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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영화 공식 원작 소설·오리지널 커버)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강미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평점 :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4명의 사랑스러운 소녀들!
이 고전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무려 여섯 번에 걸쳐 영화화 되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고전 <작은 아씨들>이 2019년에 이르러 새롭게 개봉되었다.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최연소 노미네이트 되었을 정도로 대중과 평론가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아온 시얼샤 로전과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로 익히 잘 알려진 엠마 왓슨이 주연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된 작품이지만,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을 만큼 작품성 역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을 찾아가 관람하겠다는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지만, 일단 원작부터 읽어두겠다는 생각으로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된 『작은 아씨들』 버전을 읽기 시작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오리지널 커버이자 1868년 초판본 커버 디자인으로, 적절하게 삽입된 영화 스틸컷과 부록까지 추가로 만나볼 수 있어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대한 몰입감과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었다.

그 시절, 소녀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미국의 어느 평범한 가정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네 자매 중 제일 맏이인 메그는 상당한 미인에 배우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치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허영기가 조금 있는 열여섯 살의 소녀다. 그녀는 또래의 젊은 처녀라면 누구나 예쁜 물건과 재미있는 친구들, 행복한 생활을 갈망하듯 가난을 큰 고민거리로 삼으며 가끔씩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반면, 둘째인 조는 “난 나이가 차서 미스 마치라고 불리는 것도 싫고, 기다란 드레스를 입는 것도 싫어.”, “마음은 온통 아빠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싶은 생각뿐인데 집구석에 틀어박혀 할머니처럼 뜨개질이나 해야 하다니.” 하고 푸념할 만큼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녀다. 그녀는 당시 여성들이 미덕으로 삼았던 결혼을 거부하고, 글쓰기에 몰두하며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솔직한 성격의 여성이다.
셋째인 베스는 아버지가 ‘작은 평온’이라 부를 만큼 조용한 말씨에 평화로운 표정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열세 살의 소녀다. 그녀는 자신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을 때만 간혹 외출할 뿐,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만의 행복한 세계 속에 살기를 원한다. 막내인 에이미는 나이가 제일 어리지만 “오는 기회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할 거야”라고 당당히 말할 만큼 세속적 욕망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늘 자신의 몸가짐에 신경을 쏟고 화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열정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아이다. 소설은 이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네 명의 ‘작은 아씨들’이 저마다의 꿈을 키워가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이웃과 사랑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조의 야망은 뭔가 굉장한 일을 하는 거였다. 그게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터였다. 조의 가장 큰 고통은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도, 뛰어다닐 수도, 말을 탈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급한 성격과 직선적인 말투,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기질 때문에 조는 늘 궁지에 빠졌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인생은 희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시소게임 같았다. / 87p
세상에는 베스처럼 수줍음을 잘 타고, 말이 없고, 구석 자리에 앉아 있다 필요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걸 너무 즐거워해서 오히려 누구에게서도 그 희생을 인정받지 못하는 소녀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화덕 위의 작은 귀뚜라미가 노래를 멈추고 나면, 따뜻한 햇살이 침묵과 응달을 남겨둔 채 모습을 감추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 91p
메그는 에이미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언자였고, 성격이 거의 정반대이긴 하지만 베스에게는 조가 그런 존재였다. 수줍음을 잘 타는 베스는 오로지 조한테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베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껑충한 키에 늘 덤벙대는 조에게 가족 중 누구보다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메그와 조는 서로를 끔찍이 아꼈지만, 동생을 한 명씩 맡아서 각자의 방식대로 돌봐주고 있었다. 메그와 조는 이를 ‘엄마 놀이’라고 부르며 어린 여성의 모성 본능으로 인형 대신 동생들을 보살폈다. / 93p


1부에서는 네 자매가 이웃인 로런스 씨와 그의 손자인 로리와 허물없는 우정을 나누어가는 과정, 일명 ‘라임 사건’으로 인해 에이미가 학교를 관두게 되고, 조와 다투어 언니가 아끼는 원고를 불태우기까지 하는 불상사를 일으킴으로써 스스로는 겸손의 미덕을 배우고 조는 자신의 몰인정함을 반성하게 되는 일화가 펼쳐진다. 한편 메그는 모팻 집안에서 처음으로 상류 사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가난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요란한 치장으로 그들의 꼭두각시 인형 노릇을 했던 자신의 경솔함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전쟁 중에 종군목사로 참전한 아버지가 위독해졌다는 전보를 받고, 어머니가 병간호를 하러 떠나는 과정에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기꺼이 잘라 팔고, 베스가 가난한 이웃을 돌보다 성홍열에 걸리자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에게 헌신함으로써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토록 단란했던 가정에 죽음의 그림자가 맴돌기 시작하자, 하루하루가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집에는 슬픔과 적막감이 감돌았고 일을 하며 기다리는 자매들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제야 메그는 혼자 앉아 일을 하다 말고 눈물을 뚝뚝 떨구며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았는지를 실감했다. 사랑, 보호, 평화, 건강 등과 같은 인생의 진정한 축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그 어떤 사치품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가 컴컴한 방에서 병에 시달리는 어린 동생과 함께 지내며 베스의 아름답고 착한 성품을 새삼 깨닫는 한편,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깊고 따뜻했는지 느끼게 된 것도 이때였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면서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미덕들, 예를 들어 재능이나 부, 미모보다 훨씬 더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미덕들을 발휘해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베스의 욕심 없는 꿈을 정식으로 인정하게 된 것 역시 이때였다. / 377p
위독했던 아버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뒤, 메그가 가난하지만 정직한 브룩 씨를 만나 결혼을 맹세하는 것에서 1부가 끝이 나고, 그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2부가 시작된다. 소설은 메그가 소박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린 뒤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민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또 성홍열을 앓은 뒤 급격하게 생기를 잃었지만 가족의 사랑 안에서 삶의 의지를 이어나가던 베스를 통해 초연하고도 성숙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가족이 더욱 단단하게 연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대고모를 따라 유럽 각지를 여행 중이던 에이미는 돈이라는 가치에 따르기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되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성숙한 여인으로의 자세를 보여준다. 끝으로 조에게서는 작가로서 자신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고뇌하고 한 개인으로서는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삶을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렇듯 『작은 아씨들』은 19세기 후반, 마치 가의 소녀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꿈과 사랑을 직시함으로써 ‘여성’이라는 관습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자기긍정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이 중요해, 메그. 젊은 부부는 언젠가는 멀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래서 더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단다. 처음 느낀 애정은 지키려고 애쓰지 않으면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부모에게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도 없단다. 존을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시련과 유혹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네 아이들만큼 존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켜줄 존재도 없으니까.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너희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 785p
“부자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 호의호식할 권리도 없고, 돈을 쌓아두었다가 엉뚱한 사람들이 낭비하게 할 권리도 없어.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죽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현명하게 돈을 써서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훨씬 더 낫지.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끼리 즐겁게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후하게 베풀어 우리만의 기쁨에 추가로 큰 즐거움을 하나 더 얹자고.” / 912p


사회적 제약이 심하던 시절에 여성들을 꿈꾸게 하고, 도전하게 했다는 점에서 이 고전은 1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의미가 깊다. 특히 소설을 읽다보면 이 소녀들이 보여준 삶을 향한 능동적인 자세는 어머니인 마치 부인의 교육관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유사 계열의 소설인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 부인이 보여주었던 과거의 보편적인 여성관에 비해 그동안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볼 수 있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녀는 경험만큼 훌륭한 스승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딸들이 엄마의 충고를 군말 없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 때는 기꺼이 나서서 일이 더 쉬워지도록 거들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딸들이 스스로 교훈을 배우도록 가만히 놔둔다. 뿐만 아니라 겸손의 미덕과 일과 놀이의 균형 있는 자세, 결혼에 대한 가치관, 물질적인 가치가 아닌 내면의 중요성, 사회적인 의미로서의 여성 등에 대해 솔직한 조언과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등장인물 중 유독 마치 부인에게 이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 부모일까. 또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엄마가 될 것인가,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부분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런 놀이를 못하는 일은 절대 없단다, 에이미. 왠지 아니? 형태는 다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우린 늘 천로역정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짐은 여기에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단다. 그리고 선의와 행복에 대한 갈망은 수많은 역경과 실수를 헤치고 진정한 하늘의 도시인 평화로 향하도록 인도하는 길잡이란다. 자, 어린 순례자 여러분, 이제 놀이가 아니라 진짜 생활 속에서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니?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너희들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는 거야.” / 31p
“난 너희들에게 욕심이 많단다. 하지만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출세를 바라지는 않는다. 오로지 부자이기 때문에, 화려한 저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자와 결혼한다면 진정한 가정을 꾸린다고 할 수 없단다. 사랑이 부족한 가정은 가정이 아니기 때문이지. 물론 돈이란 것은 살아가는 데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요소야. 그리고 잘만 사용하면 고귀한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난 너희들이 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절대 바라지 않는다. 권좌에 있으면서도 자긍심과 평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여왕보다 행복하고 사랑받고 만족할 수만 있다면 난 너희들이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다 해도 개의치 않을 거야.” / 206p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노예처럼 일만 하진 말거라.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는 것도 중요하단다. 하루하루를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렴. 그렇게 일과 놀이를 잘 조화시키면서 살면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하게 될 거야. 그래야 젊은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후회를 덜하게 되지. 난 너희들이 가난하더라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 249p


만약 10대 혹은 20대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마치 부인이 아니라 조 또는 에이미에게 더 이입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나는 이전의 나보다 더 적극적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을 고민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작은 아씨들』은 누구에게 공감하고 이입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나를 상상하고 꿈꿔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이것이 왜 오랫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영화 개봉과 더불어 원작에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기회에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