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라가 과수원에서 냄비 한가득 여름 사과를 따서 담고 있는데,
배리 씨가 통나무 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옆에는 배리 부인이, 뒤에는 여자아이들이 꼬리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배리 씨가 양팔로 앤을 안은 모습과 앤이 배리 씨의 어깨에 힘없이 머리를 기댄 모습도 보였다.
그 순간 마릴라는 불현듯 깨달았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두려움속에서 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앤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 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탈길을 정신없이 뛰어 내려가면서 마릴라는 앤이 세상의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327

"한 가지는 확실하구나, 앤, 배리 씨네 지붕에서 떨어졌어도 입은멀쩡하다는 거 말이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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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지 못해도 ‘인간‘이면 충분하다.
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1669

가슴에 꽂히는 아픈 말이었지만, 당시 나는 꼭 ‘무엇‘ 이되기보다, 그냥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다만 그 길을 좀 늦게발견한 것뿐이었다. 아무 희망이나 기대도 없이, 또 어떤 도움도없이 미술사 공부를 무모하게 해나가던 그 시절, 그 겨울 추위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것 중 하나가 램브란트였다. - P305

그리고 그렇게 내 인생에 렘브란트가 탑재됨으로써나에게는 조금은 꿋꿋하게 견뎌내는 힘이 생겼다. 상처는 사회적으로 입고, 치유는 개인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요즘, 내 마음 속에 효능 좋은 치유제로 렘브란트는 늘 살아 있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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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진 평온의 상태. 어떻게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 그 방법은 명확하다.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원인이 사라지면 결과도 사라진다. 원인으로서의 집착이 사라지면 결과로서의 고통도 사라진다. 멸성제는 집착을 풀어지게 함으로써 괴로움을 소멸하고 해탈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 P590

하지만 북두칠성의 실체는 없다. 그 일곱 개의 별은 사실 거리가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빛이 도달하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우리 눈에 한 번에 들어오는 이 별들은 실제로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 제각각 존재하고 있었던 흔적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임의로 묶어 하나의 실체로 이해할 뿐이다. - P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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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을 만들고 사랑한 사람들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2~1666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의 특징 중 하나가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가 각자 독립된 장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시민들은 평범한 여느 가정에서도 한두 점씩 그림을 걸어 둘만큼 그림을 사랑했다. 그들은 특히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선호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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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은 앤에게 천성을 바꾸라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앤이 그렇듯이 ‘순수한 영혼에 불처럼 뜨겁고 이슬처럼 맑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강렬하게 찾아왔다. 마릴라도 이것을 알기에 막연하지만 걱정이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반복될 기쁜 일과 슬픈 일들이 이 충동적인 아이에게얼마나 힘겨울까, 똑같은 크기로 기쁨이 다가온다 해도 과연 고통이지나간 자리를 치유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마릴라는 앤을 차분하고 평온한 성품의 아이로 키우는 게 자신의임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얕은 개울 위에서 일렁이는 햇빛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글프지만 마릴라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 P316

"앤, 넌 네가 어떻게 할지만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게 탈이야. 너 말고 앨런 부인을 생각해라. 어떻게 해야 앨런 부인이 가장 좋아할지,
가장 즐거워할지 말이다."
마릴라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유익하고 명쾌한 조언을 했다.  - P318

그리고 앤은 부엌문 앞의크고 평평한 사암 위에 걸터앉아 피곤한 곱슬머리를 무명옷을 입은마릴라의 무릎에 기댄 채 그날 일들을 즐겁게 들려주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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