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한 재료가 100개라면 100번의 가능성을 지었다가 부순다. 생략할 용기와 본질을 알아차리는 눈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경험치와 노력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커진다. 나는 이 사실에 커다란 위안을 느낀다.
에디토리얼 씽킹에 왕도가 없다는 사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려 애쓰고 실패와 좌절의 데이터를 통해 배우는 길 말고 별다른 요령이 없다는 사실이 좋다.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질녘에 아이는, 여관방 창 너머로 아스라이 사위는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싶어진다.
흙펄을 핥는 파도의 거품이 흰빛인지 황금빛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 P43

세상은 차츰 어두워질 것 같지만, 그렇게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 해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는 깜짝 놀랄 만큼 환해진다. 마치 꿈속같이, 그 순간만큼 세상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
- P49

아이가 눈을 꿈벅꿈벅하는 동안 엄마는 아이의 가슴에 서늘한 금이 그어지도록, 그래서 그만 눈물이 날 만큼 매몰차게 아이의 어깨를 떠밀고는 돌아앉아버렸다.
- P83

다음날 아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는 없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떠난 게 아니라 곧 돌아올 것이라고도 희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 P91

어린애처럼 들먹이는 아빠의 어깨를 올려다보면서 괜찮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던, 그 찢어지는 것 같던 마음이었을까하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계속해서 갖고 있는 것이 괴로와서 엄마는 이 마음을 버렸을까, 그래서 우리 둘을 떠나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 P98

해질녘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 P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나서 피를 갈고 싶어, 라고 아내는 말했었다. 줄곧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사직서를 마침내 직속 상사에게 올렸다던 날 저녁이었다. 
- P18

"얘기를 좀 해봐. 의사가 뭐래?"
"괜찮대."
숨을 몰아쉬듯이 그녀는 말했다. 무섭도록 차분한 말씨였다.
- P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처럼 같은 소재도 어디에 주목하는지, 다시 말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창작은 자신이 발견한 의미를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 안으로 던져넣는 행위다. 
- P152

해석 가능성이 수천수만 가지일지언정 ‘나는 이렇게 바라보겠다‘는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에디터적 사고력은 정보를 해석하는 자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위치와 관점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 P153

어떤 대상에 대해 해석, 견해, 입장을 표명하려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야 한다. 대상과 자신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세부 사항에 주목하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밝힐 수밖에 없다.
숨어서는 할 수 없는 일. 동시에 수용자에게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짚어준다. 
- P154

독창적인 관점을 갖고 싶다면 이런 프레임을 의심하고 바꿔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령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당연시하는 전제를 찾은 뒤에 "정말 그럴까?"라고 덧붙이면서 가급적 많은 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 P159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당신의 방식은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나의 파란, 나폴리
정대건 (지은이) 안온북스 2024-07-02, 216쪽, 에세이

#나폴리 #여행에세이 #정대건작가 #나의파란나폴리

⛲️ 7월 마지막 날 문학소매점에서 열렸던 청량한 여름 같던 북토크. 파란 여름 같던 책. (여름에 읽은 책을 겨울에 정리하고 있다는. 원래 읽는 속도 보다 느린 기록 속도, 무엇보다 빠른 책 입양 속도🥲) 청량하다, 파랗다했는데 책 제목때문에 그렇게 쓴 건 아니다. 여행은 때로는 파랗고, 눈부신 초록이고, 어느 날은 부셔질 듯한 주황빛으로 빛나기도 한다. 사실 여행은 찬란한 그 때 그 때의 빛이 있다. 심지어 어둡고 흐린색까지. 이 책은 정말 청량한 여름이었다.

⛲️ 나의 파란 나폴리를 읽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작가도 그랬다. 사람들도 물었다. 왜 여행을 왔냐고. 마침 이 책을 읽기 앞뒤인 7,8월 난 여행에 관한 미션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질문들을 만나고 나만의 대답을 기록했다. 던져진 질문들은 인지하지 못하던 지금과 이전의 변화들, 더 먼 이전까지, 삶의 자국 하나하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의 파란 나폴리에서 작가도 그렇지 않았을까. 책 곳곳에서 작가 스스로 하는 질문들에 같이 대답해본다.

⛲️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싶단 생각은 크게 해본 적이 없는데 책을 읽다가 가보고 싶다는 마음, 압도적인 ‘진실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풍경을 보면 나는 어떤 질문을 내게 하거나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많이들 여행은 낯선 곳에 던져진 나에게, 내가 하는 질문이라 한다. 북토크에서도 나온 말이었다.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은 나에게 나만의 서사와 고유함을 준다. 나는 또 내게 묻는다. 왜 여행을 하는가.

⛲️ 문학소매점에서 나눠준 보딩패스. 이런 건 처음인지라 엄청 설레었던 북토크. 문학이라고 되어있고 이름도 있다. 책갈피로 쓰는 동안 내내 여행기분일 듯. 아, 여행은 세상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까 하는 분노와 세상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친절과 호의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세상사는 것도 매한가지. 이 세상 여행동안 잘 살아봐야겠어. 냥냥파워!


⛲️ 더더 남았던 구절들

🌱˝정, 왜 나폴리에 왔나?˝
안나가 물었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던질 질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12주 동안 답을 찾아야 할 물음이기도 했다. 왜 나는 굳이 이곳에 왔는가? 
30

🌱이탈리아 여행에는 감탄과 긴장, 두 가지 능력이 동시에 필요했다. 
118

🌱역설적으로 눈앞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앞으로 이런 풍경을 평생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라는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토스카나의 발도르차 평원도 내게는 그럴 만큼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137

🌱난 늘 노력한 만큼의 정확한 보상을 바랐고 (그 ‘정확한‘은 자의적인 것이다), 세상은 그렇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종종 불행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기대를 많이 하기에,
실망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쁜 상황들을 먼저 떠올리며 위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신의 길 초입에서, 지난밤 예상치 못했던 지로 디탈리아와 천 개의 계단과 귀도의 요리는 내게 어떠한 메시지 같았다.
가보자, 포기하지 말고.
153

🌱이야기의 세계에서는 나의 모든 결핍, 이루지 못한 꿈,부서진 사랑과 상처, 거부와 거절의 경험이 모두 내 자산이다. 
178

#밀린독서기록 #기록속도는읽는속도보다느리지 #책사는건읽는것보다빠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