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세상이 자신을 향해, 캐서린을 향해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은 방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세상을 지켜보면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지어 캐서린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 P282

"이제는 로맥스한테 거의 감탄하는 마음이 생길 지경일세." 핀치가 말했다. 
- P295

스토너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그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것에, 그리고 그녀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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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바를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가 대부분은 -물론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원만한 인격과 공정한 시야를 지녔다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또한 보아하니, 그리 큰 소리로 할 얘기는 아니지만, 칭찬하기 힘든 특수한 성향이며 기묘한 생활 습관이며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 P9

소설가라는 인종은 수많은 결함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대범하고 포용적인 것 같습니다.
그건 어째서일까요?
내가 생각건대 그 답은 아주 확실합니다. 소설 따위-‘소설따위‘라는 말투는 약간 난폭하긴 합니다만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14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효율성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그중 어느 쪽이 빠져도(혹은 압도적인 열세여도) 세계는 필시 일그러진 것이 되고 맙니다.
- P24

자, 그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분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 한 가지,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과연 떠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난폭한 말이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먹은 모양이에요. 게다가 애초에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아도(혹은 오히려 쓰지 않는 편이)인생은 얼마든지 총명하게, 유효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 P29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 P46

하지만 동시에, 라고 할까,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색이 표현자의 말단으로서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내게 맞는 스케줄에 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싶다. 그것이 작가인 내가 가져야 할 최저한의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 P105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 P119

그에 비하면 처음부터 묵직한 소재를 갖고 출발한 작가들은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엔가 ‘그 무게에 짓눌리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 P134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 매일 20매의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 P151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내던져버리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히려고 노력합니다. 단지 그 달아오른 머리를 지나치게 식혀버리면 퇴고 자체를 못 하니까 그런 쪽으로는 약간 조심해야 합니다만. 그러고는 외부의 비판에 견뎌낼 태세를 정비합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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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히죽 웃었다. "이 나쁜 자식." 그가 유쾌하게 말했다. 
- P233

스토너는 거의 경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에.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그래, 자네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일세. 하지만 어느 것도 진실은 아니야. 자네가 말한 그런 식은 아닐세."
- P237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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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는 둥근 얼굴로 우울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순교자처럼 고난을 참는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교수님. 사람이란 신념 때문에 이렇게 고난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군요."
"게으름과 부정직과 무지 때문에도 고난을 각오해야 하지." 스토너가 말했다.
- P204

그는 질문의 문구를 다시 정리해서 (항상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명하는 동안 원래의 질문 의도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주 정교한 이론적 논쟁처럼 보이는 것에 워커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로 그였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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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길고 긴 낮과 밤을 방에서 혼자 보내며 자신의 일그러진 몸이 강요하는 한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점차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그가 느끼는 자유로움도 더욱 강렬해졌다.
윌리엄 스토너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에게 뜻밖의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로맥스가 일종의 변화를 거쳤음을 알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을 통해 알게 되는 직관적인 깨달음 같은 것.
- P137

그는 한참 동안 선 채로 그녀를바라보았다. 아련한 연민과 내키지 않는 우정과 친숙한 존중이 느껴졌다. 또한 지친 듯한 슬픔도 느껴졌다.  - P139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그 책을 보는 일에 진력이 났다. 하지만 자신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경이가 느껴졌으며, 자신이 그토록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일에 무모하게 나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P143

처음 며칠 동안은 집이 텅 빈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지않았다.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익숙해져서 점점 즐기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는 자신이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는 이디스를 생각할 때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조용한 후회가 느껴졌다.
- P154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대담하게. 종내는 자랑스럽게.
- P157

그녀는 달라진 외모로 갑자기 나타나서 남편과 딸을 깜짝 놀래줄 작정이었지만, 시선을 들어 놀란 눈빛으로 자신을바라보는 윌리엄을 보고는 진짜로 변한 사람은 바로 그임을 알아차렸다. 그 변화가 워낙 깊어서 그녀의 외모가 변한 효과쯤은 그냥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조금은 멍하니, 하지만 약간 놀란 마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저 남자를 생각보다 더 잘 알고 있었구나.
- P158

"정말 달라진 것 같아."
윌리엄 스토너는 이것이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그 순간 왠지 이디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에게 새로이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P160

이디스는 컬럼비아에서 가져온 옷가지들을 모두 태워버리고는 옷장을 새 옷들로 채웠다. 머리도 짧게 잘라서 유행하는 모양으로 다듬었다. 화장품과 향수를 사서 매일 자신의 방에서 사용법을 연습했다. 담배도 배우고, 영국식 발음이 살짝 들어간 말투로 상처 입기 쉬운 사람처럼 새된 소리로 말하는 법도 연습했다. 이런 외적인 변화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컬럼비아로 돌아왔다. 그녀의 내면에는 또 다른 변화 하나가 비밀스럽게 잠재되어 있었다.
- P164

이 일의 중대한 의미가 서서히 다가왔기 때문에 그는 여러 주가 지난 뒤에야 이디스의 행동이 지닌 의미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인정하는 순간이 왔을 때에는 놀라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디스가 워낙 영리하고 노련하게 행동했기 때문에그는 그녀의 행동에 불평을 늘어놓을 합리적인 근거를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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