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존재의 이유리는 게 번식이 다가 아니잖아. 기왕 태어났으면 좀 사는것처럼 살아야지. 그래서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중성화를 시키는 거야. - P64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런 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그림자가 동네 고양이들을 나한테로 인도하는 것 같아." 이런 얘기도, "애당초 자기들 밥 챙겨줄 사람으로 나를 골랐던 게 아닐까?" - P66
다들 범인이 고양이로는 만족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어. 자고로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이거든. 그럼 고양이 다음은 뭘까? 모르긴 몰라도 그 끝은 인간이겠지. - P68
고양이는 덤덤해야 오래 살 수 있다. 쏘나타 주인의 고함에도, 경비원의 빗자루에도, 죽은 엄마의 부윰한 눈동자에도 놀라선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덤덤하지 못했다. 매번 겁에 질려 털을 세우고 호령하듯 울었다. 그때마다너는 그릉거리며 나를 핥았다. - P81
자기에게만 차갑게 군다고 고양이 네로를 걷어차 죽게 한 남자. 네로를잃고 꼼짝없이 누워 우는 내게, 돌아가신 장인이 살아오신다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거라며 비아냥거리던 남자. 그경황 중에도 친정아버지 장례 때 울지 않는 나를 비꼬던남자. 침대에서 일어나 산발한 채로 달려들어 남편의 뒷덜미를 후려쳤을 때, 뒷덜미를 만지며 미쳤냐고 소리치던남자. 아프냐고, 너도 그게 아프더냐고 미친년처럼 소리치던 밤, 살인 충동이 어떤 건지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 P126
새로운 길을 보면 끊임없이 유혹당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로마의골목길을 걷다가, 피렌체의 밤길을 걷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P128
"곱네요. 먹기가 미안할 정도로." 되도록 음식을 따듯하게 드셔야 해요." 나는 화전을 뒤집다가 멈칫한다. 뒤이어 하선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몸이 찬 편이라 찬 음식을 먹으면 금방 탈 나세요."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목이 멘다. - P130
"식초요, 저도 한 병 얻을 수 있을까요?" 나는 얌이를 보며 하선 씨에게 묻는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하선 씨의 대답이 봄날 노랑나비처럼 사뿐하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삶은 그다지 무겁지도 슬프지도불행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 P131
미애는 내 마음을 하나도 몰랐다. 나는 새끼 시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겐 한 번도 엄마가 없었고 나는 친구를사귀어본 적도 없었다. 내겐 오직 미애가 있을 뿐이었다. "아니… 엄만 널 버리지 않았을 거야. 내 생각엔 네가다쳤을 때 아마 엄마도 다치신 것 같아. 그래서 널 돌보지 못하셨겠지." 나는 또 미애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야! 왜 또 무는 거야!" "그럼, 우리 엄마가 죽었단 말이야?" 나는 미애가 미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셉 때문에 날키우겠다고 했다니. 나 같은 검정고양이는 안 좋아했다고? - P148
"동물은 사람이랑 달라서 죽을 때가 되면 미련이 그리크지 않아요. 영혼 회수는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골칫거리가 아주 없지는 않지. 하지만 동물은 또 사람이랑 달라서 사람에게는 모질게 대하는 차사도 이놈들에게는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소. 그게 이 부서가 늘 인력이 모자라는 이유입니다." - P157
흔하디흔한 일이다. 열린 문을통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해 객사한 녀석들, 단독으로 둬야 하는 녀석들을 대량으로 합사해 키우다가 제부모에게 잡아먹혀 죽은 놈들, 이유는 가지각색이어도인간의 과오가 아닌 경우가 드물다. - P163
하룻밤을 꼬박 새워 겨우 회수한 영혼을 저승으로 보낸다. 동물들은 재판이 따로 필요 없다. 인간처럼 복잡하지않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좀 다른 점은, 생전 사랑받은녀석들은 제 주인이 죽을 때 마중 나갈 자격을 얻는다는것이다. 주인이 재판을 받을 때 선행의 증인이 되고, 종국에는 주인의 길을 따라간다.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더 좋은 삶을 살도록 윤회의 굴레 속으로 보내진다. - P164
‘우주의 모든 고양이들을 위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 P178
파란 모자와 재킷을걸친 고양이는 체다였다. 체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눈이 팅팅 부어서 못생겨졌어, 은하."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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