼 놀랐다. 강제와 강압이 아닌 깨우쳐주는 교육관 이라니! (현대지성 173p)
사회가 가지는 개인에 대한 한계에 대해선.. 꼰대처럼 굴지말라며 (현대지성174p), 사회의 전제가 올바르더라도 개인의 다양한 사정에 적용되기 어려운 피상적인거라 잘못 적용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는(175p) 지금의 시대보다 더 세련되어 보여 놀라웠다. 존 스튜어트밀의 최종판단이 결국 개인이라는 말은 무섭기까지했다.(175p)
무서운(?)밀의 논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 생활을 하며 조언을 받아 감사했다. 사회에서 인간관계에 무언가 개인지도를 받은 느낌이다. 공공연히 밝힐 필요는 없지만 (난 공공연히 저런 그룹들이 더 싫다), 우린 싫어하는 사람을 피할 권리와, 그에게 악영향을 받는 이에게 경계하기를 당부할 의무, 그리고 타인의 발전될 만한건 사심 없이 응원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조언하고 설득하는 방법이라니! (177p)
우리의 어설픈 조언중 상당수가 사실 조언이 아닌 밀이 말한 도덕적인 악덕 (다른 사람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것을 즐기는 것, 다른 사람들을 폄하함으로써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우월의식,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하는 이기주의) 일수도 있고, 선량한 조언이 사실 선량하지 않거나 무능력한 조언일 수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선을 정확하게 아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구절:
˝신들에게 잘못한 일들은 신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해야 한다˝ 한 사회 또는 그 사회의 공직자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해서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따라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고 있다.
204p
이유: 막연한 우리의 도덕성으로 실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자들을 다수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스스로를 선량하다 믿는 시민이 되지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pick 했다.

발제:
˝하지만 문명화된 한 사회가 미개한 다른 사회를 강제적으로문명화시킬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악법으로 인해고통당하는 한 사회에 속한 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회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닌데도,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만족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제도를,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들에게서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개입해서, 그 제도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할 것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208p 참조
이 부분이 발제. 후진국을 개발시키겠다는 명목, 선의가 있다는 전제하에, 그건 옳은것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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