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 여름 내내 내가 찾고 다녔던 건 운동화가 아니라 지난 꿈의 잔해들일지도 모르지만요." 서교수가 말했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와 공유한 지난 꿈의 잔해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 75p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충분하지않은가. 내게도 엄마와 공유한 꿈이 있다면, 그래서 그 꿈의 잔해들이 바다를 떠돌고 있다면, 나 역시 전 세계의 모든 해변을 기꺼이 순례할 텐데. 76p
제1부 카밀라- 평화와 비슷한 말, 그러니까 고통의 말
바다의 파랑처럼 압도적인 책냄새에 푹 잠긴 채, 서가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94p
제1부 카밀라-바다의 파랑 속에 잠긴 도서실
너는 이제 더이상 유이치가 사랑하던 그 여자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도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121p
그 답을 알아내려면 더 많은 인생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면 그때 검은 바다를 건너간 일이 네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122p
그래서 만약 네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그럴 때마다 너는 그렇지 않다고, 너는 스스로 충만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어. 128p
마음속으로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일 따위는 추모비 앞에 선 정치가들에게나 어울리지, 이별을 당한 남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네. 128p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중단된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읽히기를 간절하게 원하는데, 이 프로젝트야말로 바로 그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엄마를, 그녀의 고통을, 절망과 외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한번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다음 행선지는 한국의 진남입니다. 130p
제 2부 지은 - 검은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은
날카로운 깨달음이 여기 폐와 위장 사이에 꾹 박혀 늑골을 쑤셔대는 것 같습니다. 134p
제2부 지은 -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 혹은 줄여서 ‘우리사이‘
지훈의 거침없는 말들이 너는 마음에 든다. 암시나 비유의 그늘은 전혀 보이지 않는, 백일하에 또렷하게 드러나는 언어다. 147p
제5부 지은 - 짧게 네 번, 길게 세번, 짧고 길고 길고 짧게, 짧게 한 번
잘된 일이야. 세상은 무서운 곳이야. 별별 소문이 다 돌지. 다 미친 것 같아. 168p
제2부 지은 - 지나간 시절에, 황금의 시절에
한 소녀가 고독 속에서 죽어갔다. 그건 누구도 소녀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며, 이 우주에 최소한 한 명은 너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74p
모든 것은 두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177p
제2부 지은 - 태풍이 불어오기 전날의 검모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1p
제2부 지은- 그대가 들려주는 말들은 내 귀로도 들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며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못했을 테니까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못했을 테지요." 241p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244p
제3부 우리 -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결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 나 마찬가지다. 251p
일어날 수도 있었던, 하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오지 못하고 먼지처럼 흩어진 고통과 슬픔의 기억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빛바렘과 손때와 상처와 잘못 그은 선 같은 것만 보여줄 뿐인 물건들. 253p
제3부 우리 - 저기, 또 저기, 섬광처럼 어떤 얼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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