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이런 말을 남긴다.
"모든 걸 걸고 사랑하라. 그 누구도 너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 하게하라."
누구보다 쓸쓸하게 생을 맞이한 빈센트 반 고흐였지만, 그에게는 사랑이가득했다.  - P61

".… 만약 마음속에서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걸……. 이라는 음성이 들려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보아야만 한다. 그 소리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잠잠해진다."
고흐의 작품과 함께 한 벽면에 남겨진 그의 말이다.  - P62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던져 넣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시간을 모아 속도를조절할 수는 없을까.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생활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나만의 모습을 지켜가며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지베르니에서 모네와 그의 작품을 만난 것처럼, 오베르 쉬르 와즈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작품을 만난 것처럼, 이 땅에 발 딛고 서있지만 내 모습 그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삶을 살 수 있을까. 꿈의 길 위에서 꿈꾸는 푯대를 향해 집중하고, 걸어가는과정을 즐길 수는 없을까. 그 과정 자체가 꿈이 될 수는 없을까.
- P63

37살이 되어 혼자 나선 첫 유럽 여행은 단순한 휴식도 아니고, 새로은 삶을향한 도전도 아니었다. 나와 마주하고 충전의 시간을 위한 여정이었다. 유럽에 도착해서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20대의 나에게 채워주고 싶은 것들이떠올랐다. 그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고,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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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제1부 인지혁명

소감:

1장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은 이 책 속으로 들어가기에 편안하게 흥미진진한 챕터였다. 도입이지만, 이 파트 하나로도 세바시나 테드 강연이 될 것 같았다. 저자가 말하는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이고,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의 조상인줄 알았다. 어릴적 학교서 배운 그림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근데 그들이 일부는 같은 시대에 있고 경쟁했다니, 지금까지 무개념이었네, 나는.

2장 ‘지식의 나무‘ 는 내 입장에서 지적허영심(...)도 챙겨주고, 뭔가 깨달음도 있고, 생각도 제일 많이 하게했다. 저자는 냉정하다. 왜 하필 그 돌연변이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사피엔스의 DNA에 등장했을까는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었다고한다. 그리고 돌연변이를 일으킨 원인보다는 그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중요하다고 말한다 (44-46p). 영화 곡성에서, 왜 내 아이가가 아니고, 그저 낚시대에 물린게 그 아이 였다고 한다. 사실 냉정하고 무서운 말이며, 결과를 이해하라는 말은 현실적이다. 어쩐지 이 책을 완독할즈음에는, 인류에 불편한 미래를 얘기하고 받아들여 할것같단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어렵지 않은친절함도 뭔가 냉정한 현실주의 이면 같았다. 물론 나의 오해와 억측이라 다 완독한 분들의 어이없음을 자아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발상에 탄복할 수 밖에 없는건, 뒷담화에 대한 서술이었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데, 들소의 위치를 아는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발상이라니.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필요하다니 (깜짝 놀란 47p). 요약하자면 언어와 가상적실재로, 호모사피엔스는 집단지성을 이룰수 있어 네안데르탈인을 제끼고(일부 흡수) 오직 남은 현생인류가 되었다는건데, 이러면 일본만화 간츠 처럼 지적외계인이 침공해와도....

3장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날‘에선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현재가 훨씬 더 크나, 개인 수준에서는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는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83p). 그들도 지금의 사춘기 학생들과 사내정치, 친한척 무심한 지금처럼 복잡미묘 했을까?

4장 ‘대홍수‘는 무서운파트고 종의 구성원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생각을 많이 해봐야겠다.호모 사피엔스가 특정 대륙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가고 이후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되었다는 말이나 (104p),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동물과 식물을 멸종시켰다는 서술 (117p)은 뭐라 적기에도 그렇다. 그러했고, 현재진행형이니..

인상 깊은구절 :
이들은 어린이나 병자, 노인을 살해하는 행위를 오늘날 많은사람들이 낙태나 안락사를 보는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88p

이유: 고대인들이 성인들사이의 존중과 우정은 매우 중요하면서, 어떤 부족에선 아이를 실용적 기분에의한이유로 죽이고, 집단에 방해되는 약자들을 죽이는 걸 보고 아니다했다. 영화 아바타 같이 영화로 만들면 악당이었겠지. 그런데 고대인의 마인드에서 정말로 낙태와 안락사와 비슷한 개념이라면 쉽게 판단이 안된다. 개인적으로 낙태 안락사를 절대 반대하는입장이 아닌 나로서는..확인된사실이 아닌 비유라도, 충격적인 개념뒤집기이다. 하긴 흑인노예에게 가혹한,착하고 친절한 백인이 실제 수많이 존재했고. 우리 조선시대에도 노비에게 가혹한 청렴하고 존경받는 관리가 있었겠지. 그 사회의 개념과 믿음 문화를 무조건 상대주의로 말하는것도 위험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비판하는것도 무지한 일이다. 아, 어렵구나.

발제: 아래 구문을 바라보며 작년 완독한《이기적 유전자》가 생각났다. 워낙 이기적 유전자 를 이해하는데 어려웠었다. 그런데 아래 부분이 대척되는 점이 있고, 유발 하라리의 의견에, 읽는 독자마다 생각이 다를듯하여 잠시 생각해 보는중. 내 대답은 기꺼이 포기한것까진 아닌것같다.
<대조적으로,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이래 행태를 신속하게 바꾸고 새로운 행태를 유전자나 환경의 변화가 없이도 미래 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톨릭 신부, 불교의 승려, 중국획 환관처럼 아이를 갖지 않는 엘리트가 계속 등장했던 것이다. 이런 엘리트의 존재는 자연선택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 모순된다.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 아이 낳기를 기꺼이 포기했으니까 말이다. 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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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 P71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 P83

 아마도 대부분의사람들은 떠돌이 무리 내에서 두터운 교분을 향유했겠지만, 무리내에서 적개심이나 비웃음을 받는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것이다.
- P87

이들은 어린이나 병자, 노인을 살해하는 행위를 오늘날 많은사람들이 낙태나 안락사를 보는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 P88

생각과 믿음과 느낌의 서계는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려운 법이다
- P90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선구자들이 그 신세계에서저지른 짓이다. 최초의 수렵채집인이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특정 대륙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가고 이후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된 순간이었다.
- P104

 산업혁명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 P117

세상의 대형동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인간 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뿐일 것이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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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1장 서론

전체적으로 두가지 부분에 놀랐다. 하나는 정말 이글이 여성의 참정권도 겨우 의견을 내던 시절에 쓰였던 글인가. 지금 쓰여져있다 하더라도 진보적이고 논리적이라, 지금의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는것.
또 하나는 이 글이 아직 서론밖에 되지않았단 말인가. 할 말 다하고, 의견 다 낸거같은데 왜 이게 서론이지 하는 놀람. (그래. 어디 다음 장 어떻게 진행되나 지켜보고 말리라!)
자유에 대한 부분이 무조건 보장하라 식도 아니고, 효용 즉 이익이 중요하나 그렇다고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해할만큼 중요하지 않다는것을 젠틀하게 설명한 느낌이었다. 그 시절을 살진 않았지만, 아마 존 스튜어트 밀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을거다. (유시민을 같은 반열에 올리려할 의도는 아니지만) 지금 유시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 하나는 틀린소리는 아닌것같은데 얄미워서, 주는거 없이 미워서, 지만 잘났다고 떠들어서도 있을텐데..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과 망상을 하며 혼자 재미있어했다. 자유론을 읽으며 혼자 예능보듯이 했음을 살짝 반성한다.
읽는 도중 놀랐던 부분은, 도덕성 , 도덕률이라는 것도 가진자의 이해관계에서 나왔다는거. 그러니 법적 문제가 없는 내 죄책감의 어떤 부분은 상당 부분 조작된걸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단순히 이해관계가 아닌 공감과 비공감이 더 큰 역할을 했다는 부분은.. 뭐지 이 책 심리학인가하는 놀라움도.
뭔가 앞으로가 설렌다!

인상깊은 구절: 개개인들을 강제해서 인류에 이익이 되어 보이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보다는, 개개인들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 보이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인류에게 더 큰이익이 된다. 53p

이유: 자유를 옹호하는게 너희가 말하는 인류의 이익을 저해하는게 아니라, 더 큰 이익을 만든다는 저 명분과, 보이지 않는 반대자들을 어린이로 만드는 자신감!

발제: 부모가 자식에게, 그보다는 약하지만 선배가 후배에게 (직속상사가 아끼는 부하직원 이라던가) 등등.. 다 너 잘되라고 강제하는거..때론 그게 맞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데 자식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게 아니고, 그냥 내가 이렇게 가고싶다는데.. 혹은 팀원이. 이런것도 자유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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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1. 억압하고자 하는 의견이 옳을 경우(현대지성출판사 57-93)

소감 왜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하는지를 진리가 억압받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입장에서 조목조목 논리를 펼치는데, 그 논리에 압도당했다. 많은 사람들, 아니 ‘나‘라는 기준에서 당연히 진리가 억압받지 않게 토론의 자유가 있어야지 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 토론을 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건 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논리일 것이다. 그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의 논리 도덕 진리에 의해 범죄자로 사형당했으며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형을 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를 박해한건 도독적인 현인 마르쿠스아울렐리우스 황제였다, 내가 믿는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이들이 쓸데없는생각(?)을 못하게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는건 얼마나 무서운 무지인가

구절 : 정통기독교인들은 최초의 순교자들을 돌로 쳐죽인 자들이 그들보다 더 나쁜자들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박해자들 중 한 사람이 사도바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생각이 달라질것이다 75

이유 : 저 구절을 나에게 계속 심어주어 나로하여금 무지의 단호함을 경계하게 하고 싶고 우리가족에도 주고싶다.. 근데 못주겠지

발제 : 우리는 나는 얼마까지 어느선까지 자유로운 토론을 용인할 수 있는가? 시간 낭비라고 상대방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검은 마음이라고 미리 결론 내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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