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빵빵한 날들
민승지 지음 / 레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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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이 녹아 있는 빵심 저격 에세이!

어딘가 부족해보여도 빵은 다 맛있는 것처럼, 별 거 아닌 듯한 우리 인생도 맛깔나게 살아보는 거다!

 

 

   폭신하고 뽀얀 살결을 품은 우유 식빵, 달달한 설탕이 듬뿍 발린 꽈배기, 반반의 매력을 잔뜩 머금은 크림단팥빵, 달달한 콘치즈 맛이 일품인 마약옥수수빵… 빵순이에게 빵이란 일주일 내내 거르지 않고 먹어도 질리지 않는 법이다. 베이킹에 조금만 더 자신이 있었더라면 손수 빵집을 열었을지도.

 

 

 

   어쩌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되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거기엔 엄마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땐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빵집이 동네 곳곳마다 있을 때가 아니어서 빵집을 가려면 동네에서 가장 큰 시장에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서 종종 만들어주곤 했는데, 냄비에 쪄서 먹는 스펀지같이 생긴 술빵(술은 들어가지 않은)이 그렇게나 맛있었다. 간혹 식빵이 있는 날이면 달걀을 으깨어 마요네즈를 섞고 아삭한 식감의 오이를 얇게 썰어 올린 뒤 케첩을 뿌려주시곤 했는데, 거기에 우유까지 곁들어 마시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빵이 또 없었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여유가 있는 날이면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계란빵이나 토스트, 쿠키 등을 아이와 함께 만들어보곤 한다. 빵집에서 파는 빵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만들어 먹은 따끈따끈한 오늘의 빵맛이 아이의 인생에서 조금이나마 따뜻한 여운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오늘도 빵집에 갑니다 

 

 

 

   누구에게나 빵에 얽힌 작은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법 빵빵한 날들』은 빵에 얽힌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단상들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에세이다. 특히 뭐든지 ‘사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던 작가는 뜨거운 오븐 속에 들어간 빵의 시선에서, 팔리지 않아 쓸쓸히 남아 있는 빵의 입장에서,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모으느라 정작 뒷전이 되어버린 빵의 서글픈 신세 등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놓은 그림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오늘 내가 먹는 이 빵이 내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무엇보다 타버린 쿠키에서 나의 콤플렉스를 생각하고, 갑자기 터져 나오는 슈크림처럼 어느 순간 애써 외면해 쌓아 왔던 감정의 탑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던 짠내나는 고백들은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해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빵 쪼가리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더 이상 말랑거리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이런 느낌마저 같이 나눌 친구들이 있어 위로와 또 다른 즐거움을 얻는다던 고백 또한 마찬가지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를 내심 부러워하는 작가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이나,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 엄마가 좋아하는 크림빵, 언니가 좋아하는 피자빵, 내가 좋아하는 미니 도넛을 검은 봉지 안에 가득 채워 넣고 달랑달랑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선 작은 빵 봉지 하나에 담긴 가족을 향한 애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가장 나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한증막을 뛰쳐나오던 그때처럼 언젠가 ‘못하겠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날이 오게 될까 아니면 견디고 견뎌 마침내 빵이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견디는 중이기 때문이다. / ‘뜨거운 오븐’ 중에서 13p

 

하얀 생크림 케이크 대신 커다랗고 투박한 카스텔라에 초를 꽂아 가족 모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준다. 비디오 속의 나는 불이 붙어 있는 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축하 노래를 불러 주는 가족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어린 나는 자기가 사랑받는 줄 알고 있다. 노래가 끝나고 초에 바람을 불어 끄는데 힘이 약한 나를 도와 언니가 같이 불어준다. “후, 내 생일이야.” 하면서 꺄르르 웃는 네 살의 나. 훌쩍 커 버린 나는 아직도 케이크에 초를 보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설렌다. / ‘케이크에 초’ 중에서 64p 

 

 

 

 

 

 

   ‘케이크에 초’ 편을 읽다보니 문득 우리 집 꼬맹이가 생각난다. 생일과 크리스마스 할 것 없이 각종 기념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꼭 케이크를 빠뜨리지 않는다. 둘째 아이까지 낳고 나니 케이크를 살 일이 더 자주 생긴 것 같다.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우리 아이도 케이크에 꽂아놓은 촛불을 입으로 후, 하고 부는 걸 특히 재미있어 한다. 한 번 불고 끄면 그걸로 끝이냐고? 절대 아니다. 적어도 서너 번은 반복해줘야 한다. 하물며 생일 축하곡은 생일이 아니어도 불러줘야 하고, 여기에 아이들이 여럿 함께 하기라도 하면 한 명씩 돌아가며 초를 끄게 해줘야 진정으로 마무리가 된다. 대체 촛불 끄는 게 뭐가 그리 신나기에 설레는 얼굴을 하고서 입가에 띤 웃음을 멈출 줄 모르는지. 그간 나는 그저 불이 켜지고 꺼지는 것이 신기해서 그러는가보다 생각했는데, 문득 ‘훌쩍 커 버린 나는 아직도 케이크에 초를 보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던 저자의 글귀를 읽고 나니 그제야 아이의 진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나의 날, 가족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 환한 불빛과 함께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주는 날, 지금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 아이에게 촛불과 케이크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무언가 좋다는 표현을 하면 꼭 그것이 실망으로 돌아올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다른 사소한 감정들을 대할 때에도 나는 모두 이런 식이었다. 솔직하지 못하고 모른 척하기 바빴다. 기뻐도 안 기쁜 척, 슬퍼도 안 슬픈 척. 책이 나와서 기쁘기도 했지만 오히려 걱정을 더 많이 하는 내게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마음껏 기뻐해도 돼.” 그 한 마디를 듣고서야 비로소 나는 안심했다. 구워져 나온 빵의 감출 수 없는 향기와 풍채처럼 나도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다. / 78p

 

 

 

 

 

  이처럼 『제법 빵빵한 날들』은 빵이 있어 일상이 따끈따끈해지는 순간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포착해낸 에세이다. 완벽하게 세팅된 빵보다 한쪽이 타버리거나 못생겼지만 그런 빵들에 더 마음을 두는 작가의 마음이 참 다정하다. 예쁘고 화려한 빵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빵은 아니지만,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저 빵이 빵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 우리도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또 부러운 것은 부러워하면서 나만의 맛을 정직하게 지켜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매력을 알아줄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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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품위에 관한 가장 진정성 있고 철학적인 고찰!

품위란 차별과 이기주의, 폭력과 혐오로 가득한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다! 

 

 

   최근 미국의 비무장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에 숨진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더욱이 성난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키며 대형마트를 약탈하고 건물이 불타는 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고 있는 중이다. 어디 인종차별뿐일까. 아파트 경비원 갑질과 폭행 문제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역시 여전히 만연한 계급의식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구에 수많은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 조회수를 올릴 목적으로 확진자 추격전을 벌이는 가짜 영상을 만든 이들도 등장했으니, 그야말로 무례하다 못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이들이 도처에 넘쳐나는 세상이다.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악셀 하케 역시 예의 없는 사람, 배려 없는 사람 그리고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 등 행태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로 인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불쾌한 일화는 한번 몰아치고 마는 파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광란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점차 통제를 벗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걸까. 또 왜 다들 증오에 차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일까. 모두가 힘든 시기에 우리는 결국 각자도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악셀 하케는 자신의 책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을 통해서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공존을 위한 포용과 연대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스스로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품위’에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 있다

 

 

 

   품위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직품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을 뜻한다. 개인적으로는 한 인간의 고매한 정신이자 타인을 향한 이해와 배려의 자세이며 사회적으로는 기본적인 준법정신을 지키며 넓게는 공정성을 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악셀 하케 역시 품위를 떠올리며 정의로움·공평함, 타인과 연대할 때 느끼는 인간의 기본적 감정, 타인과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열려 있는 태도, 자신의 언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공명정대함, 이 모든 사항들을 기꺼이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품위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품위란 어떤 정형화된 형질이 아니기에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지켜야 하는 품위란 무엇이며, 지금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마주한 문제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볼 것을 독려한다.

 

 

 

케스트너의 소설에서 보여주듯이 품위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며, 매 순간 자신에게 질문을 건네면서 끊임없이 찾아가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품위를 갖추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을 가끔은 의심하고 반문할 필요도 있다. 다들 흔히 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타고난 언행을 할 때에도 혹시나 품위에 거스르지 않는지 곱씹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해 몰두하고 신경 쓰고 노력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문명의 진보가 아닐까? / 31p

 

 

우리는 한동안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고심하지 않았다.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 사는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더불어 지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며 공론화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여기에는 타인과 대화할 때 지켜야 할 어조와 성량 그리고 단어 선택까지도 포함된다. 즉 타인을 대하는 모든 태도와 자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 48p

 

 

  책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건 사고들, 철학자의 사유 혹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품위에 대한 여러 고찰들,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 등을 통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품위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품위를 잃은 사회의 시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은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한다. 이를 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하수구’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공의 이름 뒤에 숨어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을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를 인터넷상에서 뻔뻔하게 일삼는 이들,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선거 유세 도중 신체장애를 가진 기자의 모습을 대중 앞에서 대놓고 흉내 냈던 일화, 미국 출신의 정치학 교수 로버트 켈리가 박근혜의 탄핵과 관련해 BBC와 인터뷰 하는 생방송 과정에서 한국인 아내가 부랴부랴 아이들을 방밖으로 데리고 나간 것을 두고 보모 논쟁이 일었던 댓글 등이 그러하다.

 

 

 

   악셀 하케는 하라리와 아피라의 책을 통해 인류사를 더듬어가며 오늘날 이러한 현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연대와 단결을 잊고 만, 공동체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그 원인을 발견한다. 물론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도덕적 규범”이라는 것이 있지만, 수많은 개인들이 사회 공동체를 오직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질서와 규범에는 무관심한 채 자유를 위한 고유의 행동반경을 방어하고 있는 한, 현대 사회는 똑같은 문제와 고민을 계속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속과 분열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 한 가운데, 즉 ‘중간 세계’에서 개인과 타인이 서로 조율하고 화합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면서(사적 영역을 존중하며) 나란히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품위가 존재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는 것이다.

 

 

 

채식이든 외국인 증오든 몸에 대한 집착이든 어디 한곳에 광적으로 매달리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단순한 진실만을 추구하면 된다. 한 가지 전제가 있다면 충격이나 동요를 막아줄 든든한 방호벽을 세워야 한다. 인터넷상의 단호하고 독단적인 어조는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본인이 철석같이 믿는 진실을 뒤흔드는 모든 것을 위협으로 느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온 세계관이 흔들림으로써 스스로의 안전이 통째로 위협받는다고 여긴다. 따라서 광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위험이나 위협이 될지도 모를 작디작은 징후에도 점점 더 편집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을 보인다. / 146p

 

 

융거는 카뮈와 무척 유사한 맥락으로 “연대감을 느끼는 능력”을 강조한다. 즉 인간인 우리 모두에게는 연대 의식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융거의 책은 미국 사회를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지만, 그의 논지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이나 독일처럼 위기에 놓여 있는 모든 현대 사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표류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문제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어딘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언가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고 있다. 삶의 방식이 세상과 엇박자를 내는 이유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지 못하는 한 현대 사회는 똑같은 문제와 고민을 계속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 217p    

 

 

 

 

 

 

   악셀 하케는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 있다는 말과 함께 공생 즉, 연대 의식이야말로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는 핵심이 아닐까 하고 제안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자세와 배려이다. 이를테면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세계에서 나름의 규칙을 하나둘 만들어가며, 석기 시대 때부터 물려받은 충동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동물의 조심성처럼 서로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 모두가 각각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타인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애써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꾸준한 대화를 통한 이해와 설득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자세를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띤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고 느낄 듯하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결핍된 것을 분명히 시인하고, 이 시대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견뎌내며, 이 모든 어려움을 풀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음에도 쉬이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디 복잡함을 피해 단순함으로 숨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 186p

 

 

실제로 우리는 지식의 핵심이 아닌, 그저 지식의 표면이나 핵심으로 가는 중간 단계 정도만 알고 있을 때가 종종 있어. 그렇게 지식의 맥락을 알지도 못하고 배후 관계가 빠진 상태에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반응하곤 하지. 정치 현상을 해석할 때도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잖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래. 그럼에도 우리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면 안 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 / 213p

 

 

대화의 방식이 달라지면 서로를 이해하기도 수월해지고, 심지어 관계도 더욱 개선됐다고 해. 다시 말해 회복의 핵심은 상대방을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비난이나 지적 대신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거야. 그러다 보면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상대를 설득할 수도 있다는 거지.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우선 두 사람이 서로를 적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돼. 상대방도 나처럼 나름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며 그 목표가 나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그리 나쁜 목표는 아니라고 받아들여야 해. / 229p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건 품위의 문제입니다.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페스트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품위입니다.” “품위가 뭔데요?” “저도 그게 일반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제가 지금 처한 상황에선 품위가 무엇인지 알아요. 제 본분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지요.” 리유는 의사로서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타인과 연대감을 느끼며 자신의 본분을 기꺼이 수행하려 한다. 그는 그것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지킬 수 있는 품위이며, 페스트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무엇으로 정의하든, 우리 모두 각자가 지킬 수 있는 그리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품위를 잊지 말고 그것을 정직하게 수행해나갈 때 세상은 좀 더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코로나19의 시대에서, 차별과 이기주의, 폭력과 혐오로 가득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던지는 품위에 관한 여러 질문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공유되어 저마다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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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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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독특한 책이 다 있나?

신비로운 동양의 요괴들을 집대성한 아주 특별한 책!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구미호와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전설의 고향>이나 강시를 소재로 한 홍콩 영화가 단연 인기였다. 음산하고 기귀가 서린 요괴들이 등장할 때면 꺅꺅 소리까지 질러가며 이불 속에 기어 들어가거나 아빠 등 뒤에 숨곤 했지만, 그 맛에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고나할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많이 사라졌다. 고작해야 서양의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 정도일까. 이런 와중에 굉장히 인상적인 소재와 표지로 시선을 끄는 책이 하나가 있어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바로 『동양 요괴 도감』이다.

 

 

 

 

 

 

 

다양한 요괴들이 인간과 어우러져 사는 세상, 그 유쾌한 상상이 낳은 요물들

 

 

 

   『동양 요괴 도감』은 한국과 중국, 일본과 인도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 기원을 둔 요괴들을 집대성한 요괴 백과사전이다. 《수신기》와 《시경》, 《주역》 그리고 《화도백귀야행》 등 수십여 편에 이르는 고서와 민담집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요괴의 종류와 출몰 지역, 출몰 시기, 세부적인 특징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저자가 문헌 속의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요괴를 그린 일러스트까지 담아 놓아 생김새를 한 눈에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덕분에 책을 읽다보면 이 수많은 요괴들이 그저 그런 미신이 아니라 실제 인간과 더불어 살아 숨을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양 요괴의 결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만의 특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나 신화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동양이라는 하나의 덩어리 안에서 유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6p

 

 

   책에는 총 200여종에 이르는 동양 요괴들이 자음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고작해야 구미호, 달걀 귀신, 처녀 귀신 정도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성격도 유형도 제각각인 요괴들의 수가 이렇게나 상당히 많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도 요괴라는 것이 나라별 혹은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하여 비슷한 결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 테면 중국의 경우 호랑이나 뱀과 같이 상서롭고 신비한 동물들의 모습을 기반으로 한 요괴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혼이나 악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귀물이 많은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 속에서 사물과 결합한 독특한 형질의 요괴들이 등장하는 점은 상당히 재미있다. 또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경우에는 신화를 중심으로 괴물과 귀물이 분포되어 있고,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우는 인간이었다가 귀물로 변한 사례가 많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힌두교의 파괴 신 ‘시바’의 아들로, 지혜와 행운의 신이다. 모습은 코끼리의 얼굴에 긴 코가 있고, 이빨은 둘, 팔은 넷에 툭 내민 배 위로 뱀 띠를 두르고, 쥐를 타고 있다. 원래부터 가네샤의 머리가 코끼리는 아니었는데, 아버지인 시바의 오해로 머리가 잘렸으며 같은 날 태어난 코끼리의 머리를 대신 붙이게 됐다. 가네샤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장사와 부의 신이기도 하여, 인도에서 인기 있는 신 중 하나다. 그래서 인도의 가게나 집에서 가네샤 조각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 '가네샤' 중에서 18p

 

 

간다르바는 신들 주변을 배회하며 신들의 술을 지킨다. 또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늘 악기를 연주하며 지낸다. 부인 압사라는 천상의 무희이기 때문에 간다르바가 연주하면 옆에서 춤을 추곤 한다.

간다르바는 ‘건달파’라고도 불리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건달’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 연주를 하며 유유자적한 모습을 빗대어 이런 유래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 ‘간다르바’ 중에서 32p

 

 

 

 

 

 

   한편으로는 나라 구분할 것 없이 비슷한 결을 이루는 요괴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은 신비로울 정도다. 예를 들어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조류형 신이자 조류의 왕인 ‘가루다’는 그 모습이 조금씩 다르지만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중국에서도 존재를 드러낸다. 외뿔을 가진 상서로운 짐승 ‘기린’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 모두 등장한다. 산에 사는 도깨비 ‘산정’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악귀로 후에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야크샤’도 그러하다. 이 중 몸에 생기는 종기로, 주로 원한을 사면 어깨, 무릎 등에 생기는데 사람의 얼굴처럼 생겼다 하여 ‘인면창’이라고 불리는 이 귀물 역시 한국, 중국, 일본 문헌 모두에 등장한다.

 

 

 

외뿔을 가진 전설의 동물. 기린은 수컷을 ‘기’, 암컷을 ‘린’이라고 하며 이 둘을 합쳐 기린이라 하고, 검은 기린은 ‘각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린은 여러 동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몸은 사슴, 꼬리는 소, 발과 갈기는 말을 닮았으며 발에는 다섯 개의 발굽이 나 있다.

기린은 상서로운 짐승으로 알려져 있고, 얼핏 보면 네발 달린 용처럼 보일 때가 있어서 용과 비슷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나라가 흥하거나 태평성대를 이루면 자주 목격된다. / '기린‘ 중에서 72p

 

 

발리의 전통 무용인 바롱 댄스에는 랑다와 바롱이 대립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롱은 늘 전대 선의 상징이고, 랑다는 절대 악의 상징이다. 독특한 점은 공연 중 랑다 역할을 남자가 맡는다는 것이다. 마녀인 랑다를 여자가 연기하면 기운이 맞아 많은 힘이 전달돼 재앙이 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랑다’ 중에서 130p

 

 

 

 

 

 

   이 외에 냄비를 쓰고 다니는 늑대 ‘가지가바바’,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종족 ‘낙두민’, 거대한 벽 모양의 요괴 ‘누리카베’, 긴 혀로 천장을 핥는 괴물 ‘덴조나메’, 논과 밭에 나타나 “논을 돌려다고!”라고 외치는 외눈박이 요괴 ‘도로타보’, 머리만 둥둥 떠 있으며 밑에 내장이 달려 있는 ‘레야크’, 장지문 칸칸마다 눈이 빼곡히 생기는데 이 눈을 뜯어서 모을 수도 있다는 ‘모쿠모쿠렌’, 혼돈이 천성인 왕으로 규칙이 생기면 죽는다는 ‘혼돈’, 마루 밑에서 등불을 핥아 먹으며 밤에 일하는 것을 방해하는 ‘히마무시뉴도’ 등 헛웃음이 피식 나올 정도로 독특한 요괴들도 상당수 등장한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요괴들을 보며 뭐 이런 요괴들이 다 있나,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심쩍다가도 “인삼, 적복신, 원지, 귀전우, 석창포, 백출, 창출, 당귀 각 1냥, 도노 5돈, 웅황… 이를 모두 가루 내어 술을 넣어 쑨 풀로 뭉쳐 환을 만든다. 그 위에 금박을 입히도록 한다.”와 같이 이천이 엮은 의학서 《의학입문》에는 ‘구미호를 물리치는 조제법’까지 실어놓은 것을 보면, 인간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함께 한 이 존재들을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정령이 깃들었다 하여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한 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기괴한 요물로 하여금 인간의 부도덕함을 경계하고자 한 인간의 상상력은 실제 존재 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그걸 믿냐 하고 고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때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또 때로는 왜 이런 요괴가 탄생하게 된 것인지 그 근원에 대해서 생각하며 읽어본다면 재미도 있고 의미까지 있는 독서가 될 듯하다. 신화가 인간의 이야기이듯 요괴 역시 인간의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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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몸 - 몸을 알아야 몸을 살린다
이동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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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건강 기초 지식!

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우리 몸 건강가이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면역력’과 관련된 키워드가 급증했다고 한다. TV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 매체들은 면역력에 좋은 음식이나 영양제, 운동법 등 예방과 치료를 위한 각종 정보들을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또 온라인 및 각종 쇼핑몰에서도 관련 상품들에 대한 수요가 평소보다 몇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 세계가 면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이름만 바꾼 다른 바이러스가 또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관련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상품 판매를 위한 과대광고는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최근 크릴 오일이나 아보카도, 노니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나의 몸에 맞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몸에 좋다고 하면 일단 먹고 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와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꼭 먹어야 하는 것들, 꼭 해야 하는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어깨 및 겨드랑이 통증, 피부 트러블, 시력 감퇴로 몸의 밸런스가 조금씩 무너진 것 같은 요즘, 면역에서부터 질병 예방, 노화로부터 내 몸 바로 알기를 권장해주는 책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몸을 알아야 몸을 살린다, 알고 쓰고 아껴 쓰는 우리 몸 건강 가이드!

 

 

 

   ‘우리는 몸을 너무 모른다. 그래서 몸이 아프다’

   대한민국 기능의학 1세대 가정의학 전문의 이동환 원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신체가 가진 기능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몸이 보내는 구조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을 키운다고 말한다. 질병은 어느 한곳이 아닌 상호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곳만 치료하면 모든 치료가 끝난 것이라고 오판하여 더 큰 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또 남들이 좋다는 영양제 한 알로 몸에 대한 면죄부를 얻었다고 자기만족적 태도를 보이는 것에도 문제를 지적한다. 왜 병에 걸리는 것인지, 어떤 운동이 나에게 맞는지, 어떤 약을 먹어야 하고 또 함께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아야만 질병과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기는 몸』을 통해 우리 몸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부터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법, 아프기 전에 지키고 관리하며 우리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1장에서는 우리 몸을 지키는 방패이자 창인 ‘면역’ 시스템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몸의 건강을 좌우하는 ‘세포와 미세염증’, 몸 네트워크의 자동 시스템 ‘호르몬’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 중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면역 분야가 눈길을 끈다. 책은 어떻게 해야 면역력이 우리 몸에서 잘 작동할 수 있을지, 또 어떤 경우에 특별히 나빠지거나 약해지는 것인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면역이 약해지는 이유는 선천적으로 면역계에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후천적으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여러 가지 영양소 결핍에 의해 약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스트레스,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 남용도 면역력 약화의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운동 부족으로 인해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못할 때도 약해진다고 한다.

 

 

 

   이에 면역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챙길 것을 권장한다. 단백질은 여러 가지 면역세포들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단백질 보충뿐만 아니라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충분한 비타민과 미네랄, 몸속의 활성산소 같은 독소들을 억제할 수 있는 항산화물질도 중요하다. 즉, 영양소의 균형이 잘 맞은 상태에서 마음의 안식과 충분한 휴식이 함께 되어야만 정상적인 면역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 몸의 면역력을 좌우하는 면역세포의 60% 이상이 존재하는 장 건강을 위해 프로바이오틱스의 장내 생존율을 높이는 프리바이오틱스도 함께 섭취할 것을 추천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면역계에 문제가 있어서 염증이 잘 생기고, 장 기능이 아프다고 판단된다면 반드시 밀가루를 피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면역력이 좋아지는 모든 활동이 결국 NK세포뿐 아니라 몸의 전체적인 면역력을 증진해줍니다.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적절한 영양소를 충분히 공금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 심리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숙면을 취해 몸의 피로를 잘 풀어주는 것 등이죠. 수시로 복식호흡을 하면서 교감신경이 흥분되지 않도록 안정화시켜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웃음을 NK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좋은 방법이므로 억지로라도 자꾸 큰소리로 웃는 노력을 해봅시다. / 28p

 

 

비타민과 미네랄 이외에 아주 강력한 항산화물질이 있습니다. 바로 ‘코엔자임 큐텐’입니다. 비타민과 유사한 물질로 비타민Q라고도 부르지만, 세포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코엔자임 큐텐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20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서 40대 이후에는 눈에 띄게 부족해집니다. 따라서 항산화 능력이 약화되고 결국 노화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죠. 그러므로 코엔자임 큐텐은 40대 이후에 신경 써서 보충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엔자임 큐텐은 육류, 콩기름, 정어리, 고등어, 땅콩과 같은 음식에 풍부합니다. / 62p

 

 

 

 

 

  2장에서는 폐, 간, 심장, 뇌, 위와 식도, 대장과 소장, 뼈와 근육, 눈과 귀 그리고 코와 같이 우리 몸의 주요 기관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본다. 흡연자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남편의 폐 건강을 무엇보다 염려하고 있는 입장에서 40년 동안 줄담배를 피워온 사람도 지금 당장 담배를 끊으면 손상된 폐 기능이 회복될 수 있다는 내용은 참 반갑다. 영국 BBC 방송이 과학저널 <네이처>를 인용하여 보도한 내용인데, 일단 금연하기만 하면 폐가 흡연으로 인한 암 유발 변이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심지어 금연한 사람들의 세포 40%는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들의 세포와 똑같아 보일 정도였다고 하니 이번에야말로 금연을 꼭 해보자고 꼬드겨 볼 참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들어 무너질 듯한 어깨 통증과 겨드랑이 통증이 자주 발생하곤 하는데, 특별한 원인 없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어깨 통증은 근력 감소가 원인이라고 하니 오늘부터 어깨 운동에 좀 더 정성을 들여야겠다.

 

 

연구진은 플라보놀을 캠페롤, 이소람네틴, 미리세텐, 케르세틴 4종으로 분류하여 검토했는데, 시금치와 브로콜리, 케일 같은 녹색 채소와 홍차에 들어 있는 캠페롤은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51%나 감소시켰고, 올리브유와 적포도주, 배, 토마토소스같이 이소람네틴이 풍부한 음식 역시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38%까지 낮췄다고 밝혔습니다. / 178p

 

 

안구건조증에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영양소는 오메가3지방산입니다. 오메가3지방산은 우리 몸의 전체적인 염증반응을 줄여주고, 혈관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필수영양소입니다. 그리고 눈물을 구성하는 지방층의 구성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안구건조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지요. 오메가3지방산이 풍부한 생선과 견과류를 잘 챙겨 먹는 것이 좋습니다. / 240p

 

 

 

   아무래도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 먹고 제대로 마시는 것’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뜻에서 3장 노화를 이기는 몸 편은 그 어느 부분보다 관심 있게 읽힌다. 젊었을 때야 뭘 먹고 뭘 마시든 당장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나지 않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확실히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반응이 신체적인 현상으로 눈에 띄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몸을 가볍게,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쓸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섭취해야 할까? 그리고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렇듯 3장에서는 아침을 먹는 것이 중요한지, 1일 1식과 같은 식이요법들에 대한 진실과 공복이 우리 몸에 주는 좋은 효과, 물을 건강하게 마시는 법, 올바른 영양제 섭취법, 바른 수면 습관과 운동법 등에 대해 알아본다. 일단 책에서는 체내 대사를 감소시키고 이로 인해 노화의 주범이 되는 활성산소가 적게 만들어지며 외부 환경의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방어 능력도 향상되기 때문에 적게 먹을 것을 추천한다.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도 필요한데, 특별한 질병이 없으며 체중 감량이 목적이라면 16시간을 단식하고 8시간 중 두 끼만 먹는 방법이 좋고, 40대 이후 중년이나 대사증후군, 당뇨병 환자라면 하루 중 12시간을 단식하고 12시간 내에 두세 끼만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루에 2L의 물을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설에 대해서는 이를 긍정하면서도 식사할 때 음식에 포함되어서 섭취하는 수분의 양을 고려해야 하며 당뇨병으로 인해 신장에 합병증이 생긴 상태라면 과도한 수분 공급은 오히려 나쁘니 자신의 몸에 맞게 물을 가려서 마실 것을 조언한다. 술을 먹고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크기에 주의할 것과 속이 쓰릴 때 우유를 찾는 경우가 있는데, 우유 속에 들어 있는 칼슘 성분이 위산 분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속이 더 쓰릴 수 있으니 이 역시 평소에 알아두면 좋은 상식이 될 듯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마그네슘이 급격히 저하되고 결국 에너지가 떨어지고 근육이 굳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더 피로하고 목 뒤 근육이 뻣뻣해지고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이것이 지속되고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근육통과 두통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마그네슘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자주 챙겨 드셔야 합니다. 마그네슘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은 다시마와 견과류입니다. 이러한 음식들을 잘 챙겨야 현대인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마그네슘 부족 현상에서 헤어 나올 수 있습니다. / 346p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건강 역시 아는 만큼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기는 몸』은 가장 기본적인 건강서로, 평소 몸 상태를 점검하고 몸에 이상이 있는 경우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원인은 또 무엇인지 도움을 받아보기에 좋은 책인 듯하다. 솔직히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특별히 아픈 곳 없다는 이유로 내 몸에 대해서 이렇다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는데, 두 아이를 낳고 몸에 조금씩 이상이 나타나는 것을 느끼면서 이제는 나도 건강에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에서부터 운동하는 것, 잠자는 것 모두가 내 몸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 책을 챙겨보며 습관처럼 오늘의 건강을 챙겨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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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노벨레 문지 스펙트럼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백종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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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제도 속 윤리적인 관계 규범과 에로스적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하여!

 

 

   유능하고 성실하며 전도유망한 의사 프리돌린은 가정적인 아내 알베르티네와 총명한 딸아이를 둔,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졸린 눈을 부비는 귀여운 아이에게 미소를 건네며 인사를 건네는 그들의 모습은 여느 부부처럼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모습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잠자리에 들어 식탁 위에 단둘이 남게 되어서야, 그들은 지난밤 가면무도회에서 겪은 기묘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접근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 프리돌린이 남자친구이기라도 한 것처럼 친근하게 굴었던 두 여성과 알베르티네에게 다가온 이름 모를 멜랑콜리한 남자의 이야기를 짐짓 과장하며 드러냈고, 서로에게 묘한 질투와 가벼운 복수심을 느끼며 어느 덧 서로에게 감추어진 욕망 같은 비밀스러운 영역에 가닿고야 만다. 프리돌린은 알베르티네가 지난해 여름, 덴마크 해변에서 반했던 장교가 전보를 받고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를 뿌리칠 수 없었을 거라는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그 역시 그날 해변에서 열다섯 살쯤 된 소녀를 만나긴 했지만, 순진무구하리라 믿었던 아내가 결혼 전에도 호숫가에서 만난 젊은 남자가 원했더라면 그의 아내가 될 수도 있었을 거라던 솔직한 고백에 마음이 싸늘해진다.

 

 

 

감추어진 욕망, 거의 예상치 못했던 욕망, 가장 명징하고 가장 순수한 영혼의 한가운데 있어도 위험천만한 돌개바람에 휘말릴 수 있는 눈먼 욕망. 이런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의 대화는 결국 비밀스러운 영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영역에 대해 그들은 평상시 아무런 동경을 느끼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비록 꿈속에서라도 두 사람이 한순간에 휘말려들 수 있는 그런 영역이었다. / 11p

 

 

 

   이렇듯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서 성적 욕망을 느꼈다는 사실에 충격과 분노를 느낀 프리돌린이 정처 없이 밤거리를 배회하는 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그 밤, 그 거리 위에서 프리돌린은 결혼과 부부라는 제도가 부여하는 규범과 사회적 책임, 또 그 이면의 개인적인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되곤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른 남자에게 은밀한 욕망을 품는 아내에게 증오를 느끼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마리안네와 몸을 파는 어린 소녀, 의상실의 주인 딸에게 애정을 느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 카페하우스에서 한때는 함께 의학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피아노 연주를 하는 나흐티갈을 만나 한 가면무도회에 참석하기에 이르는데, 가면을 쓴 나체의 여자들과 기사로 변장한 남자들의 춤사위를 보며 거역할 수 없는 에로스적 충동과 이성 사이에서 중심잡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광대 소녀의 젖가슴에서 피어올랐던 장미 향수와 분 냄새를 계속 느꼈다. 그 무슨 이상한 소설 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은 아닐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이 길을 가는 게 아니었어, 아니 감히 그렇게 하면 안 되었는데. 난 지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 69p

 

 

차라리 지금 당장 그냥 되돌아가버리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어디로 간담? 어린 광대 소녀에게? 아니면 부흐펠트 거리의 어린 창녀에게? 아니면 마리안네, 죽은 남자의 딸에게? 아니면 집으로? 프리돌린은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 70p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아무런 주의도 끌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이 구석 자리에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그를 붙잡아두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혹시 불명예스러운 그리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후퇴에 대한 수치심 때문인지, 아니면 그 여자의 매혹적인 육체, 아직까지도 향기가 남아 있는 육체를 충족하지 못해 고통으로 변해버린 욕망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혹시 자신의 용기를 시험해보기 위한 것에 불과하고, 결과에 따라서는 조금 전의 멋진 여자를 상품으로 배당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 81p

 

 

 

 

 

 

 

   마침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고 비밀 암호를 대어야만 입장을 할 수 있는 이 미스터리한 무도회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프리돌린을 수상쩍게 본 기사들이 그를 위협하고, 한 여성이 대신 나서는 바람에 그는 신분이 드러날 뻔했던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 다음 날, 그는 친구인 나흐티갈이 갑자기 사라지고, 자신을 구해준 여성이 음독자살처리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꿈인 듯 현실인 듯한 이 위험천만한 모험과 눈먼 욕망으로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알베르티네가 평화로운 결혼과 가정생활의 안정감 속에 푹 빠져서 스스로도 안락하게 지내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을 때, 그녀 면전에 대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믿음직스럽고 앞날이 창창한 유능한 의사, 성실한 남편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고, 다른 한편에서는 난봉꾼으로, 호색한으로 그리고 인간 족속들과, 그래 그렇고 그런 년들과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놀아나는 냉소주의자’가 되어 그녀에게 복수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가면무도회에 참석했을 때 쓴 가면을 그녀가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듯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진료를 마친 후 그는 평소 습관대로 아내와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보러 갔다. 알베르티네는 집에 방문한 친정어머니와 같이 있었고, 딸아이는 보모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는 중임을 확인하자 만족감이 전혀 없진 않았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위해 계단에 이르렀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이 모든 질서, 이 모든 균형, 자신의 삶에 관한 이 모든 안정감은 그저 허상과 위선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다시 들었다. / 126p

 

 

그것 아니겠어? 사람들은 얼마나 실체 없는 말에 끊임없이 유혹당하고 있는지, 길거리, 운명,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말을 덧씌워놓고, 실체 없는 그 말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버리는 거야. 그가 지난밤 이상한 우연으로 자리를 같이했던 모든 여자들을 그 근본에서 비교해본다면, 그중 바로 이 어린 창녀가 가장 우아한 여자, 정말로 가장 순수한 여자가 아니었을까, 정말 그렇지 않을까? 그녀를 마음속에 떠올리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 134p 

 

 

 

 

 

 

 

  알베르티네는 남편이 경험한 지난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며 그를 용서해주고자 한다. 그녀 역시 그녀가 지난밤에 꾼 꿈을 통해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에로스적 욕망들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따르면 꿈은 현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단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 억눌린 욕망은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경험한 것과 그녀가 꿈을 꾼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응, 확신해. 하룻밤 동안 실제로 있었던 일, 아니 한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서 실제로 있었던 모든 일조차도 그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진실을 동시에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만큼 확신이 있어.” / 158p 

 

 

 

   그렇게 부부는 서로의 욕망을 확인하며 현실에서의 모험과 꿈속에서의 모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에 감사해하지만 마지막에 알베르티네가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하고 속삭이는 대목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부부는 ‘한 자루의 칼’을 사이에 두고 살며 “죽이지는 않고 못 배길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 부부라는 윤리적인 관계 규범과 에로스적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란 사실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연인들이여, 부부들이여, ‘영원히’라는 맹세에 속단하지 마시라.

 

 

 

   이렇듯 『꿈의 노벨레』는 겉으로는 단란하고 이상적인 부부일지라도 그 안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서로를 상대로 벌이게 되는 욕망의 줄다리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꿈과 가면’이라는 요소가 품고 있는 상징성과 주인공의 의식을 쫓아가는 형태의 서사 기법은 불안한 욕망의 그림자를 보다 두드러지게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이를 의식하며 읽어볼 필요가 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 소설이라고 하니,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상으로 만나보면서 소설 속 주인공과 리즈 시절의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에 이입해서 보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좋은 방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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