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이상한 나라 - 꾸준한 행복과 자존감을 찾아가는 심리 여행
송형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속 가능한 자기 사랑과 행복, 자존감을 위한 나를 찾는 여행!

자기 성장을 위한 극복과 행복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기 이해의 심리학!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 MBC FM4U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송형석 정신과 의사가 출현해 심리 상담을 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청취자들의 고민을 듣고 이것이 어떤 심리에서 기인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해보는 프로그램이다. 나긋나긋한 어조와 달리 뻔하지 않으면서 간결하고 유쾌한 상담법으로 인해 즐겁게 애청하고 있던 터라 얼마 전 그가 하차인사를 밝혔을 때는 무척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면서 조만간 심리학책을 출간할 것이고 DJ정지영님이 추천사를 쓸 예정이라는 멘트를 흘려듣지 않고 있었는데, 정말 그의 책이 딱 출간된 것을 보고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라는 이상한 나라>는 MBC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송형석 박사의 심리학책이다. 예전에 <위험한 심리학>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라는 이상한 나라>는<위험한 관계학>과 더불어 3부작 중 하나로 자기 마음을 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형석 박사는 자신에 대해 탐색하다 보면, 내 능력이나 성향이 어떠한지 내가 집착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점점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직업, 결혼, 양육 방식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참고가 될 뿐더러, 수많은 일상의 갈등이나 고민에 대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더욱이 자신의 능력과 장, 단점을 앎으로써 그에 맞는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은 물론, 타인의 욕구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에 맞춰 사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매우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6장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 및 마음속에 존재하는 관념과 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격들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의 영토를 한 뼘 더 넓히기 위한 방법들을 살펴본다. 1장에서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일러주는데,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자기 책상이나 가방에 넣어 다니는 물건들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자기 책상이나 가방에 어떤 심리적 공간이 펼쳐져 있는 것인지 상상해보는 것으로, 이는 어떤 물건이 들어있고 놓여있는지 그것이 상징하는 바에 따라 내 속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외에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꽤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파악해보는 것도 좋고, 자신이 일하는 스타일이나 게임하는 스타일, 사람을 다루는 스타일을 통해 파악해보는 방법도 있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취향이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평소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주제들이 있지는 않은지, 항상 반복하는 농담이나 화젯거리가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측면을 놓지 않고 계속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어색한 상황에서도, "난 착해"라거나 "내 머리가 좀 좋지"같은 말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는 식이다. 진실이건 착각이건 간에, 그 말이 그 사람에게는 정체성의 토대가 될 정도로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에 반복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실제론 자신이 착하지 않거나 머리가 나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28p

 

 

 

 

 

 

   심리학 용어로 마음이 편안하도록 중재하는 모든 시도들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이는 곧 자기를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신적인 장치들을 가리키는 말로, 타인이 나를 비난하거나 내게 참견할 때 짜증을 내고 못 알아듣는 척하는 것이나 타인이 내 속마음을 알아볼까 봐 일부러 엉뚱한 표정을 짓는 것 등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의지, 도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정체성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도 심리적 방어의 중요한 기능이다.

 

 

 

   나 같은 경우는 타인 앞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감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슬픈 영화는 보지 않거나 불필요한 주제는 피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또 언제부턴가 매일 어떤 책이든 무엇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겨났다. 이런 경우 저자는 무언가를 향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반대 동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무언가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게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빈곤과 결핍을 드러내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읽는 것에 집착하는 나의 행동은 타인으로부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걸 의식하고 있거나 혹은 부족한 상식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책에 매달리려는 심리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싶다.

 

 

 

방어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파악할 수 없는 애매한 방어는 전적으로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스스로에게조차 거짓말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머릿속에 떠올린 말들만 자기 생각이라고 여기지,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의도나 기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자기기만이어서, 자신을 정당화시켜주긴 하지만, 그 때문에 심리적 증상과 사회에서의 소외에 시달릴 수 있다. 나중에 정리할 텐데, 인식 자체를 거부하는 것만큼 강력한 방어도 없다. / 63p

 

 

자가 대화 기법은 자기 내면에 있는 다양한 자아들을 성장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를 시작하는 순간 여태껏 무시받거나 억압받았던 존재들이 무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다루기 힘든 분노나 질투, 슬픈 인격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포근하고 안정된 인격들도 있는데, 이들을 훌륭하게 성장시킨다면 자신의 성격 자체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 80p

 

 

자기 내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여러 가지 인격들을 이해하다 보면, 그들을 관찰하는 새로운 자아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밉거나 부끄럽지만, 내부의 부정적 자아도 긍정적 자아들과 함께 맡은 역할이 있음을 차차 이해하게 된다. 결국 자기 자신은 성장하고 있는 존재이며 아직 완벽하진 않더라도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을 이해하고, 자애롭고 균형 잡힌 눈으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169p

 

 

 

 

 

 

   아무래도 곧 있으면 태어날 아이와 함께 두 아이의 엄마인 입장이다 보니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속에서 인지해야 할 부분들을 언급한 대목에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아이의 인격 성장에 있어서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부모일 것이다. 인생 초기에 안정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안정감을 획득한다. 가족은 아이-어머니라는 구도에 아버지(혹은 다른 형제)의 존재가 긴장감을 부여하는 형태인데, 이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로 살거나, 분리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감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가르쳐준(그게 좋든 나쁘든) 인간에 대한 관점, 사회가 가르쳐준 관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위치와 삶의 목표를 돌이켜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참자아가 발생하며, 부모와 사회를 넘어선 이후에는 또다시 자신이 만들어낸 관점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이에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나라는 이상한 나라의 영토가 점점 더 확장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목표를 제시함과 동시에 아이가 '그것이 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 느끼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이 말했듯이, 부모가 완벽한 이상적 존재가 됨과 동시에 아이도 스스로 자신이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나 형제들에게 패배감을 느끼면, 그들을 모방하거나 배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음악을 열심히 들려주는 엄마의 의도는 오히려 지나친 간섭의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 / 246p

 

 

 

 

 

 

   책에서는 아이가 최대한 다양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 자신부터 다양한 세계관과 관점들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 '내 아이가 외국어를 잘했으면 좋겠어', '내 아이가 커서 ~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 하고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바라게 되는 점이 있는데 비록 이러한 집착은 아이에게 거북할 수 있겠지만, 적정선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사심 없는 자애로운 마음은 아이에게도 좋은 유혹거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겠다. 아이는 부모 자신도 모르는 부모의 '진짜' 좋은 점을 알아서 베끼고 존경할 것이라는 말도 함께.

 

 

 

   <나라는 이상한 나라>를 읽으며 나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간 특정 무언가를 기피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고, 또 내가 가장 집착하는 것들이 나의 빈곤과 결핍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렇듯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결과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나 가족모두의 심리 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아 매우 유익한 독서 시간이 되었다. 더불어 우리 사회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왔다고 말하면 이 사람에게 뭔가 큰 문제가 있나 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나 자신을 바로 들여다보고 또 그것이 앞으로의 삶에 좋은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제리와 프랑스 사이의 경계에서 평생을 숙고해왔던 문제들을 다룬 작가의 역작!

피식민자의 삶과 고뇌를 오롯이 담아내기 위한 섬세하고도 유려한 문장들이 전하는 문학적 힘!

 

 

   19세기 후반, 서양의 열강 세력들이 월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약소국을 식민지 삼아 팽창주의를 펼쳤던 때가 있었다. 모로코와 리니지에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 일명 '알제'라고 불리는 알제리(Algeria)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권 국가와 인접했기에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프랑스의 침공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다. 1830년부터 1962년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최근까지 프랑스의 영향권 하에 있었고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도 민족주의자들간의 대립, 아랍권 과격파 및 정치적 유혈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자국민들의 의식과 피부 속에 갖가지 상흔을 남겼다. <프랑스어의 실종>은 바로 이러한 프랑스의 식민지하에서 고통 받았던 알제리 국민들의 애환과 상처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덕분에 알제리란 나라가 우리에겐 멀고도 꽤 낯선 나라임에 틀림없지만 제국주의라는 명명 하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우리의 역사와 유사점이 많아 그 슬픔과 상처가 가깝게 다가온다.

 

 

 

언어와 정체성, 경계자의 시선에서 그려낸 피식민자의 삶

 

 

   아시아 제바르.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덕분에 아랍의 여느 여자아이와 달리 프랑스 학교를 다니며 역사를 공부하고, 파리로 유학을 가 최초의 무슬림 여학생이 세브르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는 이례적인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알제리이슬람학생총연합의 동맹 파업에 가담하여 시험에 응하지 않은 탓에 퇴학 처분을 받은 뒤로 작품 집필 및 영화 제작에 몰두하며 프랑스 식민지하에서 고통 받던 알제리의 실상과 내부 문제들을 드러내는 작업에 몰두한다. <프랑스어의 실종>은 그녀의 열한 번째 장편 소설로, 역사 속 격변기를 통과하며 살아온 피식민자로서의 삶을 생생하게 구현해냄으로써 작가의 주제 의식과 희망이 종합적으로 담긴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은 크게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20년 동안 살면서 사회보장기금 행정부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베르칸이 불현듯 직장을 그만두고 고국 알제리로 돌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나간다. 그는 돌아온 곳에서 알게 된 어부 라시드와의 대화를 통해 그간 '상실된 수많은 단어와 부활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언어'를 다시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으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받았던 우리처럼, 베르칸 역시 구어인 아랍어와 문어인 프랑스어 사이의 경계에 위치해있어야 했기에 모국어처럼 사용한다고는 하나 프랑스어는 그에게 있어서 외부의 언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고뇌는 프랑스에서 머물던 시절 자신의 연인이었던 배우 마리즈에게 편지를 쓰며 '그 망명이 왜 그리 길었고 또 왜 그렇게 늦게 끝났을까' 하며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토로하는 데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귀향의 충격, 당신과 헤어진 데서 오는 슬픔, 여자를 가까이 못한 지 6개월이 되었다는 사실, 내가 고독을 즐기고, 내가 고독을 선택했지만 한밤중에 밖에서 가을날의 폭풍우가 내 감각을 무기력하게 만들 때,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어린아이는 바로 이 귀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 "이 땅에서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잃어버렸던 목소리가 다시 살아나고, 소리치고, 나로 하여금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고 있소. 정신을 사납게 하는 모호한 그 목소리를 당신에게 편지로 전하는 건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는 이 두려움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요. / 27p

 

 

 

   소설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베르칸이 유년 시절에 자신이 누비고 다녔던 카스바의 거리에서 프랑스의 압제가 가져다 준 공포, 즉 원체험을 떠올리는 데서 알제리의 불운한 역사를 복기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다니던 프랑스 학교에서 알제리 국기를 그림 속에 그렸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끌려가 따귀를 맞았던 경험들, 프랑스인 정육점 주인을 갈고리에 매달고 경찰서를 공격해 그들의 무기를 빼앗자고 선동하는 무리들, 대마초 흡연자들의 모임 장소로 쓰인 삼촌의 이발소와 그의 죽음까지. 하지만 더욱 그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비록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했으나 그렇다고 상황이 현저히 나아진 것 같지 않은 파손되고 황폐화된, 심지어 타락한 이 터전과의 재회였다.

 

 

 

"다른 거, 그들이 교문이 걸어 놓은 건 그들 거야!"

누구나 자기 깃발이 있다는 논리는 빈틈이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우리 것은 왜 감출까?'라는 의문만 빼놓고는. / 41p

 

 

프랑스어는 공급자 선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네! 단지 자본의 네트워크만 있을 뿐인데, 그것이 이러한 도시 계획의 병원이야. 그들은 무엇보다 현장에서 살게 될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아. 함께 대화해야 할 가문의 대표자도, 뒷받침해 주어야 할 전통 장인도 마찬가지야. 그래, 시민들은 전혀 믿지 않는 거야! 오직 동료 악당들끼리 나눠 가질 수입만 고려하고 있어. 자네도 잘 알고 있잖은가! / 73p

 

 

이것이 제3세계 국가에서 일어나는 기억력 마비의 운명 아니던가? 마치 그 장소에 새겨진 고통의 기록이 검인 도장 이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하다. 이름이라니! 그게 전부라니! 이것은 사회 전체가 숨 가쁘게 앞으로 달려가고, 기본적인 생존 임무를 향해 맹목적으로 서두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수도 중심지에서 사라진 덧없는 흔적들이여! / 80p

 

 

 

 

 

 

   2부는 귀향 후 한 달 뒤, 베르칸이 나지아라는 낯선 여인을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이때 베르칸은 과거 민족해방전선에 의해 할아버지인 라르비가 암살된 날의 이야기를 듣는데, 여기에서 그간 베르칸의 입장에서만 서술되어오던 전개가 여성인 나지아로 바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피식민자로서의 삶은 물론, 여전히 여성을 억압하는 알제리사회 내부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나지아의 목소리를 통해 어쩌면 작가 자신을 그녀에게 투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이 소설은 베르칸과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 나지아를 통해 그간 결핍처럼 느끼고 있었던 언어와 자신의 정체성의 경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난 마리즈에게서는 채워지지 않던 갈증이 나지아를 통해 비로소 해소되는데, 이는 프랑스어를 상징하는 마리즈가 아닌 아랍어와 알제리를 상징하는 나지아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프랑스어의 실종'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늙은 할머니(이 일은 할머니가 나이 든 후였어요)와 젊은 아버지, 서로 결속되어 있는 두 사람이 실성한 건 그날이었다고 생각돼요……. 그들은 영원히 미친 사람이 되었어요. 나와 너무도 가까운 사람들, 영원히 불타 버린 사람들, 치유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뒤집어 쓴 피 때문이에요! / 118p

 

 

두 살. 그녀는 이제 거의 마흔 살이 되어 간다. 원숙한 여인인 그녀가 정박하고 있는 곳은 아디인가? 최초의 드라마가 있었던 그 현장인가, 아니면 망명지마다 그녀가 모시고 다닌 할머니의 끊임없는 고통 속인가? / 119p

 

 

 

 

 

 

   이어 3부에서는 갑작스러운 베르칸의 실종으로 인해 동생인 드리스, 마리즈, 나지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며 알제리의 현실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성, 언어, 역사의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관조한다. 3부에서는 대체로 상징적인 문체들이 나의 발목을 잡고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지만, 나지아가 '베르칸, 나는 어떻게 될까요. 망명자인가요? 흔히들 망명이 쓸쓸한 거라고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나는 난민인가요? 하지만 무엇으로부터의 피난민일까요? 나는 무국적자예요, 비록 내가 두 개의 여권을 갖고 있고, 마치 결정적으로 '앞으로만 정진하자!'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3개 국어를 말하지만요. 그래도 나는 내가 도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라고 쓴 편지의 대목이나 "땅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의 인용된 말은 경계인의 삶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삶의 방향성을 가늠케 한다.

 

 

 

   이렇듯 <프랑스어의 실종>은 식민지하에서 분열과 대립,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방향성이라는 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유려하고도 섬세한 문장과 입체감 있는 구성으로 인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만하다. 더욱이 프랑스어권 문학에서 고전 반열에 오른 아랍 작가라는 프로필만으로도 우리는 그녀가 도전하고 보여주고자 했던 삶의 열망들을 기꺼이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의 언어는 내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나의 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아버지가 통과한 삶이 우리에게 어떠한 현실을 비추고 있는 것인지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 같이 함께하면
브리타 테큰트럽 지음, 김경연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장을 넘길 때 마다 펼쳐지는 다채로운 색감과 따듯한 이야기가 주는 감동의 그림책!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이야기, '함께'라서 좋아!

 

 

   얼마 전, 동네에서 할로윈 축제가 열렸습니다. 시에서 참여한 축제라 행사 참여 차 갖가지 할로윈 분장을 한 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했었지요. 4살인 제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가 이내 낯선 이들과 하이파이브도 하고, 외국인들의 영어 인사에"hi." "hello."를 신나게 외치기도 했습니다. 피부색이 다르지만 또래 외국인 아이들과 손인사도 주고받고 서슴없이 다가서기도 하는 아이의 모습은 저에게 색다른 기분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아이 역시 한동안 축제 때의 흥분과 즐거움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던 걸 보면 그 날의 경험은 꽤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게 바로 "함께"한다는 의미가 주는 감동이겠지요?

 

 

 

   그 날의 경험덕분인지 저는 공동체와 다문화, 인종, 공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조금씩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지요. 굳이 말로 설명해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꼈던 할로윈 축제의 그 날처럼, 이왕이면 그런 주제를 다룬 책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뒤져봐도 아이의 책장에는 그러한 내용의 책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때마침 낯익은 그림체의 신간 도서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브리타 테큰트럽의 <다 같이 함께하면>입니다.

 

 

 

 

 

 

우린 모두 다르지만 하나라서 더 특별해질 수 있는 거야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그림책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고 아름다우며 철학적이기까지 한지 한 번씩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계절>로 먼저 만난 적 있는 브리타 테큰트럽의 그림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모두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특히 자연과 동물, 사람, 계절의 질감을 풍성하게 다룰 줄 아는 특유의 색채감은 이 땅의 풍요로움을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합니다.

 

 

 

우린 하나하나 다 특별해.

저마다 꿈이 다를지도 몰라.

하지만 손에 손을 잡고, 모두 함께하면

우린 한 팀이야.

 

 

 

   푸른 언덕 위, 아이들이 띄워놓은 연이 하늘 위로 두둥실 날아갑니다. 아이들이 들판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며 새파란 하늘 위로 띄워놓았을 연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 아이들의 꿈도 훨훨 날아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솟구치며 날아오르는 새처럼 말입니다. 비록 폭풍우 구름이 몰려와 거센 비가 쏟아지고, 흔들흔들 출렁이는 바다 위는 때로 위태롭지만 하나둘씩 모여든 아이들이 함께 용기를 북돋우는 합창을 하고, 서로를 격려하면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높은 산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삶의 색깔을 보듬으면 삶을 더 밝아질 것'이라는 글은 매우 시적이면서 아름답습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세상의 모든 빛깔을 아름답게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보게 되네요.

 

 

 

너무 외로우면

큰소리로 외치는 거야.

"함께 모여 손을 잡고

행복한 한 팀이 되자!"

 

 

 

 

 

 

   <다 같이 함께하면>이 전하는 메시지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더욱 뚜렷해집니다. 두 명의 소년과 소녀에서 네 명으로 늘어나고, 또 여섯으로 늘어나면서 하나의 원을 그리기까지 인종과 성별을 불문하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특히 '천공 기법'을 이용해 책을 읽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와 책의 주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4살인 저의 아이는 "엄마, 구멍이 점점 늘어나. 우아, 친구들이 엄청 많아졌어."하고 신기해하기도 했지요.

 

 

 

 

 

 

   이렇듯 책은 어느 한 페이지도 그냥 흘려보내는 법이 없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는 브리타 테큰트럽 만의 작가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굳이 글을 읽어주지 않아도 아이가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만큼 계속 곁에 두고 보았음 하는 바람이네요. 끝으로 한 마음으로 모인 아이들처럼, 우리 아이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내내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사랑과 연애에 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

넋두리처럼 흘려보낸 이야기들, 깊은 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 날의 사연들이 생각나는 에세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보다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는 것, 해주길 바라는 걸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 걸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어렵고, 모르고 지나치기 쉽고, 그리고 참 고맙다. / 83p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고? 다퉈보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니? 이런 감정, 저런 감정도 다 나눠야 그게 사랑이지."

   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얼굴을 붉혀가며 다퉈본 적이 없다. 헤어지자, 네가 어쩌면 나에게 그럴 수 있어, 같은 말은 당연히 해본 적이 없다. 더러는 그런 우리들을 대단하다며 부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또 더러는 화가 났을 때 무조건 참는 건 좋지 않다고, 못볼 꼴 볼 꼴 다 봐가면서 그렇게 서로의 밑바닥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왜? 꼭 그렇게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또 다 나눠봐야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상대가 좋아하는 것만 해주고 무조건적인 배려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다투지 않고, 서로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 상대가 싫어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서로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적당한 자기 시간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지지해주는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의 마음을 할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의 저자 F 역시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보다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는 게, 해주길 바라는 걸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 걸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 걸 보면,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향한 최선의 노력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 눈앞의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

 

 

   일본 SNS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젊은 독자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받아 유명해진 작가 F. 익명으로 활동하다보니 추측상 기혼에 남자인 것까지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작가로는 이례적일만큼 일본에서는 그의 첫 책인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가 출간되자마자 전국 서점에 품귀 현상까지 일으켰다고 하니 그의 글이 얼마나 많은 대중들과 교감하고 사랑받고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대체로 남녀의 심리와 연애 혹은 사랑에 관한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다. '백 점짜리 남자의 말과 행동', '나이든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 '악녀 입문법', '섹시함과 야함의 한 끗 차이' 같은 솔직하고도 재미있는 연애 상담 류의 글에서부터 '향기에 대해', '감성을 사수한다는 것'과 같은 감성적인 글도 있고, '미움받을 용기 따위 필요 없다', '부서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등과 같은 청춘을 위한 위로의 글도 수록되어 있다. 긴긴밤 나를 상념에 빠지게 하는 것들, 문득 떠오르는 스쳐지나간 인연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다짐들은 F의 글이지만 동시에 나의 것이기도 해서, 어느 한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걸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가끔씩 저급한 폭력과도 같이 우리를 엄습해온다. 이런 유의 질문에 나는 매번 머리를 감싸게 된다.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일수록 더 그렇다. 물론 적당히 둘러댈 이유라면 얼마든지 있다.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거나 다정한 점이 좋았다고 대꾸하면 편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런 흔한 이유는 또 다른 '생긴 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더 다정한 사람'이라는, 다시 말해 그 특징을 충분히 갖춘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어디에나 있을 그런 대체 가능한 사람에게 끌린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좋아"가 아니다. 문득 좋아진 것이다. / 20p

 

 

우리는 "좋아한다"나 "사랑한다" 이상으로 상대방을 긍정하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선조들은 굳이 그 이상의 단어를 만들어내려 애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유일한 진실은 보편적인 단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그리고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태 그대로 두어도 괜찮기 때문이다. / 97p

 

 

 

 

 

 

 

   책 곳곳에 삽입된 송아람 만화 작가의 그림도 책읽는 재미를 톡톡히 한다. 가볍게 연필로 쓱쓱 그린 듯한 그림체는 남녀의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하고,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연인들 사이에서 흔히들 겪게 마련인 내용이라서 공감대를 높인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은 이것 말곤 없다. 부서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상처 주는 것들을 잘라내고 무신경하게 살아가란 말은 아니다. 타인에게는 섬세하게, 자신에게는 둔감하게…… 결코 부서지지 않고 살아내길 바란다. / 195p

 

 

결혼의 의미라는 말은 자칫하면 거칠게 느껴진다. 의미라는 단어를 인간관계에서 쓰다니,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거기에는 의미나 이득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 오히려 의미를 알아내고 싶어하거나 이득을 얻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누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지는 것이다.

긴 산책을 나설 때 문득 이렇게 같이 쭉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 단순함으로, 삶을 결정해도 된다고 본다. / 249p

 

 

 

 

 

 

 

   저자인 F는 '사람을 오래 사귀기 위한 필요조건은 서로 정체를 잘 모르고 지낼 것, 서로를 끊임없이 배려할 것, 상대의 비참함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는 유머 센스를 갖출 것,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관 역시 그렇다. 내 사람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야, '너' 같은 말로 상대에게 무례해지지 말 것, 상대가 해줄 수 없는 것들에 기대하기보다 우연히 마주하는 사소한 사랑스러움을 믿을 것.

 

 

 

 

 

 

   책장을 다 넘기기 전에 사랑하는 연인들이라면 혹은 헤어진 연인들이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꼭 예쁜 사랑하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나이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자신에 대한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

 

 

   집안의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옛날에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다~' 로 운을 떼어 '그 땐 정말 잘 나갔었는데' 하는 말로 회상에 잠기다가 이내 '이러지 말 걸, 저러지 말 걸, 이렇게 해 볼 걸' 하는 후회하는 말로 귀결되는 한탄의 소리를 매번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다 지나간 이야기를 해서 뭐 하느냐고, 매번 하는 말 지겹지도 않느냐며 눙을 치기도 하지만 기력이 쇠해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이제는 더 이상 많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들면 들수록 과거의 젊음, 영광, 미처 해보지 못하는 것들에 미련이 생기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것일까. 나 역시 해보지 못한 것들에 미련이 가득한 말들을 젊은 사람들 앞에서 늘어놓을까봐 벌써부터 마음이 씁쓸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국 몸이 변한다는 것이고 젊었을 때 '성장'으로 느꼈던 변화를 어느샌가 '쇠약해진 것'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 많은 사람이 노화를 실감하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서른 하고도 중반에 이른 나 역시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몸의 변화를 곧잘 실감하곤 한다. 몸뿐만이 아니다.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기가 생각만큼 여의치 않는 것을 느낀다. 내 개인의 생활보다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 동년배의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는 동시에 이런 탄식을 내뱉곤 한다.

 

 

 

나이가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나이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저서 <마흔에게>를 통해 마흔이라는 문턱 앞에서 혹은 노년의 인생에 접어든 시점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고민과 해결책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한다. 특히 '아들러 심리학'과 '플라톤 철학'의 대가답게 그들이 남긴 철학이 비추는 삶의 지혜를 전하면서, 한탄하거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자신과 어떻게 어울리며 살 것인지를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그는 예순 살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여전히 즐겁고 가슴 뛰는 경험이라고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배움 앞에서 나이는 중요치 않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특별한 재능과 적성이 아니라 약간의 도전 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기회 앞에서 '무리야', '못해'라고 말하며 주저하기를 반복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불완전한 용기'로, 불완전한 자신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 시작한 일이니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잘하게 되는' 것의 첫걸음이라고 독려한다.

 

 

 

 

 

 

   특히 병에 걸리고 나이가 들어서 전처럼 일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에 무기력해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나도 잘 했는데, 나이가 드니 예전 같지 않구나' 하며 자신의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어떤 순간이든 성과의 크기를 묻고 '생산성'을 기준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가치를 오로지 생산성에서 찾지 말고 몇 살이 되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를 조언한다. 얼마 전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요리점을 운영한다는 취지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치매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어떤 상태든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뭔가 그럴 듯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도전하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의 마음을 쏟을 수 있다면 병에 걸린다는 게, 나이가 든다는 게 새로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산성을 유일무이한 가치로 삼아온 사람은 일을 그만두면 나 자신에게 가치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퇴직하여 잃는 것은 소속이나 직책, 직위뿐입니다. 나이가 들어 이래저래 쇠약해졌다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가치를 있는 그래도 인정하고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좋아한다." / 190p

 

 

 

 

   이렇듯 <마흔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내리막길이 가지는 의미와 그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인생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노년의 즐거움을 전하면서 동시에 부모와 자식 간에 관계 앞에서 현명해지는 법도 함께 고민해본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는 부모에게 한없이 받기만 했던 관계에서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고, 또 나의 부모의 노년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깊은 상태라 이 대목을 유독 관심 있게 읽은 것 같다.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은 부모와 자식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즉, 타자에게 평가와 인정을 바라지 않고, 자신과 부모와의 과제를 명확히 구분하며, 부모와 자식은 자신의 이상과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다. 특히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적당한 거리가 매우 중요한 듯하다. 아이가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할 때 부모의 기준에서 절대로 판단하거나 나서지 말 것, 멋대로 해석을 더하거나 상상으로 행간을 메우고 아는 것처럼 말하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이는 말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이는 어떤 인간 관계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라고 느낄 때는 먼저 이야기를 도중에 끊지 않는 걸 알았을 때입니다.

(…) 그 다음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입니다.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은 의견과 비평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치 있는 코멘트나 조언을 구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 224p 

 

 

 

 

 

 

 

   다람쥐는 먹이가 되는 도토리를 발견하면 구멍을 파서 여기저기에 묻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람쥐는 이내 자신이 도토리를 묻은 장소와 묻은 사실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다람쥐가 있는 곳에 풀숲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다. 잊어버린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자라서 숲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람쥐의 습성을 통해 기시미 이치로는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풍요로운 숲을 만들고, 다음 세대의 양식이 되는 도토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과거를 생각하고 후회하거나, 미래를 생각하고 불안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마냥 걱정만 하고 주저앉아 있기보다 지금, 바로 여기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꽤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다. 이 책이 마흔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노년의 인생에 접어든 이들에게는 위안이자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