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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호 인플루언서 ㅣ 인문 잡지 한편 2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인플루언서를 통해 바라본 미디어 세태와 영향력 그리고 행동에 이르기까지!
인플루언서 현상과 그들의 진정성 그리고 방향성을 모색하다!
언론학에서 수사학, 교육학, 역사학, 여성학,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젊고 다양한 학자들을 연결하여 가장 콤팩트한 담론의 장을 연 인문잡지 《한편》이 2호를 발간했다. 1호인 ‘세대’ 편에 이어 2호 역시 우리 시대의 가장 민감한 주제를 화두로 내걸었다. 바로 ‘인플루언서’다. 이른바 ‘SNS 유명인’이라 불리는 인플루언서들은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의 시대에서 자신들이 지닌 영향력이라는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데 성공을 거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뉴스 생산자 또는 전달자이기도 하며, 진정성을 연출해서 수익을 내는 사업자도 있는 한편 선한 영향력을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행동력을 촉구하는 등 저마다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인기 있는 인스타그래머가 하자 있는 상품을 판매하여 논란이 일어나고, 가짜 뉴스 혹은 각종 음모론으로 점철된 유튜브 채널이 양산되거나 키즈 유튜버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등 인플루언서들을 둘러싼 문제점들이 큰 우려를 낳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한 각종 현상들을 분석하고, 이들이 가진 영향력의 의미와 그 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는 현시점에서 매우 온당해 보인다. 이에 인문잡지 《한편》은 누가 영향력을 원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영향력의 방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누가 영향력을 원하는가, 그리고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편》에는 총 열 편의 원고가 수록되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나요」의 이유진은 인플루언서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팔로워를 다수 보유한 셀러브리티”이면서,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을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로 정의한다. 즉,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문화적 의미를 생산하고 협상하는 장소인 셀러브리티 개념과, 타인에 영향을 미치는 뉴스 생산자 또는 전달자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기존 셀러브리티가 신문, 방송, 잡지 등 기성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고 전파한다면, SNS를 통해 성장한 일종의 ‘마이크로 셀러브리티’인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스피커를 통해 구/독자들과 직접 만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보고 듣고 말할 것이 있으면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되는 세상”에서 저널리스트가 인플루언서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다시 저널리스트가 되는 상호 방향성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상을 진단한다.
기성 언론과 인플루언서 양자의 상호작용을 진단한 윤아랑의 「네임드 유저의 수기」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다수의 ‘공식’ 비평가가 ‘일개’ 왓챠 유저보다 흥미로운 의견이나 전문적인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평, 기존 권력을 대신할 권력으로 나서게 되는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근간을 위협하는 그 원인 덕분에 권위를 일부 회복하는 듯 보이는 기성 미디어들. 저자는 이 현상을 ‘기성’과 ‘대안’의 기괴한 꼬리 물기로 진단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들이 전문 비평가와 서평가의 엄격하고 진지한 접근의 해석이 아닌, 진정성 있고 솔직하면서 거기에 필력까지 갖춘 북스타그래머들의 의견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도, 여전히 신뢰성이나 권위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공식’적인 기성의 해석에 의지하는 양상을 보이는 까닭이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와 인플루언서,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 리뷰와 비평을 구분하는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는 시점에서 기존의 미디어가, 언론인이, 뉴스가,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어떻게 하면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듯하다.
한 일간지 문화부 기자는 “특정 매체의 시각이 스며 있거나 기사 문법을 중시하는 기자들보다는 일반인들이 쓴 글에서 진정성이 더 많다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진정성’이야말로 인플루언서들이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데, 구/독자들로 하여금 기존 미디어의 이해관계나 지향과 관련 없이 솔직하고 사실에 가까운 정보 전달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중에서 25p
위기와는 상관없는 안전함,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외면하는 잔인한 사실은, ‘제도’의 수혜를 받은 다수의 ‘공식’ 비평가가 ‘일개’ 왓챠 유저보다 흥미로운 의견이나 전문적인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경담의 지적처럼 리뷰와 비평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면, 둘을 먼저 분간하지 못한 건 대중이 아니라 비평가들이 아니었을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인플루언서들의 자의식 앞에는 아마 이런 말이 괄호 쳐져 있을 것이다. ‘저런 사람도 하는데.’ /
‘네임드 유저의 수기’ 중에서 44p
고로 인플루언서를 무한한 자유의 장을 누비는 중간 소비자 혹은 단속해야 할 비전문가로만 따지는 것은 모두 어긋난 관점이며, 그보다는 기존의 제도로는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나날이 늘어 가고 있음을 과시적으로 보여 주는 행위자들이라 보는 게 정확할 게다. / ‘네임드 유저의 수기’ 중에서 48p



부모인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떠한 미디어리터러시를 쌓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한다고 지적한 김아미의 「어린이의 유튜브 경험」은 그 어느 주제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확실히 요즘 어린이들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체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린이들에게 유튜브가 “단순히 콘텐츠나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공간”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나의 아이 역시 유튜브 혹은 게임 채널 속의 캐릭터 이름을 마치 자신이 이웃하고 있는 누군가와 동일시하고, 일상 속의 대화에서도 그들이 자주 쓰는 언어를 고스란히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들은 딜레마를 겪는다. 자신의 과거와는 너무도 다른 교육 환경, 미디어 환경에 아이들을 얼마나 적절히 단속하고 또 노출시켜야 할지 경계를 구분할 수 없어 곤란해지는 것이다. 이에 김아미는 단순히 미디어 기기나 테크놀로지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나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어 내며, ‘창의적’으로 나의 의사를 표현하고, ‘윤리적 책임감을 가지고’ 소통하며 참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할 때에도 미디어 활용 능력에 대한 교육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공간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만들어 내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사회, 즉 공동체를 구성해 나감에 있어 미디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고 상상할 수 잇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어린이에게 유튜브나 자신이 즐겨 이용하는 미디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성찰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온라인상에서의 소통과 실천이 오프라인의 삶과 대등하게 중요한 생활의 일부로 여겨지는 지금 어린이, 청소년 세대에게 필수적인 교육이다. 더불어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와 관련된 교육적 접근을 시도할 때 이곳이 어른 사용자와는 또 다른 또래문화의 공간임을 이해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유튜브 등의 온라인 공간은 교사나 기성세대에게 가시화되지 않은 문화적 코드가 존재하는 곳이다. 또한 사회화와 또래 문화에 대한 이해와 형성이 진행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 ‘어린이의 유튜브 경험’ 중에서 131p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유독 이목을 끌거나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이용해 당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늘 존재해왔다. 저 머나먼 2500년 전, 아테네 민주정은 ‘설득’을 기반으로 한 연설가, 즉 영향력자가 있었다. 근대 전환기의 유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헌의 「2500년 전의 인플루언서들」과 정종현의 「선한 영향력 평가하기」는 어느 세대에서나 있어왔던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과 그들이 지향한 방향성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은 자신들이 지닌 영향력이라는 힘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모색해본다. 이 외에도 음습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돈되지 않은 인터넷 정책, 익명성을 방패삼은 열악한 네티켓 등이 일으키는 비위생적인 정보 환경을 비판하는 박한선의 「인플루언서 vs. 슈퍼전파자」, 통제나 비난의 대상이 아닌 올바른 변화를 지향하는 ‘피드백 문화’를 강조한 이민주의 「#피드백 운동의 동역학」, 인터넷 그리고 테크놀로지 전반에 대한 차가운 각성을 촉구하는 유현주의 「팔로어에게는 힘이 없다」 역시 미디어 환경의 방향성을 타진하는 좋은 시도로 분석된다.
디지털 공간 내에서 사람들은 가상의 타자를 상정하고, 가상의 타자(들)는 ‘사회’로서의 역할을 일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가상의 타자들은 ‘좋아요’나 ‘댓글’, ‘팔로우’, ‘메시지’, ‘리포스트(repost)’ 등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한편 관계성을 쌓아 간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 내에서 자의적으로 편집된 것이라고 치부되는 자기 재현은 가상의 타자라는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결과로, 즉 새로운 의미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진정성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일간 이슬아》의 진정성’ 중에서 65p
온라인에서 피드백 운동을 기존의 사회 운동 방식과 비교하여 ‘진짜’ 운동이 아니라고 깎아내리거나, 여성들이 손해만 보는 장사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오히려 편리한 결론이다. 피드백 운동을 수행하는 페미니스트 집단 안에서 참여자들의 소진 또는 감정적인 갈등의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소비주의와 경쟁주의의 심화로 인한 문제로만 해석하거나, 또는 인터넷 기반의 젊은 페미니스트 집단 자체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젊은 세대 여성 소비자에 대한 익숙한 혐오로 흘러 들어갈 수 잇다는 점에서 낡고도 위험하다. / ‘#피드백 운동의 동역학’ 중에서 110p
모든 디지털매체와 마찬가지도 소셜미디어도 일차적으로 프로그램한 자와 단순히 프로그램의 사용자라는 권력관계에 의해,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소셜미디어 특유의 팔로어 숫자에 의해 결정되는 권력관계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매우 뛰어난 확산 도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상호 평등한 소통 도구는 되기 어렵다는 인식은, 언제나 그렇듯 한 박자 늦게 출현하는 중이다. 수용자를 생산자로 고무시키는 문제는 새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논의되는 화두이지만, 우리 시대의 주도 매체인 디지털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이를 온전히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난 세기의 경험을 무색하게 하는, 늘 되풀이되는 환상으로 보인다. / ‘팔로워에게는 힘이 없다’ 중에서 167p


끝으로 이소크라테스의 연설 중 ‘의견들’을 폄하하는 당대의 철학자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자라고 말하며 건강한 미래를 상상하는 데 단서를 준 대목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듯하다. 고대 그리스 연설가들이 현실에 근거하며 주장에 논리성을 지켰으며,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한편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인 활동과 주장을 통해 자신들의 품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키워 나갔던 것처럼, 우리의 인플루언서들 역시 그러한 감각을, 진정성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목소리가, 나의 사진 한 장이, 나의 글귀 한 줄이 누군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이미 모두 인플루언서다.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지혜와 철학에 관하여 말씀드리자면, 다른 사람들이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며, 무엇을 말해야만 하는지를 알려 주는 그런 지식 따위도 인간의 본성상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시의적절한 의견들을 통해서 많은 경우에 더 좋은 결과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며, 그와 같은 분별력을 민첩하게 취하는 능력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 1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