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빼서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거든.그는 돌아오지 않아. 그리고…… She knows it."
그는 이번엔 그 낯선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우리를,어쩌면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낯빛은 초연해 보까지 했다. 그가 외국어로 한 말을 이해한 것이 분명했다.
"저 여자의 삶은 오늘부터 조금씩 빠르게 변하게 될 거야."
그는 자신의 그 말이 우연히 만난 한 여자의 일생을 조금 더 빠르게 변화시킬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상하고도 열렬한 믿음.
그것이 그가 가진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가 괴팍하고 못된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넌 눈에 띄지 않게 변하고 있어. 난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사람들을 그런 방식으로 변화시켰어. 이제 앞으로 네 삶은 엄청나게 달라질 거야. 왜냐하면 넌 나를 만났으니까."
예언이나 되는 것처럼 그런 말을 내뱉는 그가 악마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따위 남자는 내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그의 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은밀히 기도했다.
그러나 난 여전히 그 이상한 사람을 따라 걷고 있었다. 알 수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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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더 많이 지났을 때에야,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봉인‘된 비밀들을 몸속에 무덤처럼 지니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 내가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지우는 과정을거치면서, 작별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그 기억을 놓아주기도 한다는 것을,
죽는다는 것은 더는 비밀을 봉인할 무덤이 남지 않는 때가온다는 말 아닐까. 그 말은 그만큼 많은 기억의 무덤들이 우리몸에 들어차 있다는 뜻도 되지만 어떤 것도 봉인할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뜻도 된다. 그때는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향해 들어선다.

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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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이상하게도 항상, 마음 한구석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호명하는 목소리에 나는 이 세계로 귀환한다. 테이블 위의 커피에서는 김이피어오르고 있다. 찰나이지만 영원인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지금과 같은 것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폴 비릴리오는 이런 순간을 두고 ‘피크노렙시 pyknolepsy, 기억부재증‘라고 일컫는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도 수백 번의 부재가 일어난다. 하지만 겉으로보기에 우리는 아무런 단절 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혹은 어떻게든 잘 설명해내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지우거나 봉합하면서.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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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같은 방에 앉아 자신이 기억하는 서로 다른 시간의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의 대화는 결코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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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를 곁으로 끌어들이기보다 그저 고독 안에서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이는 대상을 바라보기위해서는 자신에게조차 지켜야 할 거리가 있음을 아는 자의 태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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