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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평점 :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이 시대 청년의 진짜 목소리를 듣다!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절실하고도 실존적인 문제들에 가장 밀착한 책!
밀레니얼 세대를 둘러싼 여러 담론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그 첫 호의 주제를 ‘세대’로 잡아 밀레니얼 세대의 세태를 진단하고, 각종 경제 서적 역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이에 따른 경제 트렌드를 전망한다. 또 한쪽에서는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소통 문제와 대립을 우려하는 기사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87년생 작가가 직접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쓴 글이 출간되어 주목해볼 만하다.
그의 책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그간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청년 담론이 실제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개인주의’나 ‘나 중심’, ‘효율성’ 같은 것으로 단순화하는 데서 오는 불편한 인식 등에서 미루어 볼 때 과연 그 수많은 담론들이 진정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청년이자,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구체적이고 최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균형감 있게 써내려가려 한다. ‘나의 시대, 나의 세대, 나의 삶’은 대한민국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가장 유의미한 청년 담론이, 진짜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세대, 젠더 그리고 공동체’ 이야기
밀레니얼 세대, 그들은 누구일까. 흔히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아울러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라 일컫는다. 이 세대는 온라인 세계가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삶의 일부로 활용하기 시작한 세대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인 세대, 이상과 현실의 극적인 분열을 겪는 ‘환각의 세대’라 정의한다. 84년생인 나 역시 태어나 지금껏 어른들로부터 줄곧 들어왔던 말은 “너희는 뭐든지 도전하면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는데 뭐가 문제냐. 하고 싶은 게 뭐냐. 꿈이 있어야 뭐든 하지.” 같은 것들이었다. 민주화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진 조건이었고,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도 늘어났으며,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문화생활이 가능해지고 해외활동 영역까지 확대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을 좇아야 할 삶, 꿈을 좇아 마땅한 삶은 우리가 처한 현실과 심한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그 모든 꿈들이 완전히 거짓에 불과하다는 듯이, 우리가 제대로 세상 속에 발 딛고 서서 걷기도 전에 연이어 도래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이제 삶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지각변동과 같은 불안감, 위기의식, 공포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바로 우리의 아버지, 친구의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 삼촌, 이모부가 겪은 바로 그 현실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꿈에 대한 강박과 현실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분열증적인 증세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세대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환각에 시달려왔다. 저자는 그 환각의 이름을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 부른다. 우리 세대는 최악의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 이른바, 인스타그램 속의 ‘이미지’ 혹은 ‘블루보틀 현상’ 같은 것들로, 이 이미지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의 욕망’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소비’로 정체성을 드러내며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고 세상을 낫게 만드는 소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문제는 이러한 ‘환각적인’ 이미지에 제때 도달해야만 안심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이미지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아야만 박탈감을 방어할 수 있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과 이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미닝아웃meaning out’은 이러한 시대에 ‘소비’를 통해 자기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대변한다. 단순히 취향으로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정치적 이념이나 윤리적 신념에 맞추어 소비를 하는 것이다.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자기 안에 숨겨둔 주장이나 취향 등을 표출하는 ‘커밍아웃coming out’의 결합어다. 최근 SNS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신념에 따른 소비’를 드러내고 있다. / 42p
그레고리 헨더슨은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소용돌이 현상’이라는 은유를 쓴다. 이는 한국사회가 고도로 동질화되어 있고 중앙집중화되어 있으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분야들이 오직 권력의 중심을 향해 상승하고자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과거의 ‘소용돌이의 중심’이 ‘출세’나 ‘자수성가’, ‘부자 되기’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 그 소용돌이의 중심은 가장 화려한 최신의 ‘이미지’들이 되었다. / 60p


한편,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흔히 나를 중심으로 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는 것을 ‘이중성’ 즉 ‘시소의 세계관’으로 정정함으로써, 절대적으로 의지할 단일한 신념 대신 이러한 가치관 저러한 가치관을 그때그때 시소 타듯이 무게중심을 옮기며 살아가는 유동적인 세계관을 가진 세대라 옹호한다. 그러면서도 어디에 의지해 자기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할지 모른 채 표류하는 개인들이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채 견뎌나가는 세상일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또 저출산과 비혼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우리 세대의 가치관이 ‘결혼하고 출산하고 싶다’는 지향 자체를 벗어나고 있음을 설명하며 이를 이상의 상향평준화 혹은 가치관과 욕망의 상향평준화와 연결 짓는다.
우리는 소비자로 자랐고, 세상은 우리가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중요한 것은 제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훌륭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어느 때건 즉각적으로 저 ‘행복의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혼이든 육아든 그러한 이미지를 누리는 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거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의 ‘정점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지, 그 밖의 전통적인 관습들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이 바로 이러한데, 정부의 저출산과 비혼 관련 대책이라는 것이 물질적 지원만 하면 해결될 거라는 식의 방식은 청년들의 실제 마음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그러한 지향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이에 대한 섬세한 정책을 촉구하는 바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청년들의 노력을 ‘노오력’이라 조롱하고, 독서가 의무이고 강요이고 일에 가까워진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드러낸다. 온전한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태도를 수립하기 전부터 불안을 위협의 도구로 삼아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구도로 내몬 교육 현실의 허점도 지적한다. 또 기성세대는 정의에 투신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라 매도하기 바쁘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의 진영적 이익에 빠져서 싸우기 바쁘다고 환멸을 느끼는 대립의 구도를 통해 ‘세대’ 문제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고독과 박탈감, 소외의 시대에 연애는 우리를 이 세계에 안착시켜줄 통로로 상징된다.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영속하는 어떤 관계 속으로 진입하길 바란다. 나와 당신이 서로를 지켜주기를, 그러한 보호막이 이 불안한 삶을 견디게 해주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연애는 우리 시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 54p
기성세대는 정의에 투신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라 매도하기 바쁘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의 진영적 이익에 빠져서 싸우기 바쁘다고 환멸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양쪽에서 사회 문제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그것은 자기가 믿는 사회의 정의이자 자기 정체성, 신념과 존재의 문제라면, 청년세대에게는 자기의 생존이자 사다리의 문제이고, 게임의 룰이 공정한지의 문제인 것이다. / 98p
어떤 종류의 말들이, 어떤 지상명제들이, 어떤 사회적 요구나 강령들이 대세가 되고 당연한 듯 말해질 때면, 늘 그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당연히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만하지 않은 이유, 걸러내야 할 이유도 있을 것이다. ‘포기’라는 트렌드 또한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속에는 우리 삶을 위로해줄 만한 요소도 있겠지만, 우리 삶의 가장 주요한 부분들을 앗아갈 측면 또한 있을지 모른다. / 121p
이렇듯 앞서 1장이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통해 ‘세대’ 문제와 극복 방법에 대해 모색해보았다면, 2장에서는 또 하나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라 할 수 있는 젠더 문제를 살펴본다. 많은 여성들이 단지 여성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면서,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 아래 남성과 여성 모두 구조의 희생자로 바라보며 양쪽을 균형 있게 살펴보려한 저자의 시도가 인상적이다. 또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병리현상인 ‘수직적 권력 구조의 문제’를 전면으로 드러낸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 각 영역의 구조적 폐쇄성과 이에 맞설 수 있는 목소리들이 더 나와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는 부분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온갖 혐오와 비난을 엄마가 감당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실, 사회의 힘에 따라 존재들을 분류(맘충)하고, 엄마들을 가장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 언제든지 혐오하거나 비난해도 좋은 위치에 놓고서 죄인으로 취급하는 오늘을 들여다보는 대목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 어쩐지 위로를 받은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욱 쓸쓸한 마음을 가눌 수 없기도 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직적 권력구조와 싸우는 것, 이것은 이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피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그렇기에 이것을 남녀의 대립 문제로 파악하여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형태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이는 그동안 공고히 구축되어온 악질적이고 폭력적이며 폐쇄적인 구조와 싸우는 일이고, 적어도 그러한 폭력의 당사자로 마음껏 권리를 누리고 있는 가해자들이 아닌 한 우리 모두의 존재와 밀접히 관련된 문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157p
결국 성별 간 갈등 문제의 핵심은 구성원을 좌절과 증오로 몰고 가는 사회 및 문화 구조 그자체 있다. 이는 정확히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해진 삶’을 지시한다. 이 불가능성, 균열되고 좌절된 삶의 문제에서 태어난 분노는 사회 모든 곳을 향하다가, 이제 양성이 서로를 증오하게끔 만들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있다.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배수진을 치고 서로를 향해 증오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낭떠러지 자체’이다. 해야 할 일 역시 그 낭떠러지에서 어떻게든 손을 잡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 185p



끝으로 3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 주요 화두라 할 수 있는 공동체 문제를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와 편견, 분노와 증오 각종 혐오로 점철된 사회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다. 그는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당장의 선악을 구분하는 말보다는 전체의 맥락이나 거시적인 구조에 대한 생각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즉,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강물 같은 선의,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깊고 오래된 선의를 아직 믿는다.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인생을 고민하겠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선의 그 자체라는 것. 너무 뻔한 말에 불과할지라도 극복해야 할 것은 선의를 미루고 있는 현재일 뿐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반드시 써야만 한다. 어쩌면 이 시대의 모든 청년들은 저마다의 글을, 소설을 쓰고 있다. 다만 청년들은 홀로 남아 글을 쓰는 골방의 유령들처럼, 각자의 삶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하고 쓰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를, 우리를,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삶의 전제인 동시에 최후 수단이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맺어주고 이어주며 사로의 미묘한 경계를 보듬어줄 심성이다. 때로는 나의 권리를 후퇴시키며 타자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하고, 때로는 나와 우리의 권리를 보다 앞세워 잘못된 권리와 싸울 필요도 있다. 그러나 각자가 각자의 권리의 성벽을 치고, 그 성벽에 누가 닿기라도 하면 신경증적으로 몰아내고 방어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심성의 관계’ 혹은 ‘심성의 사회’는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방향이 그러한 심성이 불가능한 사회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타자에 대한 공감, 타자에 대한 허용, 자신의 권리에서 한발 물러나기, 이런 것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성’을 끊임없이 강조할 필요가 있다. / 267p
그나마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위용을 발휘하던 시대도 지나 가족이란 그 힘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가족이 주는 순기능은 사라지고, 가족 내에서 온통 트라우마를 입고 쫓겨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또 다른 야생을 만들고, 가족의 해체는 흔해졌다. 그런데도 사회는 가족을 대체할 만한 방책을 거의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은 붕괴되어가는데 사회는 여전히 온갖 책임을 가족에게만 떠넘긴다. 각자도생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책임의식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 314p


84년생인 내가 바라본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최근의 여러 책 중에서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절실하고도 실존적인 문제들에 가장 밀착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세대를 관통하고 있는 욕망과 체념의 정서를 가감 없이, 날카롭게 드러내면서도 선의를 잃지 않고 공동체를 향한 연대를 놓지 말자고 독려하는 말에 담긴 함의가 따뜻하다. 이제 기성세대의 문턱 앞에 다다를 날이 머지않은 까닭에, 나는 내 아이가 이끌고 갈 미래 세대에 앞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미안해지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시대가 그런 걸 어쩌겠느냐고, 너는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어른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우리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 아이의 시대에까지 가 닿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