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침없고 치명적인 독과
약의 환상적 리얼리티!
환상과 진실을 떠돌며 난해함과 치밀함을 정교하게
문장에 녹아내는 황홀한 소설!
이것은 ‘독과 약’에 관한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에 내던져진 것처럼 무의식과
망각 혹은 이성이 뒤틀려버린 공간 속을 끊임없이 떠돌다가 마침내 질식할 것 같은 악마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금기와 호기심, 두려움과
매혹, 도취와 환멸, 쾌감과 파멸을 오가는 이 거침없고 치명적인 위태로움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너무나 섬뜩해서 오히려 슬퍼지는 그런 이야기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연상시키는 최수철의 <독의 꽃>은 ‘독’에 대한 관념들이 넝쿨처럼 뻗어나가 마침내 모든
것을 잠식해버릴 것만 같은 소설이다. “독으로 시작되어 독으로 끝나는 소설”이라 불러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던 평론가의 말 그대로 소설은 온통
빽빽하게 독으로 가득 차있다. 10년 전부터 ‘독’에 대한 작품을 구상해왔다던 저자의 말처럼 독은 어디에서 기인하며 어떤 성향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 상관물인 ‘약’과 함께 집요하게 고찰하여 마치 ‘독의 세계관’을 완성해낸 느낌이다.

소설은 독성 물질에 감염되어 병원으로 실려 온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치료를 받기 위해 병실로 이동한 나는 창가 쪽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마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내 모습, 더 나아가 수의를 덮고 있는 나 자신의 시체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흡사 미꾸라지들이 잔뜩 들어 있는 미지근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 그의 웅얼거리는 소리에 기괴함과 불길함마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조몽구. 그 역시 몸 전체가 안팎으로 강한 독성 물질에 감염된 채 입원했고 자신의 일생을 가득 메웠던 독에 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야기함으로써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의 이야기에 점점 사로잡히게 되고, 적절한 양의 독이 몸속으로 들어와 심신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약이 되듯 그의 이야기가 자신을 각성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새벽의 환몽 속에서 괴물 같은 존재를 본 다음 날, 조몽구는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그가 떠나고, 그와 다시 만날 가능성이 사라졌지만 조몽구의 이야기가 무엇보다도 절실해진 나는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다시 말해 그가 들려준 이야기이자 내 속으로 들어와 나의 것이 된 이야기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하면서 듣고 있었고, 듣는 것도 아니고 듣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귀를 열어놓은 채 잠과 꿈의 수면에서 자맥질 쳤다. 그러다가 악몽이라도 꾸듯 그의 이야기가 미지근한 독물처럼 나의 귓속으로 흘러드는
듯한 섬뜩한 느낌에 소스라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러나 이윽고 사위가 다시 조용해지면 그의 입은 슬그머니 다시
열리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날은 점차 밝아져갔고, 나는 깨어서나 잠들어서나 기진맥진한 상태로, 마치 클로로포름에 담긴 개구리처럼 줄곧
기이한 마비 상태에 빠져들어 있었다. / 18p
조몽구는 정권의 변화에 편승하여 기회주의자적인 면모를 지닌 아버지 조영로와 예민하고 병약하여 독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독을 이용하고 퍼뜨리는 자, 그 자체로 독의 속성을 가진 존재였고 때문에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진
셈이었지만 두통과 잦은 병치레에 시달리는 몽구에게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말 그대로 몽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몸과 마음에 독이 각인된
상태였다. 늘 피해의식과 외로움으로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괴물과 하나가 되어 홀로 갇힌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그는 마침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독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 100p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은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 198p

삼촌과 동거를 하기 시작하면서 몽구는 자기 몸속의 독에, 그리고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독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한다. 대학교를
가고 군대를 다녀오며 사회인으로 거듭나기까지 몽구는 다양한 형태의 독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테면 이기심, 증오심, 분노, 공포, 탐욕, 술,
성적 충동, 강압, 집착 등이 그것이다. 우리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나쁜 이념들이 이른바 ‘독’이라는 형태로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자의로든 타의로든 이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개개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치명상을 입힌다. 자신이 여전히 건재하고 사회적으로 늘
주목을 받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과시하기를 원하는 아버지 조몽구, 병약한 여동생에게 집착한 나머지 그녀의 남자들을
경계하는 정우, 부하들을 한시라도 자기를 망칠지 모를 잠재적 독소라 여기는 소대장, 독을 이용해 사람들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 광수 등
몽구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독’이라는 형태의 욕망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독에 대한
온갖 관념들을 경험하고 또 어떻게 사유해야 하며 해독과 정화의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배우게 된다.
그런데 그 낙인은 대체 누가 찍은 것일까. 나 자신이 찍은 건 결코 아니니, 그렇다면 세상이, 어쩌면
우주가 그 낙인을 찍은 것일지도 몰랐어.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낙인을 찍는다는 건 뭔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해서잖아.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상기시키려 하는 거지? 상기시켜서 뭘 어쩌려는 거지. 어쩌면 나로 하여금 싸우라고 하는 게 아닐까. 버티고 저항해서 마침내 이겨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닐까. 그런데 무엇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일까. 나 자신에 대해서? 아니면, 세상의 독에 대해서? 그렇게 내 생각은 내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어. / 56p
“그날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던 거야. 독은 내게 다정하고 친숙했어.
비로소 나는 내가 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다른 존재에게 독이라는 것도 알았어. 하지만 또한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의 삶과 세상의 독이 서로 침투하는 음침한 세계를 보았던 거지. 그 두려운 세계에서 내내 살아가야 하는 운명,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서 격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어.” / 78p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바로 ‘여성들’이다. 몽구는 어린 시절에 이미 자신이 모종의 독성 물질에
감염되어 있음을 분명히 인식했고, 다만 그 독을 해독해줄 존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무의적으로 깨달았다. 바로 그러한 존재들은
주로 몽구가 만난 ‘여성들’이었다. 저체중의 미숙아로 태어나 미숙아망막증을 앓았던 탓에 누구보다도 몽구의 고통을 교감할 수 있었던 영지, 몽구의
정액과 피가 섞인 붉은 액체를 닦아주다 그것을 삼키기까지 했던 간호사 영지, 삼촌의 살림을 묵묵히 돌봐주던 쌍둥이 노파들 등이 그러했다. 이는
모성 신화를 연상케 하는데, 넓게 생각하면 ‘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나지만 또 그것을 해독시키는 ‘약’ 역시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건 애기똥풀이란다. 바다 건너에서는 이 풀을 제비풀이라고 부르지. 새끼 제비는 막 태어났을 때 눈을
뜨지 못하는데 어미가 이 애기똥풀 즙으로 어린 제비의 눈을 씻어서 눈을 뜨게 해준다는구나. 그래서 제비풀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사람들이 눈병에
걸릴 때도 효과가 있다고 하지. 하지만 많이 바르면 피부가 상하고 먹으면 배탈이 나게 돼. 노랗고 작은 꽃이 피는데, 꽃말이 뭔지 아니? 미래의
기쁨, 몰래 도와주는 사람, 몰래 한 사랑,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란다." / 115p

이 소설의 놀라운 점 중에 하나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제각기 다른 인물이지만 마치 하나의 인물처럼 겹쳐진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아버지
조영로가 그를 비난했던 한종원이었고, 수호 삼촌이 행위예술가인 도부영이었으며 간호사 고영지가 나중에 꿈속에서 수호의 살림을 돌봐주던 쌍둥이 노파
중 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삼촌 수호, 정우, 용한, 광수, 몽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 모두는 마치 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경계를 교란시킨다. 독이 약이 되기도 하고 약이 독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이러한 점은 바로 이 이야기가 결국
‘몽구의 이야기이나 나의 이야기이도 하며 우리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기막힌 반전에 힘을 싣는다. 이것이 읽는 내내 꿈인 듯 현실인 듯
기이하고 때로는 난해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치밀하고 리얼리티적인 소설이라 여겨지는 이유다.
한번은 서양 중세시대 스위스의 화학자 파라켈수스가 한 말, 여러 책에서 인용되는 그 말이 하루 종일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다만 올바른 용량만이 독과 약을 구별한다.” 요컨대 독과
약은 서로 대립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과학적으로는 차이가 없고, 다만 얼마나, 어디에서, 무엇과 함께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거나 약이 된다는
것이었다. / 177p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기 위해 매 순간 자기 내부의 독성으로 외부의 독성과 싸우고 있어. 그러나
대부분 자기 내부의 독성을 의식하지 못하지. 하지만 너는 두통 때문에 그 독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의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말
그대로 깨어 있으라는 게 아닐까. 매 순간 긴장하라는 게 아닐까. 일상의 마비에서 벗어나 있으라는 게 아닐까. 고대 인도의 한 철학자가 말했지.
우리가 진실로 깨어 있는 때는 꿈꿀 때의 그 짧은 순간일 뿐이라고. 우리가 깨어 있다고 믿는 시간은 단지 마야, 곧 미망과 환영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무엇이 미망이고 무엇이 실제인가. 독도 따지고 보면 미망이고 환영이 아닐까.” / 196p
마치 ‘독의 백과사전’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은 작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독’에 대한 주제를 고민했는지 느낄 수 있을 만큼 과감한
양식과 서사, 독과 약에 관한 통찰, 독물을 잔뜩 머금은 뱀이 온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독’이라는 이 강렬한 단어 속에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녹아낸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전하고 싶다. 책의 말미에
“살아 있는 매순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 외부의 적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다른 생명체를 공격적으로 섭취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하나하나야말로 곧 한 송이 ‘독의 꽃’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서 이 말 또한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의 모든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약’”이라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까지도 기억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