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주나여. 인간이 신에 이르는 길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세 가지 방법으로, 선정과 요가의 길, 의무의 길, 그리고 박애의 길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본성에 알맞게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신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특히 당신과 같은 크샤트리아, 즉 왕과 무사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신에 이르는 방법이 의무의 길을 걷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직업 안에서 의무를 다하는 과정을 거치며 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르주나여. 그대는 크샤트리아이고, 그대의 의무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의심을 위한 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행동을 위한 시간이다. 거기에 머뭇거림은 있을 수 없다." - P398
세속과 탈속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세상이 너에게 쥐여준 의무를 행하라. 그리고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 그럴 때 행위는 업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너를 신에게 향하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 P404
이 세 가지 경전의 성격을 고려할 때, 힌두 사상은 탈속과 세속이라는 모순된 가치를 조화롭게 종합하고 있는 사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 P411
힌두교의 세계관에서 자아의 본질은 아트만이고, 이 아트만은 우주의 다르마에 따라 끝없이 윤회하는 존재다. 윤회는 산스크리트어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수레바퀴를 상징으로 사용한다. 수레바퀴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처음의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것처럼 인간의 삶과 죽음도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돌고 돈다는 관점이다. 특히 이러한 윤회의 모습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카르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업(業)’이라는 단어는 카르마를 한역한 것이다. - P419
즉, 윤회와 업의 실제 의미는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사회 제도 안에서의 착한 행동, 나쁜 행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 안에서의 행위와 거스름이 삶과 죽음의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전자는 타인의 시선이 내 행위의 평가 기준이 되는 반면 후자는 자기의 내면 안에서 우주적 질서와 자연스러움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 P420
세상은 혼란스러웠고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불안한 삶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했다.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가 생겼고,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생겼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생존과 실용 앞에서 보잘것없는 문제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 P445
도가 우주의 법칙과 질서라고 한다면, 덕은 그러한 도의 본질이 반영된 인간의 마음이다. 노자는 인간의 근본 심성이 우주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 P455
그러므로 대장부는 후덕하지, 얄팍하지 않고 열매에 머무르지, 꽃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후자를 버리고 전자를 취한다. - P474
예는 예절 바름을 말하는데, 이들은 몸가짐과 언행을 바르게 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노자는 이러한 인위적인 예에는 아무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기에 예를 따르려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예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 P476
인, 의, 예가 사회에서 장려되고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 사회에 어짊, 의로움, 예절이 없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 P478
오늘날 한국에서 노자 사상은 일반적으로 인위를 거부한 무위의 삶에 대한 추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인위가 아닌 무위를 추구했는가에 있다. 그것은 노자가 우주의 질서와 내면의 질서를 일치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주를 발견할 것을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 P486
‘너 세상 구한답시고 여기저기 얼굴 알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진짜 능력자들은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다. 그리고 너 교만하고 욕심 많아 보이니까, 앞으로 조심해라.’ - P491
각자가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역할을 수행하고 의무를 다할 때 정치와 사회가 안정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보통 정명론(定命論)이라고 한다. - P501
그의 눈 속에는 언제나 불안한 현실을 위태롭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회피가 아니라 변화를 꿈꾸었다. 그런 까닭에 공자에게 죽음이란 허무이자 미지의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 P505
未能事人 焉能事鬼 (미능사인 언능사귀)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 P522
유가 사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으로는 개인도 사회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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