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 가까운 책은 아니다. 내용뿐 아니라, 심지어 책 자체에서도 몇건의 오타가 있었는데 인명과 지명이라 신경이쓰였다. 정확히는 작가님께 송구하게도, 성숙하거나 잘 구성된 에세이에서 멀고, 그렇다고 여행책이나 정보를 잘 주는 여행책도 아니었다. 실명일지 모르는 작가님의 지인들의 이름과 불편한 관계는 마지막까지 이래도?되나 싶었다.
그럼에도 그 우울함과 불안, 불편한 관계, 달라지고 싶은 도전은 꼭 20대의 것만은 아니기에 어느선은 그 마음이 혼자는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작가님 여행 시 나이 서른일곱. 서른일곱은 스물일곱과는 다른 환경, 사회요구, 어느정도의 기반을 갖는다. 그래도 스물일곱과 똑같이 아직도 성장해가는 한가운데에 있다. 마흔일곱이 넘고 그 이후가되어도 그렇겠지. 우리 아빠 나이도 관계에 상처받고 미래가 불안할다는 걸 알고있다. 그렇게 작가님께 조언이 아닌, 위로와 공감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그렇게 우리에게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어 이 센티멘탈 여행기에 마음이 갔다.
여행을 여행지 순서가 아나, 여행가기전 지친 일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혼자여행 부분, 혼자가 아닌부분, 스스로를 발견하는 부분으로 구성하여 여행지를 왔다갔다 하는 챕터나눔이 약간 진부하면서도 좋았다. 많은 기술적인 부분을 일부러 누락하고, 마음을 따라가는 부분만 서술하는것도 불친절하지만 좋았다. 작가님의 작은 성장이 좋았다. 또 성장아닌 머무름이어도 어쩌냐. 그냥 쉬어가는거지. 나도 작가님 같은 마음이어서 좋았던걸수도.
밑줄그은 부분 중 일부를 다시 옮겨본다.
방학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시험을 여러 개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6p
‘언령‘이라고 들어봤을까. 말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영적인 힘을 말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내가 내뱉은 말이 언젠가 내 귀에 들어와 나를 일으킬 수도, 또는 넘어뜨릴 수도 있다. 37p
어느 누구도 나의 하루를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지만, 함께 해줄 수는 있다. 41p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어쩌다 흐른 물이 또흐르고 흐르다 보면 물길이 생긴다. 잊고 있었던 관심사가 우연히 런던의 한모습을 보고 툭 하고 튀어나왔다. 따르다 보니 런던에서의 여행이 어느새 과거의 간지러웠던 궁금증을 채워가고 있었다. 때가 이르고 조건이 갖추어져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빈방 한쪽을 채운 것처럼, 지금 갈급한 문제도 언젠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75p
서둘러 숙소에 들어가 비 맞은 흔적을 다 씻어 내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편히 누워있었다. 아까의 쓸쓸함은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갔는지, 컵라면 냄새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100p
한 사람의 인생은 자기 자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까지 그 흔적이 남는다. 각자의 인생이라는 굴레가 서로의 굴레와 만나기도하고, 겹치기도 한다. 118p
런던과 로즈힐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때에도 항상 같은 자리에 있지만, 내가 바라보는 시간에 도시를 감싸고 비추는 빛은 그때에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장관을 만들었다. 그 시간에만 주어지는 유일무의한 특별한선물이었다. 125p
손글씨로 메뉴가 써있었다. 홈메이드 애플파이와 라떼를 시켰다. 이 카페라면 홈메이드는 무조건 맛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161p
오스트리아는 약간 차가우면서도 약간 따뜻하다. 차가운 도시남의 외모를지녔지만, 대가족 안에서 자라서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165p
매일 걷는 길 위에서 어떤 감정이든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감정을 오롯이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 행복한 감정이든, 슬픈 감정이든, 그순간 자기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고, 그 순간의 집합이 한 사람의 삶이다.
그 삶의 조각들이 나라는 사람을 이루어간다. 더는 강요받는 감정과 목표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193p
학교로 돌아가면 똑같은 문제가그 자리에 있겠지만 괜찮다.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여행의 어떤 한순간으로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니다. 21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