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 - 생명의 탄생부터 우주의 끝까지
모리 다쓰야 지음, 전화윤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생물학, 인류학, 물리학, 뇌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왜 죽는가에 대한 불명확한
해답에 다가가기 위한 대담집!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이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나와 남편의 얼굴을 반반씩 쏙 빼닮아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았을 때, 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주셨던 할머니가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 오롯했던 육신이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광경을 보며 가슴이 사무쳤을 때 나는 그러한 질문들을 마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 한 사람을 비롯하여 누군가의 삶으로 증명하기에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거대한 명제여서 제자리를 맴돌다가 이내 생각을 멈추게 한다.
언젠가 철학과 수업에서도 이를 주제로 하여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하나 명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최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이과적 언어와 사고를 가져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답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발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영원한 명제에 숨은 진실 한 자락을 엿보게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동기에서 비롯되어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의 저자 모리 다쓰야는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과학계 지성과의 대담을 연재하기 시작하였음을 밝힌다.
자칭 100% 문과형 인간임을 고백하며 대담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도, 이 역시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저자의 시도가 무척 흥미롭다. 제목의 그것처럼
정말이지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의 연속이자, 나 역시 철저한 문과형 인간으로 과연 이 책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려가
앞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과학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자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까지도 가능케 하는
의미 있는 시도로써 이 책은 또 다른 생각의 지평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경계가 없는 ‘세계의 일부’다
‘인간은 왜 죽는가’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총 11장에 걸쳐 거대한 질문과 마주한다. 생물학자, 인류학자, 진화생태학자, 물리학자,
뇌과학자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과학계 최고 지성들과의 대담을 통해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진화란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죽음을 결정하는가’, ‘우주에는 생명이 있는가’, ‘우주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나는 누구인가’, ‘뇌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과학은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주제를 이끌어낸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대명제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무나 복잡하고 때로는 엉뚱하리만치 장황한 질문 앞에서
그들도 ‘모르겠습니다’하고 난색을 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혹은 현재까지 밝혀진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최대한 의미
있는 답변들을 해나간다.
“역설적이지만 생물에게는 그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스스로를 튼튼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을 멈출 수 없었죠. 그러나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다 해도, 결국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질서가 파괴됩니다. 이를테면 조명 기구는
망가지기 전에 알아서 전구를 교환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부를 늘 빛나게 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생명을 얻은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죽고 다시 만들어진다고도 할 수 있어요.” / 57p



책에서는 다윈주의, 후성유전학, 양자론, 엔트로피, 텔로미어, 용불용설, 성선택설 등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과학 이론들을 통해 각각의 주제들에 접근하려 한다. 생명은 연쇄적이어서 삶과 죽음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 인류는 암컷의
선택 즉, 성 선택이라는 이점과 직립보행을 통해 함께 진화했다는 점, 우리는 그 시대의 환경에서 계속 선택받아왔다는 점, 지구의 생물은
산소호흡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비로소 이만큼 진화할 수 있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죽음의 기원이 산소호흡이라는 설까지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나까지
빠져들게 할 만큼 매우 다양하고도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의 뇌는 무게가 체중의 약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하루에 소비하는 칼로리는 전체의 20퍼센트에
달합니다. 즉 에너지(비용)가 아주 많이 들죠. 연비가 나쁜 기관입니다. 그래서 식생활에 여유가 있는 동물이 아니면 신경계는 진화하지 않습니다.
즉 조건이 웬만큼 좋지 않으면 뇌는 진화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어떻게 뇌를 진화시킬 만큼의 여유가 생겼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역시 공동 번식 사회였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129p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사정 속에서 발생하죠. 박테리아만 봐도 한가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외부로부터 다양한 물질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바쁘게 위험을 감지해서 대처하려면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요. 왜 그렇게 바쁘냐
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포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방대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몸을 유지시키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원동력인 겁니다.” / 171p
소립자에서부터 무한한 우주,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진화까지 이 거대한 주제를 오가며 드는 생각은 우리 인류가 얼마나 각별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믿음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고, 불명확한 것인지를
반성하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생물들이 함께 살면서 다른 생태적 지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적 진화에
성공해왔던 것과 달리 어떤 생태적 지위를 지향할 것인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적응하는 장기적 과정이 없는 이 거침없는 환경의 변화가 미래의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에 모두가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렇죠. 뭔가를 보거나 느끼는 건 대상에 대한 일종의 섭동입니다. 즉 특정한 무엇의 동적 프로세스죠.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인식한다는 것은 왜곡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망막으로 빛을 받아들이거나 고막으로 공기의 진동을 포착해 그걸 뇌로
해석합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삼차원의 세계가 망막에 비친 시점에서 이차원으로 왜곡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눈앞에 있는 이 커피 잔의 ‘실물’을 볼 수 없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죠. 보도한다는 행위도 사실을 왜곡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식의 선호에 따라 왜곡하는 셈이죠.” / 335p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
들어와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죠. 진화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혹은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관해, 전통사회의 상호부조 안에서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진화적 환경과 현대 환경의 엇갈림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미래에 무엇이 인간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이 인간행동진화론에서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 125p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을 읽다보면 사실 과학은 ‘어떻게’는 설명할 수 있어도 ‘왜’라는 질문에는 본질적으로 답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처음부터 저자의 질문들은 여전히 알 수 없고, 또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다. 치열하게 고민할 것, 모순과 번민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의 중요성을 넌지시 던진 저자의 이러한 시도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