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1
유진선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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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고 풍요로운 대자연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북유럽으로!

북유럽에서 꼭 해봐야 할 모든 것에서 쉽고 빠르게 끝내는 여행 준비까지!

 

 

   몇 해 전에 <덴마크 사람들처럼>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궁극의 복지를 실천하는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가 된 비결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덴마크인들은 자유와 자율성을 강조하여 약 70퍼센트가 열여덟 살이 되면 독립해 스스로 고등교육을 받을 지 받지 않을 지를 결정하고, 가정과 여가 생활을 중요하게 여겨 오후 5시경에 퇴근해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가한다고 한다. 또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 강력하게 앞장서 정치, 행정, 경제 환경에 있어 국민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으며 그것으로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그러고 보면 ‘편안한’, ‘아늑한’이라는 뜻으로 덴마크인들의 성향을 정의할 때 등장하는 단어, ‘휘게’가 삶 전체에 반영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자신의 개성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얀테의 법칙’을 실천하고 있는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편안한 의자, 적당한 조도의 조명, 조화를 이루는 촛불 등의 소품으로 집 안 분위기를 아늑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북유럽 디자인’ 역시 전 세계에서 크게 인기를 끈 것을 보면 이들 특유의 문화와 정서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북유럽의 문화와 정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면서 이들 지역에 관한 관심도 증대되었다. 하지만 동유럽이나 서유럽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북유럽에 대한 여행 수요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아무래도 물가가 상당히 비싼 데다 거리가 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또 화려한 볼거리나 북적이는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는 수수한 성향의 분위기도 한 몫 하지 않을까. 하지만 북유럽의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대자연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낭만, 그 속에서 꿈같은 휴식을 누리를 수 있는 북유럽 여행의 매력을 알고 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셀프트래블

 

 

   <북유럽 셀프트래블>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아이슬란드 주요 6개국 도시를 가이드 한다. 책의 앞부분의 ‘Mission in Northern Europe’에서는 여러 기간별, 지역별에 따른 다양한 일정을 제시하여 누구든지 여행 계획을 짤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는 북유럽 6개국 기본 루트를 비롯하여 도시와 자연을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코스와 일정, 각 도시별 추천 일정, 북유럽의 진면모를 느낄 수 있는 북극권 여행의 일정까지 알차게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북유럽에서 누리고, 맛보고, 쇼핑해야 할 것을 비롯하여 누구나 궁금해 하는 북유럽 여행에 관한 질문들도 보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특히 북유럽 여행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제대로 알고 결정하는 법을 돕기 위해 장점과 단점도 분류해놓고 있는데, 단점의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법까지 기록해두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본문에 들어가면 ‘국가 프로필’, ‘현지 오리엔테이션’ 등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와 이동 방법이나 긴급 연락처와 같은 필수 정보들을 아울러 소개하고 있으니 여행 전에 반드시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그 뒤로는 각 나라의 주요 도시가 차례차례 나오는데 도시나 지역별로 기본적인 교통 정보, 관광지, 식당, 숙소를 비롯하여 로컬명소, 뷰포인트 등으로 분류한 명소까지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일정을 짤 때 유용하게 써보자. 또, 중간중간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나 강조하고픈 내용은 ‘Tina's Plus’, ‘Tina's Story’, ‘Snakk’ 등을 통해 보충하고 있으니 참고하자.

 

 

 

   덴마크는 수도 코펜하겐과 근교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덴마크 디자인의 역사와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간인 ‘디자인 박물관’, 인어공주상과 오페라 하우스 등 주요 스폿을 한 바퀴 도는 ‘뉘하운 운하’ 투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한 근대 조각과 후기 인상파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는 ‘뉘 칼스버그 미술관’,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 거리로 유명한 ‘스트뢰이어트 지구’, 화려하게 꾸며진 연회장과 채플이 인상적인 ‘프레데릭스보르 성’, 아이와 함께 가면 좋아할 듯한 최대의 테마 파크 ‘레고랜드’가 눈에 띈다. 스웨덴의 경우 북유럽의 서울이라 할 수 있는 수도 스톡홀름과 그 근교, 예테보리 등의 지역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스톡홀름 시내를 투어할 때는 책에 소개된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면 더욱 쉽고 알찬 여행이 될 것 같다. 그 중 개성 넘치는 디자인 숍과 브랜드 숍, 카페와 바가 밀집되어 있는 가장 핫한 지역, 소포(SoFO)는 젊은 여행객이라면 잊지 말고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라면왕 ‘미스터 리’ 이철호_

노르웨이 최고의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를 한국인이 만든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이철호 씨는 한국전쟁 중 노르웨이인 의사를 만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노르웨이로 와서,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유럽 최고의 요리사’ 훈장을 받고 요리사로 살았죠. 하지만 우연히 허름한 뒷골목에서 먹었던 라면은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답니다. 전국을 직접 돌면서 시식회를 열었는데, 심지어는 시식회를 위해 한 동네의 초등학교 학생 대부분이 무단결석까기 감행했다는 기사도 있었어요.

이철호 씨는 2018년 2월,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 라면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양국 간에 마음의 다리를 놓았던 노력을 기리며, 노르웨이에 가면 ‘미스터 리’ 라면을 한번쯤 먹어 봅시다! / 247p

 

 

 

   노르웨이는 오슬로와 베르겐, 스타방게르 등의 지역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북유럽 여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피요르드 지역과 북극권은 빼놓을 수 없다. 피요르드란, 빙하로 인해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을 뜻하는데 피요르드 유람을 즐겨본 이들이라면 열이면 열 모두 “하루라도 더 있고 싶다.”, “그냥 그곳에서 푹 쉬고 싶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라고 하니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지역의 정보를 참고해 일정에 꼭꼭 넣어두자. 한국에서는 자일리톨 껌으로 무척 유명한 핀란드는 헬싱키와 그 외 다양한 지역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헬싱키를 배경으로 음식을 통한 치유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카모메 식당>의 코스와 토베 얀손의 동화로 유명한 무민의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무민 월드’도 즐겨보자.

 

 

 

 

 

 

   이 외에도 책은 에스토니아와 아이슬란드도 소개하고 있는데, 얼마 전 <강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은지원과 이수근이 조만간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 해서 더욱 관심이 갔던 터라 이왕이면 오로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때에 맞춰서 여행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온천 문화가 발달한 ‘블루 라군’에서 육아에 지친 몸을 뜨끈뜨끈한 온천물 속에 내려놓고 오고 싶다.

 

 

 

 

 

 

   끝으로 <북유럽 셀프트래블>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장에서 여행 준비를 보다 더 쉽고 빠르게 끝내보자. 아무래도 그 어느 곳보다 정보 수집과 여행 준비 기간이 상당히 소요될 듯하니 책을 잘 참고하고, 주의사항도 꼼꼼하게 체크해본다면 막막했던 여행준비가 한결 가벼워질 듯하다. 이처럼 북유럽은 개인 여행자부터 가족 여행자까지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여행이 가능한 곳으로 준비만 알차게 한다면 그 어느 곳보다 이색적이고 특별한 여행이 가능한 곳인 것 같다. 여유롭고 감성을 자극하는 문화 공간에서부터 대자연의 장엄함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이 멋진 여행지로 떠나고자 한다면, 꼭 <북유럽 셀프트래블>을 읽어보시라 추천드린다. 참, 떠나기 전에 읽어보면 좋은 책들도 추천하고 있으니 미리 북유럽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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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 지나친 관용으로 균형 잃은 교육을 지금 다시 설계하라
베른하르트 부엡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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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화와 원칙, 일관성과 질서 안에서 엄격해져야 할 때!

자유와 훈련 사이에서 오늘도 고민하고 있는 부모와 교사들을 위한 교육법!

 

 

   어린이집을 다녀올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아이가 또 심통이 났다. 간식으로 챙겨준 과자를 적당히 먹고 마는 듯하다가 저녁을 먹을 때가 다 되어서야 갑자기 다시 과자를 찾으며 마구 졸라대는 것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고, 그 이유를 차분히 얘기하면서 설득하려 했는데 아이가 뜬금없이 완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아이라면 당연히 고집을 부리기 마련이고, 또 항상 울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던 아이가 느닷없이 발이나 팔 힘으로 나를 밀치며 고집을 부리니 일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아이의 여린 성향을 고려해 큰 소리를 내거나 따끔하게 혼을 내기보다는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설득해왔고,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통했고 적정한 수준의 타협까지 이끌어냈기에 엄하게 훈육을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걱정이 들었다.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방편으로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고집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할 수 있고, 아이에게 자유를 주되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만 정확히 지켜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교육법이 혹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되었다. 더군다나 자녀 교육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중심을 잡기가 더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다.

 

 

 

왜 다시 엄한 교육인가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느냐는 부모, 가족, 교사가 어떤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달렸다. 다시 말해 교육 환경이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관한 강의나 서적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섣불리 아이를 지도하고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아이의 표현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타고난 성향과 자존감을 높여주는데 마음을 기울인다. 예전에 읽은 한 자녀 교육서에서는 “부모가 우려하는 아이의 나쁜 흥미는 대부분 부모의 엄격한 통제에 자극을 받아 생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육아에 있어서 먹고 마시고 싸고 자는 일은 정교한 관리 혹은 표준적인 관리는 필요하지 않으며 우리 몸에는 강력한 건강 조절 기능이 있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을 자동적으로 지켜 주는 최고의 영양제는 기분 좋은 감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아이를 따르게 하지 말고 아이의 마음과 타고난 대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기를 조언한다. 대부분의 육아서들이 이렇게 아이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강조한다.

 

 

 

   우리 삶에서 혹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훈련이나 복종, 권위와 같은 말은 이제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특히 아이들의 삶은 어른의 삶보다 더 급진적으로 민주화되었다.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하고 자유방임적인 교육이 대두되면서 요구하기보다는 지원해주고, 개입을 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훈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제약이나 권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질서, 근면, 정확성, 예의 바른 태도 같은 부차적 덕목들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에 강도 높게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해 온 저명한 교육자이자 독일 명문 살렘학교 교장인 베른하르트 부엡은 “엄격하게 가르치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독일은 히틀러 정권 이후 자유주의 교육이 확산되면서 현재까지 아이들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교육관을 내세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예절과 배려를 모른 채 컸고, 그 결과 자신의 욕망만 남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되었다. 어른들이 지나치게 사랑하고 배려하는 동안, 아이들은 정작 사랑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고 책임질 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베른하르트 부엡은 이러한 자유주의 교육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제는 사랑 안에서 아이를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엄한 교육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있는 선한 가치를 지기키 위해서는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진리 앞에서 겸손할 것을 요구해야 하며, 그런 과정을 거칠 때 아이들이 삶의 질서를 세우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고 단언한다.

 

 

교육의 본질은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자를 뜻하는 ‘페다고그’(Pedagogue)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주인의 아이를 교육 장소로 데려가던 노예를 말하니다.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이가 따라올 것을 기대하지만 아이들은 본질상 순순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페다고그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며, 규율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온갖 수간을 동원했습니다. / 20p

 

 

교육하려는 사람은 아이들을 훈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훈련은 교육학의 미운 오리 새끼입니다. 동시에 모든 교육의 기초이기도 하지요. 훈련에는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복종, 포기, 절제, 인내. 훈련은 쾌락의 원칙이 아닌 성과의 원칙을 따릅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제한하고 규제를 두고 심지어 명령하기도 합니다. 좋은 훈련은 타율로 시작해 자율로 끝난다고들 합니다. 훈련의 마지막 열매는 자기훈련(self-discipline)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은 교사의 강압이 아닌 아이에 대한 ‘사랑’을 바탕에 두어야만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21p

 

 

 

 

 

 

   칸트가 ‘규칙에 복종하는 것’과 ‘자유를 누릴 능력’을 조화롭게 가르치는 것을 교육의 큰 과제로 보았듯, 베른하르트 부엡 역시 조화와 균형 안에서 ‘일관성’ 있는 교육, 합당한 리더십에 따른 ‘권위’,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어 주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훈련’, 교육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질서’, 가정의 붕괴가 만들어 낸 교육의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해결책인 ‘좋은 공동체’, ‘놀이’ 안에서 재능을 계발하고 아이를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방법들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관성이란, 부모나 교사가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지 말고 교육의 원칙으로 정한 잣대를 매일 흔들림 없이 적용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이와의 대치 상황을 견뎌 내기가 힘들어서,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서 번번이 결심을 무너뜨리기 일쑤 아니던가. 저자 역시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결국 교육의 위기는 시간 부족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지적한다. 일관성 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부모와 교사들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 미리 잘 가늠하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자신을 위해서도 유익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엄격한 일관성을 아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유머 역시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구사하는 진정한 유머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 바탕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은 스스로를 시험할 기회를 허락하고, 좌절의 경험까지도 허락할 수 있어야 합니다. / 23p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변명을 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교육자는 그때마다 반응을 보이며, 분명하고 확실하고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른이 혹시나 부정직하게 행동하고 그것을 아이가 알게 될 경우 정직에 대한 모든 노력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한 경우에는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고 어른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정직이라는 가치를 마음에 새기게 될 것입니다. / 29p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와 지속적으로 힘 대결을 펼친다. 아이들은 부모가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하고, 부모는 아이들이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한다. 이 팽팽한 대결은 결국 부모와 아이 모두를 지치게 한다. 이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어른의 권위다. “자신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자에게 이 넓은 세상과 만물은 복종하리라.” 독일 시인 파울 플레밍의 시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며 저자는 ‘권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흔히 복종과 지배라는 단어 앞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마련인데, 진정한 권위가 만들어 내는 지배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게 아니라 합당한 리더십으로 누군가를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나갈 방향을 보여주고 잣대가 되어 주는 권위, 모범이 되고, 목표를 제시하고, 경계를 그어 주는 동시에 경계를 뛰어넘도록 독려하는 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권위와의 만남은 자립심을 길러 주고, 권위에 부딪히고 저항하는 과정은 견고한 인성을 기르는 첫걸음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청소년기는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 나가는 변혁의 시기인데 이때 제대로 된 권위를 만나지 못하면 성숙은 그만큼 늦어진다. 권위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것은 즉, 아이들이 흔들리고 부딪히면서 깨닫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되는 권력 구도와 무거운 책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일찌감치 아이와 파트너가 되어 이런 힘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사랑에 기반한 부모의 힘, 부모의 권위가 필요하다. 부모가 그런 권위를 행사할 때, 교육은 성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바탕으로 하고, 아이들은 서서히 이것을 습득하고 배워 나가는 중입니다. 어린 친구들이 스스로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실행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상적인 계획일 뿐입니다. 용기를 타고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다른 모든 덕목과 마찬가지로 힘든 성장 과정을 지나면서 얻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적절한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 91p

 

 

교육이란 결국 이기심과 게으름을 극복하도록 매일 아이들을 다듬어 가는 작업입니다. / 97p

 

 

“인간은 제대로 놀 때 완전하다”라는 실러의 말에는 인류학적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놀이는 목적이 없는 자유로운 활동이며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를 연습하게끔 합니다. / 146p

 

 

 

 

  결국 베른하르트 부엡이 자신의 책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외적 질서와 내적 질서, 강제와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반드시 엄격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이라는 두 단어를 기억하고 잘 활용하는 데에서 교육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즉, 교육을 할 때는 타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아이의 훈련을 돕는 일과 아이가 주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일, 외적으로 질서를 잡아 주는 일과 아이 스스로 내적 질서를 잡게 하는 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은 대치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끝없이 균형을 잡는 일이다. 부모와 교사는 적극적으로 이끌어주는 것과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원칙과 관용 사이에서, 훈련과 사랑 사이에서, 일관성과 배려 사이에서,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 상반되는 개념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개념이며, 그것들을 잘 선택해 활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를 읽으며 그간 아이 앞에서 수없이 망설였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의 고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마음의 휴식을 얻은 대가가 아이의 고집을 더 키운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또 아직 자유를 스스로 활용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자율성을 키워주겠답시고 방치하거나 내 아이는 잘 할 거라는 믿음으로 방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해보았다. 그간 권위랍시고 부모의 고집만 내세운 것은 아닌지, 이 책으로 권위의 의미를 새로이 새겨보며 균형 있는 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나만의 교육 철학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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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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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문장 하나로 이미 공포는 시작되었다!

누가 엄마에게 완벽을 요구하는가, 모성에 관한 강박에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소설!

 

 

   “나는 다른 사람한테 우리 아이 못 맡기겠어.”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서 돌 쯤 키웠을 무렵,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곧 복직을 앞두고 있었기에 친구의 목소리는 불안으로 가득 찼다. 이유인 즉, 아이를 잠깐 시어머니께 맡겼는데 마트에서 그만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매장 곳곳을 돌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던 시어머니는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옷을 발견하고 달려갔는데, 낯선 여자가 아이를 안고 마트 밖으로 막 나가려 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직원에게 소리쳐 급히 여자를 잡았는데, 여자는 시어머니에게 “우리 아이인 줄 알았다”는 믿지 못할 말을 횡설수설하며 아이를 그 자리에 내려놓고 황망히 밖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사색이 되었다. 하물며 엄마인 친구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라 친구는 자연스레 아이를 맡기기가 두려워졌는데, 복직을 앞두고 있다 보니 다시 일을 하러 나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복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런 걱정은 오로지 엄마의 몫인 게 더 슬프고 짜증이 난다고 했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불편한 진실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된 괴로움이야 본인이 더 큰 법인데 전업주부를 무능력하게 바라보고, 다시 일을 시작하자니 이렇다 할 자리가 마땅치 않은데 더러는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를 두고 일을 나간다며 타박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오로지 생계를 부담지우는 것이 미안해서 일을 시작하긴 했는데, 살림과 육아에서 일이 더해져 오롯이 부담은 엄마에게 더 가중되지 않던가. 무엇보다 아이를 낳고 나면 탈모나 늘어난 체중과 신체기능 저하 등 신체적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게 되는데, 출산 후 예전의 몸으로 회복했다며 연일 기사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을 볼 때면 더욱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 워낙 출산율이 낮다 보니 하나, 둘 있는 아이를 그 누구보다도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퍼펙트 마더. 엄마라는 이름 속에 요구되는 이 많은 것들. 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완벽한 엄마’를 요구하게 되었을까. 그래서 나는 이미 <퍼펙트 마더>라는 책의 제목을 접하는 순간, 일찍부터 어떤 끔찍한 공포를 예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성이 짊어져야 하는 완벽함이라는 강박에 대하여

 

 

5월맘. 내가 속한 엄마 모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맘이라는 용어를 좋아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건 너무 정치적이고 안 좋은 단어다. 우리는 맘이 아니었다. 우리는 엄마였다. 그저 사람일 뿐인데, 어쩌다 보니 같은 시기에 배란하고 같은 달에 아이를 낳게 된 여자들이었다. 이렇듯 낯선 사이였지만, 아기를 위해,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친구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 19p

 

 

 

   ‘맘동네’라는 육아 사이트를 통해 출산 전부터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은 엄마들끼리 5월맘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새로 얻은 엄마라는 삶에 대해서, 육아에 대한 고충과 유용한 육아 정보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프렌시가 이들에게 직접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공원의 버드나무 아래에 모여 만남을 가졌는데, 그 중 프랜시와 콜레트, 넬은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어느 날, 넬은 멤버들에게 기분 전환을 위해 하루쯤은 아기를 맡기고 엄마들끼리만 외출해보자고 말한다. 그 중 몇몇은 아기가 너무 어려서 외출을 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날만큼은 고된 육아에서 벗어나보기로 약속한다. 그 중에서도 스칼릿의 말에 따르면 위니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까닭에 넬은 보다 적극적으로 위니를 끌어들이고, 싱글맘인 위니를 대신해 그 날 하루만 대신 아기를 봐줄 베이비시터까지 소개해주기도 한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나 혼자만 아이 키우는 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자 위니가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여기 5월맘들을 보면요, 다들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하려고 무척 애쓰고 있어요. 그 모습 보고 기죽을 필요 없어요.”

위니가 눈 속에 수줍은 기색을 떠올리며 말했다. 프랜시와 평생 친구였기라도 한 듯이.

“아이 키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거든요. 내 말 믿어요.” / 95p

 

 

“왜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가 어떤 축복을 받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드는 걸까요? 왜 우리가 입는 손해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거죠?” / 118p

 

 

좋아. 가자. 나는 급히 결정을 내렸다. 거절하지 않을 참이었다. 간다고 말할 거라고! 왜 안 돼? 나도 누구 못지않게 하룻밤 나가서 놀아도 괜찮은 사람이야. 재미있게 놀 자격이 있어. 왜 집에 남아서 아기에게만 집착해야 해? 다른 엄마들은 다들 나가서 잘만 노는데. 기념일도 축하하고, 술도 한잔하잖아? 그 엄마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참 쉽게도 헤쳐 나가고 있잖아. 너무나도 평온하게.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게. 짜증나도록 완벽하게. / 132p

 

 

 

 

 

 

   마침내 7월 4일 토요일 밤, 동네 술집에서 5월맘 멤버들이 모여 간단하게 한잔 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날 밤, 위니의 아기가 베이비시터가 잠든 사이 요람에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룻밤의 외출을 위해 위니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넬, 술집에서 낯선 남자가 위니에게 접근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프랜시, 갑자기 위니가 사라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콜레트까지 이 세 여인은 즉시 사건이 일어난 위니의 집으로 쫓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들은 절망에 빠져있는 위니를 마주한다.

 

 

 

   하룻밤 사이에 아이가 사라진 사건은 브루클린 일대를 들썩이게 만든다. 이내 위니가 1990년대 초반에 그웬돌리 로스라는 이름으로 인기 드라마 「블루 버드」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또 고단한 육아를 내려놓고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 모였던 5월맘의 멤버들이 뉴스 1면을 장식하면서 엄마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따가운 시선까지 받게 된다. 언론이 매일 같이 그들을 두들기고, 경찰의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넬, 프랜시, 콜레트는 그들 스스로 각자가 알고 있는 단서들을 모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하고, 그러는 동안에 소설은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비밀까지 하나씩 밝혀진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요즘 세상에 여자들보고 집에 앉아서 종일 미트볼이나 만들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요, 제가 만약 아이가 있다면, 그것도 갓난아기가 있다면 그 애를 두고 술집에 갈 수 있었을까요? 말도 안 되죠. 우리 어머니가 첫 아이를 낳으셨을 때는요, 아기가 어머니의 우선순위였어요. 그리고 막내가 유치원에 갈 때까지 그 우선순위는 쭉 변함이 없었답니다. 우리 어머니라면 절대로…….” / 229p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이러는 걸까요? 그냥 이 아기들이 살아가도록 지켜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압박감이 큰데. 이토록 아이를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그런데 또 한순간에 모든 걸 망치기가 얼마나 쉬운지 안다면 이럴 수 없어요. 우리 엄마들도 우리를 키울 때 이랬겠죠?” / 276p

 

 

프랜시는 뒷좌석에 앉아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서 애써 수치심을 가라앉혔다.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스칼릿은 참 단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웨스트체스터에 집도 있지 않은가. 가구를 새로 살 수도 있고, 키우기 수월한 아이가 있는 엄마이자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가. 통제가 안 되는 아기를 데리고 이케아에서 훌쩍거리고 울지를 않나. 남편이란 사람은 거실에 에어컨 하나 놓자는 것도, 바퀴에 브레이크 달린 유모차 하나 사자는 것도 안 된다 하질 않나. / 311p

 

 

 

 

 

 

   소설 <퍼펙트 마더>는 아이가 사라진 사건을 통해 모든 엄마들에게 내재된 ‘아이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자극하면서 ‘완벽한 엄마’를 요구하는 모성에 관한 강박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넬을 통해서는 예정된 출산 휴가일보다 더 빨리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워킹맘으로서의 부담감과 상사와 부하 여직원 사이에서의 미투를, 프랜시를 통해서는 좋아하는 카페인도 끊어가며 모유 수유나 자연 출산에 고집을 부리는 완벽한 육아맘에 대한 강박을,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육아 환경에 괴로워하는 콜레트를 통해서는 여성의 경력 단절과 일과 육아 사이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처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기의 행방과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스릴러의 긴장감과 현대 사회의 여성들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점과 모성에의 강박에 따른 공포들을 탄탄한 구성력과 인물 구성, 섬세한 묘사 등으로 균형 있게 녹아낸 수작이다. 특히 페이지를 끝까지 놓칠 수 없게 만드는 탄탄한 필력과 비밀에 비밀이 더해져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내는 능력까지, 왜 이 책이 ‘「걸 온 더 트레인」과 「나를 찾아줘」에 이어 도시 여성 스릴러 3부작을 완성할 완벽한 작품’이라 평가되는지 알 만하다. 원고 공개 즉시 영화 판권이 계약되어 케리 워싱턴이 주연 배우로 낙점되었다고 하니 이 역시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예비 엄마와 오늘도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의 복잡한 감정기복에 몇 번이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가며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들 모두에게 ‘그 어디에도 완벽한 엄마는 없다’는 이 말이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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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즈
린다 라 플란테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파격적인 여성 범죄 소설의 강렬함에 빠져들다!

스릴과 반전, 액션과 향수, 배신과 복수,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흥미진진한 소설!

 

 

   영화 <킬 빌>, <오션스8> 등 여성들을 주축으로 하는 범죄 스릴러 혹은 액션물이 한 번씩 극장가를 찾아온다. 속성상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이런 장르물에 간혹 <이탈리안 잡>의 샤를리즈 테론 혹은 <분노의 질주>의 갤 가돗처럼 미모와 액션을 동시에 갖춘 여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아직까진 미비한 게 사실이다. 그나마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느라 장르적 쾌감이 반감되거나 여성의 늘씬한 몸매와 미모를 부각한 저급한 시나리오에 그치기까지 하니 아직까진 여성이 주인공인 장르물은 아쉬움이 더 크다. 그런 가운데 ‘남편이 죽어 미망인이 된 여인들’이란 뜻의 위도우즈(Widows)란 책이 상당히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작품은 1983년 영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성공에 이어 2018년에 스티브 매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까지 한 작품으로 어찌 보면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물에 있어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미망인들이 모여 범죄를 계획한다는 내용은 1980년대 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이기까지 하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남편을 잃은 세 아내, 그들이 못다 한 범죄를 완성하다

  해리 롤린스는 고가의 미술품과 은제품, 보석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유한 골동품 거래상이지만, 실은 현금 수송 차량을 탈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면 실행을 하지 않는 그는 세부 사항들을 감안해 예행연습을 거듭했고, 마침내 운명의 날을 맞이한다. 일당 중 한 사람이 모는 빵 트럭이 현금 수송 차량을 저지하는 사이 승합차를 탄 세 명이 현금 차량의 뒷문을 폭파시키고, 이후 현금을 가지고 도주 차량까지 뛰어가면 빵 트럭을 몰고 있던 사람이 정해놓은 은신처로 빵 트럭을 몰고 가는 순이다. 모두 노련한 범죄자였기에 이들의 계획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경찰 차량이 나타나 터널 속으로 진입하며 젊은 폭주족 둘을 쫓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고, 세 명이 함께 타고 있던 차량에서 폭발이 일어나 이들은 즉시 사망한다. 오로지 빵 트럭의 운전사만이 몰래 그곳을 빠져나갔을 뿐이다.

 

 

 

   한 순간의 사고로 미망인이 된 돌리와 린다 그리고 셜리.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긴 것도 잠시, 이들 세 사람은 경찰과 범죄 조직자들의 끊임없는 감시와 협박에 시달린다. 그들은 죽은 해리가 생전에 남기고 간 장부를 찾기 위해 혈안인 상태다. 해리가 그동안 그와 마주친 전과자들을 죄다 적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검은 거래의 흔적을 모두 남겼기 때문이다. 범죄 조직자들은 거기에 자신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원치 않았고, 경찰로썬 장부만 손에 넣으면 범죄자들의 범죄 이력을 손쉽게 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얼마 후, 경찰과 범죄 조직의 시선을 겨우 따돌린 돌리는 비밀 장부는 물론 현금 수송 차량을 털 수 있는 모든 계획에까지 접근하게 된다. 돌리를 위해 하나하나 모든 것을 착실히 남긴 해리를 떠올리자,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가 완성하지 못한 범죄 계획을 실현시키고 말겠다는 대담한 계획이 슬그머니 자리 잡는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2년 전쯤 어딘가의 칵테일파티에서였다고 금세 정리했다. 린다의 기억은 공짜 음식에 정신이 팔려 명확하지 않았지만, 셜리가 공백을 메워주었다. 중요한 것은 그 칵테일파티가 해리 롤린스의 파티였고, 오늘 난데없이 두 사람을 불러 여기서 만나자고 한 사람이 돌리 롤린스라는 점이었다.

셜리도 린다도 왜 오늘 불려 왔는지는 몰랐지만, 둘 다 돈을 좀 받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게 아닌 다른 이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 64p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고 다소 거친 면이 있는 린다와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지만 소심한 구석이 있는 셜리가 돌리의 부름에 한 자리에 모인다. 돌리는 해리의 장부를 언급하며 린다와 셜리에게 남편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그들이 완성해내자는 대담무쌍한 발언을 꺼낸다. 일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척척 내어주는 돌리의 고압적이면서 저돌적인 태도에 일순 린다와 셜리는 어안이 벙벙해지지만 남편을 떠나보낸 후 잃어버린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들은 남편들의 강도 계획을 완성하는 일에 가담하기로 한다.

 

 

 

“제정신 아닌 거 맞지?”

“아니다마다! 봐봐, 저 여자가 왜 이러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도움이 되는 모양이야. 기분이 나아지나 봐. 그리고 사실 나도 살아 있는 기분이 들긴 해. 온몸에 전율이 일어.”

“그래서 그냥 장단만 맞춰주는 거야?”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돈이 필요해. 조가 남긴 돈은 없고, 테리도 마찬가지였다는 거 알아. 돌리도 결국 정신을 차리고 우리도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지금으로선 계속 돈을 받을 거야. 돌리는 우리를 친구 삼아 자기가 지어낸 환상 속에 살면 돼.” / 85p

 

 

차들이 줄줄이 지나갔다. 남자들은 경적만 울리고 멈춰서 도와주지 않았다. 린다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자니 자신감이 솟았다. 주머니에 돈 있겠다, 새 중고차 있겠다, 돌리가 말한 대로 차를 올바로 고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지노에게 전화를 걸어 펍에서 사귀었다는 자동차 정비공 친구의 이름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아닌 실습으로 배울 것이다. 금세, 제대로 배울 것이다. 돌리의 뜬구름 잡는 강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린다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이룬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바뀌리라. / 98p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이 모여 범죄를 완성시키려는 이 발칙하고 파격적인 계획은 당연하게도 매순간 저항을 받는다. 잔인한 피셔 형제의 거친 위협은 물론, 해리 돌린스를 원수로 생각하고 있던 레스닉 경위까지 시시때때로 그들의 숨통을 조여 온다. 거기에 범죄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네 번째 멤버를 찾아야 하는 부담감과 남편들을 버리고 도망간 네 번째 남자까지 추적해야 하는 일까지 가중되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돌리는 여자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모습에 울컥 목이 메었다. 동고동락하면서 서로를 보듬는 이 여인들. 그녀들과 함께한다는 게 참으로 좋았다. 다투기도 했지만 그것은 서로 미워서가 아니라 아끼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 161p

 

 

이제 돌리는 해리가 시작한 계획을 끝마칠 힘과 동기를 갖추었다. 모든 나쁜 생각을 마음에서 몰아내고 팀원들에 대한 생각으로 그 자리를 메웠다. 그들은 결승점에 아주 가까이 왔다. 물론 린다가 아직 선두 차량을 구해야 하고, 모두 패딩을 넣은 작업복과 총과 전동 톱에 익숙해져야 하며, 이제는 거액 수송일의 정확한 경로를 익히는 일이 남았다. 그녀들은 몇 달 전 사우나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슬픔에 빠져 질질 짜는 약해빠진 미망인들에서 너무도 멀리 왔다. 이제 그들은 한 팀이었다. 돌리는 빙그레 웃었다. 그들은 허점과 감정의 기복, 무경험에도 불구하고 한 팀이었다. 그녀의 팀이었다. 그 무엇도, 어느 누구도 이제 그들을 멈출 수 없었다. / 290p

 

 

 

 

 

   과연 그녀들은 이 대담한 범죄 행각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을까? 소설은 주인공들이 한 남편의 아내에서 미망인으로 그리고 범죄 모의자로, 현금 수송 차량을 탈취할 무장 강도로 변신하기까지 위험천만한 모험을 무릅쓰고 신뢰와 의리, 우정 안에서 단단해져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적극적이고, 과감한 행동력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이 뜨거운 여자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흥미진진해서 멈출 수가 없다. 80년대의 올드한 분위기의 드라마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 미셸 로드리게즈가 린다 역이라는 영화도 다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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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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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지만 불편한 것들에 눈 돌리지 않고

엉뚱하지만 자유롭게 광대한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지적 통찰의 순간들! 

 

 

   언젠가 읽었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우리에게는 사랑의 대상도, 사랑 그 자체도 아닌, 사랑에 대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디 사랑뿐일까. 삶 전체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 즉 안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나의 경험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기에 우리는 미술이나 음악, 책이나 영화 등과 같은 예술 작품을 보고 느끼고 읽음으로써 삶에 대한 다채로운 안목을 얻는다. 때로는 세상의 온갖 가십과 무의미해 보이는 대화 속에서도 세상을 읽어내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또 그 덕분에 취해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구분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으로 미술 전문 기자 문소영은 자신의 책 <광대하게 게으르게>의 전문을 통해 미술 작품, 영화, 웹툰, 광고, 길거리 디자인을 비롯한 모든 시각 문화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특히 좋아하지만, 현실 정치, 경제, 사회 코드로 파고들기도 한다고. 어쩌면 그녀 역시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삶을 보고, 살고,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안목을 길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우리는 그녀가 본 것들, 그녀가 느낀 것들, 또 그녀가 파고들다 안에서 머물렀던 것들을 읽음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과민한 시선에 따른 삶의 안목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세상을 읽는 과민한 시선, 그리고 멈추지 않기 위한 글쓰기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게으르지만 불편한 것들에서 눈 돌리지 않고, 엉뚱하지만 자유롭게 광대한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지적유쾌함으로 가득한 책이다. 시각 문화 탐구 블로그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을 10년 넘게 운영하며 7년 연속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미술, 책, 영화, 음악 할 것 없이 다양한 예술에 조예를 보이며 이를 통해 시류를 읽고, 현실의 부당성에 날카로운 펜을 드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유쾌한 감각이 글 곳곳에서 묻어나오니, 지적이면서도 쿨내가 진동하는 언니 한 명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온 기분이 든다.

 

 

 

   책은 제목의 그것처럼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로 크게 나뉜다. 1부인 ‘게으르게’ 편에서는 늦게 꽃핀 대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뭔가를 끈질기게 하며 무기력한 게으름은 피하겠노라 다짐하고, 『술꾼의 품격』을 쓴 임범 작가가 “기호식품의 소비에 따르는 쾌감은 맛과 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거기엔 폼이 따른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커피 한 잔에 묻어나오는 자의식에 대해서 생각하며, 긍정적 예언을 통해 자기성취력을 기대했던 조선시대의 새해 덕담을 통해 자기암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이 중 프랭크 매코트의 “계속 끄적거리세요! 뭔가가 일어날 겁니다. (Keep scribbling! Something will happen.)”라는 명언을 인용해 죽기 전에 한번 꽃펴 보려면 방황할망정, 느릿느릿 갈망정, 그냥 늘어져 있어서는 안 되겠다던 글이 유독 마음을 두드린다. 한창 글을 쓰다가 생활전선에 뛰어든 뒤로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나도 이렇게 계속 소소하게라도 끄적거리다보면 언젠가는 글을 쓸 수 있겠지, 믿고 있으면서도 내심 불안이 컸던 것이다. 그래, 내 끄적거림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의 이야기일까. 그렇지도 않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두 길은 똑같이 매혹적으로 보였고, 한 길을 택해서 거의 끝가지 걸은 “먼먼 훗날”에도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았는지는 알 수 없을 뿐이다. 더구나 화자가 말하는 시점은 아직 그 “먼먼 훗날”이 아니라, 막 갈림길 중 한 길로 접어든 순간이다. 그는 “먼먼 훗날” 자신이 한숨을 쉬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어느 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 아닐까. / 49p

 

 

 

 

 

 

   2부 ‘불편하게’에서는 여러 예술 작품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면면들을 들여다본다. 영화 「패터슨」을 예로 들어 타고난 성별과 인종, 신체 조건이 은근한 이점으로 작용하는 세상 속에서 ‘개인의 조건’ 혹은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 고민해본다. 또 최근 한 남자연예인이 자신의 집으로 여성스태프를 데려와 성폭행 사건을 두고 남자연예인을 질타하기 이전에 여성스태프의 행동을 지적한 댓글이 비일비재했던 것처럼, 피해자를 비난하는 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펴보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특히 ‘“가해자가 물론 나쁘다, 하지만…….”에서 제발 “하지만”부터는 빼세요.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라고 갈무리한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가 여기저기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 외에도 타인의 고통을 소비거리로 바라보는 심리, 분노의 댓글을 날리는 일은 쉬운 정의감 충족이지만 사회 변화의 비용을 감내하는 것은 어렵고 큰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글 역시 우리가 깊게 숙고해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심리에 대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빈 러너는 ‘공정한 세상 가설(the Just-World Hypothesis)’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세상이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부당한 희생자를 볼 때 손상되어 버리고 우리는 불안에 빠진다. 이때 그 피해자가 뭔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합리화해서 공정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65p

 

 

모성애는 신화라고 한다.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정신이 솟구친다는 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아기를 낳고 돌보며 심신이 녹초가 되고 자기 시간이 따로 없게 된 한 지인은 자식을 무척 사랑하지만 때로는 자식이 자기를 파먹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다. 나도 그렇게 엄마를 파먹었으리라. 엄마는 끝없이 인내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어머니가 되어갔으리라. 그래서 어머니 노릇을 하는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모성애가 신화에 불과하기에 더더욱 위대하다. 본능을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며 어머니가 되는 것이기에. / 81p

 

 

성폭력뿐만 아니라 철저히 객체화·타자화된 여성을 향해 ‘성적 일탈’을 하는 작품들에 대해 내가 그간 느껴왔던 독특한 역겨움의 본질을 이제 좀 더 잘 알겠다. 파격과 혁명으로 포장된 작품이 사실 여성 타자화의 진부한 틀은 못 개면서 힘의 위계를 이용해 퇴행적인 약자 성 착취를 하는 난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시비를 거는 꽉 막힌 사람이 될까 봐 비판을 삼가며 느껴야 했던 그 불편함과 혐오스러움을. / 101p

 

 

 

   3부에서는 ‘엉뚱하게’라는 제목과 달리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케빈에 대하여」,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그리스 신화인 『메타모르포세이스(변신 이야기)』 등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감수성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한편, 4부 ‘자유롭게’ 편에서는 ‘불편하게’ 편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명 엄친아로 대변되는 비교강박의 역사와 철학자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들여다보고, ‘의심하는 토마’를 통해 ‘반향실’이 판치는 현실을 일깨운다. 또한 “일본 벚꽃 원산지는 제주도니까 이건 우리 전통이야.”라고 주장하는 비틀린 민족주의의 자기기만과, “뭐든지 될 수 있다”라는 말에 담긴 피로사회의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실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에 따르면 이 지옥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은 타인이 있는 한 그 시선과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걸 의식해 완전히 주체적일 수 없게 되므로, 타인의 존재 자체가 지옥이다. 하지만 또한, 처음부터 무엇이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난, 즉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근거를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어찌할까. 뻔하지만 균형으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 158p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 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피로사회』 중에서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러다가 ‘할 수 있다’가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 186p

 

 

 

 

 

 

   이어 5부 ‘광대하게’ 편에서는 한때 ‘파란 바탕에 검정 줄무늬’냐 ‘흰 바탕에 금색 줄무늬’냐로 전세계 소셜미디어가 들썩인 사진을 통해 우리는 순간적으로 얼마나 주관과 편견이 많이 섞인 의견을 갖는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또 무작위적이고 불특정한 이미지에서 의미 있는 형상, 이를테면 사람 얼굴 같은 것을 찾으려 하는 심리 현상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를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을 가짜 ‘기적의 이미지’나 억지 인과관계의 음모론으로 자행되는 현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문득 하정우의 먹방을 통해 노골적인 음식 낭비를 찬양하는 먹방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거나 셀럽파이브 노래의 가사처럼 유명세와 미디어,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보기도 하고 말이다.

 

 

 

로자노헤머는 이 작품의 제목 「파레이돌리움」이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는 인간 심리 현상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파레이돌리아는 무작위적이고 불특정한 이미지에서 의미 있는 형상, 이를테면 사람 얼굴 같은 것을 찾으려 하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구운 토스트 그을림에 그리스도 얼굴이 아타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화성 사진을 보니 고원에 인간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지형의 명암이 그렇게 보인 것으로 딴 앵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사실이 아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로자노헤머는 이런 심리를 역이용해서 재미있고, 시적으로 아름다우며, 동시에 은근히 섬뜩하기도 한 작품을 만든 것이다. / 206p

 

 

가사와 육아 등 돌봄 노동은 ‘사랑의 노동’으로 아름답게 표현되면서도 정작 경제 시스템에서 그 실제적 중요성과 가치는 막연하게 다뤄지고 도리어 저평가된다. 그래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데, 가사와 돌봄 노동이 가정 밖에서 공급될 때 가격 책정이 제대로 안 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일례로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기자 동료들도 어린이집 보육교사 급여가 너무 적다고들 한다. 그러니 교사들이 과연 의욕을 가지고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 240p

 

 

 

   끝으로 6부 ‘행복하게’ 편에서는 진짜 행복은 어디에서 오고 행복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서는 학부 시절 은사님과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선생님이 이렇게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 생각하느냐고. 이내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말하며 “난 노력해서 그 모든 난관을 극복했는데, 왜 너는 그러지 못하느냐, 왜 세상 탓만 하느냐고 그 사람들은 묻지. 강철 같은 투지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런 강철 같은 자세로 다른 사람들을 보지. 그런데 그 사람들의 성공에 과연 운이 전혀 없었을까?” 하고 되묻는다. 그리고 끝에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수성가했다고 해서 그게 다 온전히 자신이 이룬 거라고 생각해선 안 돼. 거기에도 운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 그리고 그 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해.” 라고. 나만 노력하면 다 될 거라는 강박이 만연한 사회를 꼬집으면서, 내가 기회를 얻는 순간에 기회를 박탈당하고 얻지 못한 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에서 오는 균형, 바로 거기에서 비로소 모두의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그의 말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예술 에세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사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예술을 통해 세상을 읽는 법을 보여주는 매우 보기 드문 책이다. 작품에 대한 분석이나 기법 등을 일러주는 여느 책들과 달리 일상에 보다 가깝게 예술을 끌어들일 줄 아는 그녀의 화법 덕분에 오히려 예술을 읽는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다. 무엇보다 적당히 분노하고, 적당히 불편해면서 유쾌한 위트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벼운 듯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정도의 무게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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