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다보니 떠나고 싶고,
떠나고 싶어 읽었던 여행 작가 김남희의
책으로 기억되는 여행 혹은 여행으로 기억되는 책!
돌이켜보면 나는 떠나는 일에는 한없이 게으른 사람이었다. 사람에서든, 집에서든.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동경과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도 아닌데, 떠돌고 헤매고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딛는 일에 자주 주저하곤 했다. 익숙한 것들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곳이 아닌
저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떠나는 일에도 반드시 이유가 필요했다. 떠나야 할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게 이유라면, 책에라도
핑계를 대어볼 걸. 난생 처음으로 영화 <밀양>을 보고,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읽고 느닷없이 밀양행 기차를 탔던 그날처럼.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밀양 가볼 만한 곳’, ‘밀양 맛집’을 검색해가며 그때그때 갈 만한 곳을 찾아볼 수라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어떤
정보도 없이 그저 영화의 흔적을, 소설의 느낌만을 좇아 그렇게 기찻길에 올랐었는데.
딱히 지켜야 할 것이 없었던 보다 더 젊은 시절에 혼자서 여행이라도 많이 다녀볼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줄곧
소설만 읽을 정도로 독서 편식이 심했던 내가 언제부턴가 여행에세이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이런 여행도 가능한 거였구나,
이 정도 이유만으로도 떠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하구나. ‘소설 한 구절에 마음이 빼앗겨 충동적으로 여행 가방을 꾸리는 나는 그 누구보다
사치스러운 사람이 된다’던 김남희 여행 작가의 <여행할 땐, 책>을 읽으며 더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떤 소설의 중요한
공간이었던 거리를 내 발로 걸어보기 위해, 소설의 주인공이 팔던 음료를 마시겠다고 쇠락한 도시의 오래된 카페를 찾아가며, 매혹적인 남자 주인공이
32년간 갇혀 있던 호텔에 하룻밤을 머물며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던 그 고백이 내게는 그 어떤 여행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신의 여행 가방에는 어떤 책이
들어있나요?
「여행할 땐, 책」은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등 길 위에서의 순간을 기록한 다수의 여행에세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남희 작가의 신작이다. 전작인 「길 위에서 읽는 시」가 여행길에서
읽은 스물여덟 편의 시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신작의 주제는 바로 ‘책’이다. 그녀는 ‘내 여행은 배낭에 넣어갈 책을 고르는 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치앙마이에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볼까. 고요한 언덕의 리스본에서는 리스본을
사랑한 작가의 소설로 골라볼까. 불과 얼음의 땅,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자연이 살아 있는 레이캬비크에서는 범죄 소설이 어떨까, 고민해보며
평소에는 잘 읽지 않을 장르의 책에도 과감히 손을 뻗어보는 것이다. 마음의 그물이 느슨해지는 여행지에서는 독서의 취향조차 넉넉해지기 때문이다.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문득 혼자임이 새삼스러워질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기에는 애매한 오후의 시간에, 빗소리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에, 간이역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 습관처럼 펼쳐든 시간이 이 책 속에도 추억처럼 새겨져있다. 한낮의 시에스타처럼 느른한
그리스의 이드라 섬에서부터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양이 섬’이라 할 만큼 골목마다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 넘쳐나는 곳,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금지된 섬이니 골목 한복판에서 기나긴 낮잠을 청하고, 포구의 카페마다 제일 좋은 자리를 지정석으로 삼는 그들. 끼니때마다 사료를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는 집사들이 골목마다 상주하니 이만하면 사람보다 나은 인생이지 않은가.
게다가 2시부터 4시 사이에는 시에스타가 있어서 매일 두 시간씩 낮잠을 자는 삶이 가능한 섬이라 그 시간이 되면 고양이도 사람도
최선을 다해 잔단다. ‘난 낮잠 자는 것도 아까워’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나에겐 이런 의무적인 낮잠이 새삼 부럽다. 그렇게 작가는 매일
고양이와 함께하는 날들을 두 달 가까이 보내며 후지와라 신야의 에세이집 「인생의 낮잠」 속의 한 글귀를 떠올린다. ‘고양이는 본디 넘쳐나는
인간의 생활 냄새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동네 바보 같은 동물이며, 고양이가 많다는 것은 동네 바보를 거둘 만큼 마을에 활기가 넘쳐난다는 얘기이자
주민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라고. 넉넉한 인심과 묘심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기기 위해 아침마다 포구로 나가 날마다 찬연하게 쏟아지는 빛을
맞으며, 그늘에서는 고양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섬에서 보낸 한철은 마치 ‘인생의 낮잠’ 같았다는 그녀의 말이 나를 저절로 그리스 이드라 섬으로
이끈다.
신분도 국적도 직업도 다른 이들이 제각각의 사연으로 이곳을 찾아오지만 이곳에서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뿐이었다.
순례자.
그 평등과 관용의 정신이 어느새 전통이 되었고, 그 전통이 다시 세계의 순례자를 끌어들이며 더 강화되어
오지 않았을까. 산티아고의 신성은 결국 변화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다른 나를 찾고 싶다는 갈망, 더 많이 감사하고, 좀 더
겸손하고, 더 자주 웃는 나를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우리는 이 길을 찾아오는 게 아닐까. / 33p
우리는 겨울 오후에 비껴드는 햇살의 따사로움, 시내에서 일을 보고 걸어 돌아오는 초여름 밤에 밀려오는
라일락 향기, 동네의 계곡에서 겨울을 이기고 산란한 도롱뇽 알을 본 봄날의 작은 작은 흥분 같은 것들. 이런 기쁨을 놓치지 않으며 살고 싶다.
생활의 작은 풍요를 날마다 누리며 살고 싶다. 모든 것이 소멸해가는 세월 속에서 삶의 의미가 되어주는 건 이토록 구체적이면서도 사소한 것들이다.
/ 43p
인간이 장소에 기대어 삶을 이어가는 한 세상 어디에도 슬픔이 베이지 않은 도시는 없을 것이다. 삶이
있는 한 어떤 공간에서나 고통스러운 일들은 생겨난다. 다만 시간이라는 열차의 바퀴 자국이 그 상처를 희미하게 만들 뿐. 냉정한 시간이 이제는
치유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우리의 삶이다. 길고 고통스러운 치유의 과정이 고스란히 쌓여온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 지나가버린 시간을
그리워하면서도 공간을 바꾸어 삶 또한 변화시키고 싶다는 모순되는 욕망을 안은 채로. 리스본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길 원했던 도시였던 동시에
과거를 향한 진한 향수병을 앓는 도시였다. 소설 속 남자 아마데우 안에 길을 떠나길 원하는 여행자와 과거를 향한 그리움을 앓는 두 사람이
있었듯이. / 70p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낯선 사람들을
냉대하지 말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파리에 가면 오갈 데 없는 창작자들의 몸 뉠 곳을 마련해주는 예술가들의 안식처가 있다고 한다.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다.
창작자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도시답게 나는 줄곧 혼자서 여행을 한다면 파리에서도 꼭 이곳에 가보고 싶었다. 예술가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쉴 수 있는 자리까지 마련해주는 곳이라니 어쩐지 낭만적이다. 「여행할 땐, 책」 속에도 이 서점이 등장한다. 지난 백 년 동안 책
도둑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고 과언이 아닐 만큼 번번이 사라지는 책들, ‘고객’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뜨내기 관광객들의 예의 없는 행동들이
어쩌면 이 오래된 서점의 낭만을 깎아먹는 듯하지만, 넓은 지구에서 내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이 아름다운 통로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기록된 이 작지만 커다란 세계가 내내 그 자리에 머물러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을까.
《행복의 지도》에서도 지적한다. “민주주의가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곳이 민주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스템이나 체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한 의지를 잃지 않은 채 자신의 주변 풍경을 사소한 것에서부터 바꿔가는 개인일지도
모른다. / 58p
아마데우가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라고 했듯이, 시공간을 축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시간은 죽음이라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데 비해 공간은 유동적이며
탄력적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있기에,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 찰나의 스치는 만남, 이런 것들이 어떤 공간에서는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결과로 변할
수도 있다. 삶에서 예외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우리의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더 나아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 삶을 열어주기도 한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삶의 예외성과 우연성 속으로 뛰어들어 삶 자체를 바꾸어내려는 의지가
아닐까. / 68p
조르바를 동경해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던 20대의 나와, 이제는 빛의 세례를 누리며 살아가되 광기에 휩싸이지 않고 열정을 잃지 않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꿈꾸는 지금의 나를 마주하게 한 그리스,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흔적을 좇아 찾아간 가마쿠라에서 건져낸 일상의
힘, 경이로운 아마존의 신비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았을 때 ‘숲에서 우주를 보’게 해준 조지 해스컬의「나무의 노래」, 네팔의 희말라야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야생으로 들어간 청년의 「인투 더 와일드」까지. 이 무수한 길 위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치열하게
마주함으로써 단독자로 서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기도, 유목민의 삶과 정주민의 삶에서 어디에 속하기를 원하는지 고민하며 자신을 읽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여행이 내게 순간을 열어주는 한, 나는 마지막까지 떠돌며 살아갈 것이고, 다시 힘을 내어 이 세계의 온갖 미혹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잠들지 못하는 ‘몽유병 여인’이 될 것이라 다짐해보기도 한다. 이렇듯 여행 그리고 책은 끊임없이 내 안의 나와 또 다른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 그 속에서 늘어나는 깨달음이 그녀를 계속해서 길 위로 이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라를 막론하고 가난한 이들일수록 그들에게는 강력한 배후가 있었다.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의 보상을 믿고 있었다. 현실의 벽이 견고할수록 지금 여기의 삶이 아닌 다른 세계의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것일까. 내세,
천국, 윤회, 구원, 업보. 이런 단어들이 내게는 현실에 눈을 감게 만드는 거짓과 기만으로 다가왔다. 고결하고 신성한 세계로 귀의하고자 하는
갈망이 비루한 일상의 견디는 힘이 되어주는 현실이 우스웠다. 지금 이곳의 삶을 개선하지 않는 종교라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 178p
결국 품위 있는 삶은 공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다정하고 성실한 태도.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다 해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해도 자신의 세계를
아끼며 가꾸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삶의 품격이란 결국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 214p



그녀는 ‘인간은 희미한 타인의 마음으로도 꽤 멀리 나아가고, 놀랄 만큼 오래 꿈꿀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을 되새긴다. 그녀가 지치지도
않고 여행을 떠나는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세상 어딘가에서 내 손을 잡아줄 낯선 얼굴을 상상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온기를
믿기에 늘 떠날 수 있다는 믿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믿음까지 동경하게 되었다. 그 믿음의 부재가 나의 발목을 계속 붙잡고 있었기에.
덕분에 나는 이제 그녀처럼 오롯이 나를 위해서 책과 함께 할 여행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때는 무슨 책을 읽고, 또 무슨 책을 들고 가 볼까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