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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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픽, 이반으로 기억되는 그 시절, 소녀들의 이야기!

한 때 내가 머물러 앉아있던 자리를 더듬듯 그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설!

 

 

  “야, 야, 야. 내가 오늘 누구 봤는지 알아?”

   고등학생 시절,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호들갑을 떨었다. 과장된 말투와 어조로 소문이란 소문은 죄다 옮기고 다니는 친구였던지라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심드렁해지려는 찰나에 뜻밖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와 잠시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친구들만 해도 서너 명이나 될 정도로 많은 후배들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 언니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언니의 단짝이었던 다른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고 했었는데……. 아무튼 친구는 바로 그 언니의 이름을 떠올리며 주말에 집근처에서 보았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믿겨 지냐? 머리카락을 거의 허리까지 길러서 못 알아볼 뻔했다, 야.”

   그래, 그 언니도 짧은 커트 머리를 했었지. 2000년대 초반 당시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은 ‘귀 밑머리 3cm 단발머리’를 준수하는 것이 학교 교칙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뒷머리는 남자 아이들처럼 짧게 자르고 상대적으로 앞머리는 길게 내려서 얼굴을 반쯤 가리거나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가방도 한쪽으로만 메고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퍼져갔다. 그 중에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어딘지 모르게 중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친구들이 하나씩은 꼭 있었고, 그들은 후배 혹은 친구들의 인기를 차지했다. 여기에 춤까지 잘 추면 거의 아이돌과 다름없었으니, 그 언니 역시 그런 축에 줄곧 속해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더니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러서 뭔가 가발을 쓴 것처럼 이상해보이더라고, 친구는 마치 징그러운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또 어마어마하게 웃긴 일이라는 듯 떠들어댔다. 너 그 언니 엄청 좋아했었잖아, 언니가 창밖으로 지나가면 모두가 보란 듯이 언니의 이름을 큰 소리고 부르고, 또 언니가 손을 흔들어주면 방방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했던 그 시절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언니의 변해버린 외모만큼이나 마음이 싹 바뀐 친구의 말투에 나는 얼마간 씁쓸함을 느꼈다. 그때 그건 뭐였나. ‘한때’라는 건 다 그런 건가. 그 시절 우리를 내내 달뜨게 했던 것들, 내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것들, 마치 모든 것을 상실한 것처럼 밤새워 울게 만들었던 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그 시절 우리를 사로잡았던 건 뭐였을까?

 

 

나는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이 목포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이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같은 시기에 놀라울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음을 알게 되었다. 연구 작업 안에서 소녀들은 종종 ‘팬픽이반’이라 불렸다. 그것이 그녀들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부여받은 이름이었다. 엄격한 논문의 형식과 문장으로 이뤄졌으나 한때 내가 잘 알던 세계의 친숙하고 낯 뜨거운 예시로 가득한 글을 읽으면서 잊고 있던 많은 일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 35p

 

 

 

   2000년대 초반은 H.O.T와 젝스키스를 필두로 한 아이돌 문화가 성행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팬픽’이 공공연하게 읽히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주인공 ‘나’ 역시 동성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팬픽 문화에 빠져들었고, 그 무렵 인기를 끌던 여느 가수들처럼 칼머리를 하고 힙합 스타일에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또 그들 사이에서 몇 반의 어느 누구가 실제 사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기도 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니. 그건 어딘지 마음을 꽤나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항구의 사랑>은 바로 그 시절, 한 여자아이가 자라나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마주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목포에서 자라나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오기까지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세 여자들과의 일화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초등학생 때 다른 아이들보다 한 해 빨리 학교에 입학해 상대적으로 외소한 편이었던 나를 보호자처럼 보살펴줬던 친구 인희,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 데다 냉소적이지만 꽤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친구 규인, 그리고 단 한 번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선배 민선이 그들이다.

 

 

 

   주인공인 나는 초등학생 때와 달리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인희가 갑자기 칼머리를 하고 힙합바지를 입고선 남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복도 먼발치에서 목격한다. 머리 모양하며 허세 가득한 인희의 태도가 불편했던 나는 그녀와 거리를 두었고, 인희의 첫사랑이 자신이라는 소문까지 들려왔지만 모른 척 해두고 만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뜻밖의 감정이 찾아온다. 규인의 소개로 연극부 공연의 대본을 쓰는 데 도움을 주러 갔다가 주인공인 리더 역을 맡은 3학년의 민선 선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활달한 성격에 어딘지 모르게 천진한 면이 있는 선배는 주목받는 걸 좋아했지만 주목받아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는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깊이가 없다고 보일 수 있는 면이었지만 나는 그 어린아이 같은 면에 오히려 마음이 갔고, 남다른 에너지에 끌렸다. 그때부터 민선 선배가 하는 사소한 말들이 자신에 대한 관심처럼 여겨졌고,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위협적일 만큼 자극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본능적으로 그에 이끌리고 만다.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두 나의 적이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애가 탄다.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 82p

 

 

오랫동안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 강물의 표면에 붙들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나무토막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는 심오한 물살에 고통스럽게 휩쓸려 다녔던 것만 같다. 그 물살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붙들려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 / 103p

 

 

 

 

 

 

   사실 동성인 선배라는 것만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여느 사람들의 감정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하루 종일 그녀와 같이 있고 싶고,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고, 그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녀의 입에서, 그녀의 목소리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절친했던 규인이와의 사이까지 멀어질 만큼, 내 안에서 울리는 경고 신호마저 무시하게 될 만큼 민선 선배를 향한 감정이 커져버린 나는 선배와 간 바닷가에서 선배가 쓴 ‘사랑해’라는 글씨를 보고 마침내 입을 맞춘다. 하지만 그건 그녀만의 감정이었던 걸까, 선배는 그 뒤로 나와 거리를 두었고 졸업 후 남자친구와 사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은 한때 어찌어찌 일어난 일, 이제는 지나간 일로 여겨졌다. 나는 그때 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그 일들이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난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조차 한 여자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분명 존재했으나 오래전 까마득히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대륙에 관해 생각해 볼 때처럼. / 153p

 

 

 

 

 

  이제 스무 살이 된 주인공은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여느 대학 친구들처럼 남자친구들과 연애하고, 하이힐을 신고, 외모를 꾸미는 일에 집중한다. 남자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에게, 애인이 된 남자 선배에게 자신이 한 때 여자 선배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건 결코 세상에 드러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제고 파도에 휩쓸리고 말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해’라는 글자처럼 견고하지 않았던 한 때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으며 묻어두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인희가 그녀를 찾아온다. 고등학생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그때, 그 모습대로.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묻는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때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온 힘을 다해 나 자신을 억제했다. 내 옆을 걷고 있는 그 아이에 대한 경멸감이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래. 넌 그런 걸 찾아다니는구나. 가십이 듣고 싶구나. 부풀리고, 색칠하고, 호들갑 떨고 싶겠지.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은 얼마나 초라했는지. 그 감정이 실은 얼마나 빈약하고, 가볍고, 누추했는지. 그걸 똑바로 직면해야만 할 때 얼마나 비참한지. / 116p

 

 

그때 나는 그것이 그 애 자신의 표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난 짧은 머리와 힙합 바지를 자동적으로 남성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겼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남성적이라고 말해지는 특성들이 당연히 남성들에게 속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자들도 짧은 머리를 원할 수 있고, 그것이 -당연히-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라는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린 뒤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159p

 

 

 

 

 

 

   절대 세상 밖으로 드러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이렇게 쓰인 것은 어쩌면 인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주인공은 고백한다.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앞에 인희가 찾아왔던 날, 여전히 그 시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머물러 있는 그녀가, ‘이반’과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감정이 부끄럽기만 했던 나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야 비로소 인희를 제대로 봐준 적이 없었음을 느끼게 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 내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민선 선배를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봐주지 않았던 친구 규인에게 섭섭했던 것처럼 어쩌면 인희 역시 마음속으로는 내내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나라고. 이런 모습도 나라고. 이렇듯 <항구의 사랑>은 한때 속절없이 빠져들어 있던 것들에서 물러났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나는 누구이며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들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어투로 다가간다. 덕분에 같은 시대와 문화를 공유했던 한 사람으로서 시절에 대한 교감과 감정을 누구보다도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 작은 것에도 달뜨고 설렜던 우리들의 마음을.

 

 

 

   인희를 떠올리게 하는 한 친구가 생각난다. 고등학생 시절 나의 짝이었던 그 친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여자이고, 며칠 전에 손잡고 집까지 걸어갔다고 고백해왔다. 나는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그날부터 친구가 여자 친구와 만나며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을 때마다 꽤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얘기해도 괜찮아?” 하고 물었을 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해해주려고 하잖아.” 라고. 여자를 좋아하는 친구의 감정을 모두 공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주려는 마음만으로도 친구는 고마웠나보다.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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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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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끌리는 공간에는 저마다 비밀이 있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오감만족 공간 브랜딩에 관한 모든 것!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남편의 영향을 받아 우리 부부는 독특한 디자인이나 최신 유행이 반영된 공간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편이다. 근래 몇 년 사이 북유럽풍이 분위기를 주도하다가 인더스트리얼이 성행하고, 최근에는 업사이클링이 반영된 폐공간이나 창고가 카페나 전시 등 복합형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상업 공간이 그 어느 때보다 유행과 소비자와의 소통에 민감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덕분이기도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이 소비문화의 트렌드와 공간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른 까닭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공간에 ‘오고 싶도록’ 만들고, ‘기억에 남게’ 하고, ‘남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은 가게를 운영하고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필수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제 매장은 단순한 상품판매 공간을 넘어섰다. 공간의 규모와 상관없이 문화가 더해진 마케팅으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소비자의 경험을 디자인해야 한다. 소비자가 진화하듯이 공간의 역할도 진화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자신만의 취향을 담은 공간만이 소비자들을 사로잡는다!

 

 

   갤러리 같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그라프페이퍼’,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라운지 바 ‘장프리고’, 빼곡한 상품 진열로 마치 밀림 같은 ‘삐에로쑈핑’, 집에서도 생각나는 ‘교보문고’의 시그니처 ‘책 향’까지. 이곳들은 어떻게 자꾸 찾아가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을까? 20년 경력의 베테랑 공간 기획자인 이경미, 정은아는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를 통해 ‘취향’을 담은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제는 취향을 담지 않은 공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나만의 콘셉트가 담긴 가게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상업 공간을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고민할 만한 공간 디자인의 기초부터, 나아가 서비스, 마케팅까지 폭 넓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거대 기업의 브랜딩만이 아니라 골목골목에 위치한, 동네에 문을 연 다양한 작은 가게들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브랜딩과 마케팅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공간 디자인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한다.

 

 

 

   책은 공간 디자인 항목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1장에서는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영역인 시각적 요소, 즉 보이는 요소들을 점검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게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할 때 알아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과 디자인 순서를 살펴봄으로써 리스크가 적고 효율적이면서 매력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여기에서는 ‘맥락’이 있는 콘셉트, ‘의미’를 담은 디테일, ‘스태프’의 애티튜드를 대표적으로 손꼽는다. 이 중 새로운 공간을 계획하거나 리뉴얼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적’을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 목적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흔들리지 않고 조화로운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또 최근 가장 필수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의 포인트 존, 일명 감성을 자극하는 인스타존을 염두에 둔 디자인의 필요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망원동의 ‘자판기 카페’, 동대문의 ‘장프리고’, 미국식 세탁소를 콘셉트로 한 강남역의 ‘런드리피자’ 등에서 알 수 있듯 렌즈에 담기기 위한 포인트존 외에 매장 입구, 인상적인 소품, 매장에서 사용하는 트레이, 펜, POP 디자인까지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외관 디자인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방식들이 가진 장단점을 인지하고, 만들고자 하는 상업 공간의 콘셉트와 콘텐츠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외관은 오프라인으로 브랜드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이미지를 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오랫동안 유지될 공간에 대한 스토리의 첫 출발지점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외관은 공간에 대한 소비자의 첫 경험이자 시작입니다. / 68p

 

 

아오야마의 플래그쉽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쉽지 않은 콘셉트의 자켓과 하의를 입은,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남자 스태프가 핫한 스트리트 브랜드인 ‘슈프림’의 스냅백과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손님들을 매우 친절히 응대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디자이너 브랜드라고만 생각했던 이 브랜드의 옷이 다른 브랜드와 조화가 가능하고, 연령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 매장은 스태프들의 연령대가 무척 다양했는데, 각기 다른 개성 있는 콘셉트로 브랜드의 상품을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스태프가 움직이는 브랜드 콘셉트였던 것입니다. / 93p

 

 

 

 

 

 

   2장에서는 시각적 요소를 제외한 감각들, 즉 보이지 않는 요소들에 대해 다룬다. 소비자들의 심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항목으로, 여기에서는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티핑포인트, 취향에 공감하고, 경험과 교감할 수 있는 것들을 강조한다. 이를 테면 향기, 음악, 조명, 촉각, 미각이 동원되어 상품 판매와 소비자와 교감을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매장 안에 상품을 배치하고 소비자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테리어 도면의 동선에 의지하기보다 직접 매장 입구에 서서 공간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경험해보길 권하는 부분이나,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공간이 어떻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짚어주는 대목에서는 많은 창업자나 미래의 창업자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부분인 것 같아 참고하시길 추천한다.

 

 

 

인테리어의 마무리는 조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명에 따라 빈티지한 콘셉트는 더 빈티지하게, 모던한 콘셉트는 더 모던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조명이 가진 힘입니다. 때로는 과하게 표현된 콘셉트를 조명이 중화시키기도 합니다. 빈티지한 감성을 모던하게 보이게끔 하기 위해서는 노란 빛을 줄이는 대신 아이보리나 하얀 빛 조명을 사용하면 됩니다. 모던함이 과해 차가워 보이는 경우에는 전체적인 조도를 조금 낮추어 노란 빛과 하얀 빛의 조명을 섞어서 사용하면 됩니다. / 116p

 

 

최근에는 전시와 판매를 함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기획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성수동에 위치한 카페 ‘월서울’은 2018년 8월 오픈 당시부터 현재까지 전문 큐레이터를 통해 기획한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월서울 큐레이터는 전시를 기획할 때 카페 테이블의 배치까지도 달리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른 갤러리 카페들과 월서울이 차별화 되는 부분입니다. 전시가 바뀔 때마다 벽면 컬러와 동선을 바꾸는 것은 이곳이 전시를 공간의 장식적이 요소 중 하나가 아닌,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콘텐츠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175p

 

 

디자인적인 요소에 심리적 요소를 더하고, 공간을 방문하는 소비자를 배려하는 서비스 디자인의 영역까지 더한다면 공간의 깊이가 깊어질 것입니다. 공간의 깊이를 깊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경험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소비자의 경험이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질 때 비로소 공간은 그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 187p

 

 

 

 

 

 

   마지막 3장에서는 꾸준히 진화하고 사랑받는 매장들을 사례로 공간 자체가 브랜드가 된 이곳들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잘 붙인 ‘이름 하나 열 디자인 안 부럽다고, 도심 속 나만의 휴식 공간이 된 츠타야, 집이나 호텔, 창고 등 무엇이든 매장의 위치와 규모, 상황에 따라 콘셉트를 다르게 정하고 매장을 디자인 하는 원엘디케이, 동네 수영장의 내부 구성을 거의 해치지 않고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더 풀 아오야마와 같은 팝업스토어 등이 그 예이다. 또 뉴트로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익선동과 을지로, 신발공장이 카페가 되고 카페가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앤트러사이트와 테라로사,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공간인 스파치오 로사나 올라디 역시 눈에 띄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대구의 경우 빈티지 쇼룸 카페 더 디퍼와 각종 쇼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하는 빌리웍스가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복합문화공간으로써 꽤 인상적이다.

 

 

 

그저 오래된 공간을 리뉴얼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그 공간이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를 담고 있는 전통적 공간을 ‘얼마만큼’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어떻게’ 적용하는가가 다른 공간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 231p

 

 

첫 번째는 모든 것을 내부에서 디자인하던 예전 시스템과 달리 요즘에는 ‘콜라보레이션’이 더욱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핫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기획력의 젊은 디자이너로 구성된 신생 회사들, 혹은 프리랜서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그들과의 협업이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옛것’이 ‘새것’을 받아들이면 그 결과로 선택의 폭이 늘어난다는 일본의 그래픽디자이너 하라 켄야의 말처럼 말입니다. / 240p

 

 

 

 

 

 

   공간을 기획한다는 것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 ‘좀 더 나은 것’을 찾는 문제라던 저자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 결국 시선을 끌고,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공간은 좀 더 소비자의 취향에 다가가기 위한 공간 디자이너와 창업자의 노력이 반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실현되는 것 같다. 트렌드가 빨리 소비되는 것이 때로 아쉽고 씁쓸할 때도 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만큼 여기저기 짜깁기한 곳이 아닌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보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래의 창업자들에게 공간의 콘셉트부터 디자인 포인트, 서비스와 마케팅까지 공간 브랜딩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듯하다. 덕분에 북카페 창업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도 미리 많은 걸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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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9
송윤경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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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와 열정, 낭만을 간직한 이탈리아 여행에 관한 모든 것!

어디를 떠나도 좋고, 언제든 떠나도 좋은 이탈리아 여행의 필수 가이드북!

 

 

   ‘힘이 좋은 근육질 청년 같다가도 긴 생머리를 귀 뒤로 넘긴 수줍은 여인 같다. 삶의 지혜가 주름 위로 쌓인 할아버지 같다가도 별 얘기 없이도 까르르 대는 아이 같다.’ 다채로운 매력의 이탈리아를 가리켜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평소 이탈리아로의 여행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는 최신판으로 나온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을 넘겨보다가 엇,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로마, 바티칸 시국,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나폴리 등등 막연하게 흩어져있던 이 아름다운 도시의 이미지들이 그제야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한 데 모아지는 것이었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때부터 나는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단숨에 빠져들고 말았다. 때로는 멋진 청년 같고, 수줍은 여인 같고, 지혜로운 할아버지 같다가도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던 저자의 표현이 이렇게 어울릴 수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찬란한 과거와 열정을 품은 나라, 이탈리아

 

 

   세로로 길게 뻗어 마치 목이 긴 장화를 닮은 이탈리아는 다양한 기후와 자연환경, 다채로운 문화를 보유하여 연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남유럽 대표 여행지다. 알프스산맥이 지나가는 이탈리아의 북서부 지역에는 신들의 지붕이라 불리는 돌로미티산맥과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가루다 호수, 코모 호수가 있다. 대륙성 기후인 중부 지역은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식재료들이 가득해 축복받은 대지라 불린다. 북부에 비해 가난한 남부는 위험하다는 소문이 자자해 많은 사람들이 천덕꾸러기로 여기는 곳이지만 사시사철 따뜻하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은 이탈리아 수도 로마와 베니치아, 피렌체, 밀라노, 이탈리아 남부 지역(캄파니아주, 풀리아주)과 더불어 인접한 근교 지역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일단 지역별 주요 명소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탈리아 여행 전 많이 묻는 질문 10가지’부터 살펴보고 가자. 이탈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해 여름에는 북부, 겨울에는 남부를 여행하기 좋아 모두 여행의 적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8월은 이탈리아 사람들도 휴가를 떠나서 문을 닫는 곳이 많아 해변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하니 참고하자. 항공권 구입의 경우 출발일 4개월 전 구매를 추천하는데, 항공사 메일이나 플레이윙즈 같은 특가 정보회사의 SNS를 팔로우 하면 프로모션 가격을 제공 받을 수 있고, 스카이스캐너와 구글 플라이트는 날짜별 가격과 요금 변동 알람이 가능해 편리하니 도움을 받아보면 좋겠다. 사실 이탈리아 하면 바로 소매치기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이에 대한 두려움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데, 저자는 가방은 꼭 지퍼가 있는 것을 사용하고 당일 필요한 짐만 가볍게 넣거나 자물쇠, 옷핏으로 고정할 것을 조언한다. 또 휴대전화는 절대로 테이블에 놓아두면 안 되고, 기부해달라는 사람들도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 외에 화장실은 대부분 유로로 운영되니 미리 동전을 준비하거나 기차역, 버스터미널,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점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으니 참고하자. 이 외에 다양한 의문들은 책 곳곳에도 팁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책에는 ‘이탈리아 날씨와 옷 입기’, ‘이탈리아 역사 이야기’, ‘테마별 추천 일정’, ‘이탈리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10가지’, ‘이탈리아 대표 음식’, ‘이탈리아 추천 기념품’과 같은 알아두면 좋을 필수 정보들을 비롯하여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혹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와 같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기의 커플, 괴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이탈리아 기행 등의 번외 정보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이탈리아의 정취를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여행에서 ‘1일 1젤라토’는 필수라던 저자의 말처럼 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없는 젤라토의 매력을 꼭 누려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또, 정성껏 내린 에스프레소에 다른 음료나 물을 섞는 것은 질 낮은 에스프레소의 결점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라고 생각할 만큼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이탈리아인만큼 그들의 에스프레소를 꼭 마셔보고 싶다.

 

 

Special Tour 01_ 바티칸 시국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자 가장 성스러운 나라 바티칸 시국. 이곳에서는 교황이 주권을 가지며 1,000여 명의 주민은 대부분이 추기경이거나 국무장관, 바티칸 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가. 추기경은 어느 나라에 있더라도 바티칸 시국의 국민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 염수정 추기경이 바티칸 시국의 국민이다. 이곳은 신자의 기부금과 관광 수입으로 운영되며 세금으로부터 자유롭고, 노동자는 일을 그만둘 때 시민권도 박탈된다. 바티칸 시국은 자국의 화폐, 통신시설, 라디오 등을 갖춰 엄연히 한 나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은 이탈리아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여행지이다. / 156p

 

 

 

   이탈리아 하면 콜로세오와 포로 로마노, 바티칸 시국의 고대 유적지를 품고 있는 로마를 단연 빼놓을 수 없겠지만, 르네상스가 눈부시게 성장한 곳이며 여전히 예술의 꽃을 곳곳에서 피우고 있는 피렌체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탈리아 3대 거장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도 시스테나 예배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로마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는데 죽는 순간까지 피렌체를 그리워했다고 하고, 단테 역시 죽을 때까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길 소원하며 여러 작품에 피렌체를 향한 그리움의 흔적을 남겼다고 하니 과연 수많은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도시 답다. 여기에서는 하느님의 집을 뜻하는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와 ‘베키오 궁전’, ‘우피치 미술관’에 가보는 것은 단연 필수이며,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석양에 물드는 아르노강과 피렌체 감상하기 역시 저자가 꼭 추천하는 코스이니 잊지 말자.

 

 

 

Special Area 2. 베네치아 근교

오페라의 도시에서 줄리엣을 만나다_ 베로나

베로나는 거짓말 같은 사랑 이야기인 「로미오아 줄리엣」이 곳곳에 물들어 있는 곳이다. 사랑 이야기에 끌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얼마 안 가 베로나의 아름다움과 다시 사랑에 빠지고 만다. 중세 건축물에 쓰인 핑크빛 대리석은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도시 곳곳에 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은 시공을 초월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멋스러운 골목길, 외로운 그 길 끝에는 긴 머리를 한 청순한 줄리엣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베로나에 홀로 여행을 왔다면 다른 곳을 여행할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마법 같은 사랑의 힘에 매료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 262p

 

 

 

 

 

 

   인테리어와 건축을 업으로 하고 있는 신랑과 덕분에 건축에 관심이 많아진 나로서는 위대한 고대 건축물을 많이 간직한 이탈리아야 말로 훗날 꼭 가봐야 할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를 느낄 수 있는 ‘로마 콜로세오’. 로마네스크의 정취를 가득 품은 ‘피사 두오모’, 고딕 양식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밀라노 두오모’,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건축물 ‘피렌체 두오모’, 바로크 건축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산피에트로 대성당과 광장 열주’까지.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들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아닐까.

 

 

 

 

 

 

   이렇듯 <이탈리아 셀프트래블>은 워낙 다채로운 여행지로 가득한 이탈리아의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소개함은 물론, 각종 팁과 유념해야 할 것들, 주소나 가는 법, 홈페이지 같은 상세 정보들, 출입국소속과 교통수단, 유용한 이탈리아어와 같이 실용 정보도 빼놓지 않고 있으니 떠나기 전에 꼭 참고하시길 추천 드린다. 그간 이탈리아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본 후의 나처럼 금세 푹 빠지게 될 테니 언젠가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꼭 계획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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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 추리소설의 통념을 슬쩍 빗겨가는 신선한 설정!

부조리한 사회의 일면을 기묘한 트릭과 복선으로 파고드는 기이한 미스터리!

 

 

   간혹 책 제목만 보고 미리보기나 소개글은 덮어 놓고 읽을 때가 있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한밤중, 실험실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으로 시체는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이 기막히고 놀라운 상황 설정은 평소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나를 단박에 빠져들게 했다. 덕분에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아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놀라운 트릭과 복선이 기대되어 책을 읽는 내내 설레는 마음으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엇, 그런데 황당무계하면서도 웃음이 나고 그러면서도 허를 찌르는 이 반전 있는 전개는 뭐지? 기존 추리소설의 통념을 슬쩍 빗겨가는 신선한 설정과 부조리한 사회의 일면을 역시 부조리한 트릭과 복선으로 파고드는 예리함까지 갖춘 노련미라니. 이런 미스터리 너무 반갑잖아.

 

 

 

 

 

 

웃음이 나다가도 소름이 끼치는 그런 이야기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일본 미스터리계의 대표 중견 작가이자 기상천외한 수수께끼와 트릭으로 정평이 난 구라치 준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책은 작가만의 독특한 미스터리 감각이 돋보이는 총 6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온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어 ‘묻지마살인’의 소름끼치는 현실을 담은 「ABC 살인」, 발달된 기계 문화로 인공지능 기업인사 관리 시스템의 편애가 웃지 못 할 희극을 벌이는 「사내 편애」, 기이한 살인 현장 속에서 인간의 서늘한 광기를 엿보는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고양이의 영험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을 통해 죽음을 들여다보는 「밤을 보는 고양이」,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이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만들어버린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괴짜 네코마루 선배가 활약하는 흥미진진 살인 미수 미스터리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까지 어느 한 편 빠짐없이 재미있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죽이고 싶다.

속이 후련해질지도 모르니까. 그게 다다. / 「ABC 살인」 중에서 9p

 

 

 

   가장 첫 번째로 수록된 「ABC 살인」은 우리 사회에 집약된 분노와 광기가 ‘묻지마살인’의 형태로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이야기다. 주인공 후지오는 인터넷 선물거래와 도박으로 인해 빚을 지고 부모가 준 유산까지 모두 탕진하면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그나마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야 해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던 중, 잇달아 일어난 묻지마살인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놀랍게도 그 사건에는 기이한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이니셜이다. A지역에서 A로 시작하는 이름이 살해되고, B지역에서 B로 시작하는 이름이 살해된 것이었다.

 

 

 

   후지오는 마침 동생 단다 다카시(D)가 D지역에 사는 점을 이용해 동생을 살해하고 유산은 물론 보험금을 받을 생각에 이른다. 그 전에 C지역에 C라는 이름을 가진 자를 먼저 살해하기만 하면 이 묻지마살인과 자연스레 연속된 것으로 보일 뿐더러 A와 B를 살해하지 않은 그에게는 혐의가 미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너무도 담담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C를 살해하는 일을 해치운 그는 곳곳에서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뉴스를 보란 듯이 비웃으며 동생을 죽일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최후의 행동을 개시하려는 바로 그때, 뜻밖의 뉴스가 터져 나와 그를 경악케 하고 이내 끔찍한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솔직히 녀석들의 기분은 이해한다. 단지 죽이고 싶었을 뿐이다. 시야에 들어온 벌레가 성가셔 꾹 눌러 짓이기는 것과 똑같은 감각이었을 것이다. 살아 있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와 찌꺼기를 꾹 눌러버림으로써 기분을 약간 전환하는, 단지 그 정도의 일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지만 붙잡힌 것은 결국 녀석들도 실패했다는 뜻이다. 쓰레기를 꾹 눌렀다는 이유만으로 벌을 받아서는 재미없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 / 「ABC 살인」 중에서 12p

 

 

 

   ‘사람을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는 단순하고 거침없는 문장에서 시작된 「ABC 살인」은 개인 혹은 사회를 향한 분노가 익명성에 의지해 얼마나 잔인하게 돌변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치명적이고 잔혹한 광기는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는데, 파티쉐 전문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이 살해된 현장의 기묘함에 일단 아연해진다. 피해자 여학생의 머리맡에는 편의점에서 산 듯한 세 종류의 케이크가 놓여 있고 그녀의 벌어진 입에는 길고 하얀 대파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경찰의 조사 결과 그녀는 아르바이트 하던 양과자 가게에서 같이 일하던 남자로부터 평소 스토킹을 당해왔던 것으로 밝혀졌고 사건 당일, 그가 편의점에서 케이크와 대파를 사간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왜 하필 시신 머리맡에 케이크를 두고 입에 대파를 꽂아 넣었을까. 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 현장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집요하고도 터무니없는 광기다. 비록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오늘날 이런 광경을 심심치 않게 마주하는 것 같아 더욱 소름끼치는 소설이다.

 

 

물론 변덕에는 규칙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임의적이다. 네 번, 다섯 번 계속 지각을 해도 잊어주는 사례도 있고, 딱 한 번의 실수를 연제까지나 집요하게 질타하기도 한다. 그 점은 인간이 관리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판단에도 변덕은 있다. 아니, 인간이 더 기분파다. 그렇다면 차라리 냉정하고 합리적인 컴퓨터에 맡기는 게 홀가분하다.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하다. 상대방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고, 뒤탈도 없으며,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다. / 「사내 편애」 중에서 53p

 

 

심야, 완전히 밤도 깊어진 무렵. 이불을 나란히 펴고 잠든 나와 할머니의 머리맡에서 1미터 정도 떨어진 다다미 위에 미코는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달빛만이 빛나는 어둠 속, 앞발을 가지런히 모은 단정한 자세로 어젯밤과 똑같이 뭔가를 보고 있었다. 비스듬하게 조금 위쪽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는 고양이. 귀를 꼿꼿이 세우고 밤의 정적에 귀를 기울이듯, 커다랗고 동그란 눈으로 어둠을 바라본다. 뭘 보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어젯밤과 똑같은 방향을 보며 단지 가만히 앉아 있다. 어쩐지 납득이 안 가는 듯 이상하다는 얼굴로, 가만히. / 「밤을 보는 고양이」 중에서 135p

 

 

 

 

 

 

   표제작인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일본, 한 군특수과학연구소에서 두부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이자 시신을 발견한 이즈카 이등병은 전날 눈이 와서 발자국이 없는 걸 보니 도주한 사람도, 침입한 사람도 없는 완벽한 밀실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으로 추측하고, 후두부에 난 상처가 치명상이었음을 직감한다. 이내 연구를 직접 이끄는 마사키 박사와 관리자인 곤다와라 대위가 등장하고 여기에 스파이 사냥 전문가인 육군성의 특무기관 소속 도네 소좌까지 나타나 함께 사건의 전말을 추리한다. 그러면서 이즈카는 이 군특수과학연구소가 공간을 이동해 적의 주요 기지를 폭격하는, 일종의 공간이동이라는 상상력을 근거로 한 장치를 개발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것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어우러져 이상한 일마저 가능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아이러니함을 마주한다. 덕분에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서 죽는 것도 어쩌면 가능한 일이 되어버리는 이 부조리한 상황과 근거 없는 해답에 독자들은 저절로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그야말로 기묘한 상상력과 수수께끼 같은 미스터리,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게 되는 소설이다.

 

 

 

“변명하지 마. 이 게으름뱅이, 잠꾸러기 같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멍청한 놈. 지금 이 신슈가 얼마나 위기 상황인지 아느냐. 제국의 육군병으로서 자각이 부족하다. 후방에서 여자들은 여자정신대를 조직해 공장에서 일하고, 아이들의 나라를 위해서라며 송진 기름을 받아서 공헌하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어는 뭐 하는 거냐, 이 게으름뱅이 같으니. 너 같은 녀석은 우리나라에서 살 가치도 없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버려라,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같으니.”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중에서 180p

 

 

시신 주변에 흩어진 것에 절로 눈길이 간다. 두부다. 두부가 사방으로 쏟아져 있다.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진 두부 파편. 그것은 시산의 머리 주변을 중심으로 쏟아져 있었다. 딱 두부 한 모 정도의 양이려나. 이 실험실에는 사람을 때릴 만한 모난 물건이 하나도 없다. 그 와중에 두부가 들어 있던 작은 알루미늄 냄비가 시체의 발밑에 뒹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시체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중에서 190p

 

 

군 상층부는 초조해하고 있다.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것은 생각보다 전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 군은 쫓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쿄 공습, 대본영 이전, 폐하의 피난, 수상한 박사의 이상한 연구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 남아시아의 제공권을 빼앗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공격은 이제 목숨을 던지는 것밖에 없다. 그 정도까지 내몰리고 있다. /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중에서 215p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정통 추리 소설의 형태에 가까운 것은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이 아닐까 싶다. 연구소의 제6연구실에서 신소재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에 본사의 하마오카는 데이터를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고 출장을 떠난다. 이는 스포츠웨어의 역사를 바꿀 대발명이라며 다른 회사에 정보가 새서 도청, 크래킹의 우려가 있으니 특별히 그가 직접 가서 받아오라는 특명을 받은 것이다. 엄격한 통제시스템에 따라 제6연구실 앞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괴짜로 유명했던 네코마루 선배를 만나게 된다. 하마오카는 그를 떨어뜨려놓고 싶었지만 집요하게 들러붙자 결국 함께 연구소의 모로이 실장으로부터 IC칩을 넘겨받고 이제 돌아가려는 그때, 모로이 실장이 밀실과도 같은 상황에서 물이 든 양동이에 머리를 맞아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수상한 자는 어디에도 없고, 함께 있던 일행은 모두 같이 있었는데 대체 누가 모로이 실장을 저격한 걸까. 자칫 하마오카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었던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네코마루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네코마루의 명쾌한 추리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게 되는 추리 해결의 활약상을 즐기게 해준다. 가장 허술해보였던 인물이 가장 명쾌하게 해답을 찾아내는 모습, 어쩐지 전형적인 듯하지만 재미를 배가시키는 부분이 아닐까.

 

 

 

“정말 재미없고 흔한 동기지만 결국 누구나 돈이 갖고 싶은가 봐. 하마오카, 내가 입은 이 인형 탈과 같다는 생각 안 들어? 인형 탈을 이고 있으면 겉만 봐서 안은 몰라. 내가 네 머리를 찧었을 때 설마 그 안에 내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걸. 그것과 똑같아. 모로이 실장님도 겉은 이 연구소에 소속된 제6연구실의 책임자지만 속은 그런 범죄자들과 똑같이 단지 돈을 원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연구실장이라는 인형 탈을 벗으면 그 속은 그저 평범한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이었어.” /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중에서 320p

 

 

 

   이렇듯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한 편 한 편이 저마다 개성 있고 때로는 진지하며 유쾌한 구석까지 갖춘 미스터리 소설이다. 평소 복잡한 추리나 어딘지 무서운 구석이 있는 미스터리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뭐 이렇게 정감 있는 미스터리가 다 있는지. 작가의 이력을 보고 이 책이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번역된 작품이라고 하기에 전작을 찾아보니 꽤 안면이 있는 작품들이라 깜짝 놀랐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좋은 작가를 만나서 반갑고 또 반가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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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계란 요리 맛있는 요리 시리즈
마쓰우라 다쓰야 지음, 조수연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간단하지만 의외로 어렵고 다양한 계란 활용법!

촉촉, 보들보들 계란 요리의 무한 변신이 기대되는 맛있는 계란 요리법!

 

 

   우리 집 반찬 중 만능의 만능인 재료는 단연 계란이다. 계란프라이에서 스크램블드에그,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국까지. 한 두 개만 남아 있어도 아쉬워서 얼른 사다 꽉꽉 채워 넣는 우리 집 필수 재료다. 그런데 꽤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계란 요리에도 어쩐지 한계라는 게 있어서 매번 4~5가지 요리를 돌아가며 반복하는 수준밖에 이르지 못하니 조금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겨우 5살이긴 하지만 이제 식판에 다양한 반찬과 요리가 올라와야 만족을 하는 까다로운 우리 아기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다. 그런데 어느 SNS에서 누군가가 <맛있는 계란 요리>라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이거다!’하고 단박에 마음이 끌렸다. 촉촉, 보들보들 계란 요리의 무한 변신이 우리 집 밥상에 기적처럼 행해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누구나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계란 요리 레시피

 

 

   내 손 안에 착 감기는 사이즈의 <맛있는 계란 요리>는 일본에서 푸드 액티비스트이자 작가 겸 편집자로 활약하고 있는 마쓰우라 다쓰야의 계란 요리 레시피책이다. 계란의 다양한 변신이 기대되는 이 귀여운 책의 표지부터 단박에 눈길을 끈다. 본문에 들어 가기 앞서 ‘계란을 맛있게 먹는 계란의 법칙 5’부터 읽고 가자.

 

 

 

첫째, 삶을 계란 요리에는 묵은 계란이 좋다.

둘째, 계란은 수분과도 유분과도 잘 섞인다.

셋째, 걸쭉, 폭신, 부들부들,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넷째, 모든 맛과 식감을 연결해 준다.

다섯째, 계란은 최고의 소스가 된다.

 

 

 

   ‘신선해야 최고’라는 말이 모든 식재료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식재료의 특징과 조리의 목적에 따라 적절한 환경에서 숙성해야 더 맛있어지듯이 계란도 마찬가지로 삶은 계란과 베이킹에는 조금 묵은 계란을 써야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계란은 수분과도 유분과도 잘 섞이는 보기 드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버터를 사용한 오믈렛도, 기름이 듬뿍 들어간 마요네즈도 계란을 넣었기에 재료들이 하나가 되는 기적을 발휘한다. 더욱이 오믈렛은 몽글몽글하고, 카스텔라는 폭신폭신하고, 자완무시는 부들부들하며, 삶은 계란 노른자의 포슬포슬함과 흰자의 탱글탱글한 식감 등은 우리에게 무한한 식감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또 계란에는 다른 재료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힘이 있어 요리 전체의 맛을 한껏 끌어주는 역할까지 하는 만능 배우다. 여기에 반숙으로 걸쭉하게 익은 노른자를 즐기는 요리, 전골 요리인 스키야키를 먹을 때 사용하는 노른자 소스까지,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다양하게 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재료가 또 어디 있으랴.

 

 

 

 

 

 

   제1장에서는 완벽한 오믈렛 가이드, 스크램블드에그, 내 생애 최고의 계란 프라이, 보습력을 높여 부들부들한 계란말이, 흰살 생선으로 계란의 식감이 부각되는 계란 지단, 몽글몽글 계란 볶음, 간사이풍 오코노미야키 요리를 할 수 있는 계란 ‘굽기’에 관한 레시피를 소개한다. 그간 스크램블드에그나 오믈렛을 잘 만들어먹곤 했는데, 대충 느낌만 살려서 만드는 것과 달리 책에 소개된 방법으로 만들면 부들부들한 식감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오늘부터 당장 참고해봐야겠다. 무엇보다 가장 별 것 아닐 것 같았던 계란 프라이 요리도 좋아하는 색이나 식감, 반숙 혹은 완숙을 만들 것인가, 그 다양한 스타일에 따라 요리법도 달라지는 것을 보며 그날그날 다른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2장에서는 간단할 것 같지만 심오한 삶은 계란 요리를 소개한다. 계란 삶은 데 무슨 기술이 필요해?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숙 계란의 껍데기를 잘 벗기는 요령과 원하는 정도로 계란을 삶는 법은 의외로 다양하다. 제3장에서는 계란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빵, 면, 밥 요리 레시피가 등장한다. 카르보나라 토스트, 계란 샌드위치, 프렌치토스트, 휴가메시, 가마타마 우동, 계란 덮밥, 계란 볶음밥 등 집에서 만들어봄직한 요리들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프렌츠토스트를 만들기 전에 계란 물에 24시간 재워 냉장고에 넣어 농도를 높이면 더욱 몽글몽글 폭신한 식감이 된다하니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오믈렛, 스크램블드에그와 같은 양식 계란 요리에 버터, 우유, 생크림에 들어 있는 유지방은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입니다.

오믈렛을 만드는 계란 물에 유지방이 들어간 크림을 섞으면 계란물이 안정되어 모양을 잡기 좋습니다. 가열 시의 성질을 조사한 연구 논문에도 유지방 크림을 넣은 계란 물은 카놀라유를 넣은 것보다 가열했을 때 더 부드럽고 매끈하다는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특히 노른자에 들어 있는 레시틴은 물과도 기름과도 어우러지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본래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도 이른바 ‘유화제’가 되는 성분이 둘을 연결해 주면 일정한 조건에서 섞이게 됩니다. / 20p

 

 

가정용 냉장고 중에는 계란을 수납하는 공간이 도어 포켓(냉장고 문쪽 보관함)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도어 포켓에 계란을 수납하면 수명이 짧아지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진동’과 ‘온도’ 때문입니다. 도어 포켓에 넣어 두면 문을 열고 닫을 때 생기는 진동 때문에 계란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도어 포켓은 냉장고 내부에서 가장 온도 변화가 심한 장소입니다. 계란은 어디까지나 신선 식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진동과 온도 변화가 적은 장소에 보관하세요. ‘계란 뾰족한 부분이 아래를 향하게(뭉퉁한 부분이 위로)’ 놓는 것이 기본입니다. / 47p

 

 

 

 

 

 

   제4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요리를 소개한다. 중국에서도 ‘환상 속의 요리’라 불린 산부잔, 뚝배기로 만든 명물 폭신폭신 계란, 옛 후쿠오카의 축제 때 지어 먹던 밥으로 계란 맛이 부드러운 간단한 영양밥 겐짱메시가 바로 그것이다. 또 제5장에서는 노른자 소스의 잠재력이 발휘된 계란을 활용한 소스 만드는 방법을 일러준다. 철판에 굽는 모든 고기와 잘 어울리는 와리시타 노른자 소스와 샐러드에 넣어서 먹을 수 있는 만능 노른자 드레싱은 시도해 봄직하다. 끝으로 제6장에서는 찌고, 거품 내고, 얼려서 먹을 수 있는 계란의 무한 변신이 가능한 요리를 소개한다. 푸딩, 카스텔라, 아이스크림 등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뭔가 신기한 요리들이라 흥미롭다.

 

 

 

 

 

 

   이처럼 <맛있는 계란 요리>에는 계란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와 우리가 알아두면 좋을 계란에 관한 정보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최대 레시피 사이트에서 ‘계란 프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약 5,000개의 레시피가 나온다고 한다. ‘도대체 응용법이 몇 가지나 있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바꿔 말하면 겨우 60그램의 계란 하나를 굽는데 누구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일 테다. 다시 말해 정답은 없다.

 

 

 

   이 책을 통해 그간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계란이라는 재료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 그만큼 계란은 사랑받아 마땅하는 것!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레시피를 활용해보고, 또 그간 잘못 알고 있었던 정보들을 수정해 더욱 맛있는 계란 요리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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