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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ㅣ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평점 :

현대사회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밀의 공리주의!
일독이 아닌 재독, 삼독을 권장할 만한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철학서!
공리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비록 이전에는 공리주의의 개념과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공리주의에 대해 조금만 들여다보면 많은 철학자들을 비롯해서 현대 사회를 뒷받침하는 여러 제도와 사상 등에 놀라울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에 이어 공리주의를 전개하고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이룬 존 스튜어트 밀은 서양 철학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더불어 4대 윤리사상가로 손꼽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대표 저서인 『자유론』을 비롯하여 『공리주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꼭 읽어봐야 할 대표 철학서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한 번 만에 읽고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렵고 난해한 구석이 있지만, 번역가의 꼼꼼한 해제와 작품해설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접근해보자.
공리주의는 곧 행복주의다
공리주의의 개념을 이해하기에 앞서 우리는 공리의 뜻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흔히 공공의 이익을 가리키는 공리(公利)를 생각하기 쉬운데, 공리주의의 공리(功利)는 다른 목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 책의 번역가인 이종인은 작품 해설을 통해 공리주의라는 말은 이미 너무나 널리 알려져서 다들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공리에 해당하는 원어는 ‘utility’ 즉, 효용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우리가 경제학 개론 시간에 배웠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서 보듯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약발”을 뜻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밀이 거듭 주장하는 인간 행위의 유일한 목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을 뜻하는 말로, 공리를 통하여 행복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공리주의를 행복주의로, 공리를 행복으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밀은 자신의 저서 『공리주의』를 통해 공리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공리주의와 공리주의가 아닌 것을 서로 구분하며, 공리주의를 오해하거나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여러 가지 실제적인 반대 의견들을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를 테면 공리주의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의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사상이라는 점에 있어, ‘쾌락’을 ‘돼지에게나 어울리는 윤리’라고 비난하는 왜곡된 의견에 대해서는 “물질적 쾌락의 양이 아니라 정신적 쾌락의 질을 우위에 둘 것”을 주장한다.
또 공리주의가 인간 행위의 규칙이요 원칙으로 정의하는 행복을 두고 ‘인간은 행복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인생과 인간 행위의 합리적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행복은 누구나 욕망하는 것이고, 행복 이외의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리하여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체이므로 일반 행복(사회 전체의 행복)이 모든 행동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행복은 선이고, 각 개인의 행복은 그 개인에게 선이며, 따라서 그 개인들을 모두 모아놓은 집단에도 선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듯 밀은 공리주의의 창시자이자 스승인 벤담이 ‘양적 공리주의’와 ‘법률에 의한 정치적 제재’를 중시한 것과 달리, 인간은 동물적인 본성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질적으로 높고 고상한 쾌락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질적 공리주의’를 강조한 것은 물론 ‘양심의 내부적인 제재’가 되는 인간성을 더욱 중시한다.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옳은 행동이 되며, 만약 불행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그른 행동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어떤 의도된 쾌락이며, 고통이 없는 상태이다. 반면에 불행은 쾌락 없음과 고통을 의미한다. / 21p
인간은 지적 감각을 상실하면 고상한 열망을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지적 능력을 훈련시킬 시간과 기회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열망이 시들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인간은 저급한 쾌락에 몰두하게 된다. 그들이 그것을 특별히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접근 가능한 유일한 것이고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는 쾌락이기 때문이다. 고상한 쾌락과 저급한 쾌락을 둘 다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혹은 평온한 마음으로 저급한 쾌락을 더 좋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리라 본다. / 28p
나는 여기서 되풀이하여 말한다. 공리주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부당하게도 결코 인정하지 않지만, 인간 행위의 옳음을 증명하는 공리주의의 기준(행복)은 행위자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자가 그 자신의 행복과 남들의 행복 사이에서, 공평무사하고 자비로운 구경꾼처럼 공정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중략) 공리주의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실천할 것은 요구한다.
첫째, 사회의 법률과 제도는 모든 개인의 행복(혹은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해서 이해관계)을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와 최대한 일치시키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인간의 성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교육과 여론은, 그 막강한 힘을 사용하여 각 개인의 마음속에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공동선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굳건한 생각을 심어놓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하다. 각 개인의 행복은 보편적 행복이 요구하는 바 적극적이고 소극적인 온갖 행동 양식의 구체적 실천과 일치해야 한다. / 40p


끝으로 밀은 공리주의 윤리에 있어 ‘정의’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며, 따라서 더욱 절대적이고 명령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마지막 5장을 통해 정의의 어원을 살펴보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5가지 기준 및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가장 사회적으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성의 문제를 보다 깊이 고민해보게 한다. 이렇게 『공리주의』는 공리주의가 생활 속의 구체적 사례에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합리적 근거가 있는지를 제시하여 사람들이 공리주의를 용인하거나 거부하는 자료로 삼게 하되, 사람들이 공리주의라는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말에서 알 수 있듯 밀은 자신의 주장을 인간의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들이라 단언하지 않고, 어떤 핵심적 문제들에 대하여 보편적 동의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영국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밀이 인간성을 파악해 들어가는 방식은 공리주의적인 관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콜리지를 통해서 알게 된 독일의 관념론, 더 나아가 칸트의 도덕 사상, 그리고 멀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사상도 수용하려고 애쓴, 포괄적이면서 신축적인 사상 체계를 갖추었다”고 말한다. 가변적이고, 포괄적이며, 비결정적이고, 신축 유연한 태도가 밀 철학의 장점이며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은 배경이라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에 아버지 제임스 밀의 교육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콜리지와 낭만주의자들의 가치를 과감히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 그가 독특한 사상 체계를 가진 실용 사상가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원인으로 보인다. 이는 책의 말미에 추가로 수록된 저자의 생애와 저작의 배경 등을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정의라는 개념은 두 가지 사항, 즉 행동 규칙과 그 규칙을 승인하는 감정을 필요로 한다. 첫 번째 것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되며, 인류의 공동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두 번째 것은 그 규칙을 위반한 자에게 처벌을 바라는 심리이다. 이 두 가지 외에 규칙 위반자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있고, 또 가해자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자의 권리(이 사례에 적합한 표현을 해보자면)가 침해되었다는 전제가 있다. / 105p
각자의 공과에 따라 선은 선으로 보상하고, 악은 악으로 억압하는 것은 의무의 행위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우리에게 잘 대해준 사람에게 역시 잘 대해주어야 하며(물론 이보다 더 높은 의무가 공평한 대우를 금지할 때는 예외가 되겠지만), 사회 역시 사회를 위해 잘한 사람들을 잘 대해줌으로써 보답해야 한다. 이것이 최고 수준의 추상적인 사회 정의와 분배 정의이다. 이런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모든 사회 제도들과 덕성스러운 시민들의 노력이 함께 경주되어야 한다. / 120p
앞서 말했듯 『공리주의』는 한 번에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밀의 언어가 라틴어 명사의 격변화와 동사변화를 교묘하게 활용하면서 글 쓰는 사람이 언어 다루는 능력을 과시하도록 권장하는 고대 로마의 수사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번역가는 이 책을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듯이 번역본을 읽기보다 적어도 세 번을 읽어보길 권장한다. 개인적으로는 밀의 생애와 작품 해설을 다룬 부록을 먼저 읽어본 다음 본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혹은 철학을 주제로 한 인문 서적에서 요약된 설명을 병행해서 함께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공리주의의 핵심 원리인 행복, 공정성, 분배와 정의,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는 여전히 현대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그의 사상을 통해 ‘철학하는’ 계기로 삼아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