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 - 지금보다 더 나은 당신의 내일을 위한 철학 입문서
나오에 기요타카 엮음, 이윤경 옮김 / 블랙피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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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트레이너로 삼아 철학으로 내 인생의 단련하라!

삶의 모든 순간에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철학 훈련장!

 

 

   우리 시대에 인문학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고전을 통해 사유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보기를 강조하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 사회에 주로 논의되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적 사고법을 기르고, 삶의 기술과도 같은 인생의 무기로 만드는 것. 바로 얼마 전에 읽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한입 매일 철학>이 그와 같은 맥락의 책이었다. <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삶이라는 마라톤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위로도 힐링도 처세술도 아닌, 철학이라고 말한다. 어렵고 막막한 인생을 완주하기 위한 단 하나의 힘, 철학을 통해 나와 세상 모두에 이로울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특히 고전을 활용해 이를 제대로 읽고 이해함으로써 자기 생각을 개척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바라보는 힘을 키우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일종의 철학 훈련장이 되기를 바라며 지금보다 더 나은 우리의 내일을 격려한다.

 

 

 

철학을 하면 인생이 더 수월해진다!

 

 

   <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는 생명윤리, 사회학, 불교학 등 철학과 사상학 분야의 전문가 35인이 모여 공동으로 만든 철학 입문서다. 책은 철학하는 삶을 위한 다양한 생각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가상의 인물들이 여러 가지 주제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독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본격적으로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으로 고전의 한 구절을 인용해 앞에서 던진 문제에 대해 설명한 다음, 알아두면 쓸모 있는 철학 포인트로 요점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나만의 철학 세우기’로 스스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유도한다.

 

 

 

   책은 나를 돕는 철학 질문 13가지와 세상을 돕는 철학 질문 1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인 나를 돕는 철학 질문 편에서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고전을 활용해 직접 사유해보고 이로써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바라보는 힘을 키우고자 한다. 이를 테면 사랑, 친구, 믿음과 불신, 대리모 출산, 인터넷 정보, 성(性)에 관한 내용이 주제다. ‘왜 다이어트는 실패할까?’를 예로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스마스 윤리학》을 통해 우리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가 의지의 문제인지 여부를 두고 내가 살면서 하는 행위는 어떤 목적과 선택으로 계속 이어지는지, 그 목적에는 과연 끝이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삶은 가치 없는 삶일까?’에서는 부드럽고 약한 물이 굳세고 단단한 바위를 깬다는 노자의 말처럼 견고하다고 반드시 가치가 높다거나 승자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대리모 출산은 안 될까?’에서는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통해 치료와 존엄, 윤리 원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어린아이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니까 사랑해야 한다는 말도 순서가 잘못됐다. 즉 ‘내’가 어린아이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어린아이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게 맞는 순수다. 따라서 ‘사랑’도 저절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부터 배워야 한다. 친자식인데도 사랑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부모가 된다’. / 21p

 

 

원하는 대로 미래를 이뤄가는 나를 보고 친구가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면, 그 친구의 기쁨으로 나의 기쁨은 배가된다. 기쁨이 전염되는 곳에 우정이 있다. 그 사람이 혹시 기쁜 척한 게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친구의 행복에 질투나 시기를 느끼기 쉬운 인간의 성향을 생각하면 가능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알랭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웃으니까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적었다. 설사 친구가 보인 태도가 연기라 해도 그 연기가 진정한 기쁨과 통한다고 여기자. 언제든 배신의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친구를 신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만남에 마음을 여는 자세가 아닐까. / 30p

 

 

 

성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타고난 성격 중에는 분명 바꾸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다이어트의 실패 요인인 ‘약한 의지’는 어떤가. 성격 자체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지 말고 성격을 형성하는 습관에 주목해야 한다. 행위→습관→성격→행위의 순환은 행복을 지향하는 행위에서 나선 모양으로 상승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 순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때마다(실패도 포함해) 달성도를 확인하며 행복에 관한 자신의 시각과 생각을 자각하며 깊이 파고들 수 있다.

습관이 순조롭게 형성되려면 자신의 일상적 행위와 생활환경 속 응용이 중요하다. 작은 아이디어와 실행이 쌓여서 약한 의지를 돌파할 습관의 힘이 형성되는 것이다. / 58p

 

 

 

 

 

 

   여러 내용 중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거짓말과 신뢰에 대해서 생각해본 부분이 꽤 인상적이다. 루만은 《신뢰》를 통해 신뢰에는 늘 배신의 위험이 따른다고 말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서로의 속셈을 염두에 두고 행동을 선택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추론할 수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추론을 거듭해도 상대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는 찾을 길이 없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의 신뢰관계는 믿음에 대한 불안감에 뒤덮여 있으며 따라서 취약하다. 배신당할 위험을 없애려다 보면 결국 아무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배신당하지 않을 보장이 없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신뢰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신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의 철학자 홉스라면 권력을 제안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믿지 못해 엇갈리는 일이 없도록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면, 효과는 확실해도 숨 막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신뢰는 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나의 신뢰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각자가 상대방을 아주 조금이라도 신뢰하고 상대방도 그에 부응하는 것, 이것이 쌓이면서 형성된다. 이에 저자는 양치기 소년의 모든 면을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 소년도 하나쯤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거짓말이라는 부적절한 방식을 쓰기는 했지만, 양치기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의 ‘호소’를 무시하고 양치기 소년과 관계 맺기를 소홀히 했다. 서로가 초반의 불안감을 극복하려고 첫걸음만 내디뎠더라면 불신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이 가능해지지 않았을까. 이처럼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두고 소년의 거짓말에 함몰되어 보지 못했던 신뢰 문제를 우리 사회 전체에 빗대어 생각한 이런 면모야 말로 철학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다.

 

 

 

신뢰관계는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 신뢰관계는 개개인의 신뢰 행위를 통해 형성된다. 그렇다면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이야기는 거짓말을 한 소년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가 쉽게 붕괴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봐야 할 수도 있다.

소년의 충동적 행동에 그를 불신하게 된 마을 사람들은 결국 신뢰를 잃고 늑대의 습격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맹신도 위험하지만 불신도 위험하다. ‘거짓말쯤이야’라고 착각하게 만든 마을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작은 신뢰를 쌓아 신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 40p

 

 

이렇게 생각해보면 준호가 고집하는 ‘진짜 나’도 ‘자신의 본질’이라는 하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며, 자신이란 과거의 언행과 주위 사람 등의 원인과 조건으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진짜 나’라는 고정된 문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본질’을 생각하는 것은 실상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괴로움을 초래한다. 세호와 명수의 대화를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자신의 여러 모습 중 ‘진짜 나’는 무엇일까 고뇌하던 준호도 눈이 트이며 해결법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 76p

 

 

비판한다며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상처만 주고받게 된다. 자기 껍질을 깨려면 다른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타인의 의견을 검토하고, 경우에 따라 의견을 수용하고 스스로 변하기로 마음 먹어야 한다. 관용의 정신이라 해도 좋다.

물론 토론을 한다고 의견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검토를 거듭함에 따라 이론과 주장의 오류가 밝혀지고 토론하는 우리의 생각은 저마다 풍부해진다. 이러한 검토를 포퍼는 ‘자유로운 토론’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중요하다. / 146p

 

 

 

 

 

 

   PART 2인 세상을 돕는 철학 질문 편에서는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빅터 프랭클의 《밤의 안개》를 통해 인간다움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깨닫고, 애덤 스미스와 함께 ‘자유경쟁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윤리 면에서 접근해보거나, 현대 철학자 존 롤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함께 격차와 불평등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일본에서 발병된 미나마타병을 통해 산업 재해에 대한 규명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 혹은 사회의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고, 존 로크의 관용 이론을 통해 용인할 수 있는 생각과 그렇지 않은 생각의 경계에 관해 고민해본다.

 

 

 

프랭클은 ‘삶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삶’은 수동적인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처하는 상황을 올바르게 마주하고 행동하다 보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야말로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된다고 여겼다. / 168p

 

 

 

 

 

  존 로크는 영혼의 구원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고 관용의 소중함을 논하는 한편, 가톨릭 신자와 무신론자를 관용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영혼의 구제와 관련된 생각의 다양성을 중시해야 한다면 어째서 가톨릭 신자는 관용을 요구하면 안 되는 걸까? 무신론자를 관용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로크의 논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러한 의문이 떠오른다.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로크의 관용 사상의 한계다. 이처럼 책을 읽다보면 하나의 철학 혹은 이론이 당시 시대와 사회적 배경이 오늘과 다른 만큼 어쩐지 부족한 감이 있고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이라 할지라도 나의 방식으로 생각해보고 나만의 철학을 세워 볼 것, 그랬을 때야 비로소 철학은 쓸모가 있어지며 새로운 가능성과 삶의 철학이 열린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책에는 철학에 관한 짧은 칼럼도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철학의 ‘고전’ 읽기에 대해서 쓴 칼럼 중 데카르트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여기 꼭 남겨볼까 한다. 철학서를 어려워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싶은 글이다.

 

 

이 책을 읽는 법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우선 무리하게 고집 부리지 말고 어려운 대목에 부딪혀도 신경 쓰지 말고 소설을 보듯 전체를 훑어본 다음 어떤 내용인지 대강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다음 차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다 싶고 그 이유가 궁금해지면 다시 읽고 이유의 연관성을 확인하면 된다. 단, 그 연관성을 다 이해하지 못했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도 포기하지 말기 바란다. 난해한 대목에는 선으로 표시해놓고 우선 마지막까지 읽는다. 세 번째 읽을 때에는 어려워서 선을 그어놓은 부분의 의문이 풀렸거나,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남아 있다 해도 다시 읽으면 결국 수긍할 수 있다. / 307p

 

 

 

   최근 몇 권의 철학서를 접하면서 예전보다는 철학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뜨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고전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나만의 철학을 세워보는 연습을 해볼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책이었다. 부록으로 철학 마블도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연인이나 친구가 함께 책을 읽고 한번 해보는 것도 철학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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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여행 가이드북 - 아이가 좋아하는 사계절 여행지
권다현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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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가 직접 아이와 함께 다녀본 국내 추천 여행지 총망라!

오늘도 아이와 어디를 가야할 지 막막한 부모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올해 우리 가족에게 목표가 있다면 바로 ‘산에 가기’다. 주말마다 바로 집 앞에 있는 앞산이나 근교, 때로는 먼 곳까지 한 번씩 가보기로 정했다. 왜 하필 산인가 하면 유독 체력이 약한 5살 아들의 체력 증진과 미세먼지로부터의 탈출, 컴퓨터를 많이 하고 한 번 결막염이 걸린 이후로 시력이 많이 떨어진 우리 부부의 눈에 초록색 많이 봐주기 등이랄까. 그래서 주말 직전이 되면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한다. 그런데 5살인 아들 혼자였을 때는 그나마 가능했던 선택지들이 1살 아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좁아진 느낌이다. 아직 10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무리해서 다녀야만 하는 곳은 철저히 제외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한계는 있고, 우리는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인터넷으로 ‘아이와 가볼만한 곳’을 검색하는 일이다.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을 한 눈에 정리해놓은 ‘아이 맞춤 여행 가이드북’

 

 

   <아이여행 가이드북>이란 제목의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단박에 이건 꼭 소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여러 종류의 여행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가 둘이나 되는 우리 집엔 이에 맞는 맞춤 가이드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일반 여행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길 위에서 저자와 아이가 함께 한 순간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 책 한 권에 담긴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이여행 가이드북>에는 계절별로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 좋은 우리나라 여행지 365곳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여행지 30곳이 담겨 있다.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아이와의 여행, 이것이 궁금해요!’에서는 여행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아이와 떠나는 여행에 대한 엄마들의 여러 가지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하고 있다. 또 아이와 여행 시 짐꾸리는 노하우와 여행 전 도움이 되는 ‘짐 꾸리기 체크리스트’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특히 짐 꾸리기 꿀팁에서는 꼭 필요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목록들을 체크할 수 있으니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자. 이어 ‘계절별 대표 추천 일정’과 제주 추천 일정도 소개하고 있는데, 1박 2일을 기준으로 하되 영유아의 체력이나 낮잠 시간이 꼭 필요한 하루 일과를 고려해 하루에 2곳 정도의 여행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일정이 제시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좋다. ‘테마별 베스트 아이 여행지’에서는 책에서 다룬 여행지들 중에서 특별히 엄선한 곳만 모아서 소개하고 있으니 그대로 따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아이와의 여행, 이것이 궁금해요!

Q5. 아이가 어려서 ‘이 여행을 기억이나 할까?’ 생각하면 회의적인 기분이 들어요.

A. 실제로 가까운 지인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에요.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언어화를 통해 기억을 저장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이미지와 감각들로 여행을 기억한다고 해요. 때론 저도 잊고 있던 추억을 아이가 불쑥 꺼내거나 그림으로 그려 놀란 적도 여러 번이에요. 아이의 여행 경험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려면 함께 여행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아요. 저는 아이 방에 커다란 지도를 붙여두고 매번의 여행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며 기록해둬요. 가끔 ‘우리만의 여행지도’를 보며 수다를 떨다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날 정도지요. / 25p

 

 

 

 

 

 

   책은 계절에 따라 아이와 떠나기 좋은 자연 명소, 박물관, 미술관, 체험관, 테마파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여행지별로 추천 연령(6개월~10세)을 소개하고 있으니 아이의 발달이나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이를 참고해서 여행해보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추천 월은 여행지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달이 적혀 있으니 미리미리 계획해보는 것도 좋겠다. 여행지에 대한 기본 정보는 지역과 해시태그를 통해 한눈에 알기 쉽도록 되어 있고 주소, 전화, 운영시간, 요금, 홈페이지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함께 둘러볼 만한 주변 여행지와 코스, 주변 맛집까지 본문 하단에 함께 소개하고 있으니 보다 더 알찬 여행을 계획해볼 수 있을 것이다.

 

 

 

167. 에코랜드_ 경북 구미

도심 속에서 숲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진 구미 에코랜드는 아름다운 신동생태숲을 중심으로 계절마다 갖가지 꽃이 피고 지는 자생식물단지, 숲 생태계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산림문화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누구나 푸른 숲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친환경 모노레일을 운영, 우거진 녹음 사이를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은 물론 정상에 자리한 전망대에선 구미 5공단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주말에는 모노레일 탑승권이 일찍 매진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해두자. 가족단위 여행객들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각종 목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237p

 

 

 

 

 

 

   아무래도 대구에서 살고 있다보니 경북 혹은 경남권 주변의 여행지에 더욱 관심이 가는데, 경주에 있는 ‘자전거 박물관’과 구미에 있는 ‘에코랜드’, 부산의 ‘해동용궁사’가 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에서는 꼭 입구에서 판매하는 스탬프지도를 구입해 아이와 마을을 누비며 보는 재미, 체험해보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꼭 가볼까 싶다.

 

 

 

 

 

 

   매번 어디를 가야할까, 이 넓은 땅에 우리가 갈 곳이 이렇게 없나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였는데 이 책을 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아이들과 가보기 좋은 곳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인터넷 정보와 달리 이렇게 책으로 한 번에 딱 정리되어 있어서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이 책 한 권 구비해놓고 이번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이번 주말에는 여기 다녀와볼까 이렇게 아이와 함께 계획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시간만큼 평생 남는 것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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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매일 철학 - 일상의 무기가 되어줄 20가지 생각 도구들
황진규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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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파고드는 답답한 고민들을 해결해줄 20가지 생각 도구들!

고리타분한 철학이 아닌 삶의 기술이 되는 생활 철학을 전수해줄 철학서!

 

 

   ‘철학’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유독 떠오르는 아찔한 순간이 있다. 호기롭게 수강 신청한 철학과 수업에서 조별 토론이 있던 날이었다. 6명이 되는 조원들이 앞에 나와 해당 주제를 가지고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과 주장, 반론을 펼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입 한 번 뻥끗하지 못하고 진땀만 흘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대체 어쩌자고 철학 수업을 신청한 것인지 자책하면서.

 

 

 

   나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동경했지만, 학문이라고만 생각했기에 결국 그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여러 다양한 철학서를 읽어봤지만 그 순간에만 잠시 ‘아, 알 것도 같다’는 막연함만 얻었을 뿐 여전히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출간된 대부분의 철학서들이 실용적인 생활 철학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아직은 내게 어렵고 또 어렵다. 이 정도면 난 정말 철학과 가까워질 수 없는 게 분명하다. <한입 매일 철학>을 읽기 전만 하더라도 나는 또 한번 겪어야 할 좌절을 미리 염두에 둔 것도 사실이다. 어,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 재미있게 잘 읽힌다. 철학자가 주장하는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을까봐 쉬운 말로 설명하고 또 그것도 어려울까봐 더 쉽게 설명하려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책을 읽고 필기해가며 개념을 정리해보는 일이 여느 때보다 수월한 느낌이다. 뭔가 인생철학서 한 권 만난 기분이다.

 

 

 

이제는 삶을 위한 앎이 되는 철학을 해야 할 때 

 

 

   <한입 매일 철학>은 철학 오타쿠를 자처하며 7년 동안 다닌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필실로 들어가 철학의 ‘쓸모’를 발견해 내는 일을 하고 싶었던 저자의 뜻이 담긴 교양 철학서다. 기존의 철학서들이 방대한 철학사와 철학가들의 이론을 정립해 설명하는 데 그친다면, 이 책은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 흔히 하게 되는 일상의 고민들을 철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입 한 입 떠먹여주듯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독려해주는 저자 덕분에 스무 가지의 주제와 철학 이론 앞에서도 얼어붙지 않고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철학을 무기처럼 이용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기술들을 얻음으로써 내 삶이 좀 더 단단해지고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그가 앎에만 그치는 철학이 아니라 ‘삶을 위한 앎이 되는 철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우리는 숱한 고민들을 마주하게 된다. 얼마 전, 다섯 살 된 아들이 습관처럼 ‘원래’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는 둥 원래 그런 거라는 둥 마치 처음부터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기 위해서 꼭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우게 되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로 내가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몇 번이나 그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뿔싸. 범인이 나라니.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원래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와 같은 말은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인 내가 일종의 선입견이자 편견을 아이에게 심어주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흔히 “남자는 원래 다 그래!”,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저자는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입견과 편견에 갇힌 만큼 불행하고, 선입견과 편견을 극복한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전자의 편견은 새로운 이성을 만나 다채롭고 풍요로운 관계를 만들 가능성을 막고, 후자는 돈 이외에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를 발견할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입견과 편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바로 의심이다. 내가 확실하다고, 옳다고 믿는 것들을 처음부터 모조리 의심해 보면 된다. 이에 저자는 의심의 철학자 데카르트를 불러온다. 철학이 불확실한 지식에 확실한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데카르트는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통해 익숙한 삶을 부정하고, 낯설게 하고, 불편하게 하고, 위험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집요하게 의심하기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심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의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태도라고 말하며 우리가 끊임없이 사유하고 의심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을 살라고 독려한다.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코기토’라는 철학적 개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의심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익숙함이나 편안함과 결별하고, 낯섦, 불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들까지 과감하게 의심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데카르트에게 배워야 할 철학은 엄격하게 의심하는 태도와 권위에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태도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 태도로 우리에게 집요하게 들러붙은 선입견을 하나씩 떼어내면 좋겠다. 그렇게 각자 조금 더 밝고 유쾌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에서 26p

 

 

‘나는 100명의 노예를 거느린 주인이야!’라는 허영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결국 더 불안하고, 허무하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이 사람은 누구에게 관심이나 인정, 칭찬을 받고 싶었을까? 지나가는 동네 사람, 옆집 성주와 같은 불특정 다수일 테다. 속 깊은 대화는 고사하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불특정 다수는 ‘피상적 관계’ 맺음의 대상이다. SNS가 내면의 자해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대상이 언제나 ‘피상적 관계’를 맺고 있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던가. SNS는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이나 인정, 칭찬을 받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기에 그 끝에는 필연적으로 불안, 허무, 외로움이 도사린다. /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싶은가요?’ 중에서 41p 

 

 

 

 

 

 

   나에게는 한 가지 트라우마가 있다. 바로 “착한 척 하지 마”라는 말이다. 초등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반에 유독 키가 크고 가슴도 발달하여 신체적으로 조숙한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말을 하는 게 어눌한 면이 있어서 남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자주 당하곤 했다. 하루는 아이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좀 짓궂게 그 친구를 괴롭힌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근처를 지나가다 내가 “야, 좀 하지 마라. 어린애들도 아니고.” 하고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불똥이 나에게 튀고 말았다. 몇몇 친구들이 몰려와 나에게 착한 척 하지 말라며 그때부터 왕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작해야 며칠 정도였지만 나는 일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사실 그들은 어울려도 그만 어울리지 않아도 그만인 친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때부터 ‘~ 척’이라는 단어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착한 척을 한 걸까? 책에서는 “착함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데이비드 흄의 ‘동정심’이라는 이론을 데리고 온다. 흄은 선, 윤리, 도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내면에서 동정심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바로 착함이다. 이러한 동정심이 바탕이 된다면, 어떠한 행동도 착한 행동이라 말한다. 예를 들어 한 걸인이 돈을 구걸하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돈을 주면 안 돼”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테지만, 남자가 걸인의 고통에 절절하게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립을 위해서 돈을 주지 않았다면 그 행동은 선하고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착함에서 중요한 것은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나 행동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행동이 전혀 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세상 사람들이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행동이 무엇보다 착한 것일 수도 있다. 선거철에 보육원을 방문해 아이들을 안아주는 국회의원보다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아이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수녀가 더 선하며,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흄의 이론에 의하면 나는 착한 척을 한 게 맞는 것 같다. 놀림 당했던 그 여자 친구가 이후에 살짝 경기를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애를 도왔다가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일 때문에 꼭 필요한 순간에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게다가 놀리는 아이들에게 핀잔을 준 것도 어쩌면 놀림당한 그 친구를 위한 것이었다기보다 나의 선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고 보면 친구들이 나를 제대로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성은 정념(감정)들의 노예여야만 한다.” 흄의 이 말을 기억하자.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선, 윤리, 도덕이 무엇인지, 또 그런 행동과 실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 이성의 작용을 멈추고,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타인의 상처와 고통에 공감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 동정심 없이 하는 어떠한 행동, 설사 세상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송하는 행동도 선하거나 윤리적이지 않다. 반대로 그런 동정심이 있다면, 어떠한 행동, 설사 세상 사람들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행동도 선하고 윤리적이다. /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중에서 77p

 

 

피히테가 ‘자아’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특정한 대상보다 나의 관념이 더 중요하기에 ‘자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너 자신을 주목하라. 너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의 내적 삶에 주의를 집중하라. 우리의 관심은 당신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이제 피히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와 대상에서 중요한 것은 ‘나’다. ‘자아’가 만들어내는 관념이 실재(물질)보다 우선하니까. /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중에서 114p

 

 

진짜 꿈을 이루려는 사람은 ‘받아들여 할 현실’ 뿐만 아니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극복해야 할 현실’까지 모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짜 꿈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주의자다. / ‘꿈과 현실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중에서 126p

 

 

 

 

 

 

   앞선 나의 사례처럼 <한입 매일 철학>에는 누구나 경험해본 적이 있는, 혹은 고민해본 적이 있는 보편적인 고민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SNS에 열광하는 이유를 파스칼의 ‘허영’을 통해 해답을 찾고, 진정한 ‘나’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피히테의 ‘자아’ 이론을 설명하고, 꿈과 현실의 선택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답을 건넨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니체의 ‘힘의 의지’를, 남자와 여자는 왜 다른지에 대한 질문에는 라캉의 ‘신경증’을, 계획 없이 사는 삶에 대한 의문에는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뢰르’ 이론으로 해답을 찾는다. 이 외에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푸코의 ‘생체권력’, 들뢰즈의 ‘아장스망’ 등으로 삶의 모순을 짚고 나아갈 방향성을 모색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의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게 한 베르그손의 ‘지속’ 이론편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초자아는 낡은 유물이다. 우리네 삶을 피곤하게 하는 낡은 유물, 그 유물을 우리의 마음에서 떼어 내는 만큼 자아는 변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 집 정리를 하지 않아서 불안할 때, 샤워하지 않아서 잠이 안 올 때, 평일에 쉰다는 이유로 죄책감이 들 때, 이렇게 되뇌자. “초자아라는 귀신이 내 마음속에서 나를 조종하고 있구나!” 그 불안, 불면, 죄책감은 내 것이 아니라 부모, 선생, 사회가 남긴 금지의 목소리에서 기원한 것임을 알아차리자. 그 첫걸음을 뗄 수 있다면, 조금씩 내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다. / ‘마음이 왜 마음대로 안 될까요?’ 중에서 184p

 

 

신경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 신경증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다. 남자는 강박증을 잘 통제해서 히스테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욕망이 아니라 상대의 욕망을 살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반대로 여자는 히스테리를 잘 통제해서 강박증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에 집중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럴 때, 신경증의 사랑이 아닌 성숙한 사랑이 가능할 테다. / ‘남자와 여자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중에서 217p

 

 

결국 중요한 건 호명이다. ‘항상-이미’ 구성된 사회적 관계의 호명에 의해 우리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니까. 지금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다른 호명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나를 다르게 불러줄 사람을 찾고, 그들과 연대해 호명 관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눅 들어 눈치 보고 굽실거리는 삶이 아니라 누구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일 할 때 왜 주눅이 들까요?’ 중에서 239p

 

 

 

 

 

 

   <한입 매일 철학>이 좋았던 것은 그간 철학을 오로지 정복의 대상으로만 삼았던 나에게 그것보다 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현재의 나를 점검해보는 ‘사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는 점이다. 또 알게 모르게 스무 명의 철학자를 따라가다 보니 근현대 서양철학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던 점도 인상 깊었다. 만약 나처럼 철학을 알고 싶고 배우고는 싶은데 시도할 때마다 막막하고 어려웠던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혹시 잊어버린다 해도 다시 들춰보는 일이 겁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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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를 찾아서 -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
윌바 외스트뷔.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기억은 어디에 존재하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기억의 속성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매우 특별한 실험들!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참혹하게 만든 적이 있다. 몇 해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던 외할머니의 병세가 최근 들어 꽤 깊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을 때였다. 외할머니는 나와 나의 아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밖으로 내몰았다. 당장 나가라는 외침에 나는 참담해진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고,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내내 울었다. “외할머니, 나 국화 화분 사야 해. 꼭. 응?” 유년 시절, 부모님을 대신해서 학교에서 열린 시화전에 참석해 내 시와 함께 놓여 있던 국화 화분을 사주셨던 분이었고 몰래 다른 손자손녀들보다 먹을 거 하나 용돈 하나 더 챙겨주시던 그 외할머니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것도 모자라 문전박대를 하였으니 마치 당신의 인생에서 내가 뚝 떨어져나간 것만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기억이 흐려진다는 것, 기억을 잃는다는 것, 기억이 또 다른 기억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과정을 인생의 말미에 이르러서 한꺼번에 겪고 있는 외할머니를 보며 나는 비로소 기억이란 것이 참 얇디얇은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이고, 찢어지고, 불완전하게나마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는 그런 종이 한 장 말이다.

 

 

 

뇌의 수많은 신비를 푸는 열쇠, 해마

 

 

   1564년, 이탈리아의 한 의사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란티우스는 인간의 뇌 속에서 소시지처럼 생긴 작은 물체를 잘라 내고 분리했다. 머리가 앞으로 굽어졌고, 꼬리는 꼬부라진 것 같은 것이 꼭 해마를 닮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부위가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450 여 년이 흐른 뒤, 외과 의사 윌리엄 비처 스코빌이 뇌전증을 앓고 있는 헨리 몰레이슨을 치료하기 위해 뇌 양쪽에서 해마를 제거하는 잘못된 수술을 하게 되면서 헨리는 기억력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수술 후 헨리는 지난 2~3년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짧은 순간 바로 기억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면 그 무엇도 회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한 개인에게는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이때부터 해마의 연구가 활발해졌고 이 작은 해마 하나가 뇌의 수많은 신비를 풀기 위한 열쇠가 되었다.

 

 

 

바다에 사는 생물과 우리 뇌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바다의 해마와 뇌의 해마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새끼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는 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배에 알을 품는 해마 수컷처럼, 뇌의 해마 역시 무언가를 품는다. 그건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말하자면 기억을 위한 인큐베이터이다. / 10p

 

 

 

   해마는 일종의 ‘기억 저장소’의 역할을 한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저장소는 아니다. 인생의 모든 경험이 뇌 속 깊이 있는 그렇게 작고 이상한 조직 안에 다 저장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일 테니 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뇌 깊은 곳으로 사라지고 피질로 분산된다. 하지만 해마의 도움으로 다시 꺼내 올 수 있다. 즉, 해마는 기억이 성숙해져서 뇌의 피질에 고착될 때까지 붙잡고 있거나, 내면의 눈이 생각 속에서 경험을 다시 체험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해마를 찾아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생물 해마와 꼭 닮은 우리 뇌 속의 해마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고 또 기억을 효과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지 기억의 작동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서로 다른 다수의 기억에 관여할 수 있다. 기억은 뇌 안의 뉴런들 사이의 회로이다. 무언가가 기억으로 저장된다는 것은 켜지거나 꺼지는, 뇌에서 신호를 점화하거나 안 하는 뉴런들의 새로운 연결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떤 무늬가 생겨난다. / 46p

 

 

“기억이 아주 새로울 때에는 접근이 아주 쉽지요. 하나하나의 사건이 그대로 눈앞에 보이고, 아직도 해마에 존재하지요. 기억이 점점 낡아 가면서, 즉 옛일이 되면서,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뇌의 다른 곳에 저장됩니다. 그것들을 다시 꺼내 오려면 재구성이 더 많이 필요해지지요. 그리고 개별 요소들을 제자리에 배치하여 하나의 전체를 만들 때 해마가 큰 역할을 합니다.” / 54p

 

 

 

   책은 여러 장에 걸쳐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실험과 사례들을 소개한다. 2장, ‘해마를 찾아 2월에 잠수하기’ 편에서는 잠수부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기억이 상황이나 장소, 그리고 그때그때의 정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실험에서 잠수부들은 물속에서 외운 단어는 물속에서 훨씬 더 잘 기억해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억이 동일한 환경이나 상황에서 정보를 꺼내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마는 사건과 경험을 서로 다르고 구별되는 것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설정되어 있다. 거기에서야 진주목걸이의 반짝이는 진주가 생겨난다. 기억에 저장된 다른 모든 정보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개인적인 경험을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그래야 나중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어떤 기억에 대해 생각하고 말했는지가 영향을 미친다. / 82p

 

 

“기억은 우선 아주 기본적인 생존 도구이지요.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을 할 때 기억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이며, 우리의 연애 이야기는 배우자 관계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온갖 집안일이나 행사에서는 우리가 누구였는지 이야기를 해요.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대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시적인 차원, 국가적인 차원, 세계적인 차원에서 ‘우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괴상하고 창조적이지요! 기억은 창조도 하고 보존도 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저장하는 동시에 우리 인생을 작은 타임캡슐에 보관하니까요. 작가에게는 흥미로우면서 신뢰할 수 없는 도구입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 93p

 

 

 

 

 

 

   개인적으로 허위 기억을 다룬 4장과 기억 훈련에 관한 주제를 다룬 5장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우리는 경찰의 강압수사 혹은 한때 은밀하게 자행되기도 했던 고문들이 죄 없던 용의자에게 허위 기억을 덧씌워 거짓 자백을 이끌어냈던 사례들을 종종 듣곤 한다. 노르웨이 경찰 수사관이며 현재는 인권 연구가인 아스비외른 라클레프 역시 죄 없는 용의자로부터 거짓 살인을 자백 받은 사건을 통해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왜곡에 약하며 또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직시했다. 덕분에 현재 그는 새로운 형태의 심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형성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죄 없는 사람들이 유죄 선고를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에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억은 압력이 있으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과 우리가 경험했다고 믿는 게 언제나 사실인 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짜 기억은 사실 상상의 한 형태, 상상한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다. 허위 기억은 그 법칙이 아무리 비이성적으로 보이더라도 기억의 자연법칙을 이용할 뿐이다. 허위 기억은 그러니까 환상에서 시작하여 기억을 거쳐 어느 순간 현실로 인식된다. ‘사실’이라고 쓰인 딱지를 자신에게 갖다 붙이고, 박새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고는 크고 뚱뚱한 뻐꾸기로 자라난다. / 151p

 

 

마치 기억이 귀엣말을 전달하는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범인에 대한 기억은 점차로 혐의자에 대한 기억으로 대치되었다. 여자가 기억을 제대로 못 했거나 트라우마 경험이 어떻게든 판단력을 흐리게 했던 게 아니다. 그저 기억이 원래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기억은 생물이고 유기적이며, 이미지를 살아나게 한다. 새로운 요소들이 들어오면 원래의 기억과 하나로 엮여 들어가는데,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상상력뿐이리라. / 188p

 

 

 

 

 

 

   5장에서는 대규모 택시 실험과 특별한 체스 게임을 통해 기억은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 기억 훈련법에 관한 연구를 살펴본다. 무대는 런던의 도로 위. 거미줄처럼 얽힌 이 복잡한 도시에서는 머릿속으로 도시의 지형을 그리며 정확한 장소에 도착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훈련받은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의 뇌를 검사해본 결과, 해마의 뒤쪽이 훨씬 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해마 뒤쪽에 뇌를 구성하는 물질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훈련이 해마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훈련을 통해 기억력이 무한히 상승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기억에는 망각이 뒤따른다. 우리 뇌 속에서 기억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데, 이는 기억을 서로 간의 연결점들의 형태로 붙잡아 두는 뉴런들이 점차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완전히 못이 박힐 때까지 지식을 암기하고 유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실 이것은 현명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뇌에는 공간이 생기고 중요한 걸 구분해냄으로써 새로운 기억들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6장에서는 기억의 본성 중 하나인 망각을 들여다보며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큰 과제인 알츠하이머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본다.

 

 

 

오늘날 장소법은 마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도 장소법은 아주 유용한 기억법이며, 그 바탕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다. 하나는 원래 알고 있는 무엇, 즉 알려진 여행 경로를 사용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확 들어오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기억할 내용과 함께 연상되게 한다는 점이다. 원래 알고 있던 여행 경로를 사용하면 기억에서 공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기억할 것에 자연스러운 순서가 정해진다. / 231p

 

 

퍼트리샤 바워는 부모가 어린이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기억이 얼마나 잘 정착하는지 사이에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부모가 어린이들에게 경험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어린이들이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에 흡수되며, 구성적인 기억의 도움으로 기억에는 생명이 생긴다.

“아이들이 기억을 했으면 싶은 일들에 대해서는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해야 해요.” 뇌 연구자인 크리스티네 발호브드의 말이다.

“아이들의 긍정적인 경험을 부모들이 강조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해서 부모는 아이들이 바람직한 인생사를 얻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268p

 

 

 

   스발바르의 한 국제종자저장고에는 기후 변화와 핵전쟁, 한발과 전염병을 생각하여 지구의 미래를 대비하고자 전 세계의 씨앗들을 깊은 건물 속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씨앗 박스는 심판 날까지 아껴 두려고 만든 것은 아니고, 저축을 한 모든 나라가 지구 전체를 위해 계속해서 백업을 해 두려는 의도이다. 저자는 기억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기억은 사용되기 위한 것이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다. 토머스 서든도프 역시 기억 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바로 진화에 있다고 말한다. 생존에 관해서라면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유용할 뿐이다. 오류투성이이고 유연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의 기억은 살아 있고 유연한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기능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라면 인간에게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미래의 비전과 계획, 꿈과 환상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기억을 어떻게 대하고 이용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해마를 찾아서>는 다양한 관점과 사례를 통해 기억이 우리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떠한 속성을 지녔는지를 알려주는 매우 특별한 과학교양서다. 과학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책이다. 덕분에 최근 치매가 깊어진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기억의 허망함에 사로잡혔던 나에게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새삼 위로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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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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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문장과 경이로운 이야기로 감탄을 자아내는 소설!

편견과 외로움, 인간과 생태학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생생하게 담아낸 최고의 소설!

 

 

   사람들이 육지다운 육지를 찾아 헤맬 무렵, 악명 높은 습지만이 반란 선원, 조난자, 빚쟁이, 전쟁이나 세금 혹은 법을 피해 도망친 떨거지들을 그물처럼 건져내던 시절이 있었다.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지도, 늪에 잡아먹히지도 않은 사람들은 다인종 다문화의 나무꾼 부족을 이루었다. 이백 년 후 습지로 도망친 노예 마룬이 그들과 합류했고, 땡전 한 푼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해방 노예 또한 습지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었다. 습지는 그런 곳이었다.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가혹한 환경이나 낙인이 찍힌 성스러운 땅답게 인간의 비밀을 지켜주었다. 원하는 사람이 없는 땅이니 누가 차지하든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그들을 향한 근거 없는 뜬소문과 더러운 험담들, 지독한 편견들이 진흙탕의 그것처럼 질척거렸다. 그래서 이따금씩 소란이 일어나고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늪의 소굴이 죽음을 소리 없이 삼켜버리는 일도 일어나곤 했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향한 찬가 그리고 성장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한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미처 다 삼켜버리기 전에 시체 하나가 발견된다. 마을의 인기 스타 쿼터백이자 공식 미남이며 웨스턴 오토를 운영하는 마을 유지의 하나뿐인 외동아들 체이스, 바로 그가 말구유보다 처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았다. 사망 추정 시각은 1969년 10월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 낡은 소방 망루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하나 어쩐 일인지 현장 주변으로 발자국은커녕 이렇다 할 증거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체이스 앤드루스 본인의 발자국도. 타살로 의심되는 정황은 있으나 뚜렷한 증거는 없는 가운데, 그나마 가장 유력할 것으로 의심되는 한 명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바로 카야다.

 

 

 

   일명 ‘마시 걸’ 혹은 ‘늪지 쓰레기’라고 불리는 카야는 습지 속 낡은 판잣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가 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는 아버지의 잦은 폭력과 고함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큰 오빠와 언니 둘도 도망가 버렸다. 그녀에게 새들의 노래와 별들의 이름과 억새풀을 헤치고 나룻배 젓는 법을 가르쳐준 조디 오빠마저 끝끝내 집을 떠나자, 카야는 사나흘씩 집을 비우곤 하는 아버지 때문에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다. 종종 카야를 학교로 데려가기 위해 공무원들이 찾아왔지만, 그곳에서 놀림과 상처만 받고 돌아온 카야는 살면서 단 하루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가리를 관찰하고 조가비를 모으는 생활만으로도 배움은 충분했다. 습지가 곧 카야의 어머니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간혹 아버지와의 관계가 부드러워져서 낚시도 배우고 거위 사냥철, 물고기의 습성, 구름과 파도의 이안류를 보고 날씨를 읽는 법 등을 익히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보내온 편지를 아버지가 불태워버린 사건 이후로 그는 영영 카야에게 돌아오지 않았고 언젠가 다들 돌아올 거라는 나지막한 희망을 품은 채 카야는 홀로 남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얼싸안아야 했다.

 

 

가끔 술에 취하지 않을 때 제이크는 학업을 마치고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꿈을 꾸곤 했지만, 참호의 그림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영영 걷히지 않았다. 한때 자신만만하고 핸섬하고 늘씬했던 제이크는 이제 초라하게 전락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 술을 마셨다. 습지에서 싸움판을 벌이고 술을 마시고 욕을 퍼붓는 도망자들과 어울리는 건, 이제까지 제이크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 쉬웠다. / 136p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을의 그 누구도 카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낡은 선박 주유소의 흑인 가족인 점핑과 메들리, 한 때 오빠의 친구였던 테이트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테이트는 보트를 타고 폭풍우가 오기 전에 집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주었고, 닳아빠진 등걸에 그녀를 위한 깃털 선물을 놓아두고 가기도 했으며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여자가 되는 첫 고비를 순조롭게 지나칠 수 있게 도와주고 처음으로 암컷의 욕정을 일깨워준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그가 있어서 그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또 테이트 덕분에 글을 읽게 된 카야는 그가 가져다준 책을 읽으며 자연의 섭리를 익히고 점차 생태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나가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여기 한적한 데 나와 있는 것도 좋고, 네가 습지에 흥미를 갖는 것도 참 보기 좋아, 카야. 사람들은 낚시할 때 말고는 습지를 제대로 보지도 않거든. 매립해서 개발해야 할 황무지라고 생각하지. 바다 생물한테 습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라. 자기네들이 그것 때문에 먹고 살면서.” / 152p

 

 

시처럼 온화한 알도 레오폴드의 단어들로부터 생명이 응축된 토양은 무엇보다 풍요로운 지구의 자산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습지의 물을 빼면 그 너머 수십 킬로미터에 걸친 땅이 메마르고 물길 따라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이 죽어버린다는 것도 알았다. 어떤 씨앗들은 바짝 마른 흙 속에서 잠을 자며 수십 년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물이 다시 집에 돌아오면 흙을 뚫고 힘차게 솟아올라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도 알았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자연의 경이와 실제 삶의 지식, 누구나 알아야 하는데, 버젓이 주위에 노출되어 있는데 씨앗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는 진실들. / 141p

 

 

 

 

 

 

   하지만 테이트가 대학에 가게 되면서 그들은 잠시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그는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했지만, 아니 몰래 그녀를 찾아온 적도 있지만 재회할 수 없었고, 카야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기에 모두가 떠나버리는 걸까 이내 자책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몸서리치는 외로움에 넋을 잃은 그녀 앞에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체이스였다. 마을의 인기남이자 바람둥이인 그는 마을의 여자들과 다른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카야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정체가 오로지 욕정에 의한 것이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카야는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이 관계마저도 그녀를 온전히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거절로 점철된 삶,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오로지 자연만이 그녀에게 한결같을 뿐.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 247p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 / 295p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다 야생에서 배웠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주었다. 그 결과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다면, 그 역시 삶의 근본적인 핵심이 기능한 탓이리라.

테이트의 헌신으로 카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태고의 생존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로 남아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 448p

 

 

 

 

 

 

   훗날 용서를 구하며 찾아온 테이트의 도움으로, 습지에 대한 카야의 사랑이 반영된 책 한 권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제 그녀는 후속작을 준비하면서 더 이상 점핑의 구호물품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법적으로 토지 소유권도 인정받았다. 아직 테이트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의 영원한 첫사랑이기에 언젠가 다시 마음이 기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체이스의 목에 항상 걸려 있던 카야의 조개껍질 목걸이가 사건 당일 밤에 사라졌다는 아주 결정적인 증언이 나온다. 카야가 소방 망루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까지 잇달아 나타난다. 습지 생태학자로 명성을 쌓아나가려는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카야는 체이스 사망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만 것이다.

 

 

 

   과연 체이스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카야가 정말 그를 살인했을까? 소설은 이제 날카로운 법적 공방의 장면으로 접어들어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수수께끼 같은 살인 사건의 전말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듯 소설은 카야가 습지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는 과정을 과거부터 쫓아가는 한편, 체이스 사망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교차 구성하여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런 가운데 마치 한 편의 신화처럼 카야를 보듬고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야생생물과 습지의 생태를 놀랍도록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적 공간으로 활용한 저자의 통찰력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과연 일흔에 가깝도록 평생 야생동물만을 연구해온 과학자의 첫 데뷔작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려하고 경이로운 작품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이 기다려져서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런 기분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카야의 굴곡진 삶과 외로움이 주는 정서가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 모두는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을 것 같은 저 깊은 곳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야 종종 찾아드는 외로움과 상처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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