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되는 물막국수는 그 모습부터 정말 단아하다.
깊은 스테인리스 그릇 바닥에 올려진 면 타래가 마치 가지런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깨달음을 찾아 참선하는 노승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외부의 어떤 자극과 유혹이 있어도 옷매무새 하나 흩뜨리지 않고 부동자세로 진리를 갈구하는 모습, 그 자체이다. 그래서 맛도 지극히 단아하고 고혹적이다. 잔잔한 메밀 향과 맑은 육수가 만나 속세를 벗어난 다른 세상의 맛을 만들어 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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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편히 쉬면서 생각을 비우고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가는 곳이거든.
- P3

도심을 빠져나온 기차 주변으로 풍경이 겹쳐지며 파도처럼 밀려왔어.
역시 기차 여행은 창가에 앉는 게 최고지.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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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암시나 불쾌한 질문을 회피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상황의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심지어 찬성하고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척했다.
- P472

그는 그녀 자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즉 남편을 불행하게 만들고 남편과 아들을 버린 데다 좋은 평판마저 잃었는데 어떻게 활기차고 명랑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473

브론스키의 재능에 대한 골레니셰프의 확신은 그가 자신의 논문과 사상에 대해 브론스키의 공감과 찬사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 때문에도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는 칭찬과 협력이 상호적이어야 한다고 느꼈다.
- P508

그가 그녀에게 불만을 느낀 까닭은, 그녀가 필요한 경우에 스스로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녀의 사랑을 받는 행복을 감히 믿지 못하던 그가 이제는 그녀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 P530

다들 그가 반드시 곧 죽으리라는 것, 그가 이미 반쯤 죽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가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이 사실을 감춘 채 그에게 병에 든 약을 주기도 하고 약과 의사를 찾기도 하면서, 그와 자신과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 P558

그는 죽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랑이 그를 절망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 그 사랑이 절망의 위협 아래서 더욱 강해지고 순수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 P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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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자네가 내 의견을 알고 싶다면......"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안나와 이야기할 때처럼 아몬드 버터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선한 미소가 너무나 믿음직스러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유약함을 느끼며 그 미소에 굴복하고 말았고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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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현관 안으로 들어서며 결심을 뇌 깊숙한 곳에서 꺼내듯 하여 그것을 확인하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속임수일 경우, 조용히 무시하고 떠날 것. 사실일 경우, 예의를 지킬 것‘.
- P368

브론스키는 일어나 구부정한 자세로 흘깃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압도되었다. 그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것이 자신의 세계관으로는 아예 도달할 수도 없는 지고한 무언가라고 느꼈다.
- P377

남편은 슬픔 속에서도 관대한 데 반해, 자신은 기만 속에서 비열하고 보잘것없이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부당하게 경멸했던 사람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비열함에 대한 자각은 그의 슬픔에서 작은 일부만을 차지했다. 
- P379

그는 병든 아내의 침대 옆에서 난생 처음으로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부드러운 연민에 자신을 내맡겼다. 예전에 그는 그러한 감정을 해로운 약점으로 생각하여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녀에 대한 연민, 그녀의 죽음을 바란 것에 대한 후회, 무엇보다 용서의 기쁨은 그로 하여금 갑자기 고통의 완화뿐 아니라 정신적 평온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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