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손짓 한 번에 시온이가 죽었을까?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결연히 들었다고 했다. 강도와 빈도가 약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 언니는 시온이를, 시온이의 죽음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고, 시온이를 과거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도 상상할 수 없었다.
- P10

언젠가, 네가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너는 저주의 효력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더는 이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내게 꽤 많은 돈을 내라고 했고, 나는 선선히 지갑에 있던 돈을 거의 다 주고 천막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정말잊어버렸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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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산에서 얻은 가르침이 있다면, 그건 땅은 지속된다는것, 필요한 때가 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없애고, 가능할 때 제 모습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었다.
- P279

그동안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 P281

나는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토양이 충분히 강인하기만을 바랐다. 뿌리째 뽑힌 내 나무들이 새로운 곳에서 온갖 역경을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빌어먹을 온갖 불행이 닥치더라도 나 역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284

나는 하루하루 내가 선택한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었고 그건 좋은 삶이었다. 내게 없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내 앞에 놓인 것들에 감사했다.
- P309

이후 몇 년간 있었던 세세한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삶이 그러하듯 어려움은 생기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 P311

파오니아와 노스포크밸리는 특유의 편안한 리듬으로 나를 품어주면서 내 슬픔을 가라앉혀 주었다.
- P312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에요. 우트족을 봐요."
젤다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우트족을 경멸하거나 무시했고, 아예 안중에 두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젤다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도 사실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고 우리 땅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아무리모른 척, 아닌 척 한다고 해도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 P316

나는 다시 월 생각에 빠져드는 중이었다. 윌은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온사람이었을까, 앨버커키에 있다는 그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오고도 어째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걸까.
- P317

아무리 느리더라도,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아무리 적은 양이더라도 강물은 어떻게든 물길을 찾아내 꾸준히 흐를 것이다. 그러면, 노스포크강을 따라 새로운 삶을 꾸린 나는 그 반대편에서 흐르는 강물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P322

이제 내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천 마디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때에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쓸모없는 한마디.
"미안해."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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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나는 씨앗을 심거나 변소를 파거나 일상을 세우는 것보다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먼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날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운명이 달라지진 않는다. 나는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차근차근 그곳에 머물 방법을 찾아나갔다.
- P185

식구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수풀 사이에서 다급히 튀어나오는 약한 새끼사슴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나를 신뢰하는 사슴가족을 볼 때마다 동지애를 느꼈다.
- P191

내 무릎에 축 늘어져 있는 푸르스름한 아기를 향해서, 그리고어쩌면 나 자신을 향해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살아야 돼!"
말 한마디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듯 나는 계속해서 흐느끼며 외쳤다.
- P199

나는 바위에 앉아 약한 새끼 사슴을 기다렸다. 그러나 연약한 새끼 사슴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는 슬픈 마음에 베이비 블루를 더 꼭 껴안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 P207

세상에는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그런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심장에서 시작되어 모든 세포로, 모든 혈관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그런 슬픔이 한번 덮치고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땅도, 하늘도, 심지어 자기 손바닥마저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버리는 슬픔이다.
- P209

나를 바라보는 루비앨리스의 움푹 꺼진 한쪽 눈에는 연민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 옆에 불룩하고 거친눈은 무슨 일을 겪었든 이제는 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 P221

윌슨 문과 사랑에 빠진 것은 내 평생 가장 진실된 행동이었다. 그런 선택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행동의 진실성이 흐려지는 건 아니다. 그럴 땐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여파를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끔찍하든 아름답든 절망적이든 어떤 결과가 닥치든 간에 그저 최선을 다해 마주하면 된다고, 윌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 P224

긴 침묵 끝에 아빠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이지만 충분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 말을 뱉고 가슴이 뒤틀리듯 아팠다.
- P228

나는 충격과 연민을 감추지 못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아빠가 고개를 위로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워졌음을 아는 동물의 표정이었다. 두려움과 체념이 뒤섞인 슬픈 표정이었다.
- P229

그때 아빠는 내가 긴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묶고 있으니어머니를 꼭 닮았다고 얘기했다. 아빠의 마지막 말이었다.
"너희 엄마도 참 아름다웠는데."
아빠는 잃어버린 사랑을 회상하며 애석하고도 달콤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나도 아름답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 P230

어떤 장면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꾸준히 눈에 아른거렸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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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째서 루비앨리스를 주님의 은총을 받는 자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나는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 P90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 P143

그러나 진실을 외면할 순 없었다. 무고한 소년을 포용하지 못할 만큼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진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지 못할 만큼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진실을. 블랙 캐니언이 윌의 깊고 끔찍한 무덤이 되어버린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 마을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 P151

단 한 번의 폭풍우가 강둑을 무너뜨리고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버리듯 한 소녀의 인생에 닥친 단 하나의 사건은 이전의 삶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 P165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에 집중해야 했다.
- P174

낚싯대도 낚싯줄도 바늘도 없이 물고기를 정말로 잡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 당장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좋든 나쁘든, 지금은 그저 눈앞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걸로도 충분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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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 P7

어느 곳에서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풍경들은 오직 내 눈동자 속에만 기록되었다. 어차피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와 감촉 들은 귀와 코와 얼굴과 손에 낱낱이 새겨졌다. 아직 세계와 나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 P8

당신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지 않았으나 내가 어리석었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 걸까요. 나는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어리석은 속성이 내 어리석음을일깨워 마침내 모든 것을 부숴버린 걸까요.
- P44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 P49

어떤 것도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고, 어떤 것도 내부로 스며들어오지 않는다.
- P58

그녀는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눈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물들의 상이 맺히고, 그녀가 걷는 속력에 따라 움직이며 지워진다. 지워지면서, 어떤 말로도 끝내 번역되지 않는다.
- P67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파편으로 다가와,
파편인 채 그대로 흩어진다. 사라진다.
- P102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논증하는 부분에서요.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 P105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봐. 삶에 대한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 P112

그때 왜 그렇게 가슴이 서늘해졌던 걸까. 느리디 느린 작별을 고하는 것 같던 그 광경이, 헤아릴 수 없는 무슨 말들로 가득 찬 것 같던 침묵이, 여태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마치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대답해주었던 것처럼, 뼈아픈 축복 같은 대답은 이미주어졌으니, 어떻게든 그걸 내 힘으로 이해해내야 하는 것처럼.
- P115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으 거 같다고.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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