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튼, 디지몬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천선란 (지은이) 위고 2024-06-10, 132쪽, 에세이

#빈칸놀이터프로그램
#문학을낭독하는사람들 #문낭사 #문낭사9월 #천선란작가 #아무튼디지몬

💧 디지몬 어드벤처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똑같이 본 적 없지만 피카츄나 파이리, 로켓단 같은 캐릭터로 포켓몬은 안다. 디지몬은 누가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묵직함과 깊이에 대한 찬양을 블로그 이웃의 리뷰에서 읽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의 8할을 만든 그 보잘것없고 허접한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고백한 책이구나. 그래서 문낭사로 추천.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상이다. 천선란 작가에게 디지몬은 이해받지 못하던 어린 시절과 고통, 성장, 꿈, 그리고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별까지. 하나로 말하기 어려운 그런 것이었다. 디지몬을 본 적도 없는 내가 디지몬 이야기를 읽다가 울고 웃고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난 내가 지키고 구원하고 싶었던 것(사실 지금도)을 생각해 보았다.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남들이 보기에 힘들 수 있는 지금이 오히려 힘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독하게 내가 살아온 시절은 사실 그만큼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게 있어서였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닫고 위로받았다.

💧물론 그 독하던 기나긴 시간들의 최종 결과인 지금이 최선도 아니고, 심지어 아주 안좋은 상황도. 그러나 천선란 작가 아빠가 말씀하신 겪어보지 않은 세계가 최상일거란 생각은 하지말란 아니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엄마 아프기 십 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 언니의 말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마음이 느껴진다.

💧아무튼 디지몬이 천선란 작가를 구하고 이별을 한 것처럼, 나는,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구하고자 했고, 무언가에게 지켜졌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나의, 누군가의 추락을 막는 건 세계의 종말을 막는 것이다. 책을 읽고나서도 나는 디지몬을 보질 않았고 아마도 계속 그러리라. 어차피 디지몬이 누군가 그리고 한 세계의 종말을 막았고, 우리 모두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건 분명하고 또렷한 무엇이니.


💧 다 남았지만, 더 더 남은 구절들.

🌱이건 내가 디지몬과 영원히 이별하는 이야기다
7

🌱‘왜 구원에는 희생이 따르지?‘
‘지키고 구한다는 건 굉장히 아프고 잔인한 거구나.‘
20

🌱언뜻 보면 비슷한 듯 보이지만, 무언가를 무찌르고 싶다는 마음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것이 선행되느냐에 따라 그 색이 완전히 달라지고 디지몬은 후자였다. 
22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물론 엄마에게 더 좋았겠지만, 그게 정말 우리 삶의 최상이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더 나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어. 겪어보지 않은 세계가 최상일 거라 생각하지 마. 지금 우리의 현실이 가장 행복하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일 거야.˝
82

🌱나는 작고 보잘것없다. 그러니 힘든 게 당연하다. 그리고 (아마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90

🌱 나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아포카리몬으로 진화할 위험성이 있는 존재들을 본다. 그리고 나를 본다. 그들의 타락을 막는 것이, 나의 추락을 막는 것이 이 세상의 종말을 막는 일 같다. 어떻게 그들을, 나를,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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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에게 진화는 단계별 목적지와 같다. 한 단계 더 센 디지몬을 이기려면 자신도 그 단계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단계를 깨고 올라가야 한다. 
- P59

상처받은 나는 그날로 학원에 가지 않았다. 그림은 내 재능이 아니었던 거다. 정말 재능이었다면나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서 계속했을 것이다.
- P63

이제는 없다고, 더는 되찾을 수 없다고 믿었던 그것이 사실 내 안에 있음을. 그건 비록 색이 바랬을지라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에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 P75

겪어보지 않은 세계가 최상일 거라 생각하지 마. 지금 우리의 현실이 가장 행복하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일 거야. - P82

나는 작고 보잘것없다. 그러니 힘든 게 당연하다. 그리고 (아마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 P90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평온이 아니라 세상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던, 고요였던 것 같다. 어떤 파장도, 색도, 온기도 없는, 무채색의 세상.
- P102

나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아포카리몬으로 진화할 위험성이 있는 존재들을 본다. 그리고 나를 본다. 그들의 타락을 막는 것이, 나의 추락을 막는 것이 이 세상의 종말을 막는 일 같다. 어떻게 그들을, 나를,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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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을 정의하는 나의 두 번째 문장은 ‘내 콘텐츠를 남이 소비해야 하는 정확한 이유이다. 세상에는 볼 것, 읽을 것이 정말많다. 내 글과 생각은 나에게나 각별한 것이다. 독자가 호의를 갖고 경청해야 할 당연한 이유가 없다. 
- P129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확히 뭐라고요?"
"그걸 제가 왜 알아야 하죠?",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다른 이야기들과 뭐가 다르다는 거예요?"라고 시큰둥하게 되묻는 가상의 독자 목소리를 왼쪽 귓가에 모셔둔다. 
- P130

컨셉 도출에 가장 필요한 역량은 재치가 아니라 끈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깃발을 꽂을 수 있는 빈 땅이 보일 때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끝까지 자문자답하는 끈기가 기억되는 컨셉을 만든다.
- P136

나는 핵심을 알아보고 구조를 조직하는 능력이 결국 타인에 대한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길 들을 상대방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느낄 만한 재료가 무엇인지, 신선하다고 느낄만한 내용이 무엇인지 상상할 줄 모른다면 핵심을 골라내기도힘들 것이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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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구원에는 희생이 따르지?‘
‘지키고 구한다는 건 굉장히 아프고 잔인한 거구나.‘
- P20

리키가 가진 희망이란 가장 늦고 더딘,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성장이다. 지금은 없지만 악당의 손 틈에서 빛이 되는.
그리고 이건 피노키몬이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단 한가지였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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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한 내일
정은우 (지은이) 자음과모음 2024-05-03, 160쪽, 한국소설

#빈칸놀이터프로그램
#문학을낭독하는사람들 #문낭사 #문낭사10월 #정은우작가 #안녕한내일

🍋‍🟩 세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 같은 후기가 (후기 같은 에세이일지도) 하나의 흐름으로 묶여 있는 소설집. 코로나, 단절과 연결, 이방인. 세 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 키워드가 내 머릿속에 잡혔다.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이국적인 이 소재들을 풀어놓는 건 튀지도 너무 숨지도 않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 정은우 작가님을 만난 건 올 상반기 소설을 쓰는 모임이었고, 하반기에 다시 또 만났다. 작품 보다 마주한 게 먼저였는데 이 분의 글이 너무도 궁금했다. 그냥 그럴 것 같은 일반적인 소재에도 의미, 미처 인지하지 못한 길을 살짝은 서늘하면서도 온기있게 조언받던 시간들. 이번에 읽은 소설은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고스란히 받았다.

🍋‍🟩 인물들은 한국에서 온전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삶을 독일에서 계속하나 독일 역시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작된 전 세계적인 전염과 공포, 혼란, 분노. 그 시간에서 이방인이 가지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오는 단절. 그럼에도 묘하게 다시 시작하는, 아니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관계들.

🍋‍🟩 코로나 시대의 이방인의 글이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 너와 얼마나 무엇이 다를까. 결국 코로나 시대는 일상이며 이방인의 삶은 지금의 나의 하루다. 그럼에도 나는 나와 너의 안녕란 내일을 꿈꾼다. 진심으로.


🍋‍🟩 더 더 남았던 구절들


<민디>

🌱모두와 다른 대신 모두가 다른편이 나았다. 이해받거나 이해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9

🌱실패했을 때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이 있고, 기회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은선과 그들은 후자였다. 얼기설기 만들어 조악하기 그지없는 기회의 발판을 밟고 올라가야 했다. 발판이든 발판에 선 사람이든 무너지면 함께 무너져내릴 뿐, 그들을 받아줄 안전망은 없었다.
24

🌱영리하진 않습니다. 그냥 인정한 것뿐이죠. 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36


<한스>

🌱˝난 왜 그런지 알겠는데, 내가 독일에서 아랍계독일인으로 사는 동안 익숙해진 게 하나 있거든.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하나로 몰아붙이면 편하다는 거.˝
63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독일 민담집에 나오는 한스들도 행복한 결말을 위해 약삭빠르게 눈치를 보거나 가여운 척 동정을 구하고 시치미를 떼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한수라고 해서 못할 건 없었다.
73

🌱폭력은 감염병과 비슷했다. 기민하게 먹잇감을 찾아내서 목덜미를 물고 휘두르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내팽개쳤다. 
81


<수우>

🌱그러나 아무리 굳게 약속하고 믿어도 소용없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107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르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131

🌱뭘 원하니?
성공을 좋겠다는 욕심은 없지만, 실패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아가 원하는 건 성공도 실패도 아닌 삶이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삶인지는 몰랐다. 
131

<에세이. 내가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

🌱한국에서는 신경쓰고 싶지 않아도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다고. 상담사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는 더 힘들어. 쓸데없이 미워하는 것만 많아질 텐데, 그냥 버텨 봐요.˝
136

🌱사람은 층층이 겹쳐진이야기들의 소산이다. 그 층들이 어떻게 쌓였는지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누구든 쉽게 미워할 수 없게 된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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