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 의지로 충만한 이들, 운동에 의지가 꺾인
이들이라면 모두 주목하시라!
운동하는 여성을 위한 어느 운동 유목민의 참 운동
응원 에세이!
“여자 연예인 출산 3개월 만에 OOkg 감량!”, “OOO, 두 아이 엄마 몸매 맞아?”
출산 후 여자 연예인이 연예 뉴스 면에 나올 때면 꼭 이런 헤드라인이 등장한다. 출산한 지 불과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랫배가
쏙 들어가고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는 날씬한 몸매를 하고서. 올해 둘째 아이를 출산한 나로서는 이런 기사가 썩 달갑지 않다. 내 몸 관리에
투자를 할 여력이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부족한 나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출산을 하고서도 날씬해야 하고, 아이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하고 관리된 몸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나만 불편한
것일까.
그러면서도 미련해보이고 싶지 않아서, 관리 안하고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홈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먹는 양을 절반씩 줄이고
틈틈이 훌라후프와 세라밴드를 이용하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각종 ‘홈트’ 영상을 따라하면서 그렇게 감량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딱 임신 전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기띠를 하고 석 달 내내 하루에 만 걸음 이상을 걸었던 게 무리였는지 고관절 통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저 내 몸 하나 믿고, 빠지는 몸무게를 보니 즐거워서, 출산 후라는 것도 잊었다가 결국 지금은 운동 중단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다시 몸무게는 오르고, 그렇게 오르는 몸무게를 보며 자괴감과 불안을 느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육아를 하는 데 필요한
체력을 얻고, 출산 후에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었더라면 체중계에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몸무게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고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죄책감이라도 느끼듯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라면서
운동을 단순히 ‘지방을 태우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지금 나의 몸을 어서 벗어나고 바꾸어야 할 수치스러운 ‘나쁜 몸매’로 해석하고, 미용 목적
혹은 나의 몸을 성적 대상의 맥락-남자친구가 싫어한다, 남편이 좋아한다-에서 접근하지는 않았는지. 각종 미디어나 SNS를 통해 자기 관리와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 내가 생각하는 운동이란 무엇이고 나에게 맞는 운동이란 무엇인지부터 우선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확천근의 꿈, 금메달 따려고 운동하는
거 아니니까요
여러 운동을 전전하며 오랜 세월 운동 센터의 ‘회원님’으로 살아온 작가 이진송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란 에세이가 이목을
끈다. 스스로를 운동 유목민이라 자처할 만큼 그녀는 ‘체험판에 가까운 수준으로 이 운동, 저 운동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헬스,
복싱, 수영, 댄스, 요가, 스쿼시, 아쿠아로빅, 승마 등등 줄을 잇는 그녀의 운동 경험담을 보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야말로 ‘운동 센터 기부 천사’라고 할 만하다. 그러다보니 매번 운동의 재미에 푹 빠지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여러 운동을
전전하는 가운데 겪게 되는 불편한 현실과 사회적 시선을 기록한 그녀의 글은 마치 내 이야기처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이 있던가. 둘째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고, 그때부터 저녁
준비에 틈틈이 첫째 아이와 놀아주고, 그 사이에 둘째 아이가 울면 달래주고 그러다보면 저녁 식사 시간이고, 설거지와 정리로 마무리를 하고 나면
곧바로 아이를 씻기고 재워야 한다. 자장자장, 토닥여주다 내가 까무룩 잠이 들기 일쑤고 얼마 자지 않았던 것 같은데 둘째 아이가 새벽에
자지러지게 운다. 이런 일상이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보니 간혹 너무 지친다 싶으면 아이의 사소한 짜증에도 울컥 화가 치민다. 저자 역시 마법의
단어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갉아 먹히는 기분을 수시로 마주하는 모양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엄격해지고, 퇴근하고
만나는 가족에게 짜증이 난다고 고백한다. 아, 이러다 나는 결국 짓무르고 터지겠구나. 일터가 나를 빨아먹는 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겠구나, 하고 점점 실감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운동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일은 단순히 나 혼자 잘 살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공정한 마음을 기르고 타인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간다. 언제나 다정하고 너그러울 수는 없겠지만, 그런
순간을 늘려가겠다는 마음으로, 체력을 키우고 운동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니 몸의 변화는 내가 가장 뚜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복근과 등근육이 발달하면서 구부정하던 자세가
많이 좋아졌고, 통증이 사라졌다. 예전보다 근육이 더 단단해졌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훨씬 수월했다. 변수가 있는 검사 기기보다 나의 24시간을
운영하는 동력에 집중하자 성과에 대한 집착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황의 말처럼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무언가를 조금씩
적립하는 중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 66p



『모두 거짓말을 한다』라는 책에 의하면 ‘어린 자녀에 관련된 질문’에서 ‘내 딸이 과체중인가요?’라는 질문이 아들의 과체중을 묻는
질문보다 두 배 가까이 더 많았다고 한다. 딸의 체중은 전 세계 양육자, 특히 유전자를 나눈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가
보다. 여성복의 사이즈는 44, 55, 66으로만 삼분할되고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가 여자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 세상에서,
‘표준’이라고 제멋대로 설정한 사이즈보다 몸이 크면 별의별 차별과 혐오 발언을 듣는다. 운동에서라고 예외는 없다.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항상
날씬하고 날렵하다. 가늘고 탄탄한 몸은 여성 운동의 궁극적 목적이나 결과로 제시된다. 오히려 건강한 몸이 아니라 마른 몸을 추구하고, 표준
체중이 아니라 근거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를 미용체중에 몸의 무게를 맞춰 그것을 이상적인 몸매라고 부추긴다. 많은 운동이 남자의 몸은 ‘키우고’
여자의 몸은 ‘줄이는’ 데 치중한다는 사실에서도 성별의 격차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저자는 운동 열풍이 부는 한편으로는 ‘마르고 탄탄’한
몸을 관리 능력, 운동 내공으로 환산하는 기묘한 공기에 우려를 표현하며 자신의 경험담과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함께 고민해본다. 그
과정에서 몸매 타령밖에 못 하는 빈약한 상상력은 뭇매나 맞으시라, 이 통쾌한 한 마디가 가슴을 뚫는다.
남학생의 운동장과 여학생의 운동장은 신체 활동과 운동의 기회 여부에 따라 다르게 구획되는 ‘장소’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운동장이 남학생들에게 전유되는 현상을 지적했다가 ‘운동장 여교사’로 불리며 온갖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좀 받아들여야 할 텐데. 운동장의 성별 불균형은 페미니즘뿐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도 중요한 의제다. 운동장은 여학생을 밀어낸다. 동시에, 학교의 교육과 우리 사회의 규범을 체화한 여학생도 운동장을 밀어낸다. 이는 결국
운동장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운동 그 자체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 41p
여자의 물리적 힘 행사를 괴상하고 기이한 것, 특별한 폭력성의 표출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관습 안에서
복싱과 주짓수는 황에게 자신의 힘을 긍정하고 정확하게 행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도, 황은 운도 따랐다.
좋은 관장님과 선생님을 만나, ‘운동하는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라보는 나’에 구속되지 않고 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재미가 아니라면
아무리 당위가 충분해도 꾸준히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운동은 몸과 마음이 모두 따라야만 하는 행위다. / 67p


이렇듯 여성으로서 운동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문제들을 마주하다보면, 그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운동을
하고 또 중심을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중요성을 보다 절실히 깨닫게 된다. 나는 그동안 내 몸을 그저 빼야 할 대상, 가꾸기의
대상으로만 인식해왔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날씬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몸에 스트레스만 준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덕분에 이제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부상의 위험을 줄이며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으려면 우선 내 몸에 대해서 샅샅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와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똑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나는 다른 조건과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개인차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도. 토익 학원에 등록한다고 모두가 원하는 토익 점수를 따는 게 아니듯이, 수영을 배우러 가도 모두가 같은 속도로 4주
안에 자유형을 마스터할 수 없듯이, 수치 하나하나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살이 쪘다고 죄송해할 이유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의 시행착오를 거쳐 생존 수영 교육이 안정적으로 안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름다운 영법이나 기록, 다이어트의 효과보다 수영의 효용이 더 부각되기를 바란다. 수영뿐만 아니라 수영에 대한 개인의 능력치나 신체 조건,
심리적 부담감이 다르다는 사실도 함께 교육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뻔히 물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연예인을 억지로 물에 빠뜨리는
예능을 재미있다고 내보내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감수성 교육이 필수적이다. 개인의 특성까지 고려하는 수영 교육이라니, 일견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성과가 더디더라도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 공교육의 존재 이유다. / 94p
산을 오를 때 목표만 보는 사람이 있고, 눈앞의 풍경과 꽃과 풀과 흙과 나무의 냄새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운동의 궤적은 퀘스트를 깨듯 쭉쭉 나아가기만 하는 전진형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멀어진 지점을 찍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나선형에 더 가깝다. 변화하는 몸은 ‘이미 깬 판’과 달리 ‘나’와 단절되거나 지나가지 않고, 매번 똑같은 위기나 다른 변수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러니 얼마나 멀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꾸준히 나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167p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그간 운동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내 몸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차치하고 이 작가의 유쾌하고 찰진 입담 때문에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래서 운동의 재미니 건강의 중요성을
떠나 그냥 작가의 입담에 빠지는 재미라도 느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나는 그간 고관절 통증으로 내려놓은 운동이 내내 마음에 쓰였는데, 살을 빼는
게 목적이 아닌 고관절 강화와 체력 키우기에 중점을 둔 운동법부터 차근차근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