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어진 모양새는 언어표현력을 더욱 높였다. 농밀해진 표현력은 연상에 깊이더했다. 한 젊은이의 견습 시절 분위기를 전하는 묘사, 사회 변동기의 의료업, 그리고 잘못을 지적하기만 할 뿐 칭찬에는 인색한 스승에 대한 양가감정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하나의 드라마가 짜였다. 이러한 짜임새를 결texture 이라고 한다. 나를 흔들어놓은 것은, 그리고 추억의 대상인 고인뿐만 아니라 추억을 되짚는 자의 존재감까지 훨씬 더 생생히, 아주 즉각적으로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이 결이었다. 
- P8

덕분에 나는 말해지지 않은 것, 결코 말로 할 수 없는 것까지 전부 알아차렸다. 인간관계의 따스하고도 고통스러운 불완전함을 통감했다. 
- P9

아무리 어렵다 해도 에세이나 회고록을 쓸 때는 그런 페르소나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조명 도구나 마찬가지다. 이게 없으면, 주제도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회고록이나 에세이를 쓰는 작가는 그런 페르소나를 빚어내기 위해 소설가나 시인처럼 자기 성찰이라는 견습 기간을 거치며, 왜 말하는가,누가 말하는가를 동시에 알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 P12

우리의 연사가 갈팡질팡하며 찾아 헤매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복잡한 감정. 먼저, 그런 감정이 있음을 이해한다. 다음엔 그 감정을 시인한다. 그리고 이를 통로 삼아 경험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그 감정이 곧 경험임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쓰기 시작한다.
익숙한 것을 꿰뚫고 들어가기란 당연한 듯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힘들고 또 힘든 일이다.
- P13

 내 책은 신기하게도 이집트자체를 흉내 낸다. 그것이 강점이자 한계이다.
- P17

『존경하는 어머니 Mommie Dearest "처럼 서술자는 아무잘못 없는 사람, 서술 대상은 괴물로 묘사되는 회고록은 상황이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기에 실패작이 된다. 드라마가 깊어지려면, 괴물의 외로움과 무고한 자의 교활함이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서술자가 단순하지 않아야 대상에게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

- P43

결국, 서술자가 고백이 아닌 이런 종류의 자기 연구, 즉 움직임과 목적과 극적 긴장을안겨줄 자기 연구에 몰두할 때 비로소 작품이 구축된다. 여기서 필요한 요소는 적나라한 자기 폭로이다. 자신이 상황이 일조한 부분-즉 자신의 두려움이나 비겁함이나 자기기만을이해해야 역동성이 만들어진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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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슬픔에 대한 책이지…………." 내 주변의 한 어른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늙음과 그리움, 그리고 필연적인 죽음에 대한 책이야..." 다른 어른은 이렇게 말했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실은 토베 얀손 자신의 가족, 자기 조카와 엄마에 대한 책이지." 등등....... 그래, 그렇게 이해해야 한단다.
- P7

"겁이라도 나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모든 우아한 비유들보다, 감성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돌려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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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굴지 마. 태도를 바꾸지 말라고. 내 무기를 없애지 말고, 당신을 떠날 좋은 이유들도 없애지 마. 나한테 그러지 말라고.‘ 조제는 생각했다.
- P66

그녀는 당신에게 굴복했고, 당신들은 같은 음표에 관한 슬프고 감상적인 희극을 함께 공연했어요. 당신들의 바이올린은 단조에서 화음이 잘 맞죠.
- P76

이곳에선 바람이 모든 것을 붙잡고 모든 것을 놓아주었다. 저녁마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는 즐거움이, 흙냄새와 고독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 P79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시간조차도. 
- P76

나한테 거의 우정을 품으면서 혹시라도 네가 나한테 연락을 해오면 나를 미워하려고작정하고 기다린다니까. 더는 감당 못 하겠어.
- P84

"넌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상상초월이라고.자기 결혼 생활 문제로 나를 비난하다니, 너를 엄청 사랑했던 나를...... 아......! 여전히 널 좋아하는 나를...... 아! 2주 전부터 네 남편의 손을 잡고 다니는 나를…. 정말 믿을 수가 없네......" 
베르나르가 꺽꺽대며 말했다.
- P87

당신은 당신 없는 인생을 상상하는 거야?
- P103

이 짧고 겸손한 대화는 그의 용모와 연결되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것에 대해 사람들이 거의 조제를 탓할 지경이었다. 매일 밤 앨런이 그 사람들을 차갑고 가혹할 정도로 낱낱이 평가하는것을 들은 그녀로서는 이런 상황이 법률적 실수처럼 희극적이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 
- P111

 사실 앨런의 입장은 이랬다. ‘내가 당신의 삶 전체를 공유해야 한다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해.‘ 그리고 조제의 입장은 이랬다. ‘당신이 내 삶 전체는 아니라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 해.‘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이 말을 하지 않았다.
- P112

다른 곳, 거기서는 그들 단둘이서만 지낼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앨런은 조제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였다. 때때로 우리가 타인의 변덕에서 발견하는 상냥함 말이다. 
- P114

"내가 설명할게. 앨런은 모든 사람이 근원적인 수렁 속을걸어다닌다는 걸, 그 무엇도 거기서 인간을 끌어낼 수 없다는 걸 납득했어. 하지만 그가 매일 하려고 혹은 발음하려고애쓰는 막연한 몸짓과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은 그것과 상관이 없어. 이런 의미에서 그는 타협을 모르고 단절된 사람이지."
- P116

그렇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삶은 계속되고 있다.
- P125

조제는 그가 칭찬에 냉담할 거라고 믿은 자신이 퍽이나 순진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앨런처럼 초연한 남자들에게조차 허영심은 견고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P132

"확실해요. 그 사람이 당신만 바라보던 걸요. 내 아내가그 사람만 바라보고 당신이 허공만 바라보는 것처럼."
"귀여운 3인조네요." 조제가 메마른 어조로 말했다.
"귀여운 4인조죠. 내가 증권거래소의 시세표만 바라본다는 걸 당신이 인정한다면 말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 P138

앨런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그를 보지 않았다. "나는 너한테 묻고 있어, 조제. 너 예전엔 착했잖아. 왜그 여자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드는 걸 손 놓고 보고 있어?
모두들 그 여자를 조롱하고 있어. 모른다고는 하지 마."
- P146

베르나르는 어둠 속에, 층계참 위에 있었다. 그가 그녀의손목을 잡았다.
"앨런이 널 망가뜨릴 거야, 내가 장담해, 제발 너 자신을구원해."
- P150

삶에서 도망쳐,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도망쳐, 온갖 감정들로부터 도망쳐, 내 장점과 단점들로부터 도망쳐, 수없이 많은 은하수 중 하나의 100만분의 1 면적에서 잠시의 호흡이 되고 싶었다. 
- P152

"어떻게 할 건데?"
세브랭은 웃음과 두려움 사이에서 양분되어 있었다. 조제의 각성은 재앙을 불러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 P167

그녀의 결혼의 진실은 너무나 연약한 동시에 너무나 정열적이었고, 애정·기쁨. 악의의 순간들이 두루 존재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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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나를 떠나고 싶다면 떠나. 나를 완전히 포기해. 아니면 나를 견뎌내든가."
- P48

사실 절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그것의 필요성을 훨씬 더 혐오했다. 오직 앨런만 그런 것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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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와 감미로움이 내 머리에서 줄곧 떠나지 않는이 알 수 없는 감정에, 슬픔이라는 아름답고 무게 있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나는 주저하고 있다. 
- P15

나는 아버지와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말썽을 일으켰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나의 오랜 공범자(共犯)"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없다면 난 어찌될까?"
- P23

왜냐하면 안느가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도 철저하게 냉담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판단에는 악의에서 우러나온 그런 날카로움이나 정확성은 없었다. 다만 그 판단들은 너무나도 분명할 뿐이다.
- P33

이것은 훌륭한 계산이었다. 이 계산의 단 한가지 결점이라면, 내 나이나 경험으로 미루어 생각해볼 때, 감동적이기보다 즐거운 것처럼 보였던 사랑의 여러 가지에 관해서 환멸적인 냉소주의를 한동안 내게 불어넣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 P36

나는 침체한 시간이나 단절이나 일상적인 선한 감정들을 잊고 있었다. 이상적으로 나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삶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 P37

안느는 미소를 짓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웃고싶을 때만 웃는다. 사람들이 그렇듯이 예의로 웃어주는 법이 없는 여자였다.
- P43

나는 바다로 달려가서 우리가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여름방학을 한탄하면서 물속에 깊이 가라앉았다. 우리는 드라마의 온갖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즉 엽색가, 고급 매춘부 그리고 지적(知的)인 여인등. 
- P45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듯이 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왜 여태껏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붉고 미지근한 조가비는 오늘도 내 손 안에 있어 나를 울린다.
- P46

나는 더 이상 끼여들 수 없는 어떤 연극에서 벌써 따돌림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P61

엘자는 그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은빨리 지나갔다. 행복하고도 즐겁고 고독한 7일이었다. 
- P73

나는 경멸의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다. 그녀를더없이 아름답게 만들면서 나를 좀 겁나게 하는 그 권태와 비난에 어린 얼굴을.
- P76

나는 대범함이 우리의 생활에 영감을 불러일으켜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라는 것과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이유를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P80

이튿날 아침 나는 베르그송의 한 구절을읽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몇 분을 허비했다. "사실과 원인 사이에서 맨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어떤 이질성은 행동의 규칙으로부터 사물의 본질에 관한 확인에 이르는 데는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들이 인류를 사랑하는 힘을 얻어온다고 느끼는 인류의 발생적 원리와 더불어 항상 접촉 속에 있는 것이다." 

- P80

 나로서는 방금 끝난 그 즐겁고도 일관성이 없던 그 2년이 갑자기 얼마나 매력적인 것으로 장식되었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그렇게도 빨리 외면해버린 그 2년이... 생각하는 자유, 부당한 것을 생각하는 자유, 도를 지나쳐 생각하는 자유, 나 자신이 내 인생을 선택하는 자유 그리고 나 자신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
- P83

활기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둘뿐이고 그녀는 그런 우리 사이로 자기의 침착성을 잃지 않은채 끼여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녀는 따사로워질 것이고 우리에게서 태평스럽고 따스한 열을 조금씩 빼앗아갈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훔쳐가고 말리라, 한 마리의 아름다운 뱀처럼‘.
- P91

나는 안느를 쳐다보았다. 침착하고도 초연하게 엘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새 의상을 선보이고 있는 마네킨이나 매우 젊은 여인들을 바라보는것처럼, 아무런 독살스러움도 없었다. 나는 순간 치사스러움이나 질투가 없는 안느를 열렬히 감탄해 마지않으며 바라보았다. 
- P152

내가 안느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완전히 열중해있어서,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이 언제나 나를 문제삼아 나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충실하고도 어려운 순간들을 살도록 만들었다.
- P158

부탁이에요. 제발 내 머릿속에다 내가 젊다는 것을 주입시키려 들지 마세요. 나는 최소한도로 젊음을 쓰고 있거든요. 
- P161

엘자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지난 생활의 상징, 청춘의 상징, 특히 아버지의 청춘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 P168

내가 그에게 시킨 역할이 그의 기분을 무척 거슬리게 했으며, 내가 그렇게 하는것이 우리의 사랑에 필요하다고 믿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것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많은 이중 인격과 내적인 침묵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노력과 거짓말은 조금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것을 이야기했지만, 내 행동만이 나 자신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 P171

다만 내가 침대 속에 누워 있을 때나, 파리에 자동차 소리만이 들리는 새벽녘이면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여름이 다시 온다. 그리고 그 모든 여름의 추억도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아주 낮은 소리로 오랫동안 어둠속에서 자꾸만 불러본다. 
- P190

그때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그것을 그녀의 이름으로 해서 맞아들인다. 눈을 감은 채......슬픔이여 안녕.
(여기서의 안녕 (Bonjour)이란 헤어질때의 인사(Adieu)가 아니라 만날 때의 인사를 뜻함)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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