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한국통사 - 다시 찾는 7,000년 우리 역사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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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의 오류와 역사왜곡에 대한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다!

여러 번 거듭 읽어봐도 부족하지 않을 우리 역사 바로 알기를 위한 역사책!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간 존 카터 코벨 교수는 무엇 때문에 한국의 학계는 그렇게 소극적인가?... 남한의 젊은 학도들이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고대미술이 모두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남한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이를 거꾸로 설명하고 있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덕일의 한국통사의 저자 이덕일 역시 우리의 역사는 중화 사대주의 관점과 친일 식민사관이 혼재된 노예의 역사관이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현재의 남한 강단사학의 역사 서술 태도의 문제점을 강조한다. 일본인과 중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서술하면서 이를 보편성이라는 말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조선상고사에서 단재 신채호는 지금까지 조선에 조선사라고 부를 수 있는 조선사가 있었는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라고 했을까.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그가 안다면 지하에서도 탄식하고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국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역사학자로서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던 이덕일의 신작이다. 오랫동안 한국사의 통념에 정면 도전하는 역사서와 강단사학의 주류를 이루는 식민사학을 해부하는 책들을 펴낸 까닭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반대파와 찬성파가 팽팽하게 맞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노론사학이 신민사학과 한몸이 되어 횡행하고, 중국의 역사공정에 의해 실재했던 우리 역사마저 축소되는 현실 앞에서 대중에게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는 시각을 전달하려는 그의 노력이 더욱 의미 있어 보인다. 이덕일의 한국통사는 바로 서기전 4,500년경에 성립했던 홍산문화에서 1910년 대한제국 멸망기까지 식민사관과 소중화주의에 의해 숨겨지고 뒤틀려 있던 역사를 바로잡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사를 다시 찾아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 집대성된 역작이다. 오히려 한 권으로 집약된 것만으로는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고증과 서술, 300여 컷에 달하는 화려하고도 정밀한 도판으로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혹은 국사책 속의 역사관에 갇혀 있던 우리의 지식에 경종을 울린다.

 

 

 

   저자 이덕일이 지적하는 중화 사대주의와 친일 시민사학의 문제점은 국조단군 부인설’, ‘낙랑군=평양설’, ‘임나=가야설로 축약된다.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조선 총독부의 낙랑군=평양설은 이병도·이기백이 주장한 낙랑군=대동강설과 같은 내용이다. 가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주장은 임나일본부설로서 다른 말로 임나=가야설이라고도 한다. 책은 첫 장에서부터 이와 같은 주장에 어떤 오류가 있고 어디까지 왜곡되어 있는지를 해부해봄으로써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각종 사료와 고증을 통해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 다만,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민족 형성의 중심을 이루는 요하문명과 홍산문화를 거쳐 고조선과 열국시대에 이르기까지를 다룬 1장과 2장은 다양한 견해 속에서 가장 타당한 근거를 따라가는 과정인 까닭에 읽는 속도도 더디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는 그만큼 중화 사대주의와 친일 시민사학 중심이었던 우리의 국사 학습이 얼마나 모호하고 축소되어 있었던 것인지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고조선은 중국의 제후국과 같은 거수국을 거느린 황제국가였다. 그래서 황제의 계승자를 태자라고 청했다. 또한 비왕 장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조선 국왕 아래 여러 왕들과 여러 재상들이 있었다. 고조선은 우수한 청동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조선의 다뉴세문경은 21센티미터 지름의 크기에 13,000개의 원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현대 과학기술로도 재연하기 어려운 것이다. 고조선인들의 청동제작 수준은 청동기를 사용하던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고조선인들은 우수한 청동문화를 철기 문화로 발전시켜서 서기전 5세기경에 이미 철기사용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간 국사교과서에서 연나라에서 온 위만이 철기 문화를 가져왔다고 서술한 것은 일제가 만든 한국사 정체성론에 따라서 우리의 독자적인 철기 문화 생산능력을 부인하기 위함이다. / 61p

  

평양을 지금의 평양으로 보든, 민족사학계 일부의 견해대로 요녕성 요양으로 보든, 북한학계처럼 요녕성 봉황성으로 보든 이 명령은 공수부대가 아니면 완수할 수 없는 명령이다. 수나라 육군이 어떻게 황해도나 강원도로 먼저 왔다가 북상해서 평양이나 요양으로 간다는 말인가? 그래서 일찍이 성호 이익,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 등이 모두 이 진격로를 근거로 한사군은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본 것이다. / 176p

  

 

  이 중 임나=가야설이 어불성설인 이유는 무엇보다 명확하다. 저자는 그간 임나 강역이 일본인들에 의해 계속 확대되어간 것을 예로 꼽는다. 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하면서 임나=가라는 지금의 김해 일대로 한정되었던 것이 총독부의 이마니시 류는 김해는 남가라라면서 임나일본부를 다스리는 치소는 경북 고령에 있었다고 하여 경북까지 확대시켰다. 또 조선총독부와 경성제대에서 근무했던 스에마츠 야스카즈는 임나가 경상남북도는 물론 충청도 일부와 전라남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확대시켰을 정도였다. 이렇듯 학자들에 따라서 임나 강역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는 사실은 임나가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사료가 없다는 고백에 다름 아닐까.

 

 

 

   더욱이 저자는 야마토왜가 백제의 제후국이었다는 사실까지 일본서기에서 찾는다. 일본서기<서명> ‘11(639)’조에 따르면 큰 궁전은 백제궁, 그 근처를 흐르는 강은 백제천이라고 불렀고, 왜왕의 빈소를 백제대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71년 발견된 무령왕릉지석은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으로 썼다. 또한 그 관을 짠 목재는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일본산 적송이었다. 황제의 죽음에 제후국에서 관재를 공납한 것이다. 이는 야마토왜가 백제의 제후국이었음을 증명하는 바이다. 메이지시대 일본인들은 이를 거꾸로 뒤집어 왜를 백제의 상국으로 만드는 역사왜곡을 단행했는데, 이렇듯 명백한 근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남한 강단사학은 아직도 그들의 논리에 따라 역사왜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일본 열도의 조선식 산성_

(중략) 백강 전투에서 패한 백제인들은 신당연합군이 야마토왜까지 공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마도와 일기도(이키시마)에 조선식 산성을 축조해 결사대를 배치하고, 이 두 성이 함락당하면 규슈의 후쿠오카 등에서 다시 결전을 하고, 이 성들도 함락당하면 수도인 나라 부근에서 결전하려 했다. 패전한 백제인들이 일본 열도 각지에 성을 쌓았다는 것은 야마토왜가 백제의 제후국(담로)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신당연합군이 야마토왜까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의 고안성 등이 701년에 폐성된 것을 비롯해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열도 곳곳에 남아 있는 조선식 산성과 신롱석식 산성은 본국을 빼앗긴 백제인들의 한과 집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적들이다. / 189p

  

 

  <이덕일의 한국통사>를 쭉 읽다보면 흥망과 성쇠의 역사적 순간을 곧잘 마주하게 된다. 특히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국력을 크게 떨쳤던 발해의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11대 대이진부터는 왕의 시호조차 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고구려의 후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고구려의 옛 강역을 상당 부분 회복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등 천자의 제국으로 우뚝 서려고 노력했음에도, 신라 중신 사고에 젖어 조선 후기 유득공이 남북국 시대라는 인식으로 발해고를 쓰기 전까지는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지도 못했다는 것은 더욱 통탄할 만한 일이다.

 

 

 

   세종 역시 분명 우리 역사에 있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성군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에게도 명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많이 않을 것이다. 조선의 태종이 민간에서 태어나 온갖 신선스런 경험 끝에 왕위에 오른 데 비해서 세종 이도는 태생부터 왕실의 일원이었던 까닭에 신분제를 하늘의 법칙으로 여기는 그릇된 시각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세종은 나라는 군주와 사대부가 함께 다스리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고, 수령고소금지법(역모와 불법살인이 아닌 한 수령을 고소할 수 없다)과 부왕의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종부법을 다시 종모법으로 되돌림으로써 시대에 역행하는 신분제를 지속하게 한 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이 외에도 책은 우리가 기존에 국사교과서나 다른 역사서를 통해 익히 배우고 알고 있었던 역사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 사료와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합당한 주장을 펼친다. 이를 테면 진평왕의 셋째공주이자 서동요로 잘 알려진 선화공주가 백제의 무왕에게 큰 절을 지어달라고 요청하여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의 미륵사가 실은 익산 지역 호족 사택씨의 딸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진평왕의 큰 딸 덕만이 27대 선덕여왕이고, 둘째 천명은 태종무열왕의 어머니라는 것과 달리 셋째 딸이라던 선화공주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오지도 않는다.

 

 

 

   고종 23년부터 38년까지 16년에 걸쳐 판각된 팔만대장경에 대해 우리는 그간 이규보가 <대장각판군신기고문>에 몽골의 침략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판각했다고 쓴 것 때문에 그렇게 해석해온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민영규 교수가 <고려대장경 신탐>에서 무신정권이 불교계를 포용하기 위해 대규모 불사를 조직한 것으로 본 것이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현종 때 만든 초조대장경이 고종 19(1232) 몽골군의 침략 때 붙타버리자 다시 각판한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여기에 큰 힘을 보탠 것이 집권자였던 최우였다. , 최우는 무신정권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불교계를 포용하기 위해 대장경을 판각했다는 저자의 말에 더욱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이이가 주장했다던 십만양병설의 경우, 김장생이 스승 이이를 임란을 예견한 충신으로 떠받들고 남인 여수 류성룡을 격하시키려는 악의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는 것 또한 그러하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이를 조선 역사상 1,000년 내 제1대 사건이라면서 고려 전통의 낭·불 양가 대 유가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라고 규정지었다. 묘청의 봉기를 고려 전통의 자주적 낭불사상 대 사대주의 유가의 싸움으로 본 것은 탁월한 해석이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에서 사대당이 승리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대주의 사상의 극심한 폐해의 뿌리를 이 싸움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 250p

  

조공과 회사_

우리는 고려와 조선이 명나라에 일방적인 사대를 하고 조공품을 바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조공이란 제후국이 황제국에게 일방적으로 바치는 진상품이 아니었다. 제후국이 조공을 제공하면 황제국은 회사로 답해야 했다. 조공은 일방적으로 물품을 바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물품을 주고받는 상호적인 관계였다. 조공이란 또 일종의 국제무역행위였다. 명 태조 주원장은 공민왕 22(1373) 고려에 국서를 보내 3년에 한 번 조빙하라는 31공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고려에서 1년에 세 번 조빙하겠다며 13공을 요구했다. 명나라는 고려의 사신들을 일종의 간자로 보아 3년에 한 번만 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고려는 조공 무역의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1년에 세 번 가겠다고 요청했던 것이다. (중략) 형식적으로는 명나라를 정점으로 하는 조공체제였지만 내용적으로 국가 간 무역의 이익을 차지했던 실리외교였다. / 309p

  

훈민정음의 이런 장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게 퇴보했는데, 일제는 1912년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만들면서 아래아를 폐지하고 받침에서도 한 글자 받침 , , , , , , , 일곱 개와 두 글자 받침 ?, ?, ?세 개 등 모두 열 가지만 인정했으며, 설음 자모 , 등과 , , , 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등 훈민정음의 발음체계를 크게 제한했다.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언문철자법을 만들면서 표현 가능한 발음을 대폭 제한했고, 여기에 ·이 어두에 오면 ‘o’으로 발음하게 한 두음법칙 같은 비언어적 규제가 더해지면서 우리 발음체계가 크게 퇴화했다. / 341p

 

 

 

 

  

   신채호는 역사를 아와 비아와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정치가이자 역사였던 양계초는 학문의 가장 크고,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며, 국민의 밝은 거울이고,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했다. 연구성과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 역사학자들은 1963년경까지 일제 식민사관의 주요 이론구조를 해체하고 자국의 관점으로 보는 새로운 역사관을 확립시켰다. 중국은 자국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역사 서술의 확고한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광복 후 70여 년이 훨씬 넘도록 신민사학이 여전히 주류로 행세할 정도로 친일 카르텔은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는 순수한 고대사 논쟁이 아니라 첨예한 현대사가 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견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내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만큼 철저히 지배층의 논리에 왜곡당하고 이용당해왔던 역사가, 백성들의 삶이 뼈아프게 느껴진 까닭이다. 처음에 이 책을 펼쳤을 때만 하더라도 마치 국사 공부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국사란 암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흐름으로 흘러왔고 또 그것이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또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소 두터운 감이 있어서 읽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있다면 꼭 이 책만큼은 읽어보시라 추천을 드리고 싶다. 한 번이 아니라 거듭 또 거듭 읽어도 부족함이 없을 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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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간호사 - 가벼운 마음도, 대단한 사명감도 아니지만
간호사 요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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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도, 대단한 사명감도 아니지만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

 

 

   아이를 키우다보면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병원을 부득이하게도 자주 가게 된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쯤 되었을 무렵, 모세기관지염으로 인해 병원에 사흘 동안 입원을 했다. 꼭 정확히 1년이 지난 그 다음 해에도 같은 이유로 입원을 해야 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다 보면 수시로 수액을 체크하고, 주사를 놓고, 약을 가져다주며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는 건 간호사 선생님들이었다. 출산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낳는 과정 내내 옆에서 응원해주고, 아이를 수월하게 낳을 수 있게 도와주고 마지막까지 고생하셨다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준 이들도 그들이었다. 결코 의사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다. 병원 곳곳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환자의 상태와 안부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크하는 것도 그들인데, 생각보다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인 처우와 예우가 부족한 듯해서다.

 

 

 

   나만 하더라도 주변에 간호사인 지인이 여럿 되는데, 그들은 늘 잦은 근무시간 변경과 3교대 근무, 엄격한 병원 내의 위계질서와 항상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몸에 긴장이 바짝 서있다. 그나마 개인 병원에서 근무하는 다른 친구는 일은 편한데, 함께 일하는 수간호사 선생님 때문에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이 한 사람 때문에 간호사들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원장이 쉽게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일을 잘하기 때문이란다. 인간의 생과 사를 다투는 이 위험천만한 현장에서도 이렇게 복잡한 속내는 존재하기 마련인가보다. 겉으로 보기엔 의사나 간호사하면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가치 있는 직업이지만, 이렇게 실상을 들여다보면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 웬만한 멘탈로는 버티지 못할 정도로 ‘극한 직업’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간호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어느 덧 대학 병원 5년 차 간호사인 그녀. 왜 간호사가 되고자 했는지 뚜렷한 이유가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간호사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병원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어려운 근무 환경을 버텨낸 자신의 이야기가 신입 간호사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며 『어쩌다 간호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쓰고 그린 간호사의 일상은 드라마나 영화 속의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이른바 ‘격공’을 불러일으킬 만큼 리얼해서 간호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전수전 다 겪은 엄격한 선배 간호사에 수시로 콜 벨을 눌러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는 할아버지 환자는 물론, 그만 둬 버릴까 하루에도 수십 번 자괴감에 허덕이는 간호사의 시선이 실감나게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직업에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즐기면서 부담 없이 일하면 되지 않을까? 보람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하지만 병원은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보다 더 큰 걸 요구하고, 숨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부담 없이 일할 수는 없다. 그러니 보람, 그거라도 있어야 버틸 것 같은데…. / 43p

 

 

지켜야 할 선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고 안다고 해서 넘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고 나를 채근해보지만 그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차가워져야 하나 싶어 회의감이 든다. 익숙해지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영영 풀 수 없는 문제 같다. / 129p

 

 

 

 

 

 

 

   책 속의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간호사들의 짠내 나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근무환경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간호사가 아니어도 직장 생활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이른바 기승전 혼남이라고 할 수 있는 ‘태움(직장내에서의 갈굼)’을 비롯하여 기존 업무 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일일이 병원 내 물품의 개수까지 하나하나 체크해야 하는 것하며 ‘환타(환자 탄다)’나 ‘떡 먹으면 떡친다(일이 많고 힘들다)’는 그들만의 언어까지. 덕분에 한편의 시트콤까지 재미있으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한 그들의 사정에 간호사들의 노고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아, 다음에 또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그때는 수액을 걸어놓는 폴대는 항상 제자리에 두고, 환타나 떡 선물은 하지 않겠노라는 다짐도 하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대단하고도 투철한 직업정신이 있어서라기보다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어쩌다 보니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매일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의심하고, 또 다른 길은 없는지 둘러보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제자리를 지키기로 마음먹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일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이 굴러가고 유지되는 것이다. 더 이상 간호사가 된 뚜렷한 계기나 이유가 떠오르지 않지만 ‘어쩌다’ 간호사가 되어 ‘어쨌든’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처럼 말이다. 비록 간호사의 일상과 환경을 다룬 이야기기는 하지만 오늘도 최선을 다해 어디에선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태우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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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 '글밥' 먹은 지 10년째, 내 글을 쓰자 인생이 달라졌다
이하루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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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게만 느껴졌던 내 일상을 글로 쓰는 순간, 쓸 만한 삶이 되었다!

글로 쓰일 인생은 따로 있다고, 글 쓰는 재주는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 권하고픈 ‘쓰는’ 삶의 즐거움!

 

 

   “이런 것도 소설이라 할 수 있나?”

   문예창작학과 선배들이 주도하는 글쓰기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나의 소설은 난사 수준의 총질을 당하고 말았다. 충격적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야금야금 팬픽을 쓰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나는 남들 공부하는 고3 때도 몰래 소설을 써 연재를 하고 마침내 연애소설이라는 장르의 책 두 권을 출간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그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기 위해 입학한 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이 시작도 되기 전에 학과 선배들을 알게 되었고, 글을 써봤다는 자부심에 덜컥 동아리 입회 첫 날에 소설을 써 발표했다가 소설 같지도 않은 걸 써왔다고 대차게 까인 것이다. 여긴, 그러니까 정통 문학을 하는 곳이지 장르 소설을 쓰는 곳이 아니었던 거다. 이때의 충격으로 나는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내가 당신들 보다 더 잘 쓴다는 걸 증명해보이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온갖 독설로 수업 시간을 겨울왕국 급으로 만들어버리는 소설가이자 소설 창작 전공 교수님에게서 “너 글 좀 써 봤지?”와 같은 칭찬을 들으며 제대로 눈도장을 찍어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면 참 통쾌하고 지금쯤 번듯한 소설가라도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사실 나는 그 이후로 문학이라는 것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글을 쓰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글이란 게 드라마 형식의 장르소설인데, 학교에서는 최대한 정통 문학에 가까운 소설을 써야한다고 배우고 있었으니, 이내 글은 정체성과 함께 힘을 잃어갔다. 그때부터 급격히 글을 쓰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졸업을 한 이후로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다. 책이 좋아서 출판사를 다니고, 서점에서 근무하며 파는 일도 해보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마치 봉인이라도 한 것처럼 글쓰기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다 다시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보기 시작한 건, 첫째 아이를 낳고 3년이 지난 뒤였다. 육아 외에는 이렇다 할 취미도, 적당한 스트레스 해소법도 찾지 못하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우연히 한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읽고 지원했다가 첫 시도 만에 덜컥 선정이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서평단은 소설책만 읽던 지독한 책편식가인 나를 다양한 장르의 책으로 인도해주었고, 특정 날짜까지 서평을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은 오히려 어떻게든 글을 쓰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작품을 쓰듯 잘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책을 읽고 난 뒤의 진솔한 감상과 견해를 쓰면 되었기에 부담을 덜고 나니 뜻밖에도 글을 쓰는 게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요즘 나의 남편은 언젠가 내가 다시 자신의 글을 쓸 수 있기를, 또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겠노라는 말을 곧잘 한다. 과연 내가 예전처럼 나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상상’하고 ‘창작’하는 즐거움으로 글을 쓰던 사람이라서, 지난 시절만큼 예민한 감수성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나이도 지났고 이렇다 할 글감이나 영감도 떠오르지 않다보니 다시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쉬이 들지 않는 까닭이다. 이렇다 할 일이라곤 없이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고, 집안일만 하는 반복된 이 삶에 무슨 ‘쓸 만한 일’이 있을까 해서 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를 읽으면서 나와 같은 84년생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쭉 쓰는 일을 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글은 써본 적이 없던 저자 역시 이런 질문과 마주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운을 뗀다. “‘쓸 만한 삶’이 어떤 삶이 궁금해졌다. 어른이 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답을 찾았다. 쓸 만한 삶이란 쓰는 삶이다”라고. 세상 어디에도 그냥 시시한 삶은 없다고, 그저 아직 쓰지 못한 삶이 있을 뿐이라고.

 

 

 

 

 

 

 

쓰는 순간, 나의 하루는 쓸 만한 삶이 된다

 

 

   지난 해,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둘러보면 그 어느 해보다 에세이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에세이를 많이 읽은 해로 기억될 정도다. 그만큼 개인의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로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뭐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들도 많지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의 저자 역시 자신의 책을 통해 ‘시시한 일상도 써보면 새롭다’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 후로 꾸준히 자신에게 실망해온 사람, 세상에서 내 삶이 제일 시시해 보이는 사람, 글로 쓰일 삶은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하루도 에세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상처를 이겨낼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다. / 114p   

 

 

 

   그녀는 이제 ‘고민’과 ‘글쓰기’는 한 몸이라고 말한다. 요즘 많은 글쓰기 강좌에서도 ‘잘 쓰는 것’이 아닌 ‘잘 살기 위해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과제 역시 대부분 나의 고민과 상처를 드러내게 만드는 주제를 준다고 한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저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패했던 분야가 있지 마련이고, 또 그런 경험을 하고도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가치 있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가감 없이 글로 옮겨보자고 제안한다. 누가 내 글을 읽겠어, 하고 단언하지 말기를.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텍스트가 될 테니 말이다.

 

 

 

   책은 가족, 직장, 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소소한 일상들을 다룬 23편의 에세이와 그 에세이를 쓰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글쓰기 팁 23편이 번갈아 구성되어 있다. ‘힘 빼고 편안하게 쓰는 법’, ‘첫 문장에 쫄지 말 것’, ‘요약하는 글쓰기’, ‘초고는 밤에, 퇴고는 낮에’ 등 글쓰기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알려주려는 게 목적이 아닌, 처음으로 에세이를 써보고자 하는 이들을 독려하는 의미로 자신의 경험담에서 비롯된 팁을 알려준다. 덕분에 ‘이 정도라도 괜찮다면, 나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한 번쯤 내 기록을 남겨보고 싶은 사람, 글재주를 타고나진 않았지만 어쨌든 쓰고 싶은 사람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많이 읽고 쓰는 노력이 아니다. ‘내게 잘 맞는 글쓰기 방법’을 찾는 것이다.

- 나만 갖고 있는 글감

-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쓰는 방법

- 내가 잘 쓸 수 있는 장르

내가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환경과 방식이 분명히 있다. / 26p

 

 

나는 글쓰기 초보자에게 ‘첫 문장’을 쓰느라 힘 빼지 말라고 권한다.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으면 첫 문장이 아무리 좋아도 잘 읽히지 않는다. 때문에 첫 문장을 고민할 에너지로 ‘이야기를 끝내는 경험’을 늘리라고 하고 싶다. 글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퇴고를 반복할수록 글은 반듯해지고, 문장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수록 빛난다. / 46p

 

 

 

 

 

 

 

  도무지 특별한 일이 일어날 리 없는 이 평범한 일상에도 글감이랄 게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 문득 그녀가 쓴 ‘친해지고 싶었어, 이 동네랑’ 편이 떠올랐다. “한겨울에 수영? 너 분명 하루 이틀 나가고 안 나간다!” 고 장담하던 남편의 말을 뒤로 하고, 그녀는 집과 5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평소 동네에 정을 붙이고 사는 일에 인색했던 그녀는 두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할 때는 꼭 먹고 자는 일 외에 다른 것을 해보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게 수영장 등록이 될 줄은 몰랐지만. 수영 첫날, 쭈뼛쭈뼛 등록한 반에서는 또래 여자의 오지랖 섞인 뜨거운 입김에 놀라고, 늘어난 수강생으로 인해 대기 시간도 길어져서 혼잡하기도 했지만, 샤워장에서 손녀뻘 되는 젊은 아가씨와 할머님이 나누는 대화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바로 그때, 그녀는 동네가 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 역시 신혼 생활을 했던 집을 떠나 맞은편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참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워낙 상가가 많은 골목이라 뜨내기 손님들도 많고, 집 주차장에 상가 손님들이 주차를 해서 실랑이를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 괜히 여기로 이사를 했나 이내 후회가 들 지경이었다. 아마도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끝내 이곳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네 산책을 좋아하는 첫째 아이가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어느 새부턴가 인근 상가를 비롯해 노점상 할머니들까지 죄다 알아보고 꼭 한 마디씩을 건네주셨다. 요구르트 판매원인 이모님은 저 멀리서도 아이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시고, 과일 가게 할아버지는 꼭 귤 하나씩 쥐어주셨으며, 손에 우유를 쥐고 걸어가기만 해도 노점상 할머니들은 부러 아까운 비닐 봉투를 꺼내 넣어가라고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덕분에 나는 동네를 나가기만 해도 인사를 나눌 사람이 생겼고, 안부를 건넬 어르신들이 생겼다.

 

 

 

   그러다 지난 주말, 둘째 아이가 잠든 사이에 첫째 아이가 사달라던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부랴부랴 편의점에 나섰다가 일요일인데도 나와 장사를 하고 계시던 할머니와 마주치고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어쩐지 아쉬워서 아이의 아이스크림을 계산하면서 따뜻하게 데워진 두유 한 병도 함께 사서 할머니께 건네 드렸다. 그때 민망해하면서도 연신 고마워하는 어르신의 얼굴을 보며 아, 이런 게 동네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정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간 우리 아이에게 건네주셨던 다정한 눈길과 한 마디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비하면 참 약소한 것이지만 말이다.

 

 

 

머지않아 ‘정착’이란 명사는 한 곳에 견고하게 머문 시간이 아닌 내 삶이 오간 모든 장소를 떠올릴 때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 55p

 

 

단점을 찾아내려는 시선을 유지하면 자칫 부정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요소를 예민하게 느낀다는 점에서, 변화를 만드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그럴듯한 문장을 나열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를 깨닫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완벽한 문장이 아닌데도 사랑받는 글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가 깃든 경우가 많다. / 57p

 

 

에세이는 작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르다. 화려한 문장으로 자신을 감추는 것보다 깨닫고 변화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편이 더 매력적이다. 일기가 아닌 ‘읽히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드러내야 한다. 진짜 나를.

글을 쓸 때는 내가 갇혀 있는 <트루먼 쇼> 속 세상에서 벗어나 하루 동안 진실만 떠들게 되는 <라이어 라이어>의 짐 캐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에 대해 진솔하게 써보자. 별 볼 일 없게 느껴지는 시시한 일상도 일단 그대로 옮겨보자. / 69p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서평을 공유하다보면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쓴 글은 얄팍하고 초라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늘 내가 쓴 글이 초라해 보인다고 내일부턴 쓰지 않겠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하필 천재가 쓴 글이 내 글 옆에 있어도, 씩씩하게 쓰고 공유하자고 독려한다. 재능을 예단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모른다고, 꾸준히 쓰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말이다. 그래, 뭐든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다지 않는가. 글도 마찬가지다. 일기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에세이가 되었든 짤막한 한 줄의 글이 되었든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한 거다. 나도 이렇게 뭐라도 쓰다보면 언젠가 진짜 내 글을 쓰게 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날을 위해 많이 연습해두자고, 그렇게 나를 응원하며 오늘도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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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이 필요해 - 고민이 너무 많아서, 인생이 너무 팍팍해서
고바야시 쇼헤이 지음, 김복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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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로부터 일상의 고민과 삶의 지혜를 얻는 시간!

그동안 읽었던 철학서가 복잡하고 어렵기만 했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세요!

 

 

 

   올해도 인문학 열풍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패션업계에서 의도적으로 소비자들의 소비를 자극시키기 위해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다는 ‘치마길이 이론’처럼, 삶이 팍팍하고 개인과 국가의 정서가 위축될수록 인문학의 관심 역시 증대된다는 어느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는 지금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고민과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현대 사회에 주로 논의되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적 사고법을 기르고, 철학을 삶의 기술과도 같은 인생의 무기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교양철학서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해』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출간된 책 중에 하나다. 눈앞이 깜깜하고 절망적일 때, 심각한 고민에 직면했을 때,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고뇌했던 철학자들이 인생을 바쳐 남긴 저작들을 펼쳐봄으로써 인생의 위기를 든든하게 극복하고 완주할 수 있기를 응원하는 책이다.

 

 

25가지 고민에 대한 철학자의 훌륭한 인생 상담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늘 불안해요’, ‘제 외모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제 일을 못 해요’, ‘꼴 보기 싫은 상사와의 관계가 불편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소한 일로 자주 다퉈요’. 살다 보면 우리는 이처럼 크고 작은 고민에 수시로 직면한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 내에서, 타인과의 만남에서 항상 을의 입장이 되곤 하는 관계 사이에서,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인해 우리는 매 순간 흔들리고 휘청거린다. 문제는 누굴 붙잡고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어도 그때뿐이고, 어떤 명확한 해답을 구할 데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다 이내 체념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에 『그래서 철학이 필요해』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던 고민들에 현실적인 조언과 지혜로운 해답을 찾아본다. 기존의 철학서들이 사상가들의 철학 이론을 쭉 나열하듯 설명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일’, ‘자존감’, ‘관계’, ‘연애와 결혼’, ‘인생’,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서 실제 사상가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스스로 극복해나가려 했는지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덕분에 여러 철학서를 읽어왔음에도 여전히 철학이 어렵고 복잡하기만한 나에게는 그 어느 책보다 단순하면서 명쾌하게 잘 읽혔기에 단연 인상적이었다.

 

 

 

그러므로 결과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요령 부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끝까지 즐기는 사람의 행동은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좋은 결과가 뒤따를 테지요. 바람직한 결과란 과정을 즐겁게 치르고 남은 거스름돈과 같은 것입니다. (중략)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작업에 온 힘을 다하고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사람. 세상은 이런 사람을 수수방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아우라를 알아보는 이가 나타나 기꺼이 새로운 과제를 맡길 테니까요. / 아리스토텔레스 “‘지금’에 충실해야 ‘다음’이 있다” 편 중에서 24p

 

 

인간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엔진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베버는 근면 성실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동기를 돈이 아닌 다른 가치에서 발견했습니다. 그 엔진은 예정설과 같은 장대한 서사가 아닌, 바로 우리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개인의 서사라는 것이죠.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온 내밀한 서사 말입니다. / 막스 베버 “부의 추구와 성취는 ‘고명’에 충실한 결과이다” 편 중에서 46p

 

 

 

 

 

 

   믿었던 친구의 배신,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한 이별, 돌이킬 수 없는 실패……. 과거의 아픈 기억은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 마음속을 헤집어놓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감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을 때가 있다. 나 역시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면 유독 뼈아픈 기억만이 강렬하게 떠올라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OO 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자주 들곤 한다. 경우에 따라 ‘아예 하지 말 걸’ 하고 경험이나 도전 자체를 부정할 때도 있다. 애석하게도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다보면 실패를 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과 두려움이 앞서서 뭔가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일을 경험해보는 일에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현상 유지에 만족해하며 분수껏 사는 방식에 젖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저자는 프리드리히 니체를 소환한다. 그리고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속의 말을 끌어온다. “삶은 원환이 되어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는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도, 떠올리기 싫은 실패의 경험도 인연으로 한데 엮여 끝없이 돌고 돌기 때문이다.” 즉, 니체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희망과 절망 사이를 거듭 오가는 가운데 인생을 사랑하고 기꺼이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불행한 경험이 없으면 행복한 추억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실연이나 실업,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 손쓸 도리가 없었던 재해와 사고, 술김에 저지른 실수, 사업하다가 낭패를 본 경험까지. 그런 경험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동안은 무척이나 괴롭다. 젊은 혈기로 저지른 무모한 도전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고 두고두고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앞서 니체의 말처럼 쓰라린 경험들을 어떻게든 뛰어넘어 극복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말한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분명 그 경험 덕분에 내가 이만큼 분발할 수 있었다고 확신할 때가 올 테니 말이다. 그때그때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던 다행스러운 경험보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이야말로 분발을 촉구하는 마중물로, 훨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보는 건 어떨까.

 

 

 

사물 자체란 몰두 중인 과업 그 자체나 작업이 도달하려는 바람직한 모습 내지는 이상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당사자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 그 이미지에 부합하게끔 자신의 과업을 일체화시키겠다는 생각이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사람은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무지 갈피가 서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이 허용하는 수준부터 시작해나갑니다. 자기 내면에 자리 잡은 ‘대타자=사물 자체’를 지향하며 몰두하는 것이죠.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멋지게 완성할 때, 대타자는 물론 현실 속 개인 소타자의 인정도 두말없이 뒤따라올 것입니다. / 자크 라캉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법” 중에서 135p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해와 수용의 철학입니다.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가득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스피노자의 철학은 대단히 유용한 가르침을 줍니다. 가히 현대판 성서라 부를 만합니다.

내일이면 어김없이 피하고 싶은 상사와 마주하겠지요. 또다시 제 얼굴을 깎아먹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을 테고 일할 맛 뚝 떨어뜨리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던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묻어나는 인격의 수준과 그가 지나온 삶의 노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으리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의 영혼은 분명 평안을 되찾을 것입니다. /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외부의 충격에 버텨내는 태연자약한 태도” 편 중에서 193p

 

 

 

 

 

 

   누구보다 편하고 가깝지만 외려 서운함과 불만이 쌓여 나빠지기 쉬운 사이가 바로 가족이 아닐까. 최근에 가족끼리 소원해진 문제가 있어 고민인 나로서는 ‘용서는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를 해방시킨다’는 글을 남긴 한나 아렌트의 조언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와 닿는다. 아렌트는 과거 부모님의 말씀에 상처를 받았다든지, 부모로서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보였다든지, 믿었던 형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든지 이런 일들을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두면 가족 관계가 과거의 상처에 발목잡힌 채 더 이상 호전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행위는 인간의 고유한 행동인 동시에 필연적으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렌트는 이러한 행위에 자구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 자구책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용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욕적인 일을 당하면 자연히 복수심을 품게 되고 차마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는 것도 있기에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아렌트 역시 나치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아이히만을 두고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며 사형은 타당한 판결’이라고 하여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렌트가 주장했던 용서가 홀로코스트라는 구제불가한 악질 행위 앞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녀의 논리에도 빈틈이 존재했다는 것을, 논리와 현실 간의 괴리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한다. 용서를 결심하는 것부터가 이미 의미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복수와 반대로 용서는 상처 준 상대와의 단절을 깨고 상대가 처음에 저지른 실수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보복의 사슬로부터 상대와 나를 해방시킨다고 강조한다. 무릇 용서란 인간이란 존재에 걸맞은 행동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용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어째서 의견 차이를 보이는 걸까. 왜 자꾸만 서로 엇나가는 걸까. 상대의 의견에 담긴 가치관을 존중하되 마찰을 두려워말고 과감하게 부딪쳐봅니다. 나와 당신의 입장을 덜어내고 ‘우리’가 되어가는 와중에 의도치 않았던 지점에서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지 모릅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나’는 마찰을 무릅쓴 끝에 진정한 ‘우리’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죠. 이 과정을 헤겔은 ‘아우프헤벤(지양)’이라고 일컬으며 불화와 반복을 타개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헤겔 “나와 당신의 입장을 덜어내고 ‘우리’가 되는 법” 편 중에서 221p

 

 

진지한 태도로 죽음을 각오할 때 비로소 근본에 충실한 시간이 시작되며 남은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죽음이란 앞지를 수도 없고 뛰어넘을 수도 없는 궁극의 가능성이며, 죽음이 도래할 것을 자각하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인생이 펼쳐진다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견뎌가며 수습해야 할 문제들이 답쌓여있는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역스러운 상황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당신은 진정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시작되는 지점에 두 발을 딛고 선 것입니다. / 마르틴 하이데거 “시련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편 중에서 311p

 

 

 

 

 

 

   이 외에도 ‘우리의 행위가 외부의 기준이 아닌 우리의 인격에서 온전히 우러나올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 앙리 베르그송을 통해 진정한 시간과 자유의 의미를 깨닫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이들에게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다하라’고 말한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유념하기를 바란다. 또 타인을 의식하고 인정받는 것에 집착하는 이들에게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욕망일 뿐’이라고 말한 자크 라캉의 말을 기억하길 바라며,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땐 비트겐슈타인의 삶이 증명하는 철학의 가치를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흥미롭게도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고민들은 현대인들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상가들도 수없이 마주하고 고민한 문제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덕분에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수많은 고민들이 알고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극복해나갈 수 있는 점들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이켜보면 모두 사소한 고민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사유하고 고민하고 깨닫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은 수많은 사상가들의 이론이 아닌 이러한 깨달음에 가닿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훌륭한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더 첨부하자면 책에는 철학자들의 생애와 비하인드 스토리, 알아두면 쓸데 있는 철학 스토리, 위대한 사상가들의 대표 저서 소개까지 수록되어 25인의 사상가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니, 철학서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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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사랑하는 기술 - 물과 공기가 빚어낸, 우리가 몰랐던 하늘 위 진짜 세상
아라키 켄타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나면 구름을 바라보느라 하늘을 몇 번이고 올려다보게 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구름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구름 백과사전!

 

 

  매일 아침, 거실 창문을 열면 앞산과 하늘을 꼭 자세히 바라보곤 한다. 실은 감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늘은 미세먼지가 얼마나 많은지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정말이지 맑은 하늘을 보는 게 이렇게 귀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아이는 오늘도 이렇게 묻는다. “엄마, 오늘은 공기가 좋아?” 밖에서 동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일상이었던 나의 유년시절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우리 아이에게는 매일 아침 미세먼지가 많은지 그래서 놀이터에 나가 놀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되어버리다니. 커다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구름은 무얼 닮았네, 저건 또 무엇을 닮았네 같은 이야기를 나눠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생각하니 늘상 그 자리에 있던 하늘이 새삼 선물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늘의 기분, 구름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참 보기 드문 책이다.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이라니. 어쩐지 책 제목도 뭔가 시적이다. 기상 전문가이자 스스로를 구름 연구자라고 소개하는 저자 아라키 켄타로는 ‘구름은 자기 몸으로 하늘의 기분(상태)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즉,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이란 늘 구름을 사랑하고 구름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구름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늘의 기분을 짐작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좀처럼 맑은 하늘을 바라보기 힘든 요즘엔 하늘의 기분도 썩 유쾌하지 않은 것 같다. 이에 저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즐거움을 잊은 사람들에게 다시 그 즐거움을 떠올릴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책을 통해 구름을 알고,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읽음으로써 그들과 대화하며 그러다 마침내 구름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구름이란 무엇일까? 구름은 ‘무수히 많은 작은 물방울이나 빙정(얼음 결정)의 집합체가 지구 대기 속에 눈에 보이는 형태로 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구름을 이루는 작은 물방울인 구름방울과 빙정을 통틀어서 구름 입자라고 부르는데, 저자는 구름이 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구름 입자가 초속 1cm 정도의 속도로 낙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속도를 능가하는 상승류가 대기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알다시피 세상에 완전히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 완전히 똑같이 생긴 구름도 없다. 저자는 구름의 생김새가 다양한 이유 역시 이들 구름 입자가 대기의 흐름을 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각각의 구름 입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데도 우리가 구름을 인식할 수 있는 건, 수없이 많은 구름방울과 빙정이 모여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태양광인 가시광선을 산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책의 1장에서는 구름을 사랑하기 위한 기초 단계로 구름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소개하는데, 읽다보면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하나하는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원리와 현상으로 빚어낸 놀라운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빗방울이 커지면 낙하할 때 공기 저항을 받는다. 이에 따라 동그란 공 모양이었던 빗방울의 아랫부분이 평평해지면서 찐빵 같은 모양이 된다. 비를 모티프로 삼은 캐릭터들을 보면 머리 부분이 뾰족하게 묘사될 때가 많은데, 실제 공기 중에서 빗방울은 그런 모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빗방울을 찐빵 모양으로 그린 작품이 있다면 그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빗방울을 정말 사랑한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빗방울이 더욱 커져서 빗방울 모양을 구형으로 변환했을 때 반지름(등가 반지름)이 2.5~3mm 정도가 되면 분열되며, 그 밖에 다른 구름방울이나 빗방울과 충돌해서 분열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작은 구름방울들이 힘을 합쳐 하나가 되어 성장한 빗방울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며 지상으로 내려온다. 마치 우리네 삶 같기도 하다. / 40p

 

 

눈 결정의 정벽은 그 결정이 성장하는 대기의 상태(기온·수증기의 양)에 따라 변화하며 결정의 일부가 계단 모양이 되는 해정 구조를 지니기도 한다. 그래서 지상에 떨어진 눈 결정의 모양을 해석하면 그 결정이 자란 구름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1936년에 세계 최초로 인공 눈 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한 물리학자이자 수필가인 나카야 우키치로 박사는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다.”라는 말을 남겼다. / 44p

 

 

고기압이 저기압보다 무겁고 미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낀 공기에는 고기압이 저기압을 미는 만큼의 힘(기압 경도력)이 작용한다. 그래서 공기는 저기압을 향해 운동하게 되며, 고기압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이 저기압을 향해 모여드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앞으로 일기예보 방송을 볼 때 일기도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이 밀고 밀리는 모습을 봐라. 재미있을 것이다. / 59p

 

 

 

   2장에서는 구름의 이름이나 특징 등 구름 분류에 관해 해설한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본 적이 있는 구름들이 어떤 이름을 지녔는지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는 부분이다. 이를 테면 마치 붓을 그은 듯 흔히 새털구름이라고 부르는 권운, 가을을 상징하는 권적운, 하늘을 뒤덮은 듯이 펼쳐지는 하얀 베일 형태의 구름인 권층운, 양떼구름 혹은 높쌘구름이라고도 불리는 고적운, 태양이 반투명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것처럼 어렴풋하게 보이는 고층운, 회색 또는 어두운 색에 비나 눈을 내리게 하며 운저가 혼란한 난층운, 우리가 흔히 안개라고 부르는 층운, 뭉게구름이라고 불리며 소나기를 부르기도 하는 적운, 상층까지 발달해 산이나 거대한 탑을 연상시키는 적란운이 바로 그것이다. 책에는 각각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함은 물론, 예시로 사진까지 하나하나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의 빠른 이해를 돕는다. 이어 3장에서는 아름다운 구름과 하늘에 주목해,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고 그 장면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지 방법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천사의 사다리라 불리는 틈새빛살과 일출 직전이나 일몰 직후 시간대에 볼 수 있는 지구 그림자와 비너스의 띠, 빛의 마술이 만들어낸 허상인 신기루, 무지개와 흰색 무지개, 오로라 등 하늘이 보여주는 마법 같은 선물에 여러 번 감탄하게 된다.

 

 

 

고층운은 온대 저기압이 접근할 때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구름의 두께가 상당한 까닭에 구름 입자도 다양하다. 고층운은 대개 구름 상부가 빙정이고, 중앙 부근에는 빙정이나 눈 결정과 과냉각 구름방울이 섞여 있으며, 구름 하부는 대부분 과냉각 구름방울 또는 구름방울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이나 달의 윤곽이 또렷하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구름 속에 구름 입자가 충분히 균일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 105p

 

 

빛의 파장과 같거나 조금 큰 입자 또는 에어로졸에 부딪힐 경우, 가시광선에서는 파장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산란하는 미 산란이 일어난다. 햇빛이 구름에 내리쬐면 미 산란이 일어나 다양한 색의 빛이 겹친 하얀빛이 우리 눈에 닿는다. 이것이 구름이 하얀 이유다. 그리고 상공에 구름이 있어 하층 구름에 닿는 햇빛이 약해지거나 구름 속에서 무수한 구름방울에 미 산란이 일어나 빛이 약해지면 어두운 색이 된다. 중하층의 적운상 구름이나 층상운의 운저가 어두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 150p

 

 

 

 

 

   4장에서는 구름의 구조나 성격과 함께 날씨를 읽는 법에 관해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국지적으로 갑자기 발생해 큰 비나 용오름 같은 돌풍, 낙뢰, 우박 등 여러 가지 격심한 기상 현상을 일으킴으로써 재해의 요인이 되기도 하는 적란운의 원리를 살펴보고 위험을 경고하는 구름의 특징을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지난 해 유독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자주 덮친 만큼 이 대목은 특히나 관심 있게 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몇 해 전 포항에 지진이 일어났을 무렵, 한창 지진운에 대한 여러 유언비어들이 인터넷에 마구 떠돌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지진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에 현혹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다. 끝으로 5장에서는 구름을 더욱 깊이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과 구름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일상 속에서 구름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은 아이와도 해봄직해서 활용해볼 생각이다. 특히 Worldview를 이용하면 전 세계의 구름을 살펴볼 수 있을뿐더러, 과거 어느 날의 하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조사해볼 수 있다 하니 검색해봐야겠다.

 

 

 

발달기의 적란운 속은 상승류가 지배적이며 성숙기에는 상승류와 하강류가 혼재하고, 소멸기에는 하강류가 지배한다. 적란운이 발달하는 모습을 위성 관측으로 보면 구름이 단숨에 올라가며 모루가 넓어지고 상승류가 강한 부분이 오버슈트 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적란운 하나의 수명은 약 1시간이며, 수십 밀리미터 정도의 지상 강우를 가져온다. 적란운은 역동적으로 생겼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하강류에 자멸하는 자학적인 구름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구름에 싹튼 부정적인 감정(하강류)은 단순히 자신을 파멸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미래(새로운 구름의 발생)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인간미가 넘치는 구름이라고 할 수 있다. / 255p

 

 

강수량 혹은 우량은 내린 비가 흘러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고였을 경우의 물의 깊이를 나타내며, 단위로는 밀리미터를 사용한다. 즉, 시간당 100mm의 비는 1시간에 10cm 깊이의 물이 고이는 비다. 가로세로 1m 의 면적에 물이 10cm의 깊이로 고이면 그 무게는 100kg이 된다. 요컨대 시간당 100mm의 비가 내리는 것은 몸무게가 100kg인 몸집이 작은 씨름 선수가 1시간에 한 번씩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278p

 

 

 

 

  이렇듯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은 구름을 즐기고 구름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하루하루 아름답고 경이로운 구름 라이프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과학책이다. 아무래도 평범한 과학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인 나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긴 했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귀여운 그림체와 풍부한 도록 그리고 저자가 직접 찍어 올린 영상까지 QR코드에 담겨 있어 여러모로 구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점만큼은 단연 인상적이다. 평소 구름이나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구름 백과사전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니 꼭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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