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번에 끝내는 세계사 - 암기하지 않아도 읽기만 해도 흐름이 잡히는
시마자키 스스무 지음, 최미숙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1월
평점 :

세계사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에게 제안하는 특별한 세계사 수업!
주요 키워드를 통해 접근하다보면 어느 새 세계사 전반을 통달하게 되는 책!
미국이 지난 3일 새벽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란군의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공습 살해하자,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이 주둔해 있던 군사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속에 이라크가 대리 전쟁터의 형국이 되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한편, 이라크는 이라크대로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미국은 그럴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한 미군 철수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과 같은 민감한 현안을 떠안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비록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는 하나 그저 남의 나라 일처럼 눈감고 볼 일은 아닌 까닭이다.
이제 우리는 좋든 싫든 세계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수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이 주둔해 있던 군사기지에 미사일을 공격한 날, 휴대폰에 해당 뉴스가 속보로 도착했을 때 평소 스팸문자를 넘겨버리듯 읽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어째서 이란이 미군의 군사기지에 미사일을 공격한 것인지, 왜 그것이 이라크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일인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뉴스였을 테니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중동 내의 갈등은 워낙 복잡한 세계사가 얽히고설켜있어 감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살펴봐야 할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세계사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쉬울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에 끝내는 세계사』는 그간 세계사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에게 특별한 학습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역별로 구분해 시계열로 가르치던 기존의 세계사 수업 방식과는 달리 특정 주제에 맞춰 가로지르듯 세계사를 통독하는 이 책의 방식은 세계사 공략을 위한 새로운 첫걸음에 딱 걸맞은 책이 되어 줄 것이다.
7가지의 맥락으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읽어나가다
『한번에 끝내는 세계사』는 지도자, 경제, 종교, 지정학, 군사, 기후, 상품과 같은 7가지테마를 선정해 각각을 ‘세계의 역사’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즉, 7가지 테마를 통해 시대적인 배경과 핵심을 동시에 읽어냄으로써 세계사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첫 장인 ‘지도자’ 편에서는 중국 사회의 기틀을 세운 고대 중국의 황제와 로마제국의 황제, 위대한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초창기의 지도자,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몽골의 칭기즈 칸 그리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같이 대제국의 토대를 쌓은 지도자, 20세기의 독재자 등 지도자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살펴본다.
나폴레옹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연승가도를 달렸다. 막강한 나폴레옹 군대의 저력은 나폴레옹의 뛰어난 리더십과 국민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일치단결한 징병 부대에 있었다. 전력의 과반수를 용병에 의존하던 당시 유럽 사회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매우 특이한 존재였다.
국민이라는 개념도 국왕의 신민이나 귀족의 영주민을 대신하여 프랑스인 모두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프랑스군의 성공을 목격하고 나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국민의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 ‘지도자’ 편 중에서 35p
중국에서 새 왕조를 창건할 때나 절대주의 전성기의 서구에서는 황제나 국왕이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에 등장한 독재자들의 독재 권력은 전근대의 것과 크게 달랐다.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일시적이지만 대중을 열광시켰다는 것이다. 이념으로 따지자면 민족주의나 공산주의 둘 중 하나인데,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공산주의는 사상이 지지를 받았다기보다 구국의 영웅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우연이 촉진된 면이 더 강하다. / ‘지도자’ 편 중에서 51p


2장의 주제는 경제다. 소금과 철의 전매를 실시해 국가 재정의 기둥이자 통치 체제로 편입시킨 한의 무제, 지폐가 화폐의 주역이 되는 과정, 인도양을 중심으로 한 서구 열강의 진출 과정, 유럽 국가들의 노예 무역과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 세계 대공황 등에 대해 살펴본다. 얼마 전에 읽은 『이덕일의 한국통사』에 따르면 조공이 제후국이 일방적으로 물품을 바치는 관계가 아니라 황제국이 회사로 답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국가 간의 실리외교였다는 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적지 않게 놀랐었는데, 이 책에서도 조공무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국은 황제의 덕을 공경하며 공물을 가져온 다른 나라의 군주 내지는 사신에게 회사의 형식으로 은혜를 베풀고 작호를 수여한다. 여기에서 회사란 조공의 대가로 주는 답례품을 의미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책봉 체제가 세계사에서 특이한 것은 덕이 관건이 되기 때문에 속국보다 중주국의 부담이 크다는 점’이었다. 공물을 받은 덕이 있는 종주국 입장에서는 받은 공물에 대한 등가 교환은 있을 수 없고, 최소한 두 배는 채워서 보내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하니, 조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달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15세기 말 스페인으로부터 유대인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기도 했는데, 유대인의 막강한 자금력이 네덜란드의 성장에 기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연구자 중에는 네덜란드를 세계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헤게모니’의 사전적 의미는 우두머리의 자리에서 전체를 이끌거나 주동할 수 있는 권력이나 주도권을 뜻한다. 즉 헤게모니 국가는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아 병합하는 것이 아니라, 물류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하는 방식으로 수고와 비용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많은 국가나 지역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국가를 뜻한다. / ‘경제’ 편 중에서 78p
3장의 주제는 종교다. 세계사라는 무대는 그야말로 종교에 웃고, 종교에 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여기서는 유대교의 차별과 박해가 독특한 규율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관점에서부터 우리의 역사와 의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불교와 유교 등에 대해 살펴본다. 개인적으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웠는데, 책에서 설명하는 것에 좀 더 보충해서 공부를 해본다면 그간 어려워했던 점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여 큰 도움이 되었다.
유대교의 교리는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어서는 안 된다, 규정된 도살 방법에 따르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돼지고기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등 식사 규율에 엄격한 편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안식일에 관한 규정인데, 토요일에는 절대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중략) 이런 독특한 규율 때문에 유대교는 주위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고 차별이나 박해를 당하는 일도 일상다반사였다. 그 때문에 중세에는 교회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 또 근대 이후에는 내셔널리즘 고양을 위한 희생물로 이용되는 일이 많았다. 특히 나치 정권에 의한 홀로코스트 대학살은 그 극치였다. / ‘종교’ 편 중에서 96p
유교는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적합했고, 이런 유교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으면 정부 입장에서도 국민을 통치하기에 용이했다. 명나라 태조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라’ 등 농민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가르침을 유교 사상에서 골라 ‘육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장려했다. 한편 도교의 교리는 현세 이익적인 특징이 있다. 특히 재물이나 소중한 자식을 갖도록 도와 주거나 병을 낫게 해주는 신이 인기가 많았는데, 돈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큰 병 없이 많은 자손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삼는 당대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다. / ‘종교’ 편 중에서 104p
앞에서 서술했듯이 구교, 신교라는 번역 용어를 보면, 자칫 프로테스탄트가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느끼기 쉬운데 프로테스탄트의 ‘성서 중심주의’, ‘만인 사제론(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께 직접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로, 개신교의 신학 개념이다-옮긴이)’ 원리에는 위험한 함정이 따라 붙는다. 성서의 해석이 개인에게 맡겨지고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이 컬트 교단(유사 종교 혹은 사이비 종교)을 낳는 토양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교황과 공회의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인 조직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일탈이 심한 세력은 이단으로 배제 내지는 파문 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에는 그러한 제동 장치가 없다. / ‘종교’ 편 중에서 122p


4장인 지정학 편에서는 세계 4대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살펴보고, 세계의 주요 산맥 그리고 해협, 운하 등과 같은 지정학적 요소들이 세계사에 어떠한 기능으로 작용했는지를 훑어본다. 이어 5장 군사 편에서는 기마전술이나 화약 같은 무기 등이 전쟁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변용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백년 전쟁이나 제1차 세계 대전, 걸프 전쟁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무엇으로 비롯되었으며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소개하기도 한다. 비록 백년전쟁은 프랑스군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귀족의 자존심 때문에 패배를 답습한 프랑스군의 귀족의식에 얽힌 이야기 등은 또 다른 이야기적인 요소로 재미있게 읽혔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쭉 나열하는 게 아니라 책 곳곳에는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세계사에 접근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노력이 담겨 있다.
영국은 처음에 수에즈운하가 갖는 의미를 중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개통하고 보니 이용하는 선박의 과반수가 영국 국적임을 깨닫자 입장을 180도 전환했다.
영국은 때마침 재정난에 허덕이던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주식의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의 영국 수상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의회에 상의하고 절차를 밟다 보면 기회를 놓칠 수 있겠다고 판단, 일단 유대계 재벌인 로스차일드 가문에게서 긴급 융자를 받아 그 돈으로 수에즈운하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 ‘지정학’ 편 중에서 156p
그 어떤 노력도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순리를 생각하게 하는 6장 기후 편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연재해와 이상기후가 역사상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자세와 미래의 자연환경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라 큰 의미가 있다. 끝으로 마지막 장에서는 비단, 차, 도자기, 향신료, 금 등의 상품이 어떤 방식으로 동서양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또 하나로 연결하기도 하는지 살펴본다.
마야 문명의 쇠퇴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적일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파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기후 변동을 축으로 한 복합적 요인이 가장 타당성이 있다. 8세기 후반부터 40년간 서서히 건조화가 진행되다가, 810년 무렵을 경계로 상황이 급변하여 9년간 여섯 차례나 심한 가뭄이 덮쳤다. 그 후 비교적 평온한 시기가 42년간 이어지다가 3년 동안 비가 적게 내렸다. 다시 별 탈 없는 시기가 47년간 이어졌고, 이후 910년부터 6년간 세 차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다가 고전기 마야 문명은 종언을 맞는다. / ‘기후’ 편 중에서 213p
영국은 인도의 면직물, 중국의 차와 도자기 등을 계속 수입해야 했는데, 여기에서 수출할 만한 자국 상품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였다.
모직물 제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기후가 다른 인도나 중국에서는 수요가 전혀 없어서,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은을 대금으로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은의 일방적인 유출이 계속된다면 국고의 파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에 아편을 밀매하기 시작했다. / ‘상품’ 편 중에서 256p



이렇듯 7가지 테마를 통해 세계사를 가로지르듯 살펴본 책은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되었고 또 거대한 흐름 앞에서 흥하고 무너져갔는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도였다. 다만 현미경 보듯 세밀한 부분까지 설명하지 않는 비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가 채워나가야 할 숙제로 보인다. 사전 지식이 없다면 어렵게 읽혀질 만한 부분도 다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대한 세계사를 이렇게도 공부할 수 있구나, 새로운 접근법에 따른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특히 책의 앞장에 부록으로 수록된 간추린 연표는 동시대에 지역별로 어떤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니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