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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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에겐 위기, 도전,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었던 내 일상과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책!






  “힘들게 뭐 하러 계단으로 올라가, 엘리베이터 타자.” 한때는 계단이 경이로운 효율성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등장하고 마찬가지로 보다 편리한 이동수단인 엘리베이터가 나타나자 굳이 계단을 오르내릴 이유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여겼던 불편함이 새롭게 등장한 편안함에 의해 선택지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편안함의 습격의 저자인 마이클 이스터는 이를 편안함에 의한 잠식이라 표현한다. 새로 등장한 편안함에 적응하면 이전의 편안함은 더는 수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편안함의 기준을 옮겨가는 것. 이에 잠식되고만 우리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뜻밖에도 현재 인류가 직면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의 주요 원인이라 이 책은 지적한다.




 

편안함의 감옥에서 벗어나라

진정한 삶은 불편한 곳에 있다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현대인의 문명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날, 이에 과감하게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내가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최대한 낭비되는 시간들을 줄여줄 도구처럼 사용했던 편리함이 실은 나의 신체 기능을 저하시키고 따분함과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있었던 것에 대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 중에서도 알래스카에서 보낸 33일간의 야생 경험은 독자들로 하여금 낯설지만 매우 특별한 감각을 선사한다. 냉난방 걱정이 없는 집에서 차로, 사무실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22도 생활양식에 익숙해져 있던 신체와 정신이 위기와 도전, 불편함으로 가득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간의 편리함이 나로부터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저절로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작은 동그라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내 잠재력이다하면서,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울타리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정말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거죠.” / 65p


 

그러니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이 진화적 메커니즘은 이제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삶에서 정말로 위대한 것은 결코 완전한 성공이 보장되어 있을 때 오지 않습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실행하더라도 실패 확률이 높은 도전에 참여하는 것, 그런 상황에 과감히 뛰어드는 행동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애주고, 내 안의 잠재력을 알게 해주죠.” / 76p


 

현대인이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따분함의 결핍이야말로 인류의 정신적 피로를 거의 위기 수준까지 몰아가고 있는 원인일지 모른다. 한 미디어 분석가의 연구에 따르면, 스크린 기반 미디어의 맹습이 미국인들을 갈수록 별스럽고 조급하고 산만하고 까탈스러운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줄이면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과로 속에서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음들은 우울증, 삶에 대한 불만족, 인생이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이 느긋하게 방랑하면서 화면 밖의 것들을 인식할 때에만 그 존재가 드러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놓친다. / 158p

 


지금 여기를 자각한다는 이 개념은 요가 수행자가 추구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뇌 스캔 결과 부드러운 매혹상태는 명상의 마음챙김 상태와 동일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생각, 창조, 정보 처리, 임무 수행 등에 필요한 자원들을 회복하고 구축한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한마디로 명상 없는 마음챙김이다. 매일 잠깐이라도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것은 명상의 훌륭한 대안이다. 물론 숲속 걷기가 마음의 치료제가 되려면 휴대폰을 멀리하고, 어떠한 정보도 귀에 흘러 들어오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 / 190p

 










  저자는 의식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목적 있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즉 편안함이 점점 우리의 삶에 침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밀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갈수록 더 약하고 병든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완전한 편안함보다는 적절한 스트레스와 도전이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덕분에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그간 얼마나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인가를 내내 생각했다.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마감하는 일상, 냉동 제품과 에어프라이기의 편리함으로 채우는 식탁, 걸어갈까 운전해서 갈까 망설이다 이끌리듯 주차장으로 향하고야마는 연속된 하루들에 대하여. 그래서 적어도 하루에 두세 번은 내가 불편해할 만한 것들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수고로운 일에 마음을 기울이고, 무작정 빠른 길만을 선택하지 않는 여유로움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너그러움까지도 끌어안자고 다짐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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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는 수밖에 - 여행가 김남희가 길 위에서 알게 된 것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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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내게 알려준 것들!

이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2003년부터 시작해 23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행하는 삶을 살아온 김남희 작가의 여행에세이다. 무려 23년 동안 길 위에서 여행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마음인 걸까. 낯선 세계에 나를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일종의 도전 정신 같은 걸까, 변화와 새로운 순간을 갈망하는 호기심 같은 걸까. 고행과 타협, 적응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일단 떠나 보자’ 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마음의 동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다.




여행을 통해 어떤 곳에 머문다는 건,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기울여 그곳의 자연이나 사람들과 

이어지는 일이다. / 337p




  그런 나에게 책은 이렇게 답한다. 여행은 무수한 발자국을 이곳저곳에 남기면서 우리 모두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여행지를 기억하게 되는 건 그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해온 사람들의 흔적이자, 평소 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소수자들, 경계인들)의 목소리이자, 낯선 여행자들에게 내미는 그들의 호의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중앙아시아와 유럽, 남미를 아우르는 이 책의 여정 속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뜻밖에도 사람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좁은 거리를 견디지 못해 밖으로 돌다가,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보려는 사람이 되었다’던 그녀의 고백처럼, 결국 홀로는 살 수 없다는 감각 같은 것이 우리를 더 다정하게 만들고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하는 게 아닐까.




일에 찌든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마음을 다해 손님을 대접한다. 키우는 가축을 돌보는 태도도 다정하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돈이 결코 전부가 아닌 사람의 태도다. 자신이 하는 일이 결국 살아 있는 존재를 향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이의 존엄이 그녀에게 배어 있었다. 그 집을 떠나던 날, 안젤리카는 마당의 포도와 사과, 직접 구운 케이크와 과자를 가득 담아 건넸다. “우리의 첫 한국인 손님이 되어줘서 정말 기뻤어”라는 말과 함께. / 53p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걷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순례자들의 전용 숙소인 어느 알베르게 벽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우정보다 귀한 카미노는 없다.”

걷기에 급급해 그녀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모른 척했다면 제대로 카미노를 걸었다고 말하기에 부끄러울 것이다. 그녀 또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 걸어야 했다면 좀 서글프지 않았을까? 지금껏 여덟 번 카미노를 걸었지만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 걷고 싶은 이유는 바로 길 위에서 만나는 순례자의 열린 마음 때문이다. / 146p












  나에게 있어 여행은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에 가까웠다. 마치 미션에 몰두하듯 다녀온 것에 보다 의미를 두었다. 이곳보다 저곳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비교하면서 즐거움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쌓아가는 것 역시 여행이라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작가는 20년 동안 질리는 일 없이 여행만 하며 살 수 있었던 비결을 ‘어제 본 것은 다 잊고, 오직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제 이구아수 폭포를 봤다고 오늘의 정방 폭포를 시시하게 여기지 않는 것, 눈앞의 풍경에 오롯이 몰두하며 주어진 것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것, 지금 내가 보는 풍경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장면이라 여기는 것. 무엇이든 불편함을 통과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어떤 시간과 장소가 있고, 그럴 때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결의 감정과 사유가 있다는 여행자의 태도가 내게도 필요하다.




아무렇지 않던 것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원래 지닌 고귀한 가치를 알려주는 땅이었다, 

그곳은. / 24p




  이 책을 읽으며 낯선 여행지에서의 불안과 불편이 타인의 온기와 친절로 회복되는 순간들을 자주 목격했다. 현지인의 삶을 훼손하지 않는 여행을 위한 질문과, 기후 위기의 심각성 속에서 지속가능한 여행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의 삶이 이토록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할 수 있었다. 길 위에서의 사유와 경험을 나누어준 그녀의 글 덕분에 마치 아주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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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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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꽉 박히게 하는 작품이다!





  타살 혐의점이 없는 자살 사건이었다. 날마다 다양한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고, 고작해야 하루 이틀 기사에 오르내리거나 몇몇 인터넷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마는 현실 속에서 이 사건도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심코 열어본 옷장에서 조각난 신체가 담긴 스물다섯 개의 유리병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셰바이천, 41세, 무직. 홍콩 경찰은 마흔이 넘도록 직업도 없이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며 살아온 은둔형 외톨이인 셰바이천을 이 기괴한 토막 살인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의 방에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처럼, 시신을 수집품처럼 보관하고 있다가 죄책감에 자살을 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셰바이천 어머니로부터 터져 나온 뜻밖의 증언이 이들의 발목을 붙든다. “바이천은 20년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요!”




오랫동안 은둔한 채 지낸 자기 삶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진화한 인류의 선택이자 새로운 시대의 

생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 116p




  홍콩 출신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소설 『고독한 용의자』는 은둔형 외톨이였던 한 남자가 자살을 한 뒤, 그의 방에 감추어져 있던 토막 살인사건의 흔적까지 세상에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범죄추리소설이다. 20년 동안 집에서만 은거했다던 남자가 어떻게 두 차례에 걸쳐 살해를 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시체를 보관할 수 있었을까? 한사코 셰바이천의 결백을 주장하는 어머니와 셰바이천의 자살을 최초로 목격한 친구이자 유명 추리소설가인 칸즈위안의 증언은 믿을 만한 것인가? 소설은 너무나 뻔해 보였던 용의자와 그렇지 않은 사건의 내막이 과거-망자의 일기-출간 예정된 소설-현재와 유기적으로 얽혀 거듭해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나는 원래 사람의 시신을 토막 내는 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잔인한 악행이자 금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 여러 토막을 이어 붙여 완벽한 사람을 만든다는 발상에 매료되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신을 무기물로 바라보고 세속의 시선과 윤리의 족쇄까지 벗어던진 채 절묘한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중에 나도 이런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생명을 대가로 내놓는다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 76p



인생은 원래 고독한 여정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도 혼자이고, 세상을 떠날 때도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다. 아바이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무리 지어 사는 것은 통치자가 사회와 국가, 민족을 만들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이자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익이나 자기만의 이상을 위해 스스로를 기만하고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는 본질을 망각한다. / 115p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그걸 ‘게임’으로만 여기고, 애들 놀이이자 장사꾼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바이에게는 게임이 창조해내는 사이버 ‘사회’가 현실 세계보다 더 진짜 같고, 그와 그의 동족들이 생존하기에 더 적합한 곳이었다. / 116p












  범죄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이 소설은 홍콩 사회 전반의 우울한 현실을 고스란히 비춘다. 주요 소재인 자발적 은둔자들, 빈곤 계층과 약자를 따돌리고 외면하는 사회 구조, 렌털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성상품화되는 여성들의 고통 등을 섬세하고 무겁게 묘사한다. 자신을 감추고, 자신과 사회의 연결을 끊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우고, 고독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양산해내는 기형적인 사회 구조와 범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이 도시에 외로운 사람이 이렇게나 많군, 이라고 쉬유이는 생각했다. 렌털 애인은 단순한 성매매가 아니라 연극에 더 가깝다. 고객의 연인을 연기하며 상대에게 생리적인 욕구 충족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안까지 제공한다. 애인 렌털업이 일반 성매매보다 더 호황이라는 사실은 이 도시 사람들이 단순히 성적인 욕구만이 아니라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더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 235p



“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해요. 그들이 죽든 살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죠. 부자가 10달러를 도둑맞으면 경찰은 그의 지위와 신분에 눌려 호들갑을 떨면서 도둑을 잡으러 다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한 가정이 통째로 사라져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 328p












  마지막까지 흡인력있는 전개로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작위적인 요소들이 아쉬움을 남긴다. 추리소설가인 칸즈위안이 경찰인 쉬유이와 날카로운 추리 대결을 펼치고, 의표를 찌르는 논리로 압도하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도 아쉽다(칸즈위안의 의도대로 이끌려가는 흐름이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예사롭지 않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는 사회문제와 인간 본성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줄곧 의도적으로 흘려온 떡밥들을 완벽하게 회수해가며 완성도 높은 추리소설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찬호께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꽉 박히게 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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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 한재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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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감정은 내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다!

감정의 본질과 맥락을 이해하고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책!





  색색의 꽃들로 가득한 멋진 정원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 정원수는 매일 성실하게, 정성을 다한다. 그럼에도 집요할 정도로 날마다 나타나 정원을 망치는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잡초다. 잡초는 뽑고 또 뽑아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조금만 방심하면 오히려 더 무성하게 자라나있다. 게다가 다른 식물에 해를 가하기 때문에 정원수에게 있어 잡초는 자신을 괴롭히는 골칫거리 같은 존재다.




 『악마와 함께 춤을』의 저자인 크리스타 K. 토마슨은 책의 서두에서 이것이 바로 나쁜 감정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잡초는 제거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이란 것, 즉 나쁜 감정 역시 좋은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 때문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저자는 나쁜 감정은 잡초가 아니라 ‘지렁이’라고 강조한다. 끈적거리고 징그러운 모습으로 흙 속을 휘젓고 다니지만 실은 지렁이가 존재한다는 건 정원이 조화롭고 풍성하게 번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토양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지렁이가 정원에 꼭 필요한 존재인 것처럼, 나쁜 감정 역시 좋은 삶의 중요한 일부라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건 

삶이 왜 안락의자 같아야 하냐는 것이다. / 66p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리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골몰하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이 내 삶을 아끼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꽤 오랫동안 나쁜 감정들을 절제하고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성적이고 긍정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의 진화 과정 속에서 나쁜 감정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생존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나쁜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감정이 어떠한 맥락으로 작동하는지 감정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나쁜 감정이 “비생산적이다.” “에너지를 빼앗는다.” 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감정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가정한다. 감정 위생은 당신이 평화로운 내면의 성소를 가졌다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다른 모든 걸 다룰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당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오로지 당신이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쁜 감정을 없애려면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이들에 따르면 나쁜 감정을 계속 느낀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 95p



우리가 나쁜 감정에 대해 갖는 의심은 대부분 내가 ‘감정의 이중 잣대’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다. 감정의 이중 잣대란 긍정적인 감정에는 절대 부여하지 않는 속성을 부정적인 감정에 적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일례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너무 깊이, 자주 빠져들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기쁨이나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경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91p



나쁜 감정은 자기애의 표현이며, 그건 우리가 자신의 삶과 자신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웃의 아름다운 집을 부러워하는 건 나도 그런 집을 갖고 싶기 때문이며, 그것은 성공을 정의하는 한 방법이다. 제일 싫어하는 동료의 비아냥에 화를 내는 건 내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106p












  그 중에서도 저자는 몽테뉴의 철학을 인상 깊게 다룬다. 몽테뉴는 자기 이해란 “자신을 잘 다듬어 장식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의 광야를 탐험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골방’이라는 은유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골방을 따로 마련하고 그곳을 완전히 자유롭게 유지하며 그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소리를 지를 때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 즉 골방에 들어앉은 듯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봄으로써 지금의 내 감정이 상황에 적절한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솔직히 살펴보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될 때면 몽테뉴가 제안한 골방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자아는) 연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다. 자아를 사랑한다는 건 항상 불안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사랑하는 법은 알기 어렵다.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도전은 그런 존재를 솔직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변명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자기애야말로 나쁜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다. / 114p



어떤 이들은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로드는 분노를 표출하기를 두려워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표현하지 않은 분노는 오용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다. 여성은 건전한 방식으로 화를 내는 법을 배우는 경우가 드물다. (…)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분노에서 멀어지면 통찰력에서 멀어진다.” / 145p



분노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분노를 타인의 문제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비난하며 급발진하는 건 분노에 대처하는 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들 탓을 하며 기다림에 대한 분노를 그들에게로 돌린다. 하지만 깨진 유리잔 사례처럼 나의 괴로움은 실제 괴롭힘을 당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은 내 분노를 ‘교정’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데 누군가의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지 말고, 그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솔직히 살펴야 한다. / 152p











  부정적인 감정에 낙인을 찍지 않고 감정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신선한 책이었다. 그간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자칫 성격적 결함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억누르기에 급급했던 나로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이 책의 제안이 낯설고 여전히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억지로 제어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내가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가에 집중하는 게 좀 더 나은 방향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중에 이미 출간된 마음챙김이나 감정 조절에 관한 책들에 비하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감정의 본질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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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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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는 시대 속에서 분투하는 화자들!




  상충하는 ‘진짜’의 문제들로 들끓는 세계. 이것이 내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쉬이 감별해내기 어려워진 시대, 때로는 진짜가 자신이 진짜임을 보다 치열하게 증명해야만 하는 세계. 진짜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는 시대 속에서 분투하는 화자들을 다룬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를 읽으며 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이야기가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진짜, 라는 신화



  맞은편에 새로운 신당을 차린 신애기가 제 부모와 함께 인사 차 문수의 신당을 방문한 것이 얄궂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신을 받은 지 삼십년 차가 된 박수무당 문수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간 정성을 다해 모셨던 장수할멈이 최근 들어 좀처럼 화답을 해주지 않아 찜찜하던 차였다. 문수가 건넨 보이차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밀쳐내기에 신애기의 몸에 애기동자가 들어 섰겠거니 하고 달콤한 사탕 하나 건네려는 찰나에, 신애기가 느닷없이 살기 어린 조소를 날린다.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소설 「혼모노」는 소위 신빨이 다한 박수무당 문수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저 번아웃이 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집에 신당을 차린 신애기에게 할멈이 옮겨가 “흉내만 내는 놈”이란 소릴 듣고 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더 이상 장수할멈과 접신할 수 없는 이 몸은 ‘가짜’일 뿐이란 말인가. 그럼 여기에 존재하는 나는 누구란 말인가. 마침 문수에게 굿을 부탁한 황보 의원이 이를 철회하고 돌연 신애기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문수의 이러한 고뇌는 정점에 달한다. 결국 문수는 신애기가 주도하는 굿판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만의 굿판을 펼치기 위해 잔뜩 벼린 칼날 위에 오른다. 더 이상 진짜냐, 가짜냐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나’로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므로.




유튜브를 보며 접신 연습을 한다. 과장되게 눈을 뒤집고 몸을 부르르 떨다 자괴감을 느끼고 그만두길 몇차례. 도대체 그동안은 어떻게 했던 걸까. 신의 출입이 어찌 그리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걸까. 모형 작두와 칼은 주문해놓은 지 오래다. 이제 연습만이 살길이다. 해원경을 크게 틀어두고 주악에 맞춰 칼춤을 춘다. / 「혼모노」 중에서 141p



신애기가 두 손을 입을 틀어막고 웃는다. 큭큭큭큭, 큭큭큭. 손가락 사이로 기분 나쁜 웃음이 새어나온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린다. 종아리가 풀리고 손이 저려온다. 모르겠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 「혼모노」 중에서 145p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은 또 다른 작품 속에서도 계속된다. 그 중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화자인 ‘나’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김곤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그를 추종하는 팬클럽 길티 클럽의 멤버다. ‘나’는 한순간의 불미스러운 일로 감독이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자, 진짜 팬이라면 당연히 그를 믿어야 한다며 진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앙했던 진짜를 향한 마음이 허무해지는 순간,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겠느냐고.




어떻게 작품을 본 적도 없으면서 ‘안 봐도 비디오’ 따위의 평을 내리는 걸까. 어째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나락으로 떨구려 그토록 안간힘 쓰는 걸까. 도대체 왜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은 사건을 멋대로 공론화하고 거짓말까지 덧붙여 온갖 데로 퍼 나르는 걸까.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에서 14p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실수라고 해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친구들의 말처럼 만약 그게 내 아이의 일이었대도 김곤의 영화를 몇 번씩 관람하고 굿즈를 소비할 수 있었을까.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에서 28p




  이쯤 되면 진짜는 어쩌면 신화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반드시 성취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우리 인생이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이상향이기라도 한 것처럼 왜 우리는 이토록 진짜에 진심인 것일까. 때문에 진짜는 무엇인지, 진짜라고 ‘믿는 것’들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계속해서 진지한 물음을 건네야만 한다. 성해나의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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