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 - 그저 좋아서 떠났던 여행의 모든 순간
안혜연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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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느린 일상 같은 여행,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여행과 생활의 미묘한 경계에서 하루하루 쌓여가는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들!

 

 

 

   가만히 돌이켜보면 다양한 일정의 해외 패키지여행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서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거창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어느 지역의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면 그 지역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무작정 끊어 떠났고, 가보고 싶은 서점이 생기면 마찬가지로 부랴부랴 새벽부터 기차역으로 출발했던 시간들. 혼자였기에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고, 무얼 먹어도 상관없었으며 이후의 일정은 아무래도 좋았던,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을 때 다가오는 감동으로 몸을 떨기까지 추억들은 이상하게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업무가 많아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혼자 떠나는 여행은 더 이상 꿈꾸지 못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물며 이제는 운전도 할 수 있고 마음의 여유도 더 생긴 듯한 데도 선뜻 움직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다 때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돌아다녀볼걸, 까짓것 그냥 부딪혀볼걸 하는 후회들이 더 진하게 밀려드는 요즘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닻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에서 나와 항해를 시작하라.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때문에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를 읽으며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 덜컥 마음을 붙든다. '떠나고 싶어지면 그냥 떠나라. 혼자여도 괜찮다. 떠나는 데 필요한 것은 용기나 돈이 아닌 포기다. 낯선 바람을 따라나서 보면 단번에 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인생은 그럭저럭 잘 굴어간다는 걸. 내 눈으로 그걸 확인하기까지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너무도 당연한 이치.' 라던 저자의 독려까지도.

 

 

 

또 다른 일상으로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는 스스로를 작가의 탈을 쓴 백수라 칭하는 6년차 프리랜서 여행작가 안혜연의 여행에세이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두고 위태로운 길 위의 작가가 되기를 선택했던 그녀는 두둑한 통장 잔고보다 자유로운 공기에 취해 보내는 시간을 더 흡족해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일상 같은 여행을, 여행 같은 일상을 가만가만 기록해두었다. 파리, 피렌체, 하노이, 방콕, 사막, 제주 등. 그녀가 머물거나 다녀온 곳들은 저마다 다채로운 색채와 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글 안에서는 오늘의 하루를 다정히 채워주는 어떤 일상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보러 간다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그곳에서의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그네들의 수수한 일상을 엿보고 그저 머물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특유의 느긋한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무언가를 보러 갈 때도 있다. 호기심이 일거나 어떤 장면을 보고 마음이 동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흡족한 게 여행이다. 왜 꼭 뭘 봐야 한다고 생각할까? 우두커니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홀짝이며 도란도란 수다 떠는 것도 여행이고 뒷짐 진 채 슬렁슬렁 마을 산책하는 것도 여행인데! 대단한 볼거리를 봐야 여행인가? 성산일출봉에 오르고 섭지코지를 거닐고 협재해수욕장에 몸 담그고 한라산 등반을 해야 여행다운 여행을 한 걸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남들이 다 보는 거 덜 보더라도 각자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며 생기를 되찾았다면 그걸로 됐다. 맑은 공기 한껏 들이켜고 제주도민의 수수한 일상을 엿보고 그저 머물렀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 40p

 

 

 

 

 

  산책길에 우연히 알게 된 베르갈랑 공원의 한적함, 파리의 재래시장에서 인심 좋은 콧수염 아저씨가 "치즈는 먹어봐야 안다"며 여러 가지 치즈를 맛보여주던 순간들, 오갈 데 없는 창작자들의 몸 뉠 곳을 마련해주는 예술가들의 안식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덩치에 비해 작아 보이는 목욕탕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는 팔자 늘어진 호이안의 아저씨들, 커피 한 잔이 무려 10만 엔 즉 100만원을 호가하는 20년 숙성 커피를 차마 다 즐길 수 없어 2천 엔으로 겨우 한 숟가락 맛보는 웃지 못할 경험까지. 때로는 숙소에서 빈대의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해야 하는 낯부끄러운 일까지 겪어야하기도 했지만 여행을 하다 만난 수많은 인연들, 인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짜이 한 잔이 주는 감동, 단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들의 대낮 같은 휴식이 주는 위안이 그녀를 계속해서 이끄는 것이리라.

 

 

여행하다 만난 이들 중에서는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고 한낱 스쳐가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연도 있다. 잡으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고 피하려고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더라. 인연은 그런 건가 보다. 이어질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지고 끊어질 사람은 끊어내지 않아도 매일매일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

길 위에서 만난 당신들, 잘 지내나요? / 174p

 

 

코끼리는 야생 동물이다. 상상해보라. 화가 치밀면 사람을 짓밟을 수도 있는 야성을 지닌 코끼리가 고분고분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고 몇 사람이 올라타도 내치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 코끼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존중받아야 한다. 공정여행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코끼리를 타지 않는 것, 동물학대로 이루어지는 공연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 / 201p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를 읽으며 '그 날, 그 순간이 참 행복했다'던 저자의 고백과 함께 스미는 가을바람이 내내 내 맘을 살랑살랑 간질이는 기분을 느꼈다. 따뜻한 햇살이 등살을 감싸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럼 이제 나의 일상은 안녕한지, 또 안녕하기 위해 나는 나에게 소소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어떤 여행 하나 정도는 선물해줄 수 있지 않을 런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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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산다는 것 -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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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나를 괴롭혀왔던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 의연해지는 법이 필요한 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그만큼만 살아도 충분한 삶을 위한 마음 솔루션!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 아마도 상처를 받았겠지?', '가만히 있을 걸. 왜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든 걸까'.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그날 있었던 일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나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내내 그것을 곱씹느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분명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지를 상상하느라 이불 속에서 내내 뒤척이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 얼마나 빨리 털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고민들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으리라.

 

 

 

   <담백하게 산다는 것>의 저자 양창순 의학박사는 나처럼 실수했던 장면을 필름처럼 계속해서 되감으며 돌려보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나 또한 지독한 완벽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녀의 말처럼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가벼운 실수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는 유연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의 유연성이라고 하면 꽤나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생각의 폭을 한 마디만 넓혀 딱 그만큼만 더 여유를 갖자고 말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어느새 '담백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을 때 담백한 삶은 더 가까워진다

 

 

   인간관계 심리학의 바이블로 정평이 난 베스트셀러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양창순 의학박사가 <담백하게 산다는 것>이란 제목의 책을 들고 찾아왔다. 저자가 책에서 밝히는 '담백'한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스트레스가 높을 때 우리의 뇌는 음식과 산소를 요구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자극적이고 빨리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반면 마음이 편안할 때는 대체로 간이 덜하고 담백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찾게 된다. 따라서 담백함이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누리는 행복감일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저자는 음식이든 인간관계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필요한 만큼만 절제한다면 많은 부분이 심플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몇 가지 매뉴얼만 생각하면 된다. 첫 번째는 열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사실 한두 명이 고작이듯, 내가 만나는 열 명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모두 완벽하게 성공하길 바라기보다 실수와 단점에 대해 여유로워진다면 일도 인간관계도 더 담백해지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만큼 내 이야기는 가능한 줄이고 절제하는 편이 좋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너무 애쓰며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항상 자신을 몰아붙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저자는 열정과 독선, 확신과 아집이 종이 한 장 차이이듯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생각보다 불필요한 것들에 발목을 잡힌 채, 생각보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을 보면서 '인간은 밖에서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천재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니 남이 나를 괴롭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방법은 '모든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 의연해지고, 조금 더 담백하게 살아가기'가 아닐까 한다. / 68p

 

 

이 세상에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겁먹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면 된다. 좋은 경험은 좋은 경험대로, 나쁜 경험은 나쁜 경험대로 나를 성장시키는 주춧돌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담백한 삶의 기술이다. / 104p

 

 

 

 

 

 

   책에서는 담백한 삶을 방해하는 몇 가지 요소로 아집, 나르시시즘, 자만심, 열등감을 꼽는다. 그 중 남편이 신혼 초에 외도를 했다는 문제로 십 수 년째 싸우는 부부의 상담 이야기가 유독 인상적이다. 부부는 숱한 갈등 중 모든 결론은 남편의 바람으로 귀결되어 내내 해결되지 못한 채 지속되었고, 이는 아내를 끝끝내 괴롭혔다. 끝이 없는 원망과 의심, 경멸과 비난, 힐책과 수모까지. 그로 인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로 인해 아내는 지쳐갔다. 이때 저자는 그녀에게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고 서로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이유는 결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님을 조심스레 이야기해준다. 남편에 대한 이해와 용서는 결코 그를 위한 일이 아님을 말해준 것이다. 특히 아집에서 비롯되는 행동이 결국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자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이해와 용서는 오직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잠재력을 낭비하지 않고, 제대로 쓰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내게도 마음속에 새겨둘 말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로 인해 내 마음을, 내 시간을 분노로 채울 필요가 없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데 낭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적다는 점은 분명하다. / 142p

 

 

실제로 요즘 뇌 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수록 우리의 뇌세포가 더 건강해진다고 한다. 우리 뇌의 여러 부위에 걸쳐 있는 '보상회로'가 즐거움을 관장하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회로가 더욱 많은 부위에 연결되면서 뇌가 건강하게 변하고, 삶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국내의 한 연구진이 MRI 영상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 207p

 

 

 

 

 

 

   담백한 삶이란 과거와 미래에 내 자신을 뺏기지 않고 현재 이 시점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이자,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불필요한 감정을 억지로 붙든 채 아등바등 살며 내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기보다 이제는 오롯이 나를 바라보고 최대한 의연해질 것, 그것이 내가 가장 나답고 건강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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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문장 수업 - 하루 한 문장으로 배우는 품격 있는 삶
김동섭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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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신화, 철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명의 뿌리에 다가가다!

서양 문명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고품격 라틴어 강의!

 

 

   제2외국어 선택을 앞두고 있었던 학창시절, 영어를 제외하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제2외국어라하면 고작해야 독일어 혹은 일본어뿐이었다. 비전이나 활용도를 생각했다면 일본어를 선택했겠지만 당시에는 입시가 더 중요했기에 나는 상대적으로 익히기 쉬운 독일어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쉬운 일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즐거움보다,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상대의 문화를 알아가는 데 재미를 느끼기보다, 하나라도 더 정답을 맞히는 데만 급급했던 만큼 빠른 속도로 흥미를 잃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입시 때문이 아니라 라틴어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와 같이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지금에라도 늦지 않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독학으로 하기에는 어쩐지 막막해서 선뜻 뛰어들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어 문장 수업>은 평소 라틴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입문 도서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외국어 전문 도서들이 워낙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어서 여러모로 선택의 기회가 많아졌지만, 문법과 회화로 바로 뛰어들기보다 관련 언어가 어떠한 배경으로 탄생되었고 또 그것이 언어권 사용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발전되어 왔는지 그 과정이 선행된다면 좀 더 이해와 접근에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라틴어 문장 수업>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명문장을 선별하여 기본 문법뿐만 아니라 배경이 되는 로마 제국의 역사와 문화, 철학, 신화까지 수록하고 있으니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라틴어는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제국 중 하나인 로마 제국에서 사용되던 언어이다. 천 년 이상 지속되어 온 로마는 온 유럽을 자신들의 기준, 즉 자신들의 언어와 제도로 재편했다. 그런 점에서 로마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는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투영하는 거울과도 같다. 이에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라틴어를 배우면 좋은 열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영어 어휘의 50퍼센트 이상이 라틴어이다.

2. 현대 학문의 용어들은 대부분 라틴어이다.

3. 법률과 논리의 언어이다.

4. 인간이 만든 사장 논리적인 언어이다.

5.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언어이다.

6. 전 세계에 라틴어의 후예들이 있다.

7. 서구 문명의 뿌리가 되는 언어이다.

8. 기독교의 언어이다.

9.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언어이다.

10. 라틴어를 배우는 것은 자기완성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 15p 

 

 

 

   학자들은 라틴어가 인류가 사용한 언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논리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 혹자는 라틴어의 문법이 너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복잡한 라틴어의 문법을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라틴어로 기록된 경구, 속담, 격언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기본 구조와 알파벳, 그리고 발음에 대한 간단한 설명까지 부록으로 함께 수록해놓았다. 덕분에 하루에 한 문장씩 차근차근 접근해가다보면 라틴어의 실체와 고대 로마인들의 역사, 지혜, 영성, 문학, 철학, 예술, 사랑, 삶의 태도에까지 공감할 수 있게 되니 라틴어와 더욱 친숙해질 계기가 될 것이다.

 

 

 

 

 

 

   책에 수록된 여러 문장들 중에서 'Animum fortuna sequitur(행운은 용기를 뒤따른다)', 'Si vis amari ama(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하라)', 'Secrete amicos admone; lauda palam(몰래 꾸짖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라)', 'Oculus se non videns, alia videt(눈은 자기 자신은 못 보면서, 다른 것은 본다)', 'Media vita in morte sumus(생의 한 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네)' 등의 문장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아울러 반드시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 책을 접한 독자가 아니더라도 이 문장 속에 녹아든 옛 현자들의 지혜와 역사 속 인물들, 신화 속 이야기들은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접해본 적이 있는 격언과 속담, 단어들이 어떤 유래를 통해 탄생되었는지 배울 수 있고, 이제껏 몰랐던 라틴어만의 매력까지 느낄 수 있으니 이 책을 통해 라틴어 공부에 대한 흥미도를 높여보면 어떨까 싶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고

내가 어디에서 죽을지 안다면

그곳에 자주 들러 친해보려고 노력할 것이고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를 지켜줄 사람들이

자식이라면 태어나줘서 고맙고

아내라면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 241p

 

 

 

 

 

 

   로마의 한 무명 시인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읊은 시다. 어쩐지 이 시가 내내 마음에 남는다.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다고 믿는 우리들에게 죽음은 그리 가까이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우리가 늘 죽음의 한 복판에 있다는 생각으로 산다면 오늘, 매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라틴어 문장 수업>은 인생의 무상함 혹은 인생의 소중함,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한 기쁨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매우 값진 독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라틴어를 배우고 싶은 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책이 전하는 잔잔한 울림을 느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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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우주인
야로슬라프 칼파르시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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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상과학 이전에 한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삶, 철학을 오롯이 담은 놀라운 소설!

자신이 누리는 것은 잃어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우주는 인류의 터전으로 한계점에 임박한 지구의 대안인가,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순수한 탐험의 대상인가, 최첨단 과학 기술을 누가 먼저 멀리 쏘아 올려 정치적 깃발을 꽂을 것인가를 두고 강대국들이 벌이는 상징의 무대인가. 우리는 그간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등의 작품을 통해 우주를 향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시도들을 보아왔다. 소설 <보헤미아 우주인> 역시 그런 의미의 성격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국 체코의 부름을 받아 우주비행사가 되어 금성으로 떠난 야쿠프 프로하스카, 그의 눈에 비친 광활한 우주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너머에 존재하는 극한의 외로움, 내적 고독 등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까지 말하자면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마션> 등의 유사 작품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체코의 역사와 격변기를 지나온 한 남성이 겪어야만 했던 과거와의 사투, 범우주적인 가치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꽤나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으로 조금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칫 천문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공상 과학으로 가득한 SF 소설을 기대했다면 내적 묘사와 자아 성찰로 가득한 이 소설에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문장과 섬세한 작가의 필력에 빠지게 되면 이 책에 쏟아지는 찬사와 수식들이 결코 아깝지 않음을 금세 깨닫게 된다.

 

 

 

정반대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것은 잃어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 357p

 

 

 

   2018년 봄, 체코의 국민들은 국유지 감자밭에서 발사되는 우주왕복선 얀후스 1호에 잔뜩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주라는 거대한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리는 자국의 눈부신 과학 발전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마치 조국의 승리를 맛보는 듯한 희열에 휩싸인다. 그도 그럴 것이 1939년 나치에 점령당한 뒤, 19345년 다시 독립국가가 되었으나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쿠데타로 공산주의 국가가 된 체코는 소련군의 침공을 맞고 무혈, 비폭력 혁명을 이끌어낸 바츨라프 하벨의 '벨벳 혁명'을 거듭하며 가슴 아픈 역사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정치적 격변기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체코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한몸에 받으며 얀후스 1호에 탑승한 야쿠프 프로하스카는 체코의 변화를 상징하는 이 위대한 역사와 과학적 영광까지 함께 짊어지고 금성과 지구 사이에서 관측되는 '초프라'라는 불가사의한 입자를 체취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카렐대학교 천체물리학과 교수이자 우주 먼지 연구자인 야쿠프는 사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 비행사도 아니고, 지구로 안전하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과거 공산 정권 아래에서 국가를 위해 일했던 아버지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권의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인민의 배신자이자 국가의 악당이 되어버리자 야쿠프는 거의 마녀사냥에 가까울 정도로 주위의 야멸찬 시선과 폭력에 얼룩진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 자신을 한결같이 지켜준 할아버지와 할머니마저도 어렵게 일군 고향집을 떠나 서글픈 죽음을 맞이해야했고, 이것이 그에게는 내내 상처로 남았다. 이렇듯 소설은 아버지의 과오를 씻고 자신을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함과 동시에 이제는 자신이 국민의 영웅이 되려는 야쿠프의 굴곡진 인생과 가슴 아픈 체코의 역사를 정교하게 엮어나간다.

 

 

 

"당신 아버지는 부역자이자 범죄자, 오늘날까지 우리 나라를 괴롭히는 것들의 상징입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의 아들로서 움직이고 전진하며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로부터 멀어지는 겁니다. 야쿠프 프로하스카,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의 아들, 개혁을 거친 공산주의자의 빛나는 본보기인 거죠. (…) 시민의 겸손한 종복이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인 동시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화신이며 과학자이기도 하고요. 나는 우주에 체코인을 보내고 싶고, 그 체코인은 당신이 될 거야. 유럽은 우리를 비웃을 테고 부담을 떠안을 납세자들은 회의론으로 울부짖겠지만, 이 계획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고, 우리는 당신을 잘 포장해서 그 이미지를 팔아먹을 수가 있어요. 프라하의 우주인. 변화된 나라의 상징이 우리 깃발을 우주로 가져가는 거지. 이해하겠소?" / 79p

 

 

나는 눈을 감고 수를 세며 지금 아버지가 나를 떠메고 세상의 모든 언어로 사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한다. / 150p

 

 

 

 

 

 

   하지만 순조로울 것 같았던 우주비행에 있어서도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사랑하는 아내 렌카를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내와의 화상 통화만을 고대했던 그에게 어느 날, 렌카는 통화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마치 다른 삶을 살기라도 할 것처럼 변화하기 시작한 그녀의 태도에 그는 더더욱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야쿠프는 그녀와 나누었던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마치 예견된 불행이었던 것처럼, 야쿠프가 초프라에 가까이 접근해 마침내 미션을 성공하기에 이르려는 순간 얀후스 1호가 비상사태에 빠지고 그 역시 죽음에 임박하고야 만다. 우연의 기회로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영웅이라는 허울만 남겨져있을 뿐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가 되어버리고 난 뒤였다.

 

 

 

나에게 헛된 것은 없다. 하누시에게도, 렌카에게도, 체코 우주국에게도, 늘 저 너머와 밑, 다음, 아래쪽을 찾는 고집스러운 인간의 눈에도 헛된 것이라고는 없다. 공기와 행성 그리고 건물과 몸뚱이를 구성하는 원자들, 빈둥거리며 생명과 생명에 반하는 왕조 전체를 견디고 있는 원자들 속에도, 헛된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 198p

 

 

 

   어쩌면 작가는 야쿠프가 우주 공간에 있을 때가 아니라 지구로 돌아왔을 때 보고 느끼고 겪게 되는 일들에 더 마음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 밖에서 부부가 서로 얼마나 다른 것을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들, 남편의 집착과 남편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가려지지 않는 인생을 원했던 렌카의 진짜 삶을 뒤늦게 목도하고만 야쿠프를 보면서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없고 누리던 것을 잃었을 때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깨달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에 있을 때 내가 임무에 참여해도 되는지 아내의 허락을 받았던 순간들을 머릿속에서 꾸며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질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내가 결정했다. 내가 평생 동안 이런 식으로 행동한 건 아닌지,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내 몸속에 흐르는 또 다른 유전적 유산, 즉 아버지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특징은 아닌지 궁금했다. / 334p

 

 

내가 들어선 곳은 서재였는데 책장에는 그녀의 책인 전 세계 소설들만 꽂혀 있고 내 두꺼운 논픽션 책들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둘이 읽던 책을 보더라도 나는 지구 외부의 모든 걸 정복하고 싶어 했던 반면 렌카는 내가 떠나고 싶어 한 행성의 구석구석을 알고 싶어 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 348p

 

 

 

 

 

 

   <보헤미아 우주인>은 우주란 물리적으로 먼 어느 행성과도 같은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하는 모든 것들, 내 삶,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범우주적인 가치와 철학을 모두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이 소설만이 보여주는 대담하고도 독창적인 부분들은 분명 이 작가의 이름을 계속해서 기억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덕분에 차기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것이 기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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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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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첫사랑 누나, 소년 아오야마가 펼치는 귀염발랄 수상한 판타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세상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기 위한 그 시절, 특별한 이야기!

 

 

 

   유년 시절의 나는 저녁 아홉 시만 되면 서둘러 잠자리에 드는 아이였다. 모두가 잠든 시간, 깊은 한밤중에 꼭 눈을 떠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금살금 침대에서 벗어나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서랍장에서 손전등을 꺼내 캄캄한 실내를 밝혔다. 그리고는 전날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꺼내 활자를 손전등에 비춰가며 그때부터 꼭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가량 읽은 다음에야 다시 잠들곤 했다.

 

 

 

   당시의 나는 남들이 자는 시간에 뭔가를 읽는다는 것, 뭔가를 알아낸다는 것에 꽤나 몰두해있었고 또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그때는 필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유도, 개념도 딱히 알지 못했지만 꼭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새하얀 노트에 베껴 쓰기도 했는데 연필이 닳고, 빈 페이지가 채워져 갈수록 나를 몹시 똑똑한 아이 또는 문학 소녀의 이미지에 다가가게 하는 것만 같아 뿌듯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한밤중에 세상이 내게 다 들려주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에 접근하는 것을 즐겼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소녀와 소년들이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대로 알지 못했던 혹은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에 다가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수께끼 투성인 현실 그리고 상상, 우리는 모두 그 속에서 성장한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하지만 아오야마는 매일 착실히 노트에 많은 것을 기록하고 책도 많이 읽으며, 탐구 활동에도 꽤나 적극적일 만큼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져있을 거라고 믿는다. 장차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를 결혼상대로 점찍어뒀을 만큼 어쩐지 애어른 같은 구석도 있는 녀석이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아오야마가 살고 있는 현 경계 너머의 작은 도시에 느닷없이 펭귄 떼가 출몰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아델리펭귄, 학명 피고스켈리스 아델리에. 남극과 그 주변 섬에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펭귄이 도시 한복판에 나타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펭귄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때 으레 지나가는 루트를 '펭귄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한다. 어쩐지 아오야마는 이 말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펭귄 출현에 대한 탐구의 제목을 '펭귄 하이웨이'라 짓기로 한다. 이때부터 소년 아오야마와 친구인 우치다는 펭귄 하이웨이를 따라 펭귄의 서식지를 발견하기 위해 탐험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아오야마는 치과 누나가 펭귄을 만들어내고 펭귄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사실과 같은 반 친구인 하마모토의 가세로 초원에서 미지의 존재인 일명 '바다'를 만나 기이한 현상을 마주하면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놀라운 모험을 펼쳐나간다.

 

 

 

"소년,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겠니?"

 

 

 

   소설 <펭귄 하이웨이>는 소년 아오야마와 그 친구들이 온통 수수께끼로 가득한 일련의 기묘한 사건을 겪으며 그들의 우정과 사랑, 성장과 모험담을 일종의 성장 소설 형식으로 풀어놓은 아름다운 판타지다. 세계의 끝과 시작,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과 해답을 10대 다운 순수함으로 접근해가는 방식은 이 소설에 있어 가장 빛나는 지점이 할 수 있다. 특히 어른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기 위해 거친 숲을 뛰어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질문에 맞서는 모습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것이 이 소설이 SF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기도 한 이유가 아닐까.

 

 

 

 

 

 

아버지의 3원칙에 대하여.

아버지는 나에게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줄 때 세 가지 도움이 되는 생각을 가르쳤다. 나는 그것들을 노트 표지 뒷면에 써서 언제라도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건 수학 같은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

•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갠다.

•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 닮은 문제를 찾는다. / 88p

 

 

"그 문제들은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그럴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지."

나는 노트를 꺼내서 '그건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반복해서 생각해봐야만 한다. 펭귄 하이웨이 연구와 '바다' 연구는 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구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잘 생각해볼게요."

"매일 발견을 기록해둘 것. 그리고 그 발견을 복습해서 정리할 것."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마셨다. / 254p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에 이어 <펭귄 하이웨이>역시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섞어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이야기를 펼쳐놓는 작가 특유의 작풍과 궤를 같이 하는 느낌이다. 다만, 그간 '교토 작가'라 불릴 만큼 교토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선보였던 이력과 달리 이번 작품은 드넓은 하늘과 초원 아래 10대 소년소녀들의 자유분방함과 따뜻한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이것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었을 때 어떤 시너지가 발생되었을 것인지 더욱 기대가 된다. 오랜만에 유년의 그 때, 그 시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싶었던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떠올리며 영화 <펭귄 하이웨이>를 관람하러 극장으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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