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다니하라 마코토 지음, 우다혜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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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으로부터 호감과 신뢰를 얻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침묵 사용법!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활용의 모든 것! 

 

   ‘짤막한 시간에도 남시와 여시가 있기 마련이다.’

   무대 위에서 예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연기자들이 가져야 할 비결을 저술한 제아미의 《풍자화전》에는 이와 같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남시’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때를, 반대로 ‘여시’란 상대에게 유리한 때를 말한다. 책은 남시와 여시는 피할 수 없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며, 대화의 흐름상 상대에게 유리한 여시 때는 굳이 이기려 하지 말고 여유롭게 기다렸다가 ‘바로 여기다!’ 하는 곳에서 전력을 다하라고 권한다. 오히려 남시일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이야기가 유리하게 흘러 자신이 내민 조건이 무엇이든 받아들여지는 듯할지라도 자만해서는 안 된다. 남시에 있더라도 불리한 상황을 대비하며 단숨에 해결할 방안을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대화란 무슨 말이든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 법무, 기업 회생, 교통사고, 부동산 문제 등에 관한 사건을 뛰어난 교섭법과 논쟁력으로 해결해 온 일본의 유명 변호사인 다니하라 마코토는 자신의 책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의 서두에서 남시와 여시를 인용하며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간격’을 두면서 대화의 거리를 조정하여 나만의 리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때 ‘말과 말의 사이’ 즉, 적절한 간격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침묵’이다.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는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말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대화 속에서 침묵을 잘 이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역사상 뛰어난 화술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링컨, 스티브 잡스, 오바마 대통령,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침묵을 그 누구보다도 잘 활용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야기 도중에 상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 침묵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켰고, 핵심이 되는 말을 반복하고 직후에 침묵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릿속에 문장을 각인시키도록 했으며, 이야기를 끝마치기 전에 침묵함으로써 청중의 기대감과 설득력을 높였다. 찰리 채플린 역시 ‘언어가 없는 팬터마임이야말로 세계 공통어’라고 말하며 침묵하고서도 훌륭히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이렇듯 너무도 당연하게 커뮤니케이션은 말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우리에게 저자는 침묵만큼이나 강하고 묵직한 대화법이 없음을 설명한다.

 

 

 

대화는 자신이 말하거나 상대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의 반복입니다. 말로 하는 캐치볼이지요. 한쪽은 말이 빠른데, 다른 쪽은 말이 느리다면 굉장히 어색한 대화가 펼쳐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소위 ‘흐름이 좋지 못한 대화’이지요. 그럴 때는 적절하게 ‘간격’을 두면서 상대와의 대화 리듬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상대가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것 같다면 상대방의 대화 흐름이 너무 빠르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는 상대를 가라앉힐 요량으로 일부러 ‘간격’을 두고 천천히 자신의 흐름에 맞추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26p

 

 

 

 

 

 

   저자는 상대로부터 반드시 승낙을 이끌어내야 하는 협상의 상황에서도 침묵이 효과적으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한창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데 상대측에서 아무런 말이 없이 침묵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납득이 안 되는 걸까?’, ‘기분이 언짢을 법한 이야기를 했나?’ 하고 불안해진다. 결국 우리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때 침묵은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즉, ‘상대가 침묵하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내뱉기 쉽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해 상대로부터 의미 있는 정보나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활용해보는 것이다. 반면, 상대방에게만 행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도 침묵은 중요하다. 대화를 할 때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가 나서 괜한 말을 하여 나중에 후회하거나 협상 자리가 불리하게 흘러가게 둘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분노의 감정을 터뜨릴 것 같을 때, ‘지금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고 곱씹어보고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핵심은 침묵을 통해 상대의 기분을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즉 서로 간의 ‘호의 잔고’와 ‘신뢰 잔고’를 쌓기 위함이지요. 이 점을 간과하고 테크닉을 남용한다면 오히려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입니다. (중략)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면 말을 많이 해서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침묵한 후에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효과적입니다. / 104p

 

 

 

 

 

 

   이 외에도 책은 침묵을 뒷받침하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과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들도 함께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타인을 판단하는 데 있어 시각 정보가 55퍼센트이고 청각 정보가 38퍼센트인데 반해 언어 정보가 미치는 영향은 7퍼센트에 불과함을 언급하며, 우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만남 후 약 6초에서 7초 사이에 결정된다는 첫인상의 중요성과 동작의 완급과 크기 조절을 통해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또 상대와의 물리적 거리를 조정함으로써 관계성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과 미러링(상대의 몸짓이나 자세를 거울로 비추듯이 따라 하는 테크닉), 페이싱(상대의 말투나 말의 리듬을 따라 하는 테크닉), 캘리브레이션(상대의 심리 상태를 언어 이외의 사인으로 인식하는 테크닉-자세, 호흡, 표정, 목소리 톤), 백트래킹(상대가 한 말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을 이용해 상대와 의식을 교류함으로써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법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비의식적인 모방을 통해 상대와 의식을 교류할 수 있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라포르’라고 말합니다.

라포르는 ‘친밀한 관계’, ‘두 사람 사이의 상호 신뢰 관계’ 등으로 표현됩니다. 프랑스어로는 ‘다리를 놓다’라는 의미가 있지요.

당신이 어떤 사람과 교제하는데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있을 때 즐겁다고 느낀다면 둘 사이에는 라포르가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142p

 

 

 

 

 

 

   끝으로 저자는 침묵의 중요성과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의미 없는 침묵은 피해야 하고, 침묵으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들을 최소화하여 상대를 위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그러고 보니 평소 말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면 어색해서 곧잘 의미 없는 말을 내뱉거나 눈치를 보며 나를 재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속으로 고민한 적이 많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침묵 앞에서 어색해지는 순간을 모면하려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다음날 ‘이불킥’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휘둘리지 않고 나의 리듬을 찾으면서 대화를 리드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해법이 되어줄 듯하다. 상대방으로부터 호의와 신뢰를 얻으며 더 나은 관계로의 발전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특히 이 책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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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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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모예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소설!

방황과 오해,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우리 시대의 분열된 가족을 감싸 안는 따뜻한 시도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로부터 어떤 놀라운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그때란, 항상 자신이 제일 영리하다고 믿는 자부심으로 하여금 스스로 멋지게 발화하는 순간일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는 목소리에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응답해줄 자세가 되어 있는 아이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한 번 더 도전해보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보여주는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며 조급증을 내고, 현실적인 조건에 순응하거나 혹은 버티면서 살아가는 법만을 가르치며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어른들이 스스로 착각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꿈이 좌절되고 있었던 것인지. 말을 사랑하고 할아버지에게서 마장마술을 배우며 꿈을 키워가던 소녀, 사라의 이야기를 좇아가며 나는 내 아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고민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수많은 불합리와 절망으로부터 우리가 지키고 또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호스 댄서』는 바로 이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자 곧 응답이다.

 

 

 

 

 

어떤 동물이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장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다.

뭐든 처음에는 부족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 크세노폰, 『기마술』

 

 

 

   런던의 데이비슨 브리스코에서 아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너태샤 매컬리는 뛰어난 실력으로 착실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부유한 동네에서 번듯하게 지어진 집에서 살며 누가 봐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 그녀지만, 일 년 동안 집을 나가 살던 남편 맥이 자신의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오겠다는 연락을 받은 뒤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맥은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된 집을 처분하자고 제안하며, 팔리기 전까지는 이 집에 머무르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맥에게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세 번의 유산을 겪는 동안 자신이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지 않아서 화가 났고,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있는 이때에 다시 나타나서 간신히 다져놓은 둑을 무너뜨리려고 해서 또 화가 났다. 무엇보다 더 기분이 나쁜 것은 그가 여전히 매력적인 남자이고, 심리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다시 아파트에서 살 생각을 하니 눈앞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대체로 사람들은 30대 중반에 이르면 어느 정도 인생의 기반을 다지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만족스러운 집에 살면서 자기 분야에서도 탄탄한 경력을 쌓을 거라 예상한다. 거기엔 아이도 한두 명쯤 추가될 것이다. 너태샤는 자신의 평평한 배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아이를 낳지 못했으니 넷 중에서 하나를 이루지 못한 셈이다. 대단한 성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아마디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경력 분야에서도 결함이 생겼다. / 205p

 

 

  맥이 돌아온 날 밤, 너태샤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슈퍼마켓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곤경에 처한 한 소녀를 구해주게 된다. 게다가 범죄가 잦은 도시 외곽의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소녀를 집에 바래다주다가 집이 도둑맞은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소녀의 이름은 사라, 상황을 살피기 위해 사라의 사정을 파악하던 너태샤는 사라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으며 그런 할아버지마저 얼마 전에 뇌출혈로 인한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맥과 함께 도둑맞은 집을 수습하고 사라를 집으로 데리고 온 너태샤는 오갈 데가 없고, 청소년임시보호소도 마땅치 않은 사라의 사정을 고려해 맥과 의논하여 사라를 잠시 맡아 돌보기로 한다.

 

 

 

너태샤는 거의 매일 그런 애들을 보았다. 난민을 비롯해 문제아들, 쫓겨나거나 방치된 청소년, 칭찬이나 지지, 포용 같은 단어를 알 길이 없는 십 대들. 그런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 일찍 철면피가 되었고 그들의 마음은 철저히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도록 굳어져 있었다. 너태샤는 거짓말하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애들, 성년이 될 무렵에 자라는 까칠하고 텁수룩한 수염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데도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라고 우기는 명명 신청자들. 하지만 진정성 없는 뉘우침과 비행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구조 속에서 그 애들이 범죄에 빠지기란 어렵지 않았다. / 49p

 

 

너태샤는 지금도 여전히 부모의 이혼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역 당국과 이민국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해줄 것을 강렬히 요청하고 있다. 피해가 심각한 경우에는 학대받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새로운 위탁 시설을 얻어주는 적극적인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방법을 남발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어쨌든 개선된 삶을 사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68p

 

 

 

   한편, 자신이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에게서 엄격하게 말 타는 법을 배우며 자란 사라는 할아버지가 한때 기수로 활약했던 프랑스의 카드르 누아르 국립 승마학교에 함께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이었다. 할아버지의 친구 바르쥐가 카드르 누아르에서 가장 중요하고 경험이 많은 기수인 ‘위대한 신’이 된 데다 여자 기수도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언젠가 사라 역시 그곳에서 활약할 날을 기약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사라의 일상은 모든 것이 뒤바뀌고 만다. 집은 도둑을 맞고 할아버지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나마 부를 타고 달릴 때면 사라는 이 절망적인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하는 절망감과 앞으로 갚아야 할 돈, 병든 노인의 냄새를 풍기며 무력하게 침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보는 고통을 그 순간만은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부는 사라에게 이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휩쓸리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 때문에 사라는 부가 있는 마구간과 할아버지의 병원, 학교 그리고 너태샤와 맥의 집을 오가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하고 이내 학교 수업을 종종 빼먹거나, 부의 사료 값과 임대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너태샤의 비상금에까지 손을 대기에 이른다.

 

 

 

당시는 1960년이었다. 조니 알리데를 비롯한 대중문화가 유행하고 경직된 의식을 거부하는 시대가 찾아왔지만, 소뮈르에서는 변화의 기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카드르 누아르 국립 승마학교는 23명의 프랑스 에리트 기수들로 구성되었는데, 일부는 군 출신이고 일부는 민간인 신분이었다. 이들은 해마다 고난이도 승마 공연을 펼쳤고, 바로 이 행사가 카루젤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실제로 승마 공연 티켓은 지역 주민을 포함해 프랑스 유산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팔려나가 며칠이 안 돼 매진되었다. 때로는 루아르강 전역에 나붙은, ‘중력을 거스르는 위풍당당함과 신비로움을 뽐내는 말과 기수’라는 문구가 적힌 공연 포스터에 흥미를 느껴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 10p

 

 

카우보이 존의 축사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람직한 시설이기도 하고 성가신 존재이기도 했다. 시 공무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쳤고, 환경 위생 및 병충해 방제와 관련된 경고문을 끊임없이 발행했다. 하지만 존은 치즈 소스에 범벅이 된 채 밤새도록 이곳에 나와 있어도 설치류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반박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 역시 이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파트를 짓고 싶어했지만 카우보이 존은 축사를 팔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빅토리아 시대의 잘 정돈된 마구간들이 늘어서 있고 건초와 짚 더미가 쌓여 있는 그곳은 도시의 소음과 혼란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곳이기도 했다. / 38p

 

 

 

 

 

 

   사라를 공동으로 돌보면서 너태샤와 맥은 한 아이를 책임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나 너태샤는 사라와 얘기할 때 적절한 말투를 찾느라 늘 애를 먹는다. 직업상 버릇처럼 의뢰인에게 설명하는 말투를 쓰거나 추궁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질문을 건넬 뿐이다. 그러는 동안에 사라는 스스로 고립되어 간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사이, 부의 마구간 임대료는 계속 밀려가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마구간 주인인 몰티즈로부터 성적 수치심까지 느끼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마침내 자신의 말인 부가 다른 사람의 손에 팔릴 지경에 처하게 되자 더 이상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게 된 사라는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세상의 전부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부를 타고 멀리 달아나기로 한다. 그렇게 느닷없이 사라진 사라와 부를 쫓으면서 너태사는 그제야 자신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여러 번의 유산을 하며 거부당했다고만 생각한 그 존재에 대해 얼마나 근거 없는 장밋빛 환상을 품었는지 절감하게 된다. 사라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려 해보지도 않고 그저 지나치게 엄격했던 태도를 후회한다. 과연 사라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너태샤와 맥은 와해될 수 없어 보였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너태샤는 비좁은 축사와 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자유롭게 주변을 돌아다니는 닭들을 바라보았다. 신기한 비밀의 장소를 보는 것 같았고 오래전에 없어진 생활 방식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염소들과 덩치 큰 말들, 말라빠진 아이들도 보였다. 높게 쌓아 올린 짚더미 뒤로 환하게 불을 밝힌 날씬한 기차 한 대가 그들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래쪽의 이런 진기한 광경을 별로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바로 이곳이 사라가 자란 곳이고 사라가 살아온 세상이었다. 과연 이런 곳은 현대 사회의 어느 영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사라와 같은 아이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나갈 수 있을까? / 273p

 

 

카터 부인이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하는 바람에 너태샤는 갑자기 사라에 대한 연민이 치솟았다. 너태샤는 눈앞의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지만 말의 동작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라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개한 십 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침착하게 말을 다루는 능력과 자기 일에 대한 애정, 옆에 있는 말과의 조용하고 적극적인 교감만이 돋보였다. 바로 이런 것이 위대한 열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 279p

 

 

“저도 늘 더 나은 동작을 하기 위해 애쓰는 거예요. 말과 나의 완벽한 소통이나 교감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요. 고삐를 잡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압력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말의 기분이나 제 몸의 상태, 땅바닥의 조건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기술적인 문제가 전부가 아니거든요. 말과 나, 두 마음과 두 심장이……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해요.” / 288p

 

 

 

 

 

 

   『호스 댄서』는 할아버지와 말이 인생의 전부인 십 대 소녀 사라와 완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데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너태샤, 타인으로부터 늘 호감을 얻지만 정작 아내를 이해하는 데는 서툴렀던 맥이 함께 하면서 가족의 의미와 진정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그 속에서 빈민가의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는 현실, 아동 학대, 공동 운명체로 나아가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사회제도적 시스템, 가족이라는 이상적인 판타지를 위해 여성들에게 더욱 철저히 요구되는 희생과 같은 주제들로 하여금 우리 사회에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이렇듯 소설은 상당히 두터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개성 있는 인물과 유려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라인,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문장, 가벼운 듯 깊이 있는 시선으로 탄탄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이쯤하면 『미비 포 유』의 조조 모예스가 아니라 이제는 『호스 댄서』의 조조 모예스로 불리어도 좋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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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 - 누구에게나 대인불안이 있다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조경자 옮김 / 상상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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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통해 풀어보는 대인불안의 원인과 해결법!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입버릇처럼 곧잘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아무거나’다. 뭐 하면 좋을까, 뭘 먹으면 좋을까, 어디를 가면 좋을까. 이런 선택의 기회 앞에서 나는 늘 ‘아무거나’ 뭘 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대답하곤 한다. 때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난 아무거나 다 좋아’라고 말해버리기도 한다. 좋게 생각하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맞추려는 배려있는 행동일 수 있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선택과 결정을 상대방에게 미루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가까운 관계이든 처음 만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면, ‘너 하고 싶은 대로’, ‘아무거나’ 같은 말로 상대의 의견에 따르는 것을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왜 우리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기며 심지어 불편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것일까.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무심코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즐거운 이야기를 해야 해’, ‘이런 말을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지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계속 의식하게 된다. 친구들의 반응이 내 생각과 다르면 ‘내가 말을 잘못한 걸까?’, ‘내가 괜한 말을 했나?’하고 신경이 쓰여서 솔직한 생각이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기도 한다. 대학생과 전문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매우 걱정이 된다’는 79%,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72%,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건 아닐까 불안해 한 적이 있다’는 60%, ‘상대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 걱정이 되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한 적이 있다’는 52%,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한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60%에 달한다고 한다. 이 조사 결과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의식하고 때로는 불편함이나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을 증명한다.

 

 

 

   일본의 유명 심리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에노모토 히로아키 역시 대학교에서 강연과 상담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감정을 처음 만난 사람뿐 아니라 일정 관계 이상으로 친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느낀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를 ‘대인불안’이라는 용어로 정의하는데, 『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는 평소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이들을 위해 대인불안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이 어떤 심리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이를 완화시킬 수 방법을 살펴보려한다.

 

 

 

   그렇다면 대인불안이란 무엇일까?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에 의하면 대인불안이란 ‘남 앞에 나섰을 때 느끼는 불쾌감’이다. 그는 ‘처음 참석하는 자리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남이 보고 있으면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수줍음을 잘 타고, 낯을 많이 가린다’, ‘남 앞에서 말할 때는 불안해진다’,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쉽게 지치는 편이다’ 등을 대인불안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는다. 또한 심리학자 베리 슐렝커와 마크 리어리는 ‘현실 또는 상상 속의 대인적 장면에서 타인에게 평가받는 상황 혹은 평가받는 것을 예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안’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너무 강한 탓에 하고 싶은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싫은 것도 싫다고 거절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지 모른다는 불안, 이른바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불안’이 대인불안의 대표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탓인지 많은 이의 마음속에는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과 상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 데 사로잡혀서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아무리 인간관계를 잘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 28p

 

 

상대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다 보니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이 앞선다. 즉, 나보다 상대의 만족을 우선으로 배려한다. 하고 싶은 말이나 요구사항이 있어도 참는 까닭 역시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뻔뻔한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즉, 상대방과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한다. / 48p

 

 

 

 

 

 

   대인불안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칫 용어 때문에 심각한 병처럼 느껴지겠지만, 저자는 사실 대인불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계의 문화’를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인간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 변화를 끊임없이 살펴가면서 ‘관계’를 지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더군다나 우리는 상대를 의식하고, 관계를 고려해 상대가 상처받거나 거북하지 않도록, 상대가 불만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것보다 우선인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즉, 오랫동안 관계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 미숙한 행동이라고 평가받아왔다. 또한 인간은 사춘기 무렵부터 자아에 눈을 뜨고 ‘자의식’을 갖게 되는데,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낮 동안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증거이므로 결코 비관할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이 상처받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거절한다고 해서 그게 ‘내가 싫어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72p

 

 

사람에 따라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콤플렉스를 느낄 수도 있고,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따라서 대화 상대가 여러 명일 경우 각각의 인물의 반응을 살피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정해야 하므로 매우 신경이 쓰인다. 상대방에 따라 다른 ‘나’를 설정하게 되니 ‘나는 다중 인격일까?’,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 아닐까?’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일관성이 없는 사람, 불성실하고 요령만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상대방에 따라 다른 내가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109p

 

 

 

 

 

  저자는 내가 느끼는 관계의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고, 대인불안의 속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한다면 결코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분을 배려할 수 있다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심리학자인 치비-엘 하나니 팀은 대인불안과 공감 능력의 관계를 검토하는 조사와 실험을 실시한 결과, 대인불안이 약한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 타인의 기분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고, 상대의 표정에서 내면의 기분까지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도 높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불안함이 크다는 말은 ‘조심스럽다’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대인 상황에서는 상대의 심리 상태에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는 심리 경향과 연결되어 오히려 상대의 기분을 배려한 적절한 대응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신경 쓰는 것을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라고 표현하기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외에도 대인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누구나, 특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상대도 나와 같이 대인불안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자기개시’라는 심리학의 특징을 적극 활용해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개시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이 상대에게 호의와 신뢰의 표현이 되어 자기개시를 받은 쪽은 ‘나를 신뢰하는구나’라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지게 됨으로, 서로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싶다면 나부터 용기를 내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대인불안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대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는 대목은 꼭 마음에 새겨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 것인가에 집중하는 대신 상대의 모습에 눈을 맞추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상대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마음을 알아주는 것,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탈피하여 상대 자체를 보려고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인불안을 완화시키는 가장 쉬운 열쇠일 것이다. 

 

 

 

   상대도 나와 같이 대인불안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해보기를 권하는 책 속의 조언들은 그간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라든지,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라는 여타의 대인관계 관련 책들의 조언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남의 눈치 보느라 정작 내 마음은 뒷전인 나를 위해 적절한 위로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살다보면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 혹은 기준이라는 게 생각보다 뛰어넘기 힘든 선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그 기준에 맞추느라 때로는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한 채 삼키고, 그에 맞추느라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에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라고만 여겼던 그간의 생각을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어느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큰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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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그린 뉴딜 - 2028년 화석연료 문명의 종말, 그리고 지구 생명체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 계획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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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와 기후이상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혁명의 시나리오!

탄소 제로 경제와 녹색 문화 추진을 위해 우리 사회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책!

 

 

   “나의 할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아버지도 낙타를 탔고, 나는 메르세데스를 몰고, 아들은 랜드로버를 굴리고, 그의 아들도 랜드로버를 굴릴 것이지만, 그다음 세대의 아들은 낙타를 탈 것이다.” 1960년대 말 석유의 발견으로 아랍에미리트에 퍼진 희열이 훗날 악몽으로 변해 국민을 괴롭힐까 봐 걱정한 셰이크 라시드의 말이다.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생물종의 멸종이 계속 가속화하고 있으며, 그 속도가 금세기 말까지 모든 종의 절반 이상을 제거하기에 충분할 만큼 빠르다.”라고 지적한다. 금세기 말이라면 오늘의 유아들이 노년을 보낼 시기다.

 

 

 

   그간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과 같은 다수의 책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제러미 리프킨 역시 현재 우리는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수년 사이에 우리는 화석연료 부문과 관련 사업이 가하는 타격으로 인해 갈수록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지구온난화현상으로 대표되는 각종 기후변화가 바로 그 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기온을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섭씨 1도만큼 올려놓은 것으로 추산하며, 만약 그것이 1.5도라는 한계점을 넘어서면 걷잡을 수 없는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고 그에 따른 엄청난 기후 이변들로 지구의 생태계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훼손될 것으로 예측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의 생활로 돌아갈 길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이에 제러미 리프킨은 우리에게 계속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석유산업과의 대결에 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녹색 문화를 구축하는 과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우리는 탄소 제로 경제로의 전환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고 모든 지역과 모든 공동체에서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여 모두 함께 생태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과 전 세계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린 뉴딜’이라고 그는 말한다.

 

 

 

 

 

 

녹색 시대 구현을 위한 청사진

 

 

   『글로벌 그린 뉴딜』은 현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이 역사상 가장 중대한 이 시대에, 기후변화에 대응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릴 ‘그린 뉴딜’ 정치 내러티브와 대담한 경제 계획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린 뉴딜은 젊은 세대, 즉 오늘날 미국의 지배적인 집단인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가 국가의 방향을 돌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어젠다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촉구하는 강력한 탄원이다. 이는 모든 미국인의 사회적 전망과 경제적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뿐 아니라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지구의 생명을 구하는 최전선에 국가와 국민을 두고자 하는 어젠다이다. 그는 지난 25년 동안 유럽연합과 중국에서 그린 뉴딜형 전환을 직접 구현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경제를 개혁하고 지구 생명체를 살리기 위한 이 획기적인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오늘날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그린 뉴딜을 위한 풀뿌리 운동이 각국 정부로 하여금 탄소 이후의 녹색 3차 산업 혁명 인프라를 구축하고 확대해,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동시에 공정하고 인도적인 경제 및 사회를 만들도록 촉구하는 데 이 책이 유용하게 쓰이길 희망하고 기대한다.

 

 

 

다양한 가상 재화와 물리적 상품을 공유하는 것은 신흥 순환 경제의 초석으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서 지구의 자원을 훨씬 적게 사용하며 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유 경제는 그린 뉴딜 시대의 핵심적 특징이다.

현재 공유 경제는 초기 단계를 밟고 있으며 앞으로 여러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해 둘 것이 있다. 공유 경제는 사람들의 경제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 이동성의 디지털 인프라에 의해 가능해진 새로운 경제 현상이다. 그 점에서 공유 경제는 18세기와 19세기에 태동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후 세계 무대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 30p

 

 

 

   저자는 그린 뉴딜 이행에 있어 인프라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죽어 가는 화석연료 중심의 2차 산업혁명 인프라에서 스마트 녹색 탄소 제로 3차 산업혁명 인프라로의 전환은 그린 뉴딜의 핵심이다. 그 중에서도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에 가장 책임이 있는 4개 주요 부문 즉, ‘정보 통신 기술(ICT)과 텔레콤’, ‘에너지 및 전기, 내연기관’, ‘이동성 및 물류’, ‘주거와 상업·산업 기관 관련 건조(축)물’ 분야로부터 화석연료 문명을 분리하여 그린 뉴딜의 신흥 재생에너지와 결합하기 위한 이행 과정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때, 1차 및 2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중앙 집중식과 하향식 그리고 독점 방식으로 설계되어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고 투자자에게 수익을 안겨주기 위해 수직으로 통합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과 달리, 그린 뉴딜 3차 산업혁명은 분산된 운영 방식에 중점을 두며 보다 효과적인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해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게 설계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에너지 원천의 무한한 잠재력을 고려하면 제로에 가까운 한계 비용으로 생산되는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태양은 88분당 470엑사줄(1엑사줄은 1018줄에 해당한다.-옮긴이)의 에너지를 지구로 방출하는데, 이는 세계의 모든 인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과 같다. 만약 우리가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1퍼센트의 10분의 1이라도 포획할 수 있다면, 현재 글로벌 경제 전역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여섯 배를 얻는 셈이 된다. 태양 복사열과 마찬가지로 바람 역시 강도와 빈도는 다양하지만 지구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전 세계 풍력 발전량에 대한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가용 풍력의 20퍼센트만 수확해도 현재 글로벌 경제를 운용하는 데 들어가는 것보다 일곱 배나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 69p

 

 

앞서 언급했듯이,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 이동성의 패러다임 변화는 건조 환경이 본질을 변화시킨다. 1차 산업혁명은 허브와 허브를 연결하는 철도 운송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건조 환경을 야기했고, 2차 산업혁명은 주간 고속도로 출구 주변으로 교외 환경을 널리 퍼뜨렸다. 3차 산업혁명에서는 기존 건축물과 새로운 건축물(주거용, 상업용, 산업용, 기관용)이 탄소 제로 에너지 효율성을 갖춘 스마트 노드와 IoT 매트릭스에 결합된 네트워크로 변모한다. IoT 인프라에 연결된 모든 빌딩 노드는 스마트 녹색 국가의 경제활동을 관리하고 구동하고 가동시키는 분산형 데이터 센터, 녹색 마이크로 발전소, 에너지 저장소, 운송 및 물류의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 / 100p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미국과 전 세계에서 지역별로 맞춤화한 그린 뉴딜 3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구축하고 확장할 자금은 과연 어디서 조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린 뉴딜의 규모를 생각할 때, ‘대규모 정부 지출’ 문제는 불가피해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도 반대론자들은 마치 잠재적 멸종 문제가 정부에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당장은 무시할 수도 있는 여러 예산 항목 중 하나인 양 지금 거기에 쓸 돈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기존 인프라 인력의 대부분이 은퇴 시점에 가까워지고 있어 미국을 탄소 후 그린 시대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기술로 새로운 세대를 준비시켜야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공공 및 민간 연금 기금 활용과 탄소 은행 제도 및 녹색 은행 운영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앞서 제기한 문제점들을 반박해나간다. 또 3차 산업혁명 경제로의 전환에 수반되는 새로운 인프라 일자리를 위해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고 젊은 세대를 준비시킴으로써, 도시의 가장 열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녹색 고용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방안도 제시한다.

 

 

현재 원자력 설비의 건설 및 운영에 들어가는 균등화발전 원가(LCOE)는 메가와트시당 112달러이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풍력 에너지 생성의 LCOE는 메가와트시당 29달러, 태양광의 그것은 40달러이다. 그럼에도 모든 전력 및 전기 유틸리티가 이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인 것은 아니다. 지난 30년 사이에 미국에서 건설 중인 유일한 새로운 원자력발전소는 조지아 파워의 보그틀 발전소이다. 원래 44억 달러로 계약된 이 원자력발전소는 현재 일정보다 5년이 늦어진 데다가 270억 달러 프로젝트로 부푼 상태다. 어떤 기준으로 보든 엄청난 비용 초과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선출직 공무원들이 여전히 새로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옹호하는 이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 82p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가 가변적이라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향수 수십 년 동안 화석연료 전력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개념은 가스업계가 퍼뜨린 일종의 현대판 도시 신화라 할 수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빠르게 비용이 감소하고 있는 배터리 저장 장치 및 수소 연료전지 저장 장치 덕분에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예비 전력은 수월하게 확보될 수 있다. 또한 전력 수요의 연중 시기별 변동과 각 에너지의 계절별 변동성을 고려하여 태양광과 풍력을 적절히 혼합하면 얼마든지 신뢰할 수 있는 전력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 127p

 

 

 

 

 

 

   한국도 2009년, 저탄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주로 건설과 철도, 연료 절약형 차량, 건축물 개조, 에너지 효율 증대 등의 부문에서 96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4년에 걸쳐 360억 달러를 투자하는 독자적인 그린 뉴딜 이니셔티브를 들고 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실제 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뚜렷한 변화가 있느냐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탈탄소화를 위한 그린 뉴딜의 목적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지만 정부와 지자체 관할권이 협력하고 수평적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율성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들은 아직 미비해 보이는 까닭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며 지구는 인류에게 끝없이 내주기만 하는 존재라고 믿고 마음껏 써버린 결과, 현재의 기후변화는 그 청구서의 기한이 도래한 것과 다름없다고 경고한다. 이제 이 새로운 세상의 현실에 어떻게 적응하는가에 따라 생물종으로서 인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고, 그 기한은 20년 밖에 채 남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바라건대, 너무 늦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필요가 있다던 그의 말처럼 이 예언이 또 그가 제시하고 있는 청사진들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떤 이상향에 그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개개인의 독자에게는 경각심을, 각 정부 기관과 공공 단체에는 보다 실체적인 행정 정책의 일환으로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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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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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이 시대 청년의 진짜 목소리를 듣다!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절실하고도 실존적인 문제들에 가장 밀착한 책!

 

 

   밀레니얼 세대를 둘러싼 여러 담론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그 첫 호의 주제를 ‘세대’로 잡아 밀레니얼 세대의 세태를 진단하고, 각종 경제 서적 역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이에 따른 경제 트렌드를 전망한다. 또 한쪽에서는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소통 문제와 대립을 우려하는 기사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87년생 작가가 직접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쓴 글이 출간되어 주목해볼 만하다.

 

 

 

   그의 책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그간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청년 담론이 실제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개인주의’나 ‘나 중심’, ‘효율성’ 같은 것으로 단순화하는 데서 오는 불편한 인식 등에서 미루어 볼 때 과연 그 수많은 담론들이 진정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청년이자,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구체적이고 최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균형감 있게 써내려가려 한다. ‘나의 시대, 나의 세대, 나의 삶’은 대한민국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가장 유의미한 청년 담론이, 진짜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세대, 젠더 그리고 공동체’ 이야기

 

 

   밀레니얼 세대, 그들은 누구일까. 흔히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아울러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라 일컫는다. 이 세대는 온라인 세계가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삶의 일부로 활용하기 시작한 세대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인 세대, 이상과 현실의 극적인 분열을 겪는 ‘환각의 세대’라 정의한다. 84년생인 나 역시 태어나 지금껏 어른들로부터 줄곧 들어왔던 말은 “너희는 뭐든지 도전하면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는데 뭐가 문제냐. 하고 싶은 게 뭐냐. 꿈이 있어야 뭐든 하지.” 같은 것들이었다. 민주화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진 조건이었고,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도 늘어났으며,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문화생활이 가능해지고 해외활동 영역까지 확대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을 좇아야 할 삶, 꿈을 좇아 마땅한 삶은 우리가 처한 현실과 심한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그 모든 꿈들이 완전히 거짓에 불과하다는 듯이, 우리가 제대로 세상 속에 발 딛고 서서 걷기도 전에 연이어 도래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이제 삶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지각변동과 같은 불안감, 위기의식, 공포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바로 우리의 아버지, 친구의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 삼촌, 이모부가 겪은 바로 그 현실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꿈에 대한 강박과 현실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분열증적인 증세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세대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환각에 시달려왔다. 저자는 그 환각의 이름을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 부른다. 우리 세대는 최악의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 이른바, 인스타그램 속의 ‘이미지’ 혹은 ‘블루보틀 현상’ 같은 것들로, 이 이미지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의 욕망’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소비’로 정체성을 드러내며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고 세상을 낫게 만드는 소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문제는 이러한 ‘환각적인’ 이미지에 제때 도달해야만 안심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이미지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아야만 박탈감을 방어할 수 있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과 이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미닝아웃meaning out’은 이러한 시대에 ‘소비’를 통해 자기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대변한다. 단순히 취향으로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정치적 이념이나 윤리적 신념에 맞추어 소비를 하는 것이다.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자기 안에 숨겨둔 주장이나 취향 등을 표출하는 ‘커밍아웃coming out’의 결합어다. 최근 SNS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신념에 따른 소비’를 드러내고 있다. / 42p

 

 

그레고리 헨더슨은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소용돌이 현상’이라는 은유를 쓴다. 이는 한국사회가 고도로 동질화되어 있고 중앙집중화되어 있으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분야들이 오직 권력의 중심을 향해 상승하고자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과거의 ‘소용돌이의 중심’이 ‘출세’나 ‘자수성가’, ‘부자 되기’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 그 소용돌이의 중심은 가장 화려한 최신의 ‘이미지’들이 되었다. / 60p

 

 

 

 

 

 

   한편,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흔히 나를 중심으로 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는 것을 ‘이중성’ 즉 ‘시소의 세계관’으로 정정함으로써, 절대적으로 의지할 단일한 신념 대신 이러한 가치관 저러한 가치관을 그때그때 시소 타듯이 무게중심을 옮기며 살아가는 유동적인 세계관을 가진 세대라 옹호한다. 그러면서도 어디에 의지해 자기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할지 모른 채 표류하는 개인들이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채 견뎌나가는 세상일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또 저출산과 비혼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우리 세대의 가치관이 ‘결혼하고 출산하고 싶다’는 지향 자체를 벗어나고 있음을 설명하며 이를 이상의 상향평준화 혹은 가치관과 욕망의 상향평준화와 연결 짓는다.

 

 

 

   우리는 소비자로 자랐고, 세상은 우리가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중요한 것은 제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훌륭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어느 때건 즉각적으로 저 ‘행복의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혼이든 육아든 그러한 이미지를 누리는 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거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의 ‘정점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지, 그 밖의 전통적인 관습들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이 바로 이러한데, 정부의 저출산과 비혼 관련 대책이라는 것이 물질적 지원만 하면 해결될 거라는 식의 방식은 청년들의 실제 마음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그러한 지향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이에 대한 섬세한 정책을 촉구하는 바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청년들의 노력을 ‘노오력’이라 조롱하고, 독서가 의무이고 강요이고 일에 가까워진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드러낸다. 온전한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태도를 수립하기 전부터 불안을 위협의 도구로 삼아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구도로 내몬 교육 현실의 허점도 지적한다. 또 기성세대는 정의에 투신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라 매도하기 바쁘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의 진영적 이익에 빠져서 싸우기 바쁘다고 환멸을 느끼는 대립의 구도를 통해 ‘세대’ 문제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고독과 박탈감, 소외의 시대에 연애는 우리를 이 세계에 안착시켜줄 통로로 상징된다.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영속하는 어떤 관계 속으로 진입하길 바란다. 나와 당신이 서로를 지켜주기를, 그러한 보호막이 이 불안한 삶을 견디게 해주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연애는 우리 시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 54p

 

 

기성세대는 정의에 투신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라 매도하기 바쁘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의 진영적 이익에 빠져서 싸우기 바쁘다고 환멸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양쪽에서 사회 문제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그것은 자기가 믿는 사회의 정의이자 자기 정체성, 신념과 존재의 문제라면, 청년세대에게는 자기의 생존이자 사다리의 문제이고, 게임의 룰이 공정한지의 문제인 것이다. / 98p

 

 

어떤 종류의 말들이, 어떤 지상명제들이, 어떤 사회적 요구나 강령들이 대세가 되고 당연한 듯 말해질 때면, 늘 그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당연히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만하지 않은 이유, 걸러내야 할 이유도 있을 것이다. ‘포기’라는 트렌드 또한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속에는 우리 삶을 위로해줄 만한 요소도 있겠지만, 우리 삶의 가장 주요한 부분들을 앗아갈 측면 또한 있을지 모른다. / 121p

 

 

 

   이렇듯 앞서 1장이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통해 ‘세대’ 문제와 극복 방법에 대해 모색해보았다면, 2장에서는 또 하나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라 할 수 있는 젠더 문제를 살펴본다. 많은 여성들이 단지 여성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면서,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 아래 남성과 여성 모두 구조의 희생자로 바라보며 양쪽을 균형 있게 살펴보려한 저자의 시도가 인상적이다. 또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병리현상인 ‘수직적 권력 구조의 문제’를 전면으로 드러낸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 각 영역의 구조적 폐쇄성과 이에 맞설 수 있는 목소리들이 더 나와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는 부분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온갖 혐오와 비난을 엄마가 감당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실, 사회의 힘에 따라 존재들을 분류(맘충)하고, 엄마들을 가장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 언제든지 혐오하거나 비난해도 좋은 위치에 놓고서 죄인으로 취급하는 오늘을 들여다보는 대목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 어쩐지 위로를 받은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욱 쓸쓸한 마음을 가눌 수 없기도 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직적 권력구조와 싸우는 것, 이것은 이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피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그렇기에 이것을 남녀의 대립 문제로 파악하여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형태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이는 그동안 공고히 구축되어온 악질적이고 폭력적이며 폐쇄적인 구조와 싸우는 일이고, 적어도 그러한 폭력의 당사자로 마음껏 권리를 누리고 있는 가해자들이 아닌 한 우리 모두의 존재와 밀접히 관련된 문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157p

 

 

결국 성별 간 갈등 문제의 핵심은 구성원을 좌절과 증오로 몰고 가는 사회 및 문화 구조 그자체 있다. 이는 정확히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해진 삶’을 지시한다. 이 불가능성, 균열되고 좌절된 삶의 문제에서 태어난 분노는 사회 모든 곳을 향하다가, 이제 양성이 서로를 증오하게끔 만들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있다.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배수진을 치고 서로를 향해 증오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낭떠러지 자체’이다. 해야 할 일 역시 그 낭떠러지에서 어떻게든 손을 잡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 185p

 

 

 

 

 

 

   끝으로 3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 주요 화두라 할 수 있는 공동체 문제를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와 편견, 분노와 증오 각종 혐오로 점철된 사회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다. 그는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당장의 선악을 구분하는 말보다는 전체의 맥락이나 거시적인 구조에 대한 생각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즉,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강물 같은 선의,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깊고 오래된 선의를 아직 믿는다.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인생을 고민하겠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선의 그 자체라는 것. 너무 뻔한 말에 불과할지라도 극복해야 할 것은 선의를 미루고 있는 현재일 뿐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반드시 써야만 한다. 어쩌면 이 시대의 모든 청년들은 저마다의 글을, 소설을 쓰고 있다. 다만 청년들은 홀로 남아 글을 쓰는 골방의 유령들처럼, 각자의 삶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하고 쓰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를, 우리를,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삶의 전제인 동시에 최후 수단이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맺어주고 이어주며 사로의 미묘한 경계를 보듬어줄 심성이다. 때로는 나의 권리를 후퇴시키며 타자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하고, 때로는 나와 우리의 권리를 보다 앞세워 잘못된 권리와 싸울 필요도 있다. 그러나 각자가 각자의 권리의 성벽을 치고, 그 성벽에 누가 닿기라도 하면 신경증적으로 몰아내고 방어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심성의 관계’ 혹은 ‘심성의 사회’는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방향이 그러한 심성이 불가능한 사회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타자에 대한 공감, 타자에 대한 허용, 자신의 권리에서 한발 물러나기, 이런 것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성’을 끊임없이 강조할 필요가 있다. / 267p

 

 

그나마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위용을 발휘하던 시대도 지나 가족이란 그 힘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가족이 주는 순기능은 사라지고, 가족 내에서 온통 트라우마를 입고 쫓겨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또 다른 야생을 만들고, 가족의 해체는 흔해졌다. 그런데도 사회는 가족을 대체할 만한 방책을 거의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은 붕괴되어가는데 사회는 여전히 온갖 책임을 가족에게만 떠넘긴다. 각자도생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책임의식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 314p

 

 

 

 

 

 

   84년생인 내가 바라본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최근의 여러 책 중에서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절실하고도 실존적인 문제들에 가장 밀착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세대를 관통하고 있는 욕망과 체념의 정서를 가감 없이, 날카롭게 드러내면서도 선의를 잃지 않고 공동체를 향한 연대를 놓지 말자고 독려하는 말에 담긴 함의가 따뜻하다. 이제 기성세대의 문턱 앞에 다다를 날이 머지않은 까닭에, 나는 내 아이가 이끌고 갈 미래 세대에 앞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미안해지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시대가 그런 걸 어쩌겠느냐고, 너는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어른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우리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 아이의 시대에까지 가 닿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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