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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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이찬혁의 예술관과 특유의 감성을 책으로 만나다! 

상상 너머의 세상을 유영하는 자유로운 아티스트의 감각을 오롯이 담은 소설!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우리 집 창문을 부수고

내 가족에게 포효하던

널 다시 만나면

그때 너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를래

더 크게 소리 지를래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내내 삭제되지 않고 재생되는 음악 하나가 있다. 바로, 악동뮤지션의 다이노소어(Dinosaur)다. 어떤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공룡이라는 존재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데다, 이를 극복하고 떨쳐버리겠다는 다짐과 선포를 마치 한 편의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경쾌하게 풀어낸 곡이다. SBS의 ‘K팝스타2’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현했을 때부터 자유로운 상상력과 현실감 있는 가사를 재기발랄하게 녹아낸 그들만의 감각적인 음악은 아이돌로 점철된 음악 시장에서 유난히 돋보였는데, 이번에 발표한 앨범 ‘항해’는 기존의 감수성을 뛰어넘는 특별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음악이라 또 한 번 놀라움을 자아낸다. 아마도 악동뮤지션만의 음악적 감성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이찬혁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오랜만에 선보이는 앨범여서 그런지 서정적이면서 좀 더 성숙해진 감성으로 한결 묵직해진 기분이다.

 

 

 

   그런 가운데 <항해>의 모티브이자 세계관을 공유한 작품 『물 만난 물고기』가 한 권의 소설책으로 출간되었다. 선율과 어우러져야 할 음악의 가사와 비교적 긴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 소설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기는 하지만, 왠지 그의 소설가로서의 데뷔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난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의 음악이, 단순히 노래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문장처럼, 음악 너머의 거대한 예술적 세계관을 아우르기 시작한 이 청년의 성장이 어디에까지 이르게 될지 너무도 궁금해진 까닭이다. 자칫 낯익은 듯 단조로운 시작에 기대감이 주춤할 법도 하지만, 어느새 상상을 뛰어넘는 스토리의 변주와 예술가적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특유의 맑은 감각들, 시적이며 환상적인 메타포를 문장에 녹여낼 줄 아는 섬세함에 저절로 응답하게 된다.

 

 

 

 

 

 

몇 고개의 파도를 넘어야 하나

 

 

   몇 달을 공들여 만들던 앨범이 막 완성되려던 찰나에 녹음 작업을 하던 선은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진정한 예술가란 무엇인지, ‘진짜’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길거리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만난다. 하지만 대부분은 허상에 가득 찬 가짜들이었고, 1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갈증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마지막 여행을 맞이하게 된다. 섬으로 떠나는 배에 오른 날 밤,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갑판 한 가운데에서 선은 우연히 검은색 단발머리를 한 여자를 발견하게 된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그녀를 잡아먹어치울 기세로 덤벼드는 와중에도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그곳에 서 있다. 선은 때마침 마치 환영처럼 바다에서 불러오는 노랫소리에 두 귀를 의심하며 음색과 노래에 마음을 빼앗기고, 위험한 순간에 그녀의 목숨을 구한다.

 

 

 

“말도 안 되는 예술가가 많아진 것 같긴 해요…….”

나는 나도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지었다. 듣고 보니 예술가라는 이름이 내가 찾고 있던 것에 가까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예술가는 노래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예술가는 그림으로 시위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몽상가 혹은 혁명가. 자신이 선택한 종목보다 한 움큼 더 느끼고 한 발치 더 앞서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그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것은 특별하고 굉장한 일이 아닌, 이미 포화 직전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62p

 

 

 

   그녀의 이름은 해야. 그녀는 동물원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사자처럼 주어진 모든 것을 자유로이 즐길 줄 아는 영혼이었다. 선이는 그녀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에서 결핍된 자리를 정확히 채워주었고, 그녀가 곧 음악이 되었다. 얼룩말을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보고 싶다던 그녀에게서 자유와 통제의 울타리를 넘는 법을 배우고, 갈대밭에 뛰어들어 웃옷과 바지를 던져버리고 당장의 자유를 소중히 느끼며 세상에 정해놓은 법과 선에 구애받지 않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녀와 단둘이 있는 지금이 과연 행복의 절정임을 깨닫는다. 그러는 가운데 선이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해답들을 찬찬히 풀어나간다.

 

 

 

“왜 하필 얼룩말인데?”

“얼룩말만큼 예술적인 동물은 없어! 전에 책에서 봤는데 얼룩말은 다른 말들보다 야생성이 뛰어나서 길들이기가 어렵대. 이게 사람들이 보기에 야생성이지, 내 눈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고집으로 보이는 걸.” / 35p

 

 

“음악이 없으면 서랍 같은 걸 엄청 많이 사야 될 거야. 원래는 음악 속에 추억을 넣고 다니니까.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추억도 새로 산 서랍 속에 넣고는 겉에 ‘작은 별’이라고 쓴 테이프를 붙여놓아야 할걸. 아마 번거롭겠지. 근데 그럴 필요까진 없어. 우리에겐 바다가 있으니까. 바다는 아주 큰 서랍이야. 우린 먼 훗날 바다 앞 모래사장에 걸터앉아서 오늘을 떠올릴 수도 있어.” / 52p

 

 

 

 

 

 

난 너를 만나고 모든 게 음악이야

 

 

   선이는 해야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음악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눈을 뜨면 모든 게 꿈처럼 사라질까, 한겨울의 선물이 되어준 그녀가 사실은 산타처럼 실존하지 않는 인물일까 내심 불안에 휩싸인다. 애초에 그녀는 그가 붙잡을 수 있는 어떤 유형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간 애타게 찾아 헤매고 붙잡고 싶었던 ‘음악’이 손에 붙잡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닌 것처럼.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한 거야?”

“뭐가?”

“파도가 몰아치는데 거기 위험하게 서 있었잖아.”

나는 아까의 긴박한 상황이 떠올라서 다시 흥분되었다. 반면 그녀는 여전히 차분했다.

“응. 가끔은 그렇게라도 봐야 하는 것들이 있어.” / 81p

 

 

“선아, 거창한 걸 생각하지 마. 뱉은 말은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냥 할 수 있는 만큼의 말을 하면 돼.” / 93p

 

 

“사람들은 긍정을 기다리고 원하면서 실상은 사소한 불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부정적인 것만 쫓아다닌다고!” / 134p

 

 

 

   『물 만난 물고기』는 단편적으로는 선이와 해야가 나누는 사랑과 상처의 상흔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관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매우 은유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이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 그가 소설 속에서 선이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갈구하는 문제들은 어쩌면 그가 음악을 하는 내내 마주해야 할 질문들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꽃들은 매일 괴로움에 몸부림쳐요. 자신도 자신의 색깔이 틀렸다고 생각하니까요. 특별한 꽃들은 아무리 물을 주어도 그렇게 서서히 고통 속에 말라 죽어요.’라던 정원사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어쩌면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들엔 늘 의심과 회의가 깃들기 마련이니까.

 

 

 

“친구야, 나도 네 나이로 돌아가고 싶구나. 그럼 뭐든 시작했을 텐데. 너도 현실을 경험하면 알게 될 거야. 꿈은 서커스에서 쓰는 붉은색 커튼과 같다는 걸. 화려하고 잘 찢어지지도 않지. 하지만 현실이라는 창문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것을 옆으로 걷어야 하는 날이 오고 만난다. 밤이 되면 다시 그것으로 창문을 가리고, 지쳐 울든 꿈을 꾸든 맘대로 해도 돼. 하지만 아침이 오면 다시 걷어내는 거야. 우린 꿈보다 하루를 살아야 하니까.” / 105p

 

 

“난 이 동네 사람들이 매일 걸어다니는 길을 청소해요. 그들은 자신이 아침에 길바닥에 껌 포장지를 버렸다는 사실을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까먹고 말아요. 왜냐하면 내가 이미 치웠으니까요. 자신이 버린 포장지와 마주칠 일도 없었을 거고 그래서 다시 기억할 일도 없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그들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남편을 향한 분노 따위를 집 앞에 버리고 가요. 어떤 날은 학교에서 들고 온 시기와 질투 같은 것도 있지요. 나는 그들이 그렇게 표출해버리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을 주워 담습니다. 그럼 그들은 그 길을 지나면서 다시 같은 감정을 떠올리지 않게 되지요. 모든 걸 까먹은 채 집으로 들어가서 다시 예전같이 남편을 사랑해주는 거예요.” / 113p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헤엄치듯이 살길”

   망망대해를 떠도는 뱃사공, 바다라는 심연 속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건져 올리는 마음으로 가사를 완성해내는 아티스트. <물 만난 물고기>라는 노래와 가사를 읽으며 나는 내내 소설 속의 선이와 해야를 상상했다. 소설 속의 그들처럼 악동뮤지션 이들 남매도 음악 안에서 늘 자유로울 수 있기를,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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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심는 꽃
황선미 지음, 이보름 그림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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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그 시절의 추억!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을 법한 아름다운 유년의 향수가 담긴 따뜻한 이야기!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고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추억 한 편쯤은 있다. 흔들리는 이빨에 실을 걸어 불시에 나의 이마를 탁- 쳐내 큰 고통 없이 이빨을 빼주었던 아빠의 손길, 일일 급식 도우미로 와준 엄마를 보고 친구들이 “너희 엄마 예쁘다” 하면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순간,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무대를 상상하며 동네 앞 피아노 학원의 열린 문틈 사이로 내내 안을 기웃거렸던 수줍고 설레었던 마음까지. 그렇게 추억을 거름 삼아 나는 이만큼 자라났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너무나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유년의 이야기는 한참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나의 가장 아름다운 의미가 된다. 그러니 모두들 잊지 마시길. 오롯이 추억하시길.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추억의 꽃은 그렇게 피어난다 

 

 

   『마음에 심는 꽃』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며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안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황선미님의 책이다. 데뷔작이기는 하지만 주목받지 못했기에 자칫 잊힐 뻔했던 이야기가 무려 2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시골에 사는 소녀와 도시에서 이사 온 소년의 순수한 우정을 담은 이야기가 푸릇하고 정감어린 시골을 배경으로 한 편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따뜻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과 은은하게 수놓아진 그림을 가만가만 읽고 있노라면 내 마음까지 곱게 물드는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유년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가는 가운데,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던 수현이 역시 친구 미정이와 공장으로 일하러 간 삼촌을 보낸 뒤였다. 이제 학생도 얼마 없고 선생님마저 둘 뿐인 분교라 적적했지만, 수현은 삼촌과 미정이가 함께 씨를 뿌린 ‘인동집’의 꽃밭을 돌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위안삼아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동집으로 도시에서 살던 가족이 이사를 온다. 시골로 이사 오는 사람을 워낙 드문 까닭에 수현이네 가족은 이사 오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궁금해 하는 반면, 수현이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간 자신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던 인동집에 누군가가 이사를 온다니, 삼촌과 미정이와의 추억이 깃든 꽃밭이 내심 걱정되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들에서 일할 때 수현이와 미정이는 동생을 돌보며 인동집에서 지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인동집으로 갔습니다. 흙을 부수고, 돌을 고르고,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맨 앞줄에는 앉은뱅이 채송화 씨를 뿌렸습니다. 까만 콩 같은 분꽃 씨를 다음 줄에 묻었습니다. 봉숭화 씨와 과꽃 씨도 뿌렸습니다. 맨드라미, 백일홍, 족두리 꽃씨를 흙속에 잘 감추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 30p

 

 

 

 

 

 

   아니나 다를까, 자동차 바퀴 자국이 깊게 남아 있는 마당을 지나 꽃밭에 가보니 어른의 발자국에 제법 자란 과꽃 줄기가 밟혀 있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농사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부부와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였는데, 남자아이의 방 안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던 노란 붓꽃이 얼핏 보이자 화가 난 수현이는 남자아이에게 눈을 흘기고 분한 마음을 토해낸다. 도시 소년인 민우와 같은 반이 되어 짝이 되기까지 했지만, 수현은 민우를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하고, 민우 역시 수현이에게 까칠하게 군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현이는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가 민우에게 무거운 속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우가 병에 걸려 공기가 좋은 시골로 이사를 온 것인데, 그간 병원비를 대느라 집도 팔고 이래저래 집안 사정이 곤란해진 것이었다. 이제야 수현이는 민우가 잦은 결석을 하고, 여느 친구들처럼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 않으며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다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민우의 집을 찾아간 수현이는 마침 마루에 놓여 있는 민우의 일기장을 훔쳐보게 되고, 그 모습을 민우에게 들킨 수현이는 빨리 가버리라고 소리치는 민우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다.

 

 

 

“뭘 갖고 싶은데?”

“예쁜 옷이랑, 머리띠 그리고 동화책.”

“나라면 그런 건 안 갖는다.”

“더 좋은 게 있어?”

수현이가 궁금해하자 민우는 다시 살짝 웃었습니다.

“나라면 꽃밭을 가질 거야.” / 103p

 

 

 

 

 

 

   두 아이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다. 꽃밭을 가꾸면 삼촌이 상을 주기로 했다는 수현이의 말에 민우가 그럼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으니 “예쁜 옷이랑, 머리띠 그리고 동화책”이 갖고 싶다고 대답한다. 소소하지만 참 아이 다운 풋풋한 대답이다. 그러자 민우가 나라면 그런 것 안 갖는다며 “나라면 꽃밭을 가질 거야”라고 말한다. 욕심 없이, 그저 자연의 섭리를 따랐을 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민우 역시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신이라는 삶의 꽃을 피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훗날 민우가 건강하게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마당에 어떤 꽃들이 자라나고 있을까. 수현이는 민우가 돌아와 마당에 가득 피어난 꽃을 보고 행복해할 것을 상상하며 오늘도 매일 정성스레 물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 이렇듯 『마음에 심는 꽃』은 아이들의 꿈과 우정으로 풍성하게 자라나는 꽃밭을 기대하게 되는 아름다운 동화였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런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 품고 있듯 나의 한때를 떠올리게 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이 책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 날을 상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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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 유튜브 스타 과학자의 하루 세상은 온통 시리즈
마이 티 응우옌 킴 지음, 배명자 옮김, 김민경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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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을 일상처럼 여기게 해주는 어느 유튜브 스타 과학자의 하루!

어렵게만 느껴졌던 화학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화학이야기!

 

 

 

   “우린 참 케미가 잘 맞는 것 같아.”

   일상적으로 자주 하는 말 중에서 ‘케미’란 단어가 있다. 서로 잘 어울리거나 마음이 잘 맞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케미라는 단어가 화학(chemistry)의 앞부분을 떼어낸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의 본질과 결합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출입하는 에너지를 모두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켜 ‘화학’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우리가 이 ‘케미’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화학의 기본 속성에서 비롯된 듯하다. 화학 반응은 모든 물질이 서로 어우러지고 맞추어져가는 과정으로, 이 과정에서 서로 잘 어우러진 반응이 일어나면 ‘케미가 좋은 반응’이 되고 그 반대라면 ‘케미가 나쁜 반응’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서로 잘 어우러지고 마음이 맞을 때 환상적인 케미를 이룰 수 있으니 말이다. 그간 화학하면 ‘수헬리베붕탄질산’이라 줄여가며 복잡한 원소 기호의 암기 과목으로만 생각했는데, 이토록 낭만스러운 구석이 있었다니!

 

 

 

우리는 화학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는 5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독일의 유명 유튜버이자 화학 박사인 마이 티 응우옌 킴 박사가 쓴 교양과학책이다. 그녀는 화학의 재미에 매료되는 것을 ‘화학 스피릿’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 “The Secret Life Of Scientists(과학자의 은밀한 삶)”과 “maiLab(마이랩)”에서 이를 퍼트리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역시 아침에 남편의 알람 소리에 깨어나면서부터 저녁 식사를 끝내기까지의 하루 일과를 화학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봄으로써, 그간 어렵게만 느껴졌던 화학을 일상처럼 즐길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별 의미 없이 지나쳤던 일상을 화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우리 주변에서 화학 반응이 얼마나 은밀하게 진행되는지 살펴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된다.

 

 

여기서 잠깐! 앞으로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한 가지를 기억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과학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간단한 대답을 찾으려는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약속하건대 과학적 사고는 세상을 더 까칠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다채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한마디로, 기적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든다. / 21p

 

 

 

 

 

 

   충치 예방을 위해서는 어떤 치약을 써야 할까, 천연 비누는 정말 피부에 더 좋을까,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정말 위험할까, 우주에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탄산수를 마시면 정말 소화가 잘 될까, 술을 마시면 왜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모두가 먹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사소하지만 의외로 궁금한 질문들이다. 이 세상의 모든 흥미진진한 것들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화학과 관련이 있다던 저자는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와 같은 갖가지 질문들의 해답 역시 화학에 있다고 말한다. 먼저 우리의 활동 일주기(circa dies) 리듬, 그러니까 수면-활동 생체리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멜라토닌’을 통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소개하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커피 입자를 마시는 것이라 설명하며 이 입자의 운동을 통해 커피가 식는 과정을 일러준다. 또 치약에서 불소가 하는 역할과 기능을 설명하고, 핸드폰 배터리의 충전 원리를 설명하면서 산화-환원 반응의 이해를 돕는다.

 

 

 

이제 이런 지식을 얻은 당신은 누군가가 “창문 닫아, 냉기가 들어오잖아”라고 말하면, 열역학적 헛소리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대꾸하게 될 것이다. “방의 온기가 나간다는 얘기지?” 또 누군가가 “에너지를 써서 없앤다”라고 말할 때마다 크게 흥분한다면, 당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과학 괴짜들 틈에 섞여들 수 있다. / 30p

 

 

양성자 수가 원소의 종류를 결정한다. 어떤 원소의 양성자 수가 몇 개냐에 따라 그 원소의 주기율표 자리가 정해진다. 모든 원소가 주기율표에 배열되어 있는데, 그 배열 기준이 뭘까? 바로 원자번호다. 이 원자번호는 양성자 수와 일치한다. 주기율표를 잠깐 보면, 산소는 8번이다. 산소가 가진 양성자가 8개라는 뜻이다. 황금은 79번이니 양성자가 79개라는 뜻이다. 이런 차이만으로도 산소는 산소고, 황금은 황금이다. / 43p

 

 

불화물이 음전하를 띠는 이온, 즉 음이온이라는 건 앞에서 얘기했다. 법랑질을 구성하는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에도 똑같이 음이온이 들어 있다. 즉, 하이드록사이드 이온이다. 불화물은 아주 작아서 거의 모든 곳으로 침투할 수 있다. 당연히 치아의 법랑질 속으로도 들어간다. 이를 닦을 때 불화물은 법랑질 속으로 침투하여 하이드록사이드 이온을 내쫓는다. 공격적으로 들리겠지만, 좋은 일이다. 하이드록사이드 이온을 쫓아내고 불화물이 그 자리를 차지한 덕분에 치아 표면에 플루오라파타이트라는 더 견고하고 안정된 얇은 층이 형성돼 산이 치아를 녹이지 못하게 막아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상어 이빨은 거의100퍼센트가 플루오라파타이트다. 그래서 상어 이빨이 특히 단단하고, 물리면 엄청나게 아픈 것이다. / 61p

 

 

 

   계면활성제와 천연 비누에 대한 편견을 일깨워주는 내용이 흥미롭다. 우리가 쓰는 치약, 비누, 샴푸 모두에는 계면활성제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계면활성제라 하니 어쩐지 몸에 그리 좋지 않은 화학물인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씻을 때 그냥 물로만 씻어서는 별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피부가 소수성이기 때문이다. 소수성이란, 글자 그대로 옮기면 ‘물을 싫어하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피부세포의 세포막과 중간 공간은 소수성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수성 물질은 물과 섞이지 않아 물에 용해되지 않는다. 이때 계면활성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지나 오물 또는 박테리아 같은 소수성 물질과 물 같은 친수성 물질의 훌륭한 중재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계면활성제의 역할에 대해 알고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천연, 친환경이라고 강조하는 비누는 과연 100% 천연 제품인 것일까? 저자는 애초에 천연비누와 화학비누로 구별하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천연비누를 생산하는 과정 역시 화학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추출된 재료라 하더라도 그 재료 역시 화학의 힘을 빌려 열매를 맺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계면활성제를 적극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샤워를 할 경우, 세척력이 강력한 계면활성제는 피부를 자극하거나 건조하게 할 수 있기에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화학물 무첨가’, ‘유기농’을 앞세운 기업의 마케팅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성분표를 읽고 보다 더 안전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올바른 화학 상식을 익힐 필요가 있다.

 

 

 

바깥 기압이 바뀌는 즉시 느끼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귀가 먹먹해지지 않던가. 바깥 기압이 오르면, 바깥 공기 분자들이 귓속 고막을 안쪽으로 민다. 바깥 기압이 내려가면, 안쪽 공기 분자들이 고막을 바깥으로 민다. 그래서 귀가 먹먹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고막이 자유롭게 진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소리가 더 작게 들린다. 그러나 귀에는 유스타키오관, 그러니까 ‘귀 트럼펫’이라는 재밌는 별칭을 가진 일종의 배출구가 있다. 유스타키오관은 귀와 비후강 사이의 연결로이고, 보통 닫혀 있지만 씹거나 하품을 할 때 잠깐씩 열려 압력을 고르게 조절한다. / 109p

 

 

우주에서는 체액이 끓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산소 부족으로 죽을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뇌는 산소 부족 몇 초 뒷면 의식 불명 상태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 117p

 

 

 

 

 

  개인적으로 ‘핸드폰은 어떻게 기능할까’ 편은 현대인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라 가장 관심 있게 읽었다. 이 중 배터리 수명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나는 그동안 잦은 배터리 충전이 오히려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에 의하면 리튬 이온 배터리는 가능한 한 자주 넉넉하게 충전된 상태로 유지할 때 배터리 수명도 오래 유지된다고 한다. 방전될 때마다 물질이 조금씩 마모되면서 배터리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배터리가 많이 남았을 때 다시 충전하고, 노트북은 늘 전기를 꽂아 사용하며 핸드폰은 가능한 한 자주 충전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리고 외출 중에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으면,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두기보다 핸드폰을 꺼두는 편이 낫다고 하니 기억해두자.

 

 

 

커피를 마시면 다르다. 카페인을 섭취하면, 카페인 분자가 15분 만에 아데노신 수용체로 가서 주차한다. 카페인은 심지어 아미 주차된 아데노신 분자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이제 카페인이 주차장을 장악했지만, 아데노신 수용체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수용체는 아데노신을 ‘못 보고’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이 맑다고 느낀다! / 157p

 

 

실험실에서 만드는 방부제를 ‘합성방부제’라 부르기로 하자. 식료품 포장에 적힌 성분표를 보면 E와 숫자로 구성된 기이한 이름이 있는데, 그것이 합성방부제다. 합성방부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브산 같은 산과 그것의 염분인 소브산염이다. 성분표에는 E200, E202, E203 등으로 적혀 있다. / 169p

 

 

설탕이 달걀을 휘저을 때만 도움을 주는 건 아니다. 설탕은 모든 달콤한 음식의 근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있는데, 단맛을 줄이겠다고 설탕을 줄이는 것이다. 설탕 역시 흡습성이다. 즉 설탕이 물을 끌어당겨 붙잡는다. 따뜻할 때 먹는 음식이며 속이 액상이 퐁당오쇼콜라에서는 설탕이 큰 역할을 하지 않지만, 케이크나 쿠키라면 설탕이 적을수록 빨리 건조해진다. 그러니 케이크 재료에서 설탕 절반을 덜어내면, 푸석푸석한 케이크를 먹을 수밖에 없다. / 254p

 

 

 

 

 

 

   이 외에도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이유를 화학적으로 설명한 부분도 재미있다. 아미노산 500개가 달린 긴 사슬에서 487번 자리의 아미노산이 보통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 작은 아미노산이 일으킨 고장 난 효소가 아세트 알데히드를 분해하지 못해서 구역질을 하고, 맥박이 빨라지며 피부나 얼굴이 잘 익은 꽃게처럼 빨갛게 변해버린다니 참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어마어마하게 술을 좋아했던 내가 지금은 딱 한 잔도 마시지 못할 정도로 거부하게 된 것도, 어쩌면 이 작은 아미노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이처럼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를 읽고 있으면 독성이 있든, 건강에 좋든, 생존에 필수적이든 어떻든 이 세상은 온통 화학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정말이지 화학물질 아닌 것이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화학약품’이라는 낱말 자체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나 ‘케모포비아’가 양산한 공포심리가 화학제품 전반에 대한 불신을 낳은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올바른 화학 상식을 익히고 화학제품을 제대로 사용할 줄만 안다면, 오히려 일상의 가장 편리한 도구가 되어 주리란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단한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한 주제의 다양한 면을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뭔가를 정확히 이해할 때만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화학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오해와 편견을 깨고 좀 더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기 위해 많이 배우고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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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대 최고 화가의 삶과 작품을 만나는 지적 유희의 시간!

이 책을 읽고 나면 작품을 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작품을 읽는 눈은 없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은 좋아서 나는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 특별한 기술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주로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서적인 감각을 감상하는 것에 의지하는 편이다. 그러다 팸플릿이나 해설사를 통해 작가의 내력이나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읽거나, 그저 감상만 했을 때에는 알 수 없는 뒷이야기까지 듣게 되면 작품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종종 지역 작가 위주의 작품 전시라던지 다양한 전시를 다루지 못하는 지역적 한계가 아쉬울 때면 월간 잡지나 미술 에세이를 찾기도 한다. 특히 미술 에세이는 국내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유명 작품에, 방대한 미술사를 비롯하여 해당 작품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관점과 저자의 사적인 감상까지 읽을 수 있다는 좋은 장점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가 이번에는 미술 에세이로 돌아온 것이다. 이쯤 되면 앞서 발표한 뛰어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 『시대의 소음』과 요리를 주제로 한 에세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를 떠올려보았을 때, 대체 그가 다루지 못할 영역이란 무엇인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게다가 전작에서 시대를 통찰하고 예술가의 내적 내레이션을 자신만의 지적 감수성으로 치열하게 담아낸 그라면, 이 미술 에세이 역시 여타의 미술 에세이와는 다른 수준의 정교함을 선보일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과연,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색다른 주제와 기법을 차용하는 소설가답게 화가에 따라 다른 형식의 글과 독창적인 해석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제 우리는 그가 선보이는 17편의 큐레이션을 관람하며 그저 황홀해질 준비만 하면 된다.

 

 

 

 

 

 

미술은 새롭게 하고자 하는 욕구와 과거와의 부단한 대화다

 

 

   줄리언 반스는 제리코에서 하워드 호지킨에 이르기까지, 미술이 어떻게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를 거쳐 모더니즘에 이르렀는지를 17편의 이야기에 걸쳐 안내한다. 그는 미술사학자도 아니고, 미술 전공자도 아니지만 유년 시절부터 쌓아온 미술을 향한 순수한 애정으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 너머의 세계까지 치열하게 몰두한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림 한 점으로 이렇게까지 상세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없었으리라. 이를 테면 예술가의 사생활이란 다소 사소해보이지만 작품의 탄생 배경과 이해를 돕는 가장 결정적인 도구가 되어줄 것이며, 미술에 관한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비평은 끊임없이 독자의 지적 유희를 자극한다. 여기에 사실과 사실 사이에 비어진 공백을 유연하게 메우고, 사실감 넘치는 문장과 생생한 표현으로,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입체감 있게 이야기를 구현해낸 저자의 필력은 단연 돋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너무도 쉽게 들라크루아와 마네를 거쳐 세잔과 드가의 사적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된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사실성을 가지고 출발한다. 과거, 세네갈 탐험대에 오른 메두사호의 프리깃함 선원들은 배를 잃게 되자 뗏목을 만들었고 총 150명의 인원이 그곳에 옮겨 탔다. 하지만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력했고, 끔찍한 정신착란으로 인해 갈등이 빚어졌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며 마침내 인육을 먹는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되었을 땐 열다섯 명의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게 표류한 지 열셋째 날, 아르고스호를 만나 극적으로 구조되고 훗날 두 사람이 이 표류의 시련을 쓴 글을 읽고 제리코는 사건 기록을 수집한다. 메두사호의 재난에서 살아난 목수를 찾아내 뗏목의 축적 모형을 만들게 하고 그 위에 생존자들의 밀랍 모형을 만들어 얹는다. 주위의 공기에 죽음이 스며들도록 잘린 머리와 절개된 팔다리를 그려 화실 여기저기에 걸어두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재난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여기에서 줄리언 반스는 제리코가 그리지 않은 것(폐기된 발상)과 그린 것(목표에 가까운 성과)들을 통해 이 그림이 단 하나의 장면으로 탄생하게 된 과정을 소설처럼 재구성함으로써 ‘화가는 강 하류를 향해 술술 실려 내려가 햇빛 가득한 저수지라는 완성된 그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조류가 맞부딪치는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잡고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끔찍한 절망이 지배하는 논쟁 끝에, 아직 성한 열다섯 명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공익을 위하여 병든 동료들을 바다에 집어던지자는 의견에 합의했다. 계속되는 죽음을 보고 마음이 냉혹해진 선원 세 명과 군인 한 명이 그 결정의 집행을 담당했다. 죄 없는 자와 죄 있는 자가 분리되듯이 성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분리되었다. / 28p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든, 이 그림에서 그의 존재는 환호하는 인물의 존재만큼이나 강렬하다. 이 균형으로 미루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먼저 이 그림은 아르고스호를 처음 목격했을 때의 중간점을 나타내고 있다. 즉, 아르고스호는 15분 전에 눈에 띄었고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15분이 남았다. 배가 계속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확신하지 못한 채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뗏목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을 포함한 몇몇은 배가 멀어져가고 있으며 자기들이 구조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이들 때문에 <난파 장면>은 조롱당하는 희망의 표상으로 해석된다. / 48p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은 여성의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그 관능적인 섬세함은 위협적이리만치 사실적이다. 이 도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자 독단적인 미감의 소유자인 쿠르베는 미술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언제나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며 거창하게 꾸짖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에서 가장 자부심 강하고, 가장 오만한 사람”으로 일컬었고, 자기 홍보에도 능한 자였으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거절한 일화는 과연 허세의 극치답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프랑스 여자라도 아내로 맞을 수 있다며 거만하게 편지를 썼다가 여성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악담을 해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치졸한가. 이렇듯 자만심 넘치는 그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나폴레옹 3세에게 “그는 내게 부당한 형벌”이라는 글까지 쓸 수 있었던 호기로 보아서, 예의 그 솔직함에는 성역을 두지 않는 일관된 사람이었나 보다. 덕분에 우리는 작가의 성격과 태도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화실>의 구성은 중세의 세 폭짜리 그림을 연상시킨다. 양옆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위에는 신과 천사가 사는 아득히 넓은 하늘이 자리한 그런 그림 말이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마리아? 하느님과 이브? 글쎄, 여하튼 쿠르베의 그림에서는 쿠르베 자신과 모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거기에 앉아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어쩌면 쿠르베가 왜 바깥이 아니라 화실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는 그저 이미 존재하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화가라고. 이렇게 해석해보자, <화실>은 엄청난 신성보독이거나 예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또는 둘 다라고. 각자의 관점에 달린 문제다. / 93p

 

 

그의 그림에는 ‘개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영혼은 그리는 게 아니야.” 세잔은 투덜거리곤 했다. “몸을 그려야지. 젠장, 몸을 잘 그리기만 하면, 영혼은-몸에 그런 게 깃들어 있다면-사방에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 단체브가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세잔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실물과 닮았다는 점보다는 인물이 거기 실제로 있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세잔을 가리켜 “우리가 실제로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밀도의 재현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평했다. / 164p

 

 

 

 

 

 

   보나르는 야외 생활을 그릴 때조차 실내 생활의 화가다. 풍경화는 집이라는 안전한 곳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그리거나 높은 발코니에서 그린 것이 많다. 그런 그림을 직접 보면 실내 그림처럼 긴장감과 정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유지된다. 피카소는 보나르를 두고 이렇게 주장한다. “감수성이 넘쳐나서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좋아했다”고. 여기서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 바로 마르트를 가리킨다. 보나르는 무엇 때문인지 이 여자와 집에 틀어박혀 그녀가 들어가는 그림을 385점이나 그렸던 것이다. 욕실이든 침실이든, 마르트는 사방에 또 나타나고 나타난다. 그는 “인물은 배경의 일부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물병과 식탁보, 덧문과 라디에이터, 타일과 욕실 매트 같은 것들 사이에서 마르트는 가구의 일부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385점이라는 방대한 작품의 양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들이 보여주는 것은 행복일까, 슬픔일까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나르 말년의 마르트 누드화들은 에로틱해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모델이자 정부이자 아내로서 평생에 걸친 집착의 대상이었던 마르트와의 사이에 르네가 자리를 빼앗고 들어서려했던 일이 있었다. 보나르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화가 지망생이었던 르네에게 청혼했다가 마르트에 의해 좌절되었고 이 일은 르네가 파리의 한 호텔 방에서 자살하는 사건으로 끝을 맺었다. 이제 우리는 보나르의 자화상마저 왜 더욱더 비참하고 생기 없는 외판원처럼 변해버렸는지, 줄리언 반스가 들려준 이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얻는다.

 

 

 

우리는 스스로의 결점을 깨닫게 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브라크는 이보다 더 급진적으로 접근해서, 결점을 아예 무시해버렸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미술의 진보는 미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더 잘 알게 되는 데 있다.” 간단히 풀자면 이런 말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 점에서 브라크는 인체를 잘 그리지 못하는 자신의 결점을 일종의 장점으로 승화시키겠다고 결심한 르동과 비슷하다. / 294p

 

 

우리는 그(올든버그)의 오브제를 마주했을 때 가만히 있게 되지 않는다. 그 앞에서 재치 있는 명언을 요구하고, 소재와 변화를 확인하고, 그 매끄러운 마무리를 승인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야, 그 <치즈버거> 봤어? 그거 재미있지 않아? 야구 글러브는? 찌부러진 변기는? 그렇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우리는 전부 다 봤다. 그것들이 우리의 기억에 남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건 하나의 성취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심금을 울릴까? 어떤 방향으로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까? 어쨌든 적어도 우리의 얼굴은 움직인다. 우리는 미소 짓고 낄낄거리고 어리둥절해졌다가는 다시 미소 짓는다-그리고 이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 331p

 

 

 

 

 

 

   책의 구성 중에서 ‘이것이 예술인가?’를 주제로 한 내용이 특히 흥미롭다. 책에는 다소 놀라운 조형물 사진 두 점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하나는 뮤익의 <죽은 아빠>이고 또 하나는폴 리셰의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다. 둘 다 알몸을 하고 있는데, <죽은 아빠>의 경우 미술관 바닥에 설치된 반들반들한 마감 칠과 하이퍼리얼리즘적 정밀성으로 인해 작가의 다정하면서도 냉혹한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외소하고 저 침묵된 죽음은 우리에게 죽음의 작용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와 유사한 느낌의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는 마르고 나이에 비해 빨리 늙은 알몸의 여자로, 그녀가 운동 실조증 즉 척수매독으로 인해 극도의 고통을 겪은 몸임을 알 수 있다. 왼팔의 관절 안쪽은 바깥쪽으로 거의 완전히 돌아갔고, 오른발은 아예 90도로 꺾였으며, 왼쪽 무릎은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있다. 이 쇠약하고 고통 받은, 유방이 거의 없는 여자의 형상을 보고 있노라면 고통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엄숙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죽은 아빠>는 미술품으로 전시하고 판매하기 위해 제작된 것인 반면,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는 신경계 질병을 연구하는 선생들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 자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오르세 미술관의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우리는 이 여인을 통해 예술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줄리언 반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피력한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물건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살아 있는 반응이다. 평가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 때문에 론 뮤익의 <죽은 아빠>의 강렬함이나 그 감동이 조금이라도 약화되는 일이 없다. 비너스 여인은 <죽은 아빠>의 동료이자 선구자가, 그리고 물론 경쟁자가 되어준다”고 말이다.

 

 

 

자아를 논하는 철학의 한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일화성과 서사성의 쌍둥이 같은 양극 사이 어느 한 지점에 자리한다. 그 둘의 차이는 존재론적인 것이지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일화주의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상이하게 전개되는 부분 부분들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느끼고 그렇게 믿는다. 그러면서 더 파편적인 자아의식을 가지게 되며, 자유의지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서사주의자는 일정한 연관성과 지속적인 자아를 느끼고 그것을 찾아낸다. 그리고 자신의 자아와 연관성을 구축하는 도구로서의 자유의지를 인정한다. 서사주의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실패에 죄책감을 느낀다. 일화주의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서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사생활보다 더 순수한 일화주의자의 예는 없을 것이다. / 355p

 

 

예술 작품은 언젠가는 작가의 전기를 벗어나 자유로이 떠돈다는 특징이 있으니까. 어느 한 세대에서는 거칠고 비열하고 비예술적이고 차가웠던 것이, 다음 세대에 가서는 진실된 것, 심지어 삶의 아름다운 화신이 되고 삶을 표현하는-또는 심화하는-모범이 되기도 한다. / 377p

 

 

 

 

 

 

   제목에서는 지극히 사적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미술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 앞에서 우리는 적극 공감하게 된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 홀로 들어가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미술 입문자에게는 좋은 안내자가 되고, 미술 애호가에는 황홀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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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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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흔적을 좇아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길 위에서 발견한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의 기록들로 나를 채우는 시간!

 

 

 

   몇 달 전에 이탈리아 여행책을 읽다가 ‘단테를 따라 떠나는 투어’를 테마로 한 기획이 있어 관심이 생겼다. 단테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 도메니코 디 미첼리노의 <단테의 신곡>이 있는 두오모를 시작해 단테가 세례를 받은 산 조반니 세례당, 기도드리는 베아트리체를 훔쳐보았던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사랑에 빠진 지 9년 만에 처음 말을 걸었던 산타 트리니타 다리 등을 둘러보는 순이다. 뿐만 아니라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에는 두 청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여전히 가슴 절절하게 남아 있다. 아쉽게도 과거의 영광과 달리 지금은 작은 박물관 정도에 지나지 않는 쓸쓸한 흔적만을 남기고 있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유럽은 곳곳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자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낭만적이다. 과연 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사랑과 낭만의 문장 사이를 산책하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산책자의 인문학」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꼭 이런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천천히 걸으며, 삶 사이에서 예술의 낭만을 엿보다

 

 

 

레온 트로츠키,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폴가, 슈테판 츠바이크, 페터 알텐베르크, 아돌프 로스 등 위대한 예술가와 건축가, 철학자를 만나보세요.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은 1876년에 문을 연 카페 센트럴의 일상이었습니다. / 5p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링 스트라세라는 순환도로가 있는데,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센트럴’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철학자 등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곳곳에 손때를 묻혔을 것을 생각하면, 평소에 자주 마시던 커피와 디저트도 유독 특별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그래서 「산책자의 인문학」의 저자 문갑식 기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여행 하는 곳과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미리 찾아본다고 한다. 카페 센트럴에서 마시는 커피가 특별해지는 것처럼 우리가 걸작이나 명작이라 부르는 작품을 한껏 감상하고 여행지로 떠나면, 눈에 보이는 공간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자의 인문학」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중심으로 작가 개인의 삶은 물론, 위대한 예술 작품의 탄생 배경과 그것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예술사적인 의미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다루고 있어 예술가와 함께 그들이 남긴 흔적을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낯선 유럽의 도시와 마을이 친숙해지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결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은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위대한 예술가 15인의 흔적을 따라간다. 1부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예술의 도시를 산책하다’ 편에서는 피렌체의 보티첼리, 빈의 클림트,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를 지나 프로방스에서 고흐와 노스트라다무스를 만난다. 이중 오랫동안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건축과 예술의 도시이기도 한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음 두 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르네상스’와 그 르네상스의 터전을 만든 ‘메디치 가문’이다. 르네상스, 특히 서기 15~16세기의 100년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매우 흥미로운 시기다. 예술,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오늘날까지 위대한 예술가로 이름을 남긴 이들이 이 시기 피렌체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위대한 예술가들의 가장 믿음직한 후원자였다. 「마그니피카트의 성모」, 「동방박사의 경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보티첼리도 이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 책은 보티첼리가 메디치가가 피렌체에서 추방되고, 이후 사보나롤라가 집권하다 몰락하여 종말론에 도취되기까지 보티첼리의 예술 여정을 쫓아간다. 얼마 전에 tvn 프로그램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를 보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실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하기 위해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도 예술가에게 있어 후원자 혹은 권력자가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그런데 클림트는 왜 거센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토록 성적 표현에 집착했을까? 사실 클림트가 살던 시대의 분위기는 그의 그림보다 훨씬 더 퇴폐적이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던 이가 정작 자기 지갑을 윤락가에서 잃어버린 일화도 있었다. 미술사학자 아놀드 하우저는 이렇게 말한다. “창부는 격정의 와중에도 언제나 냉정하며 자기가 도발한 쾌락에 초연한 관객이다. 타인이 황홀한 도취에 빠질 때에도 고독과 냉담을 느낀다. 이러한 지점에서 창부는 예술가이자 쌍둥이 짝이다.” / 64p

 

 

노트스라다무스의 전문가 피터 르미서리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는 어떤 의미로든 해석이 가능하다. 거의 신빙성이 없다”라며, 그가 남겼다는 예언에 굉장히 회의적이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거의 5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힘을 잃지 않고 남아 있다. 그의 예언은 알 수 없는 미래를 궁금해하는 인간의 본능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그의 예언서에 대입시킴으로써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105p

 

 

 

 

 

 

   2부 ‘사랑과 낭만의 산책하다’ 편에서는 리옹의 생텍쥐페리, 샤를빌 메지에르의 랭보, 뤼브롱산의 도데를 만나본다. 여기에서는 생텍쥐페리가 남미에서 항공사 주임으로 일하던 서른 살 무렵에 만난 사랑스럽지만 까다로운 성격의 아내에게 영감을 얻어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장미꽃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 어마어마한 미소년 랭보가 유부남 시인과 사랑에 빠져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일화, 도데가 쓴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슬픈 장면은 당시 알자스로렌 지방 사람이 겪었을 실제 감정과는 달랐다는 점이 흥미롭게 읽힌다. 특히 몇 번이고 가출을 했던 반항아였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시인이란 견자여야만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라는 구절이 담긴 편지 한통을 통해 알 수 있듯 우리는 랭보에게서 타인의 고통과 함께 괴로워하고, 모난 현실에 분노하는 언어를 만들려한 그의 남다른 예술가적 자질을 느낄 수 있다.

 

 

 

인력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장대한 풍광 앞에서 이곳이 프랑스 중부나 남부보다는 화려하지 못하다고 내심 깔봤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다. 치열하게 ‘견자’가 되기를 갈망하던 랭보가 내게 준 선물이 바로 이 깨달음이었다. / 144p

 

 

 

 

 

 

   3부 ‘위대한 인문주의의 고향을 산책하다’ 편에서는 아레초의 페트라르카, 피렌체의 단테, 체르탈도의 보카치오, 베네치아의 카사노바를 만난다. 사실 페트라르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열어젖힌 중세의 문을 닫고, 처음으로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다소 낯선 시인이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예술가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또 아직까지도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신곡」 읽기를 이 책을 통해 도전해볼까 하는 용기를 갖게 된 점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되었다. 한편, 그간 가지고 있었던 카사노바의 이미지에 반전을 가할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번역가 김석희가 카사노바의 인생관을 두고 “카사노바에게 인생은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식탁과 같았다. 인생이라는 식탁 앞에서 죄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어느 음식에서 맛보면 좋을지 몰라 어리둥절하지만 그 식탁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 갈망의 눈길은 관능적인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을 찬미한 시인이었고 삶의 기쁨을 만끽한 쾌락주의자였다.”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삶에는 좀 더 많은 변명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301년, 겔프 네리당은 교황과 당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동생인 발루아 백작의 군대를 피렌체로 끌어들인다.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외세의 힘을 빌린 것이다. 이후 정권을 독점한 네리당은 비아키당을 숙청했는데, 단테는 제거 대상 1순위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데, 이때 자기 집에 『신곡』「지옥 편」의 1곡부터 7곡까지를 놔두고 떠나는 바람에 원고가 사장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단테의 집을 압수 수색한 사람 중 하나가 궤짝에 담긴 원고에 감동해 단테에게 그 원고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 212p

 

 

『데카메론』의 탄생 배경은 흑사병, 바로 페스트였다...(중략)...페스트의 무서운 점은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본성가지 공격하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옮을 것이 두려워 사람이 죽어도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게 된다. 만약 오늘날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이 닥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 221p

 

 

 

 

 

 

   마지막 4부 ‘안개 자욱한 스파이와 판타지의 세계를 산책하다’ 편에서는 옥스퍼드에서 루이스를, 런던과 베를린에서 르 카레를, 프랑스와 빈 등 여러 곳에서 스파이 소설의 거장 포사이스의 흔적을 찾아간다. 여기서는 루이스와 돌킨이 서로를 독려하며 좋은 영향을 주었던 점,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귀족 엘리트 계층이라 생각했던 평론가들의 생각과 달리 수없이 사기 행각을 저지른 직업 사기꾼의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난 존 르 카레, 스파이 소설에서도 시대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존 르 카레와 포사이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1960년대 동서 간의 긴장 상황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존 르 카레의 소설이 필요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그런 치열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 가볍고 행복한 것을 동행하게 했는데, 그런 소망을 화끈하게 충족시켜준 것이 바로 십 대 더벅머리 청년 네 명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이 ‘십 대 더벅머리 청년 네 명’, 즉 전설의 록밴드 비틀스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 274p

 

 

 

   앤 트루벡의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라는 작품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한다. ‘집이야말로 문학적 관음증, 숭배 혹은 더 거칠게 말하자면 문학 포르노와 엮이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이탈리아 아레초 마을은 페트라르카가 태어난 집을 생가로 보존했지만, 페트라르카는 거기에 산 적도 없었고 생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라고. 「산책자의 인문학」을 읽으며 모차르트가 살아 있을 때나 비참하게 죽어갈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잘츠부르크가 현재는 가게의 초콜릿, 연필통이나 싸구려 장식에까지 모차르트를 써먹는 모습이나, 고흐가 자신의 요동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냈던 장소인 생 폴 무솔 정신병원이 당시에는 일주일에 두 차례 찬물 목욕을 시켜주는 일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웬만한 관광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 유명한 곳이 된 점도 씁쓸한 자국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마 세상에 수많은 감각을 내어놓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유산을 영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 그것을 책을 통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안방까지 공유할 수 있게 한 저자와 이 땅의 수많은 저자들에게도 새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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