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 세는 단위로 김 100장을 한 톳이라고 한다.
김 한장은 얇고 그 무게도 가볍지만,
김 한 톳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 P5

 예상과는 다르게, 상하지도 숙성되지도 않은 모습. 유통기한이 지나도, 나는 나였다. 다소 색 번지고 빛 바랬지만, 나는 나였다.
- P15

길고양이처럼 불쑥 찾아온 허무, 삼색 고양이처럼 다채롭게 다가온 허망. 그 공허를 헤아리다 생채기가 난 나날들.
- P18

누군가의 불안에는 난장미(美)가 있다. 불규칙 속에 규칙이 있듯, 난장판 속에도 나름의 질서가 존재한다. 
- P28

툭 던진 한 마디가 여러 행의 시보다 묵직하다. 찰나의 순간으로 일생을 버티는 사람이 있다. 
- P30

오늘 나를 가라앉게하는 건, 시집 속에 수록된 수십 편의 시가 아닌 겨우 두 줄적힌 ‘시인의 말‘이다. 나는 고작 그 두 줄 적어내지 못해 이렇게 길고 긴 글을 쓴다.
- P30

매 순간 서두르는 사람은 매 순간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득, 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빠르게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나는 느려지기 때문이다.
- P46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비 구체적인 행동을 한다. 생각은 행동으로 희석된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점점 짙어지는 것만 같다. 
- P52

바늘구멍에 자신을 욱여넣는 내게 주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경고. 우리는 아픔이 찾아와야지만 잠시 멈춰서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픔이 찾아와야지만 잠시 숨을돌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 P63

무거워서 가라앉는 대신, 가벼워서 차분해지고 싶다.
- P65

어떤 삶은 살아갈수록 내게 딱 들어맞는다. 어떤 삶은 살아낼수록 자기 목을 조이기도 한다. 우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살아내고 있는 걸까.
- P69

너를 향한 무한한 연민과 나를 향한 무한한 연민의 값이 같았다면 어땠을까. 
- P104

이젠 좋은 공을 주고받고 싶다.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세기로, 상대가 받기 좋게끔 패스하고 싶다.
- P105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감정을 헤아려보겠다는 뜻이고, 해아려보겠다는 건 단순히 눈으로 읽는 행위보다 몇 배고 몇십배고 감정을 소모하겠다는 의지입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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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불행 속에 내던져진 사람에게 무언가를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고 그 불행의 깊이를 탐색하는 과정도 탐탁지 않았다. 
- P14

민영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승준은 지유가 성장해가는 동안 겪게 될 상처와 결핍의 시간들이 훨씬 더 신경 쓰였고, 그 상처와 결핍앞에서 자신이 무력한 아버지가 될까봐 무섭기도 했다. 
- P16

그녀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도 모른 채 지나온 칠 년의 세월이 곧 무심함의 환산치였다는 걸 천천히 곱씹으며...
- P47

무엇보다 언제라도 치명적으로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원초적인 공포를 이겨내려 애썼던 그 모든 지난 시간들이 결국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다는 허무를 알게 해준 피사체가 그녀에게는 살마였던 셈이다. 
- P56

닮지 않아야, 그러니까 피사체와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거리낌없이 촬영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거리는 결국 냉정함의 거리라고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그런 생각은 셔터를 누른 이후 피사체가 살아갈 실제 삶에는 무심했다는 자각,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사진을 위해 한사람의 고통을 이용해온 건지도 모른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 P60

나는 그에게 살마의 엄마 역할은 사양한다고, 남들보다 이르게 엄마의 부재를 겪은 사람들끼리는 끈끈하게 결속할 때가 있다고 웃으며 대답했을 뿐, 더이상의 말은 덧붙이지 않았어. 내가 살마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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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가지는 누가 꽂아 둔 게 아니라 심거나 씨를 뿌려서 얻은 거야. 그러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해.
자신의 제도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 그런 민족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고, 그런 민족만이 역사적이라는 말을 들을수 있어.
- P30

이러한 기쁨은 너무나 작아서 모래 속에 섞인 금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나쁠 때면 그녀는 오직 슬픔만을, 오직 모래만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기쁨만을, 황금만을 보는 즐거운 순간도 있었다.
요즘 그녀는 시골의 적막함 속에서 이런 기쁨을 점점 더 자주 자각하게 되었다. 
- P59

 "사람들은 당신을 볼 필요가 있어요. 당신을 보면, 여기 행복이나 불행을 느낄 수는 있어도 따분해하지 않는 여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죠. 가르쳐 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 P139

자신을 둘러싼 온갖 복잡한 상황을 지극히 사소한 점까지 상세하게 아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복잡한 상황과 그것을 이해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그 자신에게만 우연히 일어난 특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그에 못지않은 나름의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한다. 브론스키도 그런 것 같았다. 
- P144

그러나 그의 시선에는 굳은 결의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녀는 그가 이미 예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나는 그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의 생각을 전부 털어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안나는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 배반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은 그녀가 기대하던 게 아니었다.
- P172

지금 두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니콜라이의 병.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그의 죽음. 이 생각이 다른 생각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빼앗은 그 생각을 말하지 않는 한,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의 말은 다 거짓이었다. 
- P239

하지만 여전히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리나 싶더니, 해결할 수없는 새로운 문제, 곧 죽음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 P242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에게는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어둠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일이 이 어둠 속에서 그를 이끌어 줄 유일한 끈이라고 느끼며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붙잡고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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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강기슭을 보면 언제나 수수께끼가 떠올라. 알겠니?
풀이 물에게 말해. 우리는 흔들릴 거야, 흔들릴 거야."
"난 그런 수수께끼 몰라." 레빈은 우울하게 대답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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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믿지 않을 거야." 그가 동생에게 말했다. "이런 소(小)러시아적인 게으름이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말이다.
머릿속이 아무 생각 없이 텅 비어 있어서 공이라도 굴릴 수 있을 것 같다니까."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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