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성직자들은 적어도 충분히 신뢰해도 좋은 신자들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반대자들의 주장과 그 근거들을 잘 알고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금서로 지정된 이단들의 책을 읽는 것이 허용된다. 반면에 평신도들은 특별한 허가 없이는 금서들을 읽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의 이러한 조치는 한편으로는 반대자의 주장을 아는 것이 가르치는 자들에게는 유익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 유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 P100
마치 어떤 것을 무조건적인 믿음에 의거해서 받아들이게되면, 그것을 지성의 의식적인 작용을 통해서 깨닫거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확증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물림을 통해 받아들인 교설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이 막연하게 동의하는수준에서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 교설은 인간 존재의 내면적인 삶과의 연결관계가 아예 거의 끊어지는 단계까지 도달하게 된다. - P104
하지만 기독교인들 중에서 그런 규율들과 계명들을 자신의 구체적인 행위들의 지침이나 시금석으로 삼아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천 명중에서 한 명도 되지 않는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런 것들이아니라, 자기가 속한 나라와 계층, 또는 종교 집단의 관습이다. - P105
기독교를 반대한 사람들조차도 "이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를 보라"고 말한 것을 보면(오늘날에는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후의 그 어떤 기독교인들보다도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의미를 훨씬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 P107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진리들의 의미를 진정으로 아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현실의삶에서 그 진리들이 말한 진정한 의미를 몸으로 직접 겪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 P109
진리들 중에는 사람이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될때까지는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그런 진리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면, 사람들은 그 진리들이지닌 진정한 의미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았을 것이고, 그 지식은 그들의 지성에 훨씬 더 깊이 각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 P109
"확정된 결론이 불러오는 깊은 잠" - P110
토론 없이 교자나 책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지식을 얻는 경우에는, 온갖 지식을 닥치는 대로 주입식으로 암기해서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어떤 문제에 대한 찬반 양론의 의견들을 반드시 모두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못한다. - P113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의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법이나 여론에 의해 허용되는 경우에 실제로 나서서 그렇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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