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의 흔적을 좇아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길 위에서 발견한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의 기록들로
나를 채우는 시간!
몇 달 전에 이탈리아 여행책을 읽다가 ‘단테를 따라 떠나는 투어’를 테마로 한 기획이 있어 관심이 생겼다. 단테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 도메니코 디 미첼리노의 <단테의 신곡>이 있는 두오모를 시작해 단테가 세례를 받은 산 조반니 세례당, 기도드리는
베아트리체를 훔쳐보았던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사랑에 빠진 지 9년 만에 처음 말을 걸었던 산타 트리니타 다리 등을
둘러보는 순이다. 뿐만 아니라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에는 두 청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여전히 가슴
절절하게 남아 있다. 아쉽게도 과거의 영광과 달리 지금은 작은 박물관 정도에 지나지 않는 쓸쓸한 흔적만을 남기고 있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유럽은 곳곳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자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낭만적이다. 과연 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사랑과 낭만의 문장 사이를 산책하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산책자의 인문학」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꼭 이런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천천히 걸으며, 삶
사이에서 예술의 낭만을 엿보다
레온 트로츠키,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폴가, 슈테판 츠바이크, 페터 알텐베르크, 아돌프 로스 등
위대한 예술가와 건축가, 철학자를 만나보세요.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은 1876년에 문을 연 카페 센트럴의 일상이었습니다. / 5p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링 스트라세라는 순환도로가 있는데,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센트럴’에는 이러한 문구가 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철학자 등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곳곳에 손때를 묻혔을 것을 생각하면, 평소에 자주 마시던 커피와
디저트도 유독 특별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그래서 「산책자의 인문학」의 저자 문갑식 기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여행 하는 곳과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미리 찾아본다고 한다. 카페 센트럴에서 마시는 커피가 특별해지는 것처럼 우리가 걸작이나 명작이라 부르는 작품을 한껏 감상하고
여행지로 떠나면, 눈에 보이는 공간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자의 인문학」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중심으로 작가 개인의 삶은 물론, 위대한 예술 작품의 탄생 배경과 그것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예술사적인 의미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다루고 있어 예술가와 함께 그들이 남긴 흔적을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낯선 유럽의 도시와 마을이 친숙해지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결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은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위대한 예술가 15인의 흔적을 따라간다. 1부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예술의 도시를
산책하다’ 편에서는 피렌체의 보티첼리, 빈의 클림트,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를 지나 프로방스에서 고흐와 노스트라다무스를 만난다. 이중 오랫동안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건축과 예술의 도시이기도 한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음 두 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르네상스’와 그 르네상스의 터전을 만든 ‘메디치 가문’이다. 르네상스, 특히 서기
15~16세기의 100년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매우 흥미로운 시기다. 예술,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오늘날까지 위대한 예술가로 이름을 남긴
이들이 이 시기 피렌체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위대한 예술가들의 가장 믿음직한 후원자였다. 「마그니피카트의 성모」, 「동방박사의 경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보티첼리도 이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 책은 보티첼리가 메디치가가 피렌체에서 추방되고, 이후
사보나롤라가 집권하다 몰락하여 종말론에 도취되기까지 보티첼리의 예술 여정을 쫓아간다. 얼마 전에 tvn 프로그램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를 보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실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하기 위해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도
예술가에게 있어 후원자 혹은 권력자가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그런데 클림트는 왜 거센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토록 성적 표현에 집착했을까? 사실 클림트가 살던
시대의 분위기는 그의 그림보다 훨씬 더 퇴폐적이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던 이가 정작 자기 지갑을 윤락가에서 잃어버린 일화도
있었다. 미술사학자 아놀드 하우저는 이렇게 말한다. “창부는 격정의 와중에도 언제나 냉정하며 자기가 도발한 쾌락에 초연한 관객이다. 타인이
황홀한 도취에 빠질 때에도 고독과 냉담을 느낀다. 이러한 지점에서 창부는 예술가이자 쌍둥이 짝이다.” / 64p
노트스라다무스의 전문가 피터 르미서리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는 어떤 의미로든 해석이 가능하다. 거의
신빙성이 없다”라며, 그가 남겼다는 예언에 굉장히 회의적이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거의 5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힘을 잃지 않고 남아 있다. 그의 예언은 알 수 없는 미래를 궁금해하는 인간의 본능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그의 예언서에 대입시킴으로써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105p



2부 ‘사랑과 낭만의 산책하다’ 편에서는 리옹의 생텍쥐페리, 샤를빌 메지에르의 랭보, 뤼브롱산의 도데를 만나본다. 여기에서는
생텍쥐페리가 남미에서 항공사 주임으로 일하던 서른 살 무렵에 만난 사랑스럽지만 까다로운 성격의 아내에게 영감을 얻어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장미꽃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 어마어마한 미소년 랭보가 유부남 시인과 사랑에 빠져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일화, 도데가 쓴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슬픈 장면은 당시 알자스로렌 지방 사람이 겪었을 실제 감정과는 달랐다는 점이 흥미롭게 읽힌다. 특히 몇 번이고 가출을 했던 반항아였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시인이란 견자여야만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라는 구절이 담긴 편지 한통을 통해 알 수 있듯 우리는
랭보에게서 타인의 고통과 함께 괴로워하고, 모난 현실에 분노하는 언어를 만들려한 그의 남다른 예술가적 자질을 느낄 수 있다.
인력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장대한 풍광 앞에서 이곳이 프랑스 중부나 남부보다는 화려하지 못하다고 내심
깔봤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다. 치열하게 ‘견자’가 되기를
갈망하던 랭보가 내게 준 선물이 바로 이 깨달음이었다. / 144p


3부 ‘위대한 인문주의의 고향을 산책하다’ 편에서는 아레초의 페트라르카, 피렌체의 단테, 체르탈도의 보카치오, 베네치아의 카사노바를
만난다. 사실 페트라르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열어젖힌 중세의 문을 닫고, 처음으로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다소 낯선
시인이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예술가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또 아직까지도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신곡」 읽기를 이 책을 통해 도전해볼까
하는 용기를 갖게 된 점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되었다. 한편, 그간 가지고 있었던 카사노바의 이미지에 반전을 가할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번역가 김석희가 카사노바의 인생관을 두고 “카사노바에게 인생은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식탁과 같았다. 인생이라는 식탁 앞에서
죄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어느 음식에서 맛보면 좋을지 몰라 어리둥절하지만 그 식탁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 갈망의 눈길은
관능적인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을 찬미한 시인이었고 삶의 기쁨을 만끽한 쾌락주의자였다.”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삶에는 좀 더 많은 변명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301년, 겔프 네리당은 교황과 당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동생인 발루아 백작의 군대를 피렌체로
끌어들인다.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외세의 힘을 빌린 것이다. 이후 정권을 독점한 네리당은 비아키당을 숙청했는데, 단테는 제거 대상 1순위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데, 이때 자기 집에 『신곡』「지옥 편」의 1곡부터 7곡까지를 놔두고 떠나는 바람에 원고가 사장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단테의 집을 압수 수색한 사람 중 하나가 궤짝에 담긴 원고에 감동해 단테에게 그 원고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 212p
『데카메론』의 탄생 배경은 흑사병, 바로 페스트였다...(중략)...페스트의 무서운 점은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본성가지 공격하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옮을 것이 두려워 사람이 죽어도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게 된다. 만약 오늘날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이 닥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
221p


마지막 4부 ‘안개 자욱한 스파이와 판타지의 세계를 산책하다’ 편에서는 옥스퍼드에서 루이스를, 런던과 베를린에서 르 카레를, 프랑스와
빈 등 여러 곳에서 스파이 소설의 거장 포사이스의 흔적을 찾아간다. 여기서는 루이스와 돌킨이 서로를 독려하며 좋은 영향을 주었던 점,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귀족 엘리트 계층이라 생각했던 평론가들의 생각과 달리 수없이 사기 행각을 저지른 직업 사기꾼의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난 존 르 카레, 스파이 소설에서도 시대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존 르 카레와 포사이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1960년대 동서 간의 긴장 상황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존 르 카레의 소설이 필요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그런 치열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 가볍고 행복한 것을 동행하게 했는데, 그런 소망을 화끈하게 충족시켜준 것이 바로 십 대
더벅머리 청년 네 명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이 ‘십 대 더벅머리 청년 네 명’, 즉 전설의 록밴드 비틀스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 274p
앤 트루벡의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라는 작품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한다. ‘집이야말로 문학적 관음증, 숭배 혹은 더
거칠게 말하자면 문학 포르노와 엮이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이탈리아 아레초 마을은 페트라르카가 태어난 집을 생가로 보존했지만, 페트라르카는
거기에 산 적도 없었고 생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라고. 「산책자의 인문학」을 읽으며 모차르트가 살아 있을 때나 비참하게 죽어갈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잘츠부르크가 현재는 가게의 초콜릿, 연필통이나 싸구려 장식에까지 모차르트를 써먹는 모습이나, 고흐가 자신의 요동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냈던 장소인 생 폴 무솔 정신병원이 당시에는 일주일에 두 차례 찬물 목욕을 시켜주는 일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웬만한
관광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 유명한 곳이 된 점도 씁쓸한 자국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마 세상에 수많은 감각을 내어놓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유산을 영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 그것을 책을 통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안방까지 공유할 수 있게 한 저자와 이 땅의 수많은
저자들에게도 새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