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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박영택 지음 / 스푼북 / 2019년 11월
평점 :

르네상스 최고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르네상스 미술과 역사 이야기!
청소년에서부터 어른들까지 르네상스 미술을 접하기 위한 가장 쉬운 해설서!
tvN에서 방영하는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란 프로그램을 특별히 즐겨보고 있다. 그 중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편 방송을 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는데,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중세 유럽의 역사와 미술 관련 책을 읽다보면 메디치 가문의 흔적을 흔히 마주치게 되는데, 이 방송에 의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역시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기 위해 쓰인 책이라고 소개한다. 대체 이들이 당대에 미친 영향력이 얼마나 컸기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수많은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메디치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고, 또 유례없이 다수의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키게 된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는 청소년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의 역사와 미술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책으로, 르네상스 전문가가 집필한 교양서답게 전문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 앞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해답이 되어주었다.
중세 미술에서 르네상스 미술로 넘어가기까지
중세는 ‘종교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로마 가톨릭교회가 사회의 모든 면을 전적으로 지배했던 시기다. 그에 따라 로마 가톨릭교회는 미술에 장식적인 측면보다는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 종교적 규범을 교육한다는 목적을 부여했고, 당연히 당시 그림이나 조각은 모두 종교적 내용을 소재로 할 수밖에 없었다. 즉, 신의 말씀, 천상의 세계, 죽음 이후에 갈 수 없는 낙원에 대한 이야기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교회에 속했던 중세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재주를 신에게 바치는 일, 이른바 신앙을 위한 봉사로 여겼다.
그러다 14세기에 들어 유럽을 휩쓴 흑사병(페스트)으로 인해 유럽인들은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고,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해왔던 신의 존재와 신의 은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중세 사회를 지배했던 로마 가톨릭교회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교회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의 권력도 위협(아비뇽 유수, 교회의 대분열)을 받게 되었다. 당시 유럽은 교회의 분열 못지않게 정치적인 변화, 프랑스와 영국과의 백년전쟁, 십자군 전쟁 등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상태였고, 그 사이에서 르네상스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시민 계급이 성장하기 이르렀다. 이제 유럽은 종교의 시대에서 국가와 개인의 시대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중세 교회를 연 교황이자 크리스트교를 더욱 체계화한 교황으로 알려진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Ⅰ, 재임 590~604)는 “글을 몰라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성당의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을 읽도록 하시오.”라는 지시를 내렸어요. 미술이 좋은 교육 수단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무신자나 문맹자를 믿음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할 때 청각보다 시각적인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거예요. 무엇보다도 중세 미술, 즉 크리스트교 미술의 기본적인 사명은 포교였기 때문에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나 미학적인 특성보다도 도상들과 성경의 내용이 절대시되었어요. 따라서 그러한 미술은 감성적인 즐거움이나 미적인 체험을 얻기 위해 구상된 것이 아니라 말과 문장, 설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죠. / 17p
상업 중심의 시장 경제가 이루어지려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화폐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서로 통용되는 영역,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여러 규범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필요에 따라 요구되었던 것이 바로 강력한 통치와 법체계를 갖는 국가와 관료 체제입니다. 서로의 거래를 보호하는 체제가 있어야 안전한 상업 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절대적인 권력 체제를 선호하게 됩니다. 이는 교회가 삶의 중심이 되었던 중세 때와는 무척 다른 권력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경, 국가, 민족, 법체계 등으로 이루어진 근대 민족 국가의 필요성이 서서히 요구되면서 교회가 모든 부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잡았던 중세 봉건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가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 39p


흔히 르네상스를 일컬어 ‘인간을 발견한 시대’라고 말하는데, 이는 신이 중심이 된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 즉 모든 것을 신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보는 방식이 지배하는 세계로 전환되었다는 뜻이다. 이 무렵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부심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의 관심을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세에서 현세로 끌어 내릴 수 있는 어떤 가치관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종교적인 가르침을 내세우는 삶 대신 자연과 인간에 중심을 둔 이른바 자연주의와 인문주의 사상이 새로운 가치로 탐구되었고, 이러한 탐구가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빛을 발하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이었다. 그리고 이 물결의 조짐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동되기 시작했다.
피렌체에서 발전된 르네상스와 그 중심에 있었던 메디치 가문
왜 하필 피렌체였을까? 14세기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 국가 피렌체는 국제 교역과 은행업의 중심지로, 사업 도시답게 매우 현실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상인들의 도시였다. 모직 공업과 방대한 무역 규모, 은행업 등으로 막대한 이윤 추구와 이자 소득으로 부를 축적하게 된 피렌체의 신흥 상인들은 그들의 부와 명예를 과시할 수 있는 장소로 수도원을 이용하고, 성당을 치장하는 데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고리대금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라는 점을 이용해 일부를 교회에 반환하면 속죄한 것으로 여겨져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목소리도 한몫했다. 그에 따라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동원해 가족 예배실 내부를 호화롭게 꾸미는 내부 장식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리대금업자인 아버지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인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지은 예배당 내부에 그려진 벽화 <최후의 심판>이 대표적인 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니는 것을 고귀한 명예로 삼고, 인간이 발전하여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로 인해 다분히 정적이고 수동적인 중세의 인간관에서 벗어나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인간관으로 변하였지요. 즉, 르네상스는 ‘인간이 어떠한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세 시대처럼 신의 은총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창조적인 인간주의를 지향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38p
중세 미술의 기본 방침이란 ‘화가는 마음속에 있는 이상적인 상에 따라서 제작한다.’라는 것이었어요. 이미 로마 가톨릭교회가 정한 이상적인 기준이 있다고 한 것이지요. 반면 르네상스 미술인들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본 그대로를 그리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고의 전환이지요. 이것은 중세 미술의 기본을 완전히 거부하는 자세입니다. / 46p


신흥 상인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할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성당을 건축하고 복원하는 데에 엄청난 재산을 기부하는 한편, 학자들을 통해 그리스·로마 시대의 학문을 복원하고 번역하는 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막대한 서적들을 수집해 도서관을 만들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만들어 주었다. 아울러 당대 최고의 화가와 조각가, 건축가 들을 고용해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어 내게 했다. 이처럼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융성은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메디치 가문의 여유 있는 경제력과 자유로운 학문 연구의 지원은 개인을 자각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모든 사실의 근원을 캐내고자 하는 과학적인 연구로도 이어졌다. 또한 인간성을 추구하는 시민운동은 현실주의, 합리주의, 자연주의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피렌체에서 점차 작은 군주 국가로 전파되었고, 이내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되기까지 했다. 책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쭉 살펴보다보면 한 가문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들이 서양 미술의 가장 화려하고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들 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거장들의 작품도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시모가 피렌체의 국사를 맡아본 기간 동안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고, 최고의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은 대부분 ‘화려함’보다는 ‘장엄함’을 바탕으로 합니다. 코시모는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를 보호하고, 큰 규모의 건설 사업을 시도했습니다. 피렌체를 상징하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비롯하여 산 마르코 수도원, 산 로렌초 성당 등이 이때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술가들 역시 코시모의 후원을 받으며 제각기 자유롭게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대의 뛰어난 예술가들이 불멸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으며, 그들의 작품으로 인해 르네상스 예술의 위대함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 93p
브루넬레스키의 대표작은 바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이었습니다. 흔히 르네상스 초기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건축은 브루넬레스키, 조각은 도나텔로, 이론은 레오네 바티스타 알베르티, 그림은 마사초를 꼽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은 고대의 로마 미술에서 수치 비례, 균형, 조화의 통일성, 기념비적인 예술성,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사실성, 재료 및 기술의 적절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르네상스 미술가들에게는 커다란 수확이었습니다. 신의 말씀을 형상화한다는 중세 미술의 비유적인 상징주의적 세계가 인간 자신이 본 세계, 즉 살아 숨쉬는 세계로 바뀐 것입니다. / 101p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들은 ‘인간도 신처럼 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새로운 교리, 이른바 ‘헤르메스 주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인간이 신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구원관이 피렌체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교리에 심취한 인문학자들은 성직자의 역할을 대신 맡았고, 예술 작품의 주제도 이들이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대 로마 제국의 문화와 이교도로 여겨지던 그리스의 신들이 예술 작품의 주제로 적극 선정되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르네상스 예술 작품에 새로운 주제가 등장하는 전환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 104p


조반니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두 아들 코시모와 로렌초를 불러 놓고 “피렌체의 선하고 훌륭한 시민들을 존경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시민들은 우리 가문을 그들의 안내자로서 빛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유언은 이후 메디치 가문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고, 후대에까지 줄곧 이어졌다. 덕분에 메디치 가문의 정치권력이 몰락한 뒤에도 그들이 남긴 방대한 문화유산은 흩어지거나 약탈당하지 않고 피렌체에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의 저자는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가 메디치 가문을 다시 살펴봐야하는 가장 큰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정치적 집권의 저력이 문화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둘째는 기업의 문화 후원을 가리키는 메세나의 중요성이 바로 그것이다. 공동체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정치가나 자본가, 지식인 들이 어떤 가치와 이상을 가져야 하는지, 또 미술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사회 구성원들의 지적·정신적 가치를 얼마나 고양시키는지, 새로운 창의성과 상상력이 한 사회를 새로운 세계로 밀고 나가는 데에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메디치 가문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교훈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피렌체의 인문학자들은 피렌체에서 펼쳐질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과거 고대 로마 시대의 문학 작품과 신화에서 찾았습니다. 이와 같이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시에 힘입어 고대 스리스의 정신과 르네상스의 정신이 유쾌하게 혼합된 그림을 그리는 한편, 인간의 아름다운 몸과 고귀한 정신, 자유로운 삶의 공기 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 추구했던 이상입니다. / 112p
코시모 1세는 막강한 권력을 통해 적극적인 예술 후원을 펼쳤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대표적인 미술 후원자 중에서 작품 주문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바로 코시모 1세였습니다. 하지만 코시모 1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술 애호가이기보다는 미술을 통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한 인물이었습니다. 코시모 1세는 자신의 집권 과정에 철학자나 신학자, 역사학자, 인문학자 등 피렌체의 지식인들을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통치 시에 도움이 되도록 학자들에게 주제를 선정해 주고 글을 쓰게 하는 등 군주에게 봉사하는 문화 정책을 일관하였으며, 미술 후원도 그러한 목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특히 미술은 보는 순간 의미가 즉각 전달되며 암시적인 주제를 통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만큼 정치 선전 시 이용 가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은 바로 자신의 초상화와 초상 조각이었습니다. / 124p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는 중세 미술이 교회 중심에서 르네상스라는 인간 중심의 문화로 태동·발전된 과정을 비롯하여 그 중심에 있던 메디치 가문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는지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듯 쓴 책이다. 덕분에 그간 다양한 미술사나 중세 유럽 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음에도 어렵게만 여겨졌던 르네상스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책이니만큼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더없이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또 책 곳곳에 다빈치와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의 작품도 수록되어 있으니 그것을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힐 만한 책이라 꼭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