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항상 여기 있지. 내일이란 건 없고.105p
"세월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세월이란 걸 믿기가 힘들다고.어떤 순간은 떠나가. 그냥 흘러가지. 또 어떤 순간은 그냥 머물러 있그 예전에는 그게 내 재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너도 알 거야.어떤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또 어떤 일들은 절대 잊지 못하잖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자리. 자리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만약 집이 불타 무너져버렸다 해도, 그 장소, 그 집의 광경은 남아 있거든. 단지 내 재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말이야. 내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 밖 어딘가를 떠도는 광경을 내가 떠올리는 거야 내 말은, 설사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가 죽더라도, 내가 했거나 알았거나 본 일들의 광경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 다는 거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 67p 세서가 덴버에게
남루한 삶과비열한 죽음 사이에 끼어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녀로서는, 겁에 질려달아나는 손자 녀석들은 고사하고 죽고 사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수 없었다. 그녀의 과거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들었다. 죽음이 결코 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 그녀는 색깔을 중대이는 데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다 쏟아부었다.14p
율리아에게 감히 명령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나뿐이다. 210p
창턱에 앉아 있는 네게 율리아가 - 그 동안 그녀가 네게 잘 길들여졌기를 바란다 - 이 편지를 네게 읽어주며 곧 우리가 다시 만나리라는 소식을 네게 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뭐, 너벌써 가르랑거리는 거니?몸집 크고 데퉁맞지만 성실한 너의 숭배자 슈테판이74p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영영 그녀를 철들게 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여성 흡연자들이 다 그렇듯 율리아의 둔감한 후각으로는 타버린내 마음의 탄내를 백 년이 지나도 못 맡을 것 같다.77p
어이가 없다. 선량하다고 해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걸 용납해선 안되다. 나는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냈다. 허물없는 대화가 가능하던 멋진 율리아가 이토록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순진한 탓일까? 슈테판이 우리 둘 중 누구에게 카드를 쓴 건지 율리아도 분명히 알았을 텐데.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 망연자실한 채 순그는 율리아가 제정신이 들도록 얼굴이나 팔뚝을 할퀴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스타킹에 줄을 가게 하는 정도로 그쳤다.81p
때때로 인간들이 어떤 특별한 예외 상한에서 아주 따뜻하게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음을 경험한다는 건 고양이의 생애를 걸어도 좋을 만큼 가치와 안정감을 느끼게 하다.15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