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엄마의 장례식을 오늘 치르지 않고 어제 치른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또 다른한편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나는 어차피 쉬게 되었을 것이다.
- P39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런 소리를 사장에게도 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말을 해본댔자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이니까.
저녁때가 되자 마리는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다. 
- P41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P45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P60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65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 P68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 P69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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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딧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 P8

그냥 이야기 속에서는 잘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인물이 연극 무대의 세찬 조명 아래서는 완전히 무너져 앉아버리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 P1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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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독서기록정리중
#책사는속도는읽는것보다빠르고
#기록은읽는것보다느리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은이) 엘릭시르 2021-07-26, 336쪽, 미스터리 소설

🍊 얼마 전 (이라기엔 조금 지난) 방영한 드라마 ‘유괴의 날‘이 인상적이라 (실제 제대로 드라마를 보진 않았으나) 찾아보니 원작소설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인스타에서 리뷰를 많이 보던 이 책과 같은 작가님이라는 걸 알게 되고 마침 도서관에 있어 읽게 되었다.

🍊 일단 책의 시작은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라는 문장으로 이미 한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파격적으로 시작한다. 물론 요즘 강렬한 시작이 많아 파격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시작을 계속 긴장감 있게 계속 유지하는 건 역시 작가의 힘이다. 화자인 주인공에 서술에 의하면 주인공은 비록 다현을 호수에 버렸으나 죽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책에 니오는 누군가는 범인이고 범인은 주인공을, 그리고 읽고 있는 독자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에 스릴이 계속 느껴진다.

🍊 크게 이 소설은 세 가지 반전이 있는데, 추리소설을 많이읽어 본 사람이라면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진 못해도 막연히 이럴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다. 그러나 뻔하지만은 않다. 나 같은 경우는 잠시 ‘혹시‘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빠른 전개에 잠시 가졌던 생각을 잊어버리고 작가에게 휘말렸다. 확실한 건 다 읽기 전까지 책을 덮기 어렸다. 덕분에 새벽 늦게 잤다. 소설을 구성한 전부라 할 수 있는 반전 세가지가 어디선가 느껴본듯한 것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 그리고 반전이나 추리가 전부가 아니다. 준후, 다현, 조미란, 은성, 영주, 황권중 전부 현실서 부담스럽고 위험한, 그리고 불쌍하고도 연약한 사람들이다. 현대사회의 구성원들로 함께 있는 사람들. 나는 어떠한가.

🍊 마음에 더 남은 구절들

🌱아주 잠시, 준후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무섭게 굳어버린 얼굴 속에 일그러진 욕망이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의 외피를 두른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8

🌱
차라리 다현을 죽인 것이 영주였다면 좋았을 것을.
다현이 죽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
269

🌱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진 조미란의 얼굴을 보며, 정은성은 조미란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슬프다는 얼굴을했다.
˝내가 어떻게 엄마를 실망시켜.˝
279

🌱
준후는 저항하듯 벌떡 일어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강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323

🌱
그중 한 사람만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강치수가 답했다.
˝외로웠겠죠.˝
328

🌱
아무도 모른다.
그 냄새나는 차의 문을 닫을 때, 황권중이 살아 있었던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준후는 길고 긴 복도를 웃으며 걸었다.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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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이 상했다. 아빠는 형제들 중 머리카락이 아직 남아 있는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난 이후로 3분의 2가 빠져나갔다. 그것은 아빠가 몰래 빼앗긴 또 하나의 자산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아버지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고절대 이해 못할 방식으로 전 생애에 걸쳐 자기 것을 빼앗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99

우리는 일본의 유명한 다리를 재현해놓은 곳에 멈춰 서서 현지인들이 촛불을 켠 작은 종이배를 강물로 떠내려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호이안이평화로운 만남의 장이라는 뜻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 P305

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는, 보드라운 죽이 엄마의 갈라진 혀를 살포시 감싸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천천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뒷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 P320

그동안 엄마의 옛 편지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나는 이모를 자주 떠올렸다. 그걸 이모에게 보여줘야 할지 아니면 그것들로부터 이모를 보호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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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사람들처럼 피터 역시 도통 적절한 말을 할 줄 몰랐다. 이 남자의 위로 방법은 언제나 내 감정이 사그라질 때까지 그냥 조용히 내 옆에 누워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도 참 고마운 것이, 어차피 그것 말고 그가 딱히 할 수 있는일은 없었다.
- P205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미 찢겨나간 육체적 자율성의 조각들은 하루하루 누더기 꼴이 되어갔고, 이제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은 그 차이를 분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 P215

하지만 피터에게 달라진 점은 오로지 나에 대한 감정뿐인 것 같았다. 그뒤로 우리 친구들끼리는 내가 그 두 괴한을 고용한 게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 P227

아빠는 부부 사이가 별로 친밀하지 않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비밀을 알았지만 아빠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늘 믿어왔고, 인생이란 게 그냥 그렇게 생겨먹을 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 P238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 P240

우리는 아름답고 냉정한 성인 여자가 곧장 눈물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추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라는 말 한마디의 파급력은그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몇 년 뒤에 똑같은 감정과 맞닥뜨릴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 P247

그리고 우리가 아주머니를 언짢게 만들어서 역정이 났을까봐, 얼른 쫓아가서 제발 여기 있어달라고 설득하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보고 꿈이라도 꾸듯 활짝 웃기만 했다.
"그동안 아주머니도 재미있었을 거야." 엄마가 말했다.
- P252

엄마가 죽은듯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다가 아빠와 나는 갑자기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전 열어보지도 않던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검정 쓰레기봉투에 마구 쓸어 담았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할 일을 미리 해버리려는 것처럼. 엄마가 진짜로 죽고 나면 그 일이 더 크고무거워질 걸 아는 것처럼.
- P255

우리는 엄마가 죽기를 기다렸다. 마지막 며칠은 아득하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해온 내가, 이제는 엄마의 심장이 아직도 뛸 수 있다는 사실에놀라고 있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 엄마가 그냥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미칠 것 같았다.
- P256

‘사랑스럽다‘는 말은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용사였다.
엄마는 나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사랑스럽다‘는말을 고를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그 단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아우르는 말처럼 느껴졌나보다. 그것은 엄마의 묘비명에 새겨넣기에도 딱 알맞은 단어였다. 자애로운loving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 lovely 엄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 P268

어쩌면 나란 존재가 엄마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자신의 한 조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냥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 P269

오빠 역시 자기 몫의 슬픔이 있을 테지만 그 순간만큼은 꼭 삼켰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나머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어깨를 내주며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이니까.
- P270

 최대한 금욕적으로 지내려고 가족에게 눈물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그렇게 막아두었던 감정이 한순간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우는 나를 쳐다보는 걸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실컷 감정을 풀어놓고 나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 P274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어찌어찌 내가 엄마를 흡수한 것처럼, 이제 엄마가 내 일부라도 된 양 느꼈고, 적어도 그렇게 되길 바랐다. 그런데 미술 선생님도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말하자면 내가 자기 말을 들어줄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느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81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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