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려한 문장과 경이로운
이야기로 감탄을 자아내는 소설!
편견과 외로움, 인간과 생태학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생생하게 담아낸 최고의 소설!
사람들이 육지다운 육지를 찾아 헤맬 무렵, 악명 높은 습지만이 반란 선원, 조난자, 빚쟁이, 전쟁이나 세금 혹은 법을 피해 도망친
떨거지들을 그물처럼 건져내던 시절이 있었다.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지도, 늪에 잡아먹히지도 않은 사람들은 다인종 다문화의 나무꾼 부족을 이루었다.
이백 년 후 습지로 도망친 노예 마룬이 그들과 합류했고, 땡전 한 푼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해방 노예 또한 습지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었다. 습지는 그런 곳이었다.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가혹한 환경이나 낙인이 찍힌 성스러운 땅답게 인간의 비밀을 지켜주었다. 원하는 사람이 없는
땅이니 누가 차지하든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그들을 향한 근거 없는 뜬소문과 더러운 험담들, 지독한 편견들이 진흙탕의 그것처럼 질척거렸다.
그래서 이따금씩 소란이 일어나고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늪의 소굴이 죽음을 소리 없이 삼켜버리는 일도 일어나곤 했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향한 찬가 그리고 성장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한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미처 다 삼켜버리기 전에 시체
하나가 발견된다. 마을의 인기 스타 쿼터백이자 공식 미남이며 웨스턴 오토를 운영하는 마을 유지의 하나뿐인 외동아들 체이스, 바로 그가 말구유보다
처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았다. 사망 추정 시각은 1969년 10월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 낡은 소방 망루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하나 어쩐 일인지 현장 주변으로 발자국은커녕 이렇다 할 증거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체이스 앤드루스 본인의 발자국도.
타살로 의심되는 정황은 있으나 뚜렷한 증거는 없는 가운데, 그나마 가장 유력할 것으로 의심되는 한 명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바로 카야다.
일명 ‘마시 걸’ 혹은 ‘늪지 쓰레기’라고 불리는 카야는 습지 속 낡은 판잣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가 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는
아버지의 잦은 폭력과 고함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큰 오빠와 언니 둘도 도망가 버렸다. 그녀에게 새들의 노래와 별들의 이름과 억새풀을 헤치고
나룻배 젓는 법을 가르쳐준 조디 오빠마저 끝끝내 집을 떠나자, 카야는 사나흘씩 집을 비우곤 하는 아버지 때문에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다. 종종 카야를 학교로 데려가기 위해 공무원들이 찾아왔지만, 그곳에서 놀림과 상처만 받고 돌아온 카야는 살면서 단 하루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가리를 관찰하고 조가비를 모으는 생활만으로도 배움은 충분했다. 습지가 곧 카야의 어머니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간혹 아버지와의 관계가
부드러워져서 낚시도 배우고 거위 사냥철, 물고기의 습성, 구름과 파도의 이안류를 보고 날씨를 읽는 법 등을 익히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보내온
편지를 아버지가 불태워버린 사건 이후로 그는 영영 카야에게 돌아오지 않았고 언젠가 다들 돌아올 거라는 나지막한 희망을 품은 채 카야는 홀로 남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얼싸안아야 했다.
가끔 술에 취하지 않을 때 제이크는 학업을 마치고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꿈을 꾸곤
했지만, 참호의 그림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영영 걷히지 않았다. 한때 자신만만하고 핸섬하고 늘씬했던 제이크는 이제 초라하게 전락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 술을 마셨다. 습지에서 싸움판을 벌이고 술을 마시고 욕을 퍼붓는 도망자들과 어울리는 건, 이제까지 제이크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 쉬웠다. / 136p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을의 그 누구도 카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낡은 선박 주유소의 흑인 가족인 점핑과
메들리, 한 때 오빠의 친구였던 테이트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테이트는 보트를 타고 폭풍우가 오기 전에 집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주었고, 닳아빠진
등걸에 그녀를 위한 깃털 선물을 놓아두고 가기도 했으며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여자가 되는 첫 고비를 순조롭게 지나칠 수 있게
도와주고 처음으로 암컷의 욕정을 일깨워준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그가 있어서 그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또 테이트 덕분에 글을 읽게 된
카야는 그가 가져다준 책을 읽으며 자연의 섭리를 익히고 점차 생태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나가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여기 한적한 데 나와 있는 것도 좋고, 네가 습지에 흥미를 갖는 것도 참 보기 좋아, 카야. 사람들은
낚시할 때 말고는 습지를 제대로 보지도 않거든. 매립해서 개발해야 할 황무지라고 생각하지. 바다 생물한테 습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라.
자기네들이 그것 때문에 먹고 살면서.” / 152p
시처럼 온화한 알도 레오폴드의 단어들로부터 생명이 응축된 토양은 무엇보다 풍요로운 지구의 자산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습지의 물을 빼면 그 너머 수십 킬로미터에 걸친 땅이 메마르고 물길 따라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이 죽어버린다는 것도 알았다. 어떤
씨앗들은 바짝 마른 흙 속에서 잠을 자며 수십 년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물이 다시 집에 돌아오면 흙을 뚫고 힘차게 솟아올라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도
알았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자연의 경이와 실제 삶의 지식, 누구나 알아야 하는데, 버젓이 주위에 노출되어 있는데 씨앗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는 진실들. / 141p

하지만 테이트가 대학에 가게 되면서 그들은 잠시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그는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했지만, 아니 몰래 그녀를 찾아온
적도 있지만 재회할 수 없었고, 카야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기에 모두가 떠나버리는 걸까 이내 자책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몸서리치는 외로움에
넋을 잃은 그녀 앞에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체이스였다. 마을의 인기남이자 바람둥이인 그는 마을의 여자들과 다른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카야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정체가 오로지 욕정에 의한 것이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카야는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이 관계마저도 그녀를 온전히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거절로 점철된 삶,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오로지 자연만이 그녀에게 한결같을 뿐.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
247p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 / 295p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다 야생에서 배웠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주었다. 그 결과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다면, 그 역시 삶의 근본적인 핵심이 기능한 탓이리라.
테이트의 헌신으로 카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태고의 생존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로 남아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 448p

훗날 용서를 구하며 찾아온 테이트의 도움으로, 습지에 대한 카야의 사랑이 반영된 책 한 권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제 그녀는
후속작을 준비하면서 더 이상 점핑의 구호물품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법적으로 토지 소유권도 인정받았다. 아직 테이트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의 영원한 첫사랑이기에 언젠가 다시 마음이 기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체이스의 목에 항상 걸려 있던 카야의 조개껍질 목걸이가 사건 당일 밤에 사라졌다는 아주 결정적인 증언이 나온다. 카야가 소방 망루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까지 잇달아 나타난다. 습지 생태학자로 명성을 쌓아나가려는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카야는 체이스 사망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만
것이다.
과연 체이스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카야가 정말 그를 살인했을까? 소설은 이제 날카로운 법적 공방의 장면으로 접어들어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수수께끼 같은 살인 사건의 전말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듯 소설은 카야가 습지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는 과정을 과거부터 쫓아가는
한편, 체이스 사망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교차 구성하여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런 가운데 마치 한 편의 신화처럼 카야를 보듬고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야생생물과 습지의 생태를 놀랍도록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적 공간으로 활용한 저자의 통찰력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과연 일흔에 가깝도록 평생 야생동물만을 연구해온 과학자의 첫 데뷔작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려하고 경이로운 작품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이 기다려져서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런 기분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카야의
굴곡진 삶과 외로움이 주는 정서가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 모두는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을 것 같은 저 깊은 곳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야 종종 찾아드는 외로움과 상처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