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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 독립선언
강세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월
평점 :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꿈을 가지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의
에세이!
나는 내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부모님의 집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서 반드시 혼자 살아보고 싶었던 꿈은
'안정'과 '모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끝내 부모님 곁에서 안정적으로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앞두기까지도 나는 부모님이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잘 개어져있는 뽀송뽀송한 옷을 입고, 계절마다 바꿔주시는 뽀얀 이불을
덮으며 편안하게 생활했고 그렇게 서른이 되어 결혼을 한 후에야 독립 아닌 독립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 품안에 있었던 덕분에 밥
굶지 않았고, 투병 중이었던 엄마를 간호할 수도 있었고, 운동선수 생활을 하느라 대부분을 밖에서 생활했던 남동생을 대신해 부모님의 적적한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잠시라도 혼자 살아볼 걸 하는 후회가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랬다면 나는 좀 더 내 마음에,
내 이야기에 집중해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부모님 신경 쓰지 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늘어져도 보고,
일탈도 해보면서 내 세상이 더 넓어졌을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한 가지 길만 있을 줄 알았던 인생에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
책 제목이 참 재미있다. '이유 있는 독립 권장 에세이'라는 부제까지도. 자유와 책임에 대해 알아가는 독립 3년 차, 잘하고 싶지만
아직 덤벙대는 직장인 5년 차. 배달의 민족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는 저자 강세영은 자신의 에세이 <이십팔 독립선언>을 통해 처음으로
독립생활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이십팔춘기로 방황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로한다. 외로워도 마음껏 외로워할 수
없고, 흔들려도 무작정 흔들릴 수 없는 28살이란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그녀의 감정들은 한때의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동생의
이야기 같기도 해서 들어주고 싶은, 그래서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고 싶게 만든다.
저자는 하루에 3시간씩, 대학생 때부터 7년 간, 지옥철에서 1,000시간을 보내며 더 이상 이런 불행을 겪을 수 없어 독립을
결심한다. 하지만 독립이란 건 마음의 준비보다는 금전의 압박이라는 현실적인 고민부터 하게 되는 법! 그녀는 어마어마한 집 값 앞에서 '지하철
좀비'가 될 것인가, '은행의 노예'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다 결국 좀비 보다는 더 사람다운 노예가 되기로 한다. 포기를 하는 게 많아질수록 집을
구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은 한 번이라도 집을 구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누구나 깨끗하고 쾌척한 공간에서 지내고 싶고,
최신식 시절을 갖춘 데다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살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축이 아니어도 되고, 햇빛도 포기하게 되고,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된다는 조건까지 빼고 나면 누가 봐도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집이지만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렇게 그녀는 딱 2년, 주인이 있지만
주인이 살지 않는 2년짜리 집에서 살기로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집은 주거보다 투자의 역할이 큰 것 같다. 있는 사람들은 살지도 않을 집을 마구
산다. 없는 사람들은 집을 사지 못해 빌린다. 딱 2년. 주인이 있지만 주인이 살지 않는 집은 그렇게 2년짜리 일회용 플라스틱이 된다. 내가
사는 이 집도 많은 사람에게 2년짜리 플라스틱 하우스였겠지. 주인이 돌보지 않는 집은 그렇게 늙는다. / 27p


나의 첫 독립, 나의 첫 공간, 나의 첫 집이라는 뿌듯함이 가져오는 희열은 잠시 뿐. 이제 그녀에게 혼자 살기 시작하니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관심조차 없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 독거 노인이 아니라 독거 젋은이인 나는 때로 고독사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예전엔 몰랐던
기초 생활필수품들이 절실해지고, 혼자 산다는 이유로 어둠과 공포감에 맞서야 하는 일상들이 펼쳐진다. 고작 8평짜리 집 하나 관리하는 것도 힘들어
곰팡이를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기도 하면서 자유와 책임 그리고 엄마에 대해 배워가기도 한다.
뭐든 이렇게 말려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속 묵은 때도 싹! 지워버리고, 향까지 첨가해서 쨍쨍한
햇볕 아래에 널어버릴 수 있다면. 그게 고작 하루하고도 반나절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라면 참 좋겠다. / 62p
그렇게 그녀는 차츰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서야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문득 나의
진짜 모습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TV도 없는 집이다보니 평소 읽지 않았던 책이 좋아지고, 끈적거리는 문체가, 찰떡처럼
달라붙는 문장에 이끌리는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물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온 집안을 음악 소리로 채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또, 혼자 떠난 발리 여행을 통해 ‘한 가지 길만 있을 줄 알았던 인생에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마냥 행복해야 한다고, 그저 기뻐야 한다고, 그냥 웃자며, 모든 일을 못 본 척 허허거리며 넘기려고
했던 나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속이고, 상황에 눈감고, 성장하지 않았던 걸까. 영화 속 감정들은 각각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버럭이는
빨간색, 소심이는 보라색, 슬픔이는 파란색, 기쁨이는 노란색이다. 그런데 기쁨이의 머리카락은 슬픔이의 색인 파란색이다. 기쁨과 슬픔은 상반된
감정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고, 분리될 수 없다는 상징이라 볼 수 있다. / 132p
모두 혼자 살고 나서야 가능해진 이야기다.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객관화 할 수 있게 됐고 취향 또한
견고해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성장한다. 혼자 살아본 경험 없이 바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려는 친구들에게 주제넘게 독립을
권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두가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아지트를 가졌으면 한다. 그게 집이라면 최고의 환경이겠고. /
252p



‘내가 생각해도 난 그냥 적당히 잘 자랐다.’고 말하며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한번 정해진 울타리는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날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문득 나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독립보다는 부모님 품에서 살며 안정을 택하고, 이렇다 할 반항 한 번 없이 살아온 나 역시
인생의 여러 선택지를 적극적으로 고르지 못했다. 그저 무난하고 평탄한 삶이 좋은 거라고 믿었다. 저자도 독립을 하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을 모른 채 아마 더 작은 원에서, 더 좁은 세상에서 꿈틀거림도 멈춘 채 살아갔을 거라고 말한다. 언제나 적당한 선택지를 고르며,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하지만 이제는 내가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이 더 넓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30대를 넘어 끝자락을 맞이했을 때
지금보다 더 뿌듯한 마음이 가득했으면 하기를 희망한다. 이래서 ‘독립, 주제넘게 권장합니다’는 그녀의 음성이 진솔하게 다가오는가 보다.
가만 읽어보면 참 소소하고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창한 수식어 빼고 가식도 덜어낸 진짜 우리의 청춘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감 백배, 이십팔춘기를 겪고 있는 이 땅들의 청춘들 모두 이 책을 읽고 힘내시길! 더 이상 부들부들, 이십… 팔…
하고 내 나이에 떨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