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는 ‘믿기지 않겠지만‘ ‘믿을수 없겠지만‘ ‘믿기 싫지만‘ ‘믿을 수밖에없었지만‘이란 말을 거듭했다. 그와 헤어지고돌아오는 길에 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무언가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믿는 게 과연 가능할까. 얼마나, 어디까지 믿어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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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고,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아저씨는나를 보자마자 딱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그 앞에 도착하자대문이 활짝 열리고 아저씨의 품에 부딪친다. 아저씨가 팔로 나를 안아 든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나를 꼭 끌어안는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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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이른 아침, 클로너걸에서의 첫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을 향해 웩스퍼드 깊숙이 차를 달린다. 덥고 환한 날이다.
- P9

얼마 동안 맡아달라고 하지?
원하는 만큼 데리고 있으면 안 되나?
그렇게 말하면 돼? 아빠가 말했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말해. 어차피 늘 그러잖아.
- P15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 P17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알겠어요." 나는 울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한다.
아주머니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
- P27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 P28

그런 다음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 P30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 P69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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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많은 곳에서 일합니다 - 생존이 곧 레퍼런스인 여자들의 남초 직군 분투기
박진희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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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많은 곳에서 일합니다
생존이 곧 레퍼런스인 여자들의 남초 직군 분투기
박진희 (지은이), 앤의서재 2024-06-16, 208쪽, 에세이

#남자가많은곳에서일합니다 #박진희 #인터뷰 #커리어 #진로고민 #앤의서재 #신간

🍊 제목보다는 표지의 서브제목 격인 ‘생존이 곧 레퍼런스인 여자들의 남초 직군 분투기‘란 문구가 책의 내용을 명확하게 한다. 그래서 그 밑의 여덟개의 직업군을 보니... 죄송하게도 전혀 여성 직장인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여덟 군의 직업군 중 하나 정도는 대중매체로라도 들어보지 않았을까 하며 손가락으로 직업군을 더듬으며 내려갔으나 단 한 명도. 심지어 어떤 직업은 젊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전통 가마 도예가), 어떤 직업은 존재조차 (군 암호보안 전문 군무원) 몰랐다. 나의 무지와 편견을 일단 인지하고 책을 열었다.

🍊 이 책은 건설현장 조경 관리감독을 포함한 희귀한(?) 직업군의 여성직장인을 인터뷰한 에세이집이다. 현실적으로 비주류인 인터뷰집이라니. 그리고 요즘 세대, 지역, 자산에 따른 갈등이 최고조를 찌르는 지금 젠더 갈등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까봐 조마조마(?)해 하며 책을 읽어나간걸 조심히 고백해본다.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가인 그들, 내가 모르는 영역에서 인터뷰까지 한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 누군가를 인터뷰한다는 것. 보여주고 싶은 면만을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에 뻔하고 감동도 없는 경우를 많이도 봐왔다. 그러나 너무나도 보여주고 싶은 진심이라면 감동어린 에세이 같은 느낌도 기승전결도 납득된다. 내가 느낀 진심은 이런 것이었다. 여성이 없는 곳의 여성 전문가의 삶을 읽고 들었더니, 거기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소명을 가진 전문가,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였다. 읽다보면 여성이나 다소 젊은 세대 같은 특정군이 아닌 보편적인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난 다. 그러다가도 여성을 포함한 소수의 그룹이 누구더라도 (반대로 여초직장의 남성이나, 기타 수 많은 소수의 예) 더 많은 보편성이 확산될 수 있도록 특수한 그룹을 응원하게 된다.

🍊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즈음 나오는 저자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제언‘ 다섯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쉽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고민할 말이다. 여성을 위한 응원을 보낸다. 그러나 저자의 제언은 여성 대신 공동체가 고민을 해야하는 다른 그룹을 넣어도 좋다. 여성을 인터뷰한 책이지만 결국 진심이고 자기일에 전문가인 개인,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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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 인간에게 ‘소명‘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해요. 저는 음악이라는 도구로 아주 사소하지만 건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P75

현장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 계속 저를 입증하고 증명해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어쩐지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쓸모‘라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저는 현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P85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를 당하는 일 앞에서 계속 자기를 증명해내는 것과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을 직접 찾아야하는 것은 서글픈 일일지도 모르나, 결과적으론 수민 씨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머물러 있거나 포기하거나, 혹은 순응했다면 결코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민 씨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장 좋은 길을 찾아냈다.
- P94

애선 씨가 말했던 것처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지금 끌어오지 말자. 내 하루하루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 날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 오겠지. 끝이 무엇이든,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이기를 바란다.
- P118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단 마음뿐이었죠. 여성 수의사에 대한 편견이 느껴졌지만 크게 상처받지 않았던 이유는, 고의적 차별이 아니라 그분들도 처음 겪는 ‘여성수의사‘에게 적응 중임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 P132

비행하다 보면 스스로 대단한 사람인 양 우쭐할 수 있는데 사실 인간이 지면에서 발을 떼고 산다는 게 대자연을 거스르는 일이기에 항상 겸손하려고 노력해요.  - P155

하지만 남들의 평가보다 중요한 건 저 자신의 인정이었습니다. 성별과 상관없이 한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동료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노력한 것은 아니에요.
- P160

지금 만드는 반달항아리도 어쩌면 그런 오브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단 마음이 들었어요. 버려진 패각류를 가지고 도자기를 만들면, 이 아이도 20년 뒤에 100년뒤엔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고요.
- P174

지금은 ‘완성‘형의 방법이 아닐지언정 앞으로도 이런 궁리는 끊임없이 계속되겠지. 끝내 우리는 방법을 찾아가겠지.
- P188

나는 이 책이 조금씩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가 닿길 바란다. 다채로운 사람들에게 닿아 서로를 조금이나마 알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미워할 이유를 조금도 찾지 못해 그저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구나!" 하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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