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인문학 - 3천 년 역사에서 찾은 사마천의 인간학 수업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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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적 가치들을 후세에 전하려 했던 사마천!

성공과 실패의 법칙, 부와 권력의 비밀, 인간과 사회에 관한 '모든 것'을 밝히다!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 시대의 관료이자 오늘날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그가 쓴 <사기>는 무려 130권 52만 6천 5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인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온 최고의 인간학 교과서로 손꼽히며 무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위대한 책'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좌절을 어떻게 돌파해내서 마침내 위대한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놀라울 만큼 풍부한 사례와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덕분에 중국 근대문학의 거장이자 위대한 사상가 루쉰은 <사기>를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대 중국을 만든 혁명가이자 정치가 마오쩌둥은 전쟁터에서도 항상 <사기>를 무기처럼 들고 다녔다고 하니, 이는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최고의 인간학 교과서이자 생존에 꼭 필요한 실용서였음이 분명하다.

 

 

 

   이에 <사기인문학>의 저자 한정주는 온갖 군상이 경험한 기쁨과 슬픔, 고통과 쾌락, 관계와 사건 등 그야말로 인간사 모든 양상과 법칙이 아로새겨져 있는 <사기>를 통해 오늘날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빛나는 통찰과 교훈들을 전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뜻의 사필소세의 정신을 몸소 보여준 사마천의 삶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억압 받고 잊혀진 인간적 가치들을 되살리고 이를 거름삼아 온갖 난제 앞에서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살펴본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절대 법칙

 

 

   <사기 인문학>은 사마천이 쓴 <사기>를 여섯 가지 시선을 통해 재구성하고 재해석한 인문학책이자 자기계발서다. 누군가에게는 <사기>라는 위대한 역사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 반성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1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역사의 절대 법칙' 편에서는 유능했던 주왕과 환공이 왜 실패하게 됐는지, 어떻게 영웅 항우가 몰락하고 별다른 재주가 없어보였던 유방이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성공을 이루고 실패를 피하는 방법들을 살펴본다. 특히 은나라의 제왕인 폭군 주왕과 춘추시대 최초로 패자의 영광을 누린 제 나라의 환공을 통해 '성공에 도취된 지나친 자만심'이 불러일으킨 실패의 과정을,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 섭정을 하면서 주나라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린 주공을 통해 '한때의 성공과 자만을 경계하고, 늘 겸손하고 삼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쌓은 성공의 법칙들을 보여준다.

 

 

 

매사 겸손하고 경계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겨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행동을 하나하나 조심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일시적으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반드시 이를 반성하고 고칩니다. 그럴 때 실수나 잘못은 허물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지속적인 성공의 밑거름이 됩니다. 성공은 그것을 이루는 것도 어렵지만, 오랫동안 지켜내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늘 다른 이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면서 실수나 잘못을 고치고 또 고치는 것만이 지속적인 성공을 이끌고 실패를 피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 34p

 

 

 

 

 

 

   2부 '창업의 전략과 수성의 전략' 편에서는 진시황이 통일 제국을 건설한 과정과 이후 자신의 제국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과정을 통해 창업과 수성의 전략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이때 외부 인재의 영입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루 기용하며 냉철한 현실 인식과 빠른 결단력, 좋은 조언과 나쁜 조언을 구분하는 분별력, 자기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췄던 진시황을 높이 평가하며 그것이 통일 제국을 완성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한편 천하를 얻을 때의 도리와 지킬 때의 도리는 명백하게 달라야 했음에도 불로장생을 쫓아 폐쇄정치와 공포정치를 휘두른 그의 욕망이 15년도 채 되지 않아 진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3부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치는 필승의 비법' 편에서는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적을 무력으로 억누르는 군사적 점령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완전히 승복시키는 정치적 지배임을 언급하며 적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하는 법, 적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그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노하우를 살펴본다. 이어 4부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편에서는 패배한 장군에게는 책임을 물어 가혹하게 처벌하면서도 공을 세운 장군에게는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았던 한 무제를 통해 부하의 실패에 관대해지고, 상황변화에 따라 자신이 다스리는 구성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한 판단을 통해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일러준다.

 

 

 

우리는 현실에서 무수한 문제들을 마주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객관적인 현실 판단이지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지 알아야, 송나라 양공처럼 승리를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전쟁터에서 어쭙잖은 인의로 커다란 패배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 145p

 

 

힘이 없는데 덕만 앞세우면 사람들은 겉으로는 존경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약하고 무능하다며 업신여기게 마련입니다. 반면 힘이 있으면서 덕이 없으면 겉으로는 두려워하면서도 속으로는 난폭하고 잔혹하다며 증오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목공처럼 힘이 있으면서도 덕까지 갖췄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겉으로는 두려워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존경하게 됩니다. 사마천은 바로 이러한 리더십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는 진정한 리더의 덕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리더가 힘을 지니고 있다면 덕을 갖추려고 해야 하고, 덕을 갖추었다면 힘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182p

 

 

 

 

 

 

   5부 '휘둘리지 않고 부를 다스리는 법'편에서는 현실의 흐름을 꿰뚫고 자유자재로 직업을 바꾸면서도 매번 자신의 목표를 이룬 범려와 천문에 능통해 때와 변화를 예측해 유동적으로 대처해 크게 성공한 백규를 통해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법을 보여준다. 또 서민 부자들과 한 우물만 파서 부자가 된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도 새겨들으면 좋을 만한 부의 비법들을 살펴본다. 마지막 6부 '권력을 가질 때 주의해야 할 것들'편에서는 한비자와 손빈을 통해 상대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도록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의 중요성을, 천성이나 재주가 아니라 지위와 환경이 사람을 좌우하는 매우 현실적인 감각들을 통해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해 되새겨야 할 다양한 인간적 가치들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기 인문학>은 성공하고 몰락하는 수많은 인물의 산 경험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 의미를 살펴본 사마천의 <사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면서 현대인들에게도 교훈이 될 만한 덕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덕분에 역사책을 읽는 듯한 몰입감과 자기계발서를 읽는 듯한 깨달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이 저자의 <문장의 온도>와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를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우리가 흔히 접하기 어려운 고전을 알기 쉽고 읽게 쉽게 쓴 그의 다른 저서들 역시 계속해서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기>를 읽어보고 싶다면, 리더십 관련 책을 찾고 있다면, 중국 역사에 관한 인문학 도서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꼭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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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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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이라는 특별한 재능은 신의 축복일까, 재앙일까!

초능력을 지닌 소년들의 고뇌와 성장, 미스터리한 초능력 서스펜스의 절묘한 조합을 이룬 추리소설!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지는 정신적인 힘을 가리켜 우리는 초능력이라고 부른다. 유년시절, 명절만 되면 TV에서 염력 및 투시, 텔레파시나 유체이탈과 같은 놀라운 힘을 지닌 기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선보이곤 했다. TV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을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 때문에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그들을 저울질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인들이 보여준 힘은 대중들의 눈을 속인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언제부턴가 방송에서도 퇴출되고 말았다.

 

 

 

   정말로 초능력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잘 짜여진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추리소설이다. 지금이야 초능력을 지닌 영웅들이 등장하는 마블 시리즈 류의 영화들이 탄탄한 서사와 캐릭터를 바탕으로 사랑받으면서 이들의 능력에 충격과 괴리감을 느끼는 일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1992년이었다면 초능력을 지닌 두 소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미스터리가 보다 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20년이 지난 작품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여전히 탄탄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갖춘 작품이라는 점이다. 또 초능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두 소년의 극명한 대비와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소설이 서술된다는 점에서 초능력을 단순히 미스터리 장르의 한 속성으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뇌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인가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다 특별하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다

 

 

   강력한 태풍이 몰아닥치고 있는 밤, 한 잡지사의 기자인 고사카 쇼고는 사쿠라 공업단지 부근 갓길에서 한 소년을 차에 태우게 된다. 거대한 폭풍우로 인해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와중에 자전거를 끌고 도쿄에서부터 이곳까지 여행을 왔다는 이 의문의 소년에 대해 의아함을 품는 것도 잠시, 뭔가가 덜컹거리며 차에 충격이 가해진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차에서 내린 고사카는 그곳에서 열린 맨홀 뚜껑과 어린 아이의 것으로 추측되는 노란 우산을 발견하게 된다. 펼쳐진 우산과 뚜껑이 열려 있는 맨홀이라니.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그들을 엄습하는 가운데, 노란 우산의 주인인 아이를 찾는 부모를 만나 이들은 기이한 실종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취재에 나선 고사카는 누가 일부러 맨홀 뚜껑을 열은 듯한 흔적과 도쿄에서 여행을 왔다는 신지라는 소년이 보이는 석연치 않은 태도에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신지가 상대의 마음이나 기억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신지는 고사카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태연하게 드러내며 이 실종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려한다. 신지의 능력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의심스러운 가운데, 고사카는 이 실종사건의 진범으로 의심되는 이들과 접촉하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또 한 명의 초능력자인 나오야를 만나게 되기까지 한다.

 

 

 

"아니,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야.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어. 잠재적으로는 말이야. 다만 대부분 그걸 밖으로 끌어낼 능력이 없는 거지. 밖으로 끌어내는 능력도 함께 갖고 태어나는 아이는 적다고 바로잡아야겠네. 그 양쪽의 능력을 함께 갖추고 있는 사람이 초능력자, 사이킥이지." / 77p

 

 

 

 

 

 

   한편, 고사카는 여덟 통에 이르는 의문의 편지와 함께 자신의 전 연인이었던 사에코까지 협박에 휘말리는 또 하나의 사건을 겪게 된다. 그 사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 정의롭게 쓰고 싶어 하는 신지와 불안과 두려움 사이에서 자신의 능력을 철저히 숨기며 살아가려는 나오야의 고뇌가 사건에 영향을 미치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맹렬한 질주를 시작한다. 이때 서스펜스는 서스펜스대로 유지하면서 초능력이라는 이 놀라운 힘이 과연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재앙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통찰력 있는 저자의 관점은 이 소설의 빛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이따금 그렇게 치명적으로 무책임 아니, 낙관적이 된다. 누구나 그런 허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 33p

 

 

어쩌면 이 세상은 위험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과 인식한 위험을 실행에 옮기고 싶어 하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모양인지도 모른다. / 130p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 / 469p

 

 

 

 

 

 

   '이나무라 신지라는 그 소년이 사이킥이라면 그 아이도 또한 용을 깨워 버린 인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애는 그 용을 조종하려 하고 있죠.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 머리를 향하게 하려고. 저는 그걸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 애를 구할 수 있는 건 그 자신뿐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초능력을 가진 한 여인의 도움을 받아 몇 건의 사건을 해결한 경험이 있다던 한 형사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일정 이상의 능력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사용하게 하느냐에 따라 능력은 재능이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 있는 거라고, 또 그것은 그 한 사람이 오로지 짊어져야 할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이다.

 

 

 

   <용은 잠들다>를 접하면서 꽤 높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화차>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에 불과하다는 것에 잠시 놀랐다. 왜 다들 '미미 여사'를 칭송하는지 초창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으며 여실히 깨달았달까. 이처럼 그녀의 작품이 재출간되고, 다시 회자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인 듯하다. 그만큼 오래 지나도 누구나 읽기 좋은 작품이라는 뜻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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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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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탄생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한 남자의 자전적 소설!

예상치 못한 죽음이 닥쳐왔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의 경이로운 순간들에 대하여!

 

 

   책을 읽기 전, 책의 실제 주인공인 남자와 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금발의 예쁜 소녀가 아버지인 주인공의 등에 살포시 기대고 있는 따스하고도 사랑스러운 사진이다. 이 책이 무엇을 담고 있건 간에 그들이 수십 개월, 수 년간 나누었을 시간과 교감의 순간들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이 사진을 보고 또 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자 또 한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의 경이로움과 내 삶보다 아이의 모든 순간이 더 우선이어야 했던 현실적인 고충, 눈 깜빡할 사이에 걷고 뛰고 말하고 이제는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나기까지. 특히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아이를 홀로 키워야했을 이 남자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져서 이 책을 과연 내가 담담하게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아이를 얻는 순간, 또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만 했던 그 순간들에 대한 이 진솔한 묘사들이 슬픔보다는 희망과 축복의 또 다른 가치를 선물해줄 것만 같아서 나는 꽤 복잡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나갔다.

 

 

 

소중한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우리는 모른다

 

 

   톰과 카린은 대학 시절에 만나 10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33주, 임신 8개월에 이르러 갑자기 카린이 중환자실에 실려 오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폐렴인 줄 알았는데 톰은 그녀가 급성백혈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야 만다. 분명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영화를 보고 발톱에 매니큐어도 칠하며 카린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닥친 슬픔에 톰은 주위의 그 누가 보아도 걱정될 정도로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카린은 숨을 쉬기 힘겨워 하는 와중에도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리비아'라고 지어 달라 말하고 가까스로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아이를 낳지만 그녀의 생명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그라져 간다.

 

 

 

   톰은 마치 삶과 죽음이라는 간격을 넘나들듯 카린이 있는 특수병실과 리비아가 있는 인큐베이터 병동을 오가며 착잡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다. 때로는 이해할 수 있는 병원의 시스템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나마 신생아실 간호사들과 조산사들이 가까이에서 리비아를 보살펴줄 수 있음에 안도도 하고, 딸의 죽음을 목전에 앞둔 카린의 부모들을 마음껏 위로해주지 못하는 그 거리감 사이에서 떠돌며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내 카린은 세상을 떠나고, 세상에 남겨진 이 천사 같은 아이를 오롯이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무게감을 덤덤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카린이 죽은 후, 톰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카린과의 만남과 그녀와 나누었던 시간들, 또 여느 커플들이 겪게 되는 공통의 고민들을 그들이 어떻게 통과해왔는지를 회상한다. 무엇보다 느닷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어린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그가 겪게 되는 혼란과 상실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미처 혼인신고라는 법적절차를 거치지 않은 그가 리비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불편한 사회시스템의 부당성에 목소리를 드러내는 장면 등은 ‘절망은 결코 우리를 그저 기다려 주지만은 않는다’는 매우 현실적인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러니까 만약 카린이 사회복지국의 어떤 늙은 관리에게 내가 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미리 말해두었다면, 이런 엉터리 같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겠군요? 맞아요. 나지마가 대답한다. 국립의학감식위원회의 DNA 분석 결과보다는 여자의 말 한마디가 더 믿을 만하다는 겁니까? 아버지인 내 목소리는 아무것도 아니고요? / 210p

 

 

 

 

 

 

   소설은 아버지마저 암을 얻어 작별을 앞두게 되면서, 그간 완연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는 과정을 그리며 '살아 있는 모든 순간에 대한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한다. 그것은 언젠가 가족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순간에 내 이름 석 자에는 반응했던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또 언젠가 내 곁에서 보내드려야만 할 누군가와의 이별을 생각하게 해서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버지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항상 곁에 있어요. 아버님이 그렇게까지 쇠약해지셨나요? 마치 어머니가 평생 아버지한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말하기와 글쓰기밖에 없고, 나머지 일은 전부 어머니가 도맡았던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두 분 세대가 세대니만큼 그런 것 아닐까요? 제가 여기에 늦지 않게 와서 다행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두 분을 지켜보는 게 좋아요. 두 분은 많이 웃습니다. 그러다가 이마를 맞대기도 하고요. 저는 두 분의 그 모습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 334p

 

 

 

 

 

 

   비록 감동적인 실화이기는 하나 소재의 특성상 자칫 신파에 그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나 죽음과 상실, 고통과 외로움에 대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절제된 언어들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또한 시인이라는 그의 이력답게 서사의 강렬함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주변 상황과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낸 그의 남다른 문체 역시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여러 문장들 중에서도 '내 이름은 이제 아빠다'라는 고백과 함께 시작되는 문장은 상실감보다 이제 더 진한 온기를 전해줄 아이에 대한 애틋한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서 더욱 감동적이다.

 

 

 

리비아가 햇빛과 함께 깨어나 일어나 앉는다. 내 이름은 이제 아빠다. 아이가 또 나를 부르고 있으니 내게는 생각에 잠길 시간도 뭔가를 느낄 시간도 없다. 너처럼 리비아도 삶의 작은 것들을 눈에 담는다. 이를테면 쏟아진 기름의 다양한 색깔, 빗자루 손잡이 끝에 붙어 있는 벌레, 내 팔꿈치의 긁힌 상처,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크리스털 공들 사이에 걸쳐 있는 거미줄 같은 것들. 심지어 녹슨 병뚜껑조차 리비아에게는 마법이 된다. 아이는 네 사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 사진들을 침대의 내 옆자리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건네기 때문이다. 아이가 사진을 만질 때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터득했다. 리비아, 아빠가 슬픈 건 네가 뭘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야. / 372p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한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 모든 순간이 내게 다정할 수도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 이 소설이 모든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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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품격 -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7가지 법칙
오노코로 신페이 지음, 유나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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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품격 있는 사람들의 한끗 차이를 완성하는 관계의 법칙!

좋은 사람을 모으고 현명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처세술!

 

 

  눈에 띄는 여러 신조어들 중에 '오지라퍼'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남의 일에 지나치게 상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너 생각해서 그러지.", "내가 다 해봐서 하는 말인데…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들어." 와 같은 오지랖 넘치는 말들. 당사자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고 하는 말들이 때로는 상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얘기하는 이들이 있고, 아이가 하나면 둘은 낳아야한다, 또 아들이 둘이면 딸도 있어야지 하며 상대방의입장과 처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 실제로 선의에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선의라 해서 그 결과가 항상 옳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쪽에서 불쾌감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거나 내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려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기에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켜버릴 때가 더 많다. '그래, 잠시만 내가 참으면 그만이지.' 하고 상대방이 내 마음속 영역에 마음껏 침입하는 것을 내버려뒀다가 결국 관계가 망가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까지 발생하고 나면 이미 때는 늦었다.

 

 

 

 

바운더리를 존중하면 당신의 품격이 달라진다

 

 

   일본 최고의 심리 카운슬러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오노코로 신페이는 자신의 저서 <관계의 품격>에서 인간관계에서 놓쳐서는 안 될 핵심 열쇠로 자기만의 '바운더리'를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바운더리란,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선을 가리킨다. 한쪽이 싫은데도 억지로 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바운더리 오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려면 부부건 부모 자식이건 친구건 간에 '이것은 내가 할 일, 저것은 네가 할 일'이라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즉, 각 개인과 개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부모가 끼워주는 관계의 첫 단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정한 거리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이들은 건강하고 현명한 관계를 어렵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부모와 자식의 상하 관계는 가정교육이 중요한 유년기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 유년 시절의 상하 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아이의 '뇌 속 판단 공간'을 부모가 점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아이는 점점 더 의존적으로 변하고 이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운전할 때는 자동차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 즉 앞차와의 적정 간격이 있습니다. 이 여유 구간이 없으면 브레이크를 살짝만 밟아도 급정지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까 봐 불안에 떨며 운전해야 하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정도 간격이 있어서 서로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상태가 이상적입니다. 그런 간격을 고려하지 않고 급격하게 거리를 좁히면 서로 의견이 다를 때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쿵 하고 부딪힐 가능성이 커지죠." / 30p

 

 

 

   저자는 건강하고 현명한 관계를 위해서는 일곱 가지 관계 법칙만 알면 좋은 사람들이 저절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첫 번째 법칙은 '자기 연출력'이다. 여기서는 첫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형식적인 명함은 잠시 넣어두고 능력보다는 성품을 연출하는데 힘쓰라고 조언한다. 두 번째 법칙은 '은근한 신비주의를 유지할 것'이다. 여기서는 대화할 때 전부 다 말하지 않는 것은 바운더리를 자유롭게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신에 관해서는 최소한의 것만 말할 것, 즉 현재 상대방이 요구하는 부분에 관해서만 적절하게 대답하고 요구하지 않은 부분은 일일이 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법칙은 '의외의 매력으로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평소와 달리 말하는 태도와 언행에 큰 차이를 둠으로써 의외의 면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알고 보면 굉장히 특별하고 똑똑한 사람일 것 같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네 번째 법칙은 '긴장 효과를 이용하라'다. 다섯 번째는 '선택적 단호함을 보여줄 것'이다. 늘 같은 태도와 반응으로는 상대와의 관계를 바꿀 수 없다면 예측 불가능한 타이밍에 불편함을 내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하든 전부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키려면 때로는 의도적으로 화낼 필요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여섯 번째는 '스마트한 결정력으로 주도권을 쥘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하거나, 오롯이 타인의 결정에 맡기는 걸 경계하라는 뜻이다. 일상에서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인간관계를 분명히 하겠다는 결의의 표현과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법칙은 '절묘한 타이밍을 활용할 것'이다. 요즘 많이 듣는 용어로 TMI라는 것이 있는데,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해서 쓰잘데기 없는 말까지 너무 과한 정보를 말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저자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정색하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화제를 전환하거나, 늘어지는 대화를 중단시키며 대화를 유연하게 주도하는 능력은 바운더리를 분명히 하는 데 꼭 필요한 힘이라고 강조한다.

 

 

 

'G.F.E.R 대화법'이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1. 먼저 대화의 목표를 그려본다. (말하는 것은 나중에)

   2. 되도록 사실을 묘사하면서 말한다.

   3. 그다음 그 사실에 동반하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

   4. 필요한 경우 협력을 요청하는 말을 덧붙인다.

  · Goal 목표

  · Fact 사실

  · Emotion 감정

  · Request 요청 / 72p

 

 

 

   이 책에서는 말투와 몸짓으로 관계의 품격을 높이는 기술을 소개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를 위해 'G.F.E.R 대화법'과 표정이나 몸짓으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메세지존’이 눈에 띈다. 우리 몸에는 의미가 발생하는 영역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상대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몸은 각 부분이 전달하는 의미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뉘는데, 머리 부분인 '아이 존', 고개·팔·손 부분인 '암 존', 가슴 부분인 '셀프 존', 배 부분인 '필링 존', 다리 부분인 '레그 존'이 그것이다. 중요한 점은 한 사람의 고유한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책을 통해 공유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차근차근 제대로 활용한다면 관계 조절은 물론 나의 고유한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잠재의식을 공략해 바운더리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윈저 효과'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윈저 효과는 제3자를 통한 칭찬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갈등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응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공통 지인의 발언을 대화에 적절하게 끼워 넣어 큰 다툼이나 관계의 훼손 없이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 106p

 

 

제3장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는 자일수록 타인의 의사를 지배하려고 한다'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했다. 그 말처럼 정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오히려 그걸 드러내지 않는다. 은근히 남을 깔보는 듯한 발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잘 아는지 어필해야만 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 인간은 그런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중략) 상대가 거들먹거린다고 느낀다면 먼저 나의 마음속부터 들여다보자. 나 역시 상대를 인정하기 싫은 것은 아닌지. 아마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면서'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 126p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기준을 바로 세웠을 때, 건강한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유념하는 일인 것 같다.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가라고 반드시 자신에게 물어보고, 다른 사람의 의도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 긍정감을 가지고, 바운더리만 잘 지켜도 즐겁고 능동적인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 남아 있는지 되돌아보라!"는 그의 질문처럼 나의 인간관계지도를 그려보고 앞으로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나갈 것인가 주도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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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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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우리네 일상의 낯을 진솔하게 담은 삶의 기록들!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 울고 웃으며 털털 털어내게 되는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들!

 

 

   올 여름, <놀러 가자고요>를 통해 평범하고도 사소한 우리네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해내고 해학과 풍자라는 근래에 보기 드문 작풍을 선보이며 2018년 동인문학상 후보작에 오르기까지 한 김종광 작가가 이번에는 에세이집으로 돌아왔다. '생계형 소설가'라는 수식어답게 생활인으로서의 글쓰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번 작품은 나의 아버지 같기도 하고, 나의 삼촌 같기도 하며 내 이웃하는 어느 낯익은 누군가들을 떠올리게 해서 매우 친숙한 느낌이다. '절로 웃을 수밖에 없는 소설, 위로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는, 가진 자들의 체제와 권력에 대하여 날이 바짝 서 있으면서도 울음보다 강한 웃음기를 머금은 그런 웃기는 소설'을 써야겠다던 그의 다짐처럼 어지럽고 복잡한 이 세상, 허허- 하고 웃으며 털털 털어내게 되는 사람 냄새 가득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20년차 소설가의 생활탐구영역

 

 

   <웃어라, 내 얼굴>은 김종광 작가가 지난 20년 동안 쓴 1500여 편의 산문 중에서 126편을 골라서 엮은 첫 산문집이다. 총 4부작으로 구성된 책의 1부에서는 아버지의 시커먼 청춘을 상징하는 '석탄박물관'을 비롯하여 유년 시절, 연필이 가장 큰 보물이던 때를 회상하게 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지난 20년 동안 묵혀왔던 컴퓨터가 단돈 5천 원짜리 한 장으로 요약되어 고물로 정리된 씁쓸한 광경을 보여주는 '컴퓨터 방출', 아이들의 수집 욕구를 불태우게 하는 그 시절, 그 때의 대박 상품 따위들을 떠올리게 하는 '깜찍이' 등 일상의 사사로운 물건이 하나하나 의미가 되어 내게로 오는 순간들을 담아낸다.

 

 

 

 

 

 

   그 중에서도 꼬맹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다 보니 이에 공감하게 되는 글들이 유독 눈에 띈다. 유치원 때부터 숙제가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아이들과 부모의 역할을 고민케 하는 '숙제' 편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함께 숙제를 해나가는 것인가 보다' 하는 문장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되고, '왜 싸워?' 편에서는 학습지를 팔고야 말겠다는 판매원과 절대 살 수 없다는 엄마의 그 팽팽하고도 날선 기싸움이 불과 며칠 전의 내 얘기 같아서 웃음이 난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있어서, 아이가 있으니까 가게 되는 동심어린 장소들을 통해 '아직까지는 같이 놀러 다녀주는 제가 참말로 고맙다. 늦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가봐야 할 텐데. 아빠는 너랑 유치하게 놀고 싶다!'는 그의 고백에 마음 한 쪽이 찡해지기도 한다. 비록 껌딱지 같이 귀찮게 굴어도 엄마만 바라보며 애정표현을 서슴없이 해주는 지금이 좋을 때라던 누군가의 말처럼 아이와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울컥해진 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연필이 가장 큰 보물이던 때. 그때 연필심은 잘도 부러졌습니다. 부러진 연필심을 주워 들고 엉엉 울었던 적도 있지요. 침을 묻혀가며 글씨를 썼지요. 연필을 깎다가 손을 벤 적도 많았지요. 핏물이 노트 위에 번지던 기억이 납니다. 연필은 금방 닳아버렸습니다. 볼펜대에 끼워 몽당연필을 만들었지요. 웅변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상품은 물론 연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받은 선물도 연필이었지요. 그렇게 연필이 제 인생의 모든 것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중에서 19p

 

 

예술은 전형적인 승자 독식 체계다. 극소수가 모든 것을 다 누린다. 소수가 조금 누린다. 대다수가 근근이 먹고산다. 가장 하찮은 예술가도 부러움을 살 때가 있다.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잖아." 차라리 프로가 되지 못하고 고급 아마추어에 머물렀다면 다른 생계 방편을 가지고 취미로 우아하게 즐길 수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기에, '불안 속의 평균'을 친구 삼게 되었다. / '불안 속의 평균' 중에서 80p

 

 

 

   2부에서는 괴이하고 이상하고 인륜을 어지럽히고 귀신같은 이 극심한 괴력난신의 나날을 살고 있는 우리네 비루한 일상을 들여다본다. 위대한 생활인들은 왜 늘 가난한 것인지 그 분하고 서러운 감정을 토로하는 '일하라고 가난한 겨', 2년 10개월 동안 살았던 주공임대아파트에 도배값 100만원을 떼일 뻔한 사연을 담은 '도배값', 열두 살 먹은 소년의 입에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하는 푸념이 흘러나오게 하는 이 삭막한 세상의 풍경을 담은 '바쁜 소년', 권력과 소수정예의 힘을 마음껏 보여주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꾸짖는 '소수의 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난한 것이라고 허허 웃으며 이 지난한 삶을 위로해 보고, 보잘 것 없는 한낱 소수인 나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소수를 감히 꿈도 못 꿀 만큼 미약한 나지만, 내가 최소한 저 후안무치한 소수를 또다시 국회에 보내는 소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글에서 굽은 마음을 의연하게 펴본다.

 

 

저 변덕스러운 기억으로부터 중심을 잡고 살아가려면 편집의 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내 기억만큼 다른 이들의 기억도 진실이라는 존중, 하지만 내 기억이 주관적인 고집일 수 있듯이 다른 이의 기억도 주관적인 고집일 수 있으리라는 비판력, 그리고 그 존중과 비판을 자신의 기억에게도 가할 수 있는 냉철함 같은. / '기억의 책을 넘기며' 중에서 132p

 

 

 

 

 

 

독서하는 그때가 그 사람의 가을이다

 

 

   3부에서는 각종 기념일들로 넘쳐나는 '무슨 날'을 통해 때로는 특별하고,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서글퍼지는 순간들을 회상한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생활인으로서의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4부의 내용들이 보다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한때 나 역시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을 배우겠답시고 문학도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고, 인터넷소설 작가로 활동하며 나름 팬클럽이란 것도 가져보았고,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고 결국은 그럴 듯한 예술인이 아니라 회사 사보나 어린이 책 출판사에 몸담으며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했기에 공감이 가는 글들이 많았달까. 특히 '비릊다' 편에서처럼 나의 선생님이 순우리말이나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단어를 소설에 사용하는 것을 좋아해서, 내내 신박하고 재미있는 표현을 찾느라 혈안이었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책 한 권 한 권이 내 집착의 응결이었다. 그때의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책꽂이는 내 사진첩과 다름이 없다. 내 이십대의 파노라마와도 같은. / '계륵' 중에서 211p

 

 

나아가 남에게도 마구 사용하고 있다. 연장자들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말이겠지만, 후배나 학생들에게는 "좋은 시(소설) 비릊기를!",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 비릊기를!", "소원하는 바 꼭 비릊기를!" 하는 식으로 덕담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비릊다'를 전해준 너구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의 너구리 닮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뜻하는 바대로 넉넉히 비릊기를 바라본다. / '비릊다' 중에서 216p

 

 

 

 

 

 

   한날 나의 친구가 내게 왜 그렇게 열심히 책 읽느냐고, 또 읽고 나서 감상글을 써 올리면 뭐 돈이라도 생기느냐고 드러내놓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꼭 돈이 생겨야 뭘 하는 거냐고 친구에게 핀잔을 주긴 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이게 내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야. 이게 내가 가장 즐겁게 노는 방법이야, 라고. 김종광 작가는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 편을 통해서 일기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SNS 글이든 뭔가를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 쓸 수 있기에 행복한 사람도 있는 거다. 괴력난신공작소 같은 이 세상, 그렇게 웃으며 쓰면서 살아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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