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는 바로 문장으로 옮길 스있는 생각들도 있었지만, 도무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혹은 막연한 공포 같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첫음에는 공책의 여백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오로지 막막할 뿐이라면 그 막막함에 대해 쓰라고 유이치는 말했다.
50p

그러니까 진남에서는 뭘 먹을 때는 충분히 식혀야만 합니다. 겉보기에는 괜찮을 것 같아도 그대로 삼켰다가 크게 혼나는 수가 있어요.
54p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러그 물고기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다음에는 그 풍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탓에, 어느 순간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게 명백해져서.
64p

제1부 카밀라 - 파란 달이 뜨는 바다 아래 오로라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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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은 길로 자동차는 지나가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동백나무는 어김없이 빨간 꽃을 피우네." 아직도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유이치를 깨워 그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물론 늘 좋은 게 좋은 유이치는 당연하다고 말하겠지만.
49p

제1부 카밀라 - 파란 달이 뜨늗 바다 아래 오로라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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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지구가 고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인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신뢰란 죽음만큼이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인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낯선 이를 신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알폰소 링기스, 『길 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김창규 옮김, 오늘의책, 2014, 10~14쪽.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133-148p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노바디의 여행 151-185p

삶이 끝없는 이주일 때, 여행은 사치였다.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중에서

여행으로 돌아가다 187-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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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는 처음 길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고향인 이타케에 도착한다.
추방과 멀미 20p

반면 경험 풍부한 여행자들은 눈앞의 현실에 맞춰 즉각적으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수정한다.
추방과 멀미 36p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57p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67p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오직 현재 82p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이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97p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현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미래는 포기하고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 내가 모든 여행에서 택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109p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110p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117p

나와 같은 여행자는 떠나면 그뿐이었다. 여행자는 관찰하고 기록하고 때로는 일시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떠나간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124p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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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에 좀하식해서 웃음이 나왔고, 그다음에는 심각해졌다. 그렇게 심각해지면서 내 사춘기가 시작됐다.
33p

그 표정들은 서로 모순적이었다. 다정한 동시에 쌀쌀맞았으며 동정적이면서도 냉담했다. 그러므로 그표정들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건 혼란뿐이었다. 거기에 의미는 없었다.
33p

이따금 내 쪽을 힐끔거리다 눈이 마주치면 그녀는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때면 상처처럼 양볼에 보조개가 들어갔다.
그 보조개의 의미란 이런 것이었다. 그녀에게도 눈부신 시절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다는 것.
35p

살아오면서 나는 단 한 번도 100퍼센트의 엄마를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33.3퍼센트의 엄마가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엄마는 어떤 경우에도 100퍼센트의 엄마여야만 하니까. 그렇지 않다면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진 속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333퍼센트의 엄마가 100퍼센트의 나를 안고 어떤 나무 앞에 서 있다.
42p

돈이 없어서 며칠 동안 굶고 다닌 사람에게는 길에 굴러느 동전 한 닢도 너무나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과거도 없는 내게는 아무리 터무니없고 불합리하며 비이성적일지라도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하찮은 사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상식적 세계 전체와 맞서야만 하는 순간도 찾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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