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양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5월
평점 :

뭐 이런 독특한 책이 다 있나?
신비로운 동양의 요괴들을 집대성한 아주 특별한 책!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구미호와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전설의 고향>이나 강시를 소재로 한 홍콩 영화가 단연 인기였다. 음산하고 기귀가 서린 요괴들이 등장할 때면 꺅꺅 소리까지 질러가며 이불 속에 기어 들어가거나 아빠 등 뒤에 숨곤 했지만, 그 맛에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고나할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많이 사라졌다. 고작해야 서양의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 정도일까. 이런 와중에 굉장히 인상적인 소재와 표지로 시선을 끄는 책이 하나가 있어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바로 『동양 요괴 도감』이다.

다양한 요괴들이 인간과 어우러져 사는 세상, 그 유쾌한 상상이 낳은 요물들
『동양 요괴 도감』은 한국과 중국, 일본과 인도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 기원을 둔 요괴들을 집대성한 요괴 백과사전이다. 《수신기》와 《시경》, 《주역》 그리고 《화도백귀야행》 등 수십여 편에 이르는 고서와 민담집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요괴의 종류와 출몰 지역, 출몰 시기, 세부적인 특징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저자가 문헌 속의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요괴를 그린 일러스트까지 담아 놓아 생김새를 한 눈에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덕분에 책을 읽다보면 이 수많은 요괴들이 그저 그런 미신이 아니라 실제 인간과 더불어 살아 숨을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양 요괴의 결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만의 특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나 신화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동양이라는 하나의 덩어리 안에서 유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6p
책에는 총 200여종에 이르는 동양 요괴들이 자음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고작해야 구미호, 달걀 귀신, 처녀 귀신 정도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성격도 유형도 제각각인 요괴들의 수가 이렇게나 상당히 많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도 요괴라는 것이 나라별 혹은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하여 비슷한 결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 테면 중국의 경우 호랑이나 뱀과 같이 상서롭고 신비한 동물들의 모습을 기반으로 한 요괴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혼이나 악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귀물이 많은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 속에서 사물과 결합한 독특한 형질의 요괴들이 등장하는 점은 상당히 재미있다. 또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경우에는 신화를 중심으로 괴물과 귀물이 분포되어 있고,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우는 인간이었다가 귀물로 변한 사례가 많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힌두교의 파괴 신 ‘시바’의 아들로, 지혜와 행운의 신이다. 모습은 코끼리의 얼굴에 긴 코가 있고, 이빨은 둘, 팔은 넷에 툭 내민 배 위로 뱀 띠를 두르고, 쥐를 타고 있다. 원래부터 가네샤의 머리가 코끼리는 아니었는데, 아버지인 시바의 오해로 머리가 잘렸으며 같은 날 태어난 코끼리의 머리를 대신 붙이게 됐다. 가네샤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장사와 부의 신이기도 하여, 인도에서 인기 있는 신 중 하나다. 그래서 인도의 가게나 집에서 가네샤 조각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 '가네샤' 중에서 18p
간다르바는 신들 주변을 배회하며 신들의 술을 지킨다. 또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늘 악기를 연주하며 지낸다. 부인 압사라는 천상의 무희이기 때문에 간다르바가 연주하면 옆에서 춤을 추곤 한다.
간다르바는 ‘건달파’라고도 불리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건달’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 연주를 하며 유유자적한 모습을 빗대어 이런 유래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 ‘간다르바’ 중에서 32p


한편으로는 나라 구분할 것 없이 비슷한 결을 이루는 요괴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은 신비로울 정도다. 예를 들어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조류형 신이자 조류의 왕인 ‘가루다’는 그 모습이 조금씩 다르지만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중국에서도 존재를 드러낸다. 외뿔을 가진 상서로운 짐승 ‘기린’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 모두 등장한다. 산에 사는 도깨비 ‘산정’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악귀로 후에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야크샤’도 그러하다. 이 중 몸에 생기는 종기로, 주로 원한을 사면 어깨, 무릎 등에 생기는데 사람의 얼굴처럼 생겼다 하여 ‘인면창’이라고 불리는 이 귀물 역시 한국, 중국, 일본 문헌 모두에 등장한다.
외뿔을 가진 전설의 동물. 기린은 수컷을 ‘기’, 암컷을 ‘린’이라고 하며 이 둘을 합쳐 기린이라 하고, 검은 기린은 ‘각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린은 여러 동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몸은 사슴, 꼬리는 소, 발과 갈기는 말을 닮았으며 발에는 다섯 개의 발굽이 나 있다.
기린은 상서로운 짐승으로 알려져 있고, 얼핏 보면 네발 달린 용처럼 보일 때가 있어서 용과 비슷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나라가 흥하거나 태평성대를 이루면 자주 목격된다. / '기린‘ 중에서 72p
발리의 전통 무용인 바롱 댄스에는 랑다와 바롱이 대립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롱은 늘 전대 선의 상징이고, 랑다는 절대 악의 상징이다. 독특한 점은 공연 중 랑다 역할을 남자가 맡는다는 것이다. 마녀인 랑다를 여자가 연기하면 기운이 맞아 많은 힘이 전달돼 재앙이 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랑다’ 중에서 130p


이 외에 냄비를 쓰고 다니는 늑대 ‘가지가바바’,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종족 ‘낙두민’, 거대한 벽 모양의 요괴 ‘누리카베’, 긴 혀로 천장을 핥는 괴물 ‘덴조나메’, 논과 밭에 나타나 “논을 돌려다고!”라고 외치는 외눈박이 요괴 ‘도로타보’, 머리만 둥둥 떠 있으며 밑에 내장이 달려 있는 ‘레야크’, 장지문 칸칸마다 눈이 빼곡히 생기는데 이 눈을 뜯어서 모을 수도 있다는 ‘모쿠모쿠렌’, 혼돈이 천성인 왕으로 규칙이 생기면 죽는다는 ‘혼돈’, 마루 밑에서 등불을 핥아 먹으며 밤에 일하는 것을 방해하는 ‘히마무시뉴도’ 등 헛웃음이 피식 나올 정도로 독특한 요괴들도 상당수 등장한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요괴들을 보며 뭐 이런 요괴들이 다 있나,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심쩍다가도 “인삼, 적복신, 원지, 귀전우, 석창포, 백출, 창출, 당귀 각 1냥, 도노 5돈, 웅황… 이를 모두 가루 내어 술을 넣어 쑨 풀로 뭉쳐 환을 만든다. 그 위에 금박을 입히도록 한다.”와 같이 이천이 엮은 의학서 《의학입문》에는 ‘구미호를 물리치는 조제법’까지 실어놓은 것을 보면, 인간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함께 한 이 존재들을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정령이 깃들었다 하여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한 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기괴한 요물로 하여금 인간의 부도덕함을 경계하고자 한 인간의 상상력은 실제 존재 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그걸 믿냐 하고 고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때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또 때로는 왜 이런 요괴가 탄생하게 된 것인지 그 근원에 대해서 생각하며 읽어본다면 재미도 있고 의미까지 있는 독서가 될 듯하다. 신화가 인간의 이야기이듯 요괴 역시 인간의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