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전혜정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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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흡인력 있는 전개, 가독성 높은 문장, 추악한 권력의 민낯에 다가가다!

 

 

   어느덧 제8회에 이르는 혼불문학상 수상작이 출간되었다. 한중일 각기 다른 세 나라의 민족관과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 제7회 수상작<칼과 혀>의 대담성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새 또 한 해가 지났다. 이번 제8회 혼불문학상은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간 1회 수상작 <난설헌> 때부터 쭉 혼불문학상 수상작을 읽어 온 독자로서 그 어느 작품보다 경쾌하고 한 편의 드라마처럼 유려하게 읽힌 작품이라 남다르게 느껴진다. 전 회 수상작인 <칼과 혀>가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혼불문학상이 지닌 가치와 문학적 세계관을 넓혔다면, 이번 수상작인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정치적 욕망의 이중성에 근거한 인간 심리와 권력의 역학 관계에 집중하여 대비를 이루는 점 또한 흥미롭다.

 

 

 

 

 

 

파워 게임을 주도하려는 인간 군상의 추악한 진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은 독재자 리아민과 그의 전기 작가 박상호가 전기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팽팽하게 맞서는 욕망의 대립과 추악한 권력의 진실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허약함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예순 다섯 살의 나이로 대통령직의 장기 집권을 꿈꾸는 리아민, 과거의 유명세를 붙들고 사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통령의 전기를 발판으로 재기를 꿈꾸는 박상호, 여배우 출신으로 트러블 메이커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영부인 최세희, 특종을 꿈꾸는 유명 정치부 기자 정율리, 리아민의 조력자인 수석비서관 김세원 등의 인물들이 등장해 그들의 날선 욕망을 시종일관 팽팽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작가 박상호가 과거를 회상하며 유년 시절부터 자신의 행적을 풀어놓는 리아민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생모는 동네 남자들 사이에서 '오백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문란한 생활을 일삼았다. 아이를 지우자던 외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기어코 아이를 낳더니, 이내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버렸고 결국 리아민은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났다. 비록 친구로부터 '아비 없는 후레자식'으로 낙인찍혀 내내 놀림과 멸시의 대상이 될 뻔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는 어른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의연하게 사건을 해결해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게 되고, 문학을 사랑하는 소년으로 자라난다. 이렇듯 몇 번의 독대를 거듭하며 박상호는 리아민의 가슴 아픈 젊은 날의 사랑, 사단장의 눈에 들어 그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 이야기, 지금의 영부인인 최세희를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어쩐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와는 어쩐지 다른, 혹은 만들어진 듯한 가공의 이야기 같은, 또는 다른 사람의 일화를 자신의 이야기로 덧입힌 듯한 리아민의 일화에 차츰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누구에게나 약간의 거짓말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도 서로에게 관해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때론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도 필요하죠. 마찬가집니다. 국민들이 이 모든 진실을 알 필요도 없을뿐더러, 설혹 진실을 각하께서 국민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해서 그들이 진실을 모두 알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53p

 

 

"박 작가,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야. 대통령의 기억이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비슷하게 들린다면 당연히 그들의 기억을 삭제해야지, 대통령의 기억을 삭제할 순 없잖아. 안 그래?" / 65p

 

 

 

   작가 박상호는 미화된 전기와 오로지 국민과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리아민과 그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리리궁 관계자들의 태도에 넌더리를 느끼면서도, 대통령의 전기가 가져다줄 부와 명성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갈등을 느끼게 된다. 문인들로부터 돈만 쫓는 작가로 비쳐지고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은 작가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인지라, 때로 날선 심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집필하지 않은 전기가 버젓이 제 이름으로 출간되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반발하지 못한다. 오히려 여기저기서 인터뷰가 쇄도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책이 상당한 판매부수를 올리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며 씁쓸하지만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언제나 리리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나의 쇼예요. 그이를 중심으로 한 거대하고 화려한 볼거리죠. 그것만이 리리궁의 유일한 룰이에요. 박상호 씨가 앞으로 가져올 결과물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필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 거예요." / 223p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양질의 전기를 쓰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바로 허구의 창작밖에 없을 터였다. 결국 나는 거짓말쟁이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라고 나 자신에게 씁쓸하게 자문했다. 어떻게 하다가 내가 이런 막다른 상황에까지 처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멍청한 헛똑똑이 작가 박상호가 이 작품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예전만큼 확신이 들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아주 많이 망할 작품을 그 반의 반만큼만 망하게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최선일 것이다. / 243p

 

 

 

 

 

 

   소설은 '독재자'라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저마다 '욕망' 앞에서 파워 게임을 주도하려는 인간 군상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듯 까발린다. 리아민은 리아민 대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석비서관은 제왕적 지도자만이 이 나라를 통치해야만 한다는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박상호는 작가라는 명성과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율리는 박상호를 이용해서라도 특종을 거머쥐기 위해, 최세희는 과거를 모두 삭제해서라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저마다 손에 쥐고 있는 주도권을 어떻게 해서든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이들은 적절한 타협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유지하고 지켜내려는 허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나는 지금 시대의 국민들이 대통령을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 나라를 효율적으로 잘 경영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가 유능한 인재들을 잘 기용하여 국가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지, 지나치게 감상적인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 135p

 

 

"과연 많은 사람이 원하고 지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엔 다수결이야말로 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합니다. 다년간의 국정 운영을 통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저희 리리궁의 입장은 한 방향으로 보다 확고해졌습니다. 바로 국가의 고비마다 강력하고 올바른 리더십을 갖춘 제왕적 지도자가 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분열을 일삼는 국민들의 의견 따위는 이 나라를 통치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 304p

 

 

 

 

 

 

   이렇듯 <독재자 리아민의 삶>은 각자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왜곡된 욕망을 쫓는 인간들의 면모를 속도감 있고, 가독성 높은 문장으로 경쾌하게 밀고 간다. 그래서 일단 책을 손에 쥐고 나면 끝까지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리리궁의 이단아 같은 존재인 영부인 최세희와 작가 박상호의 관계가 은근한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어버리고만 것, 자칫 통속적인 이미지가 더 가깝게 느껴질 법한 작법들이 소설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까닭이다. 촘촘한 구성과 치밀한 심리 묘사, 캐릭터의 정체성이 보다 더 부각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한 해가 흘러갔음을 혼불문학상으로 새삼 느끼게 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 문학이 이렇게 흘러왔구나 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수상작이 우리를 일깨우고 즐겁게 해줄 것인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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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다이어리 북 - 인생이 명랑해지는 야옹이 라이프!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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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명랑해질 냥이와 함께 하는 특별한 라이프!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여유를 가득 채워줄 2019년 스페셜 다이어리 북!

 

 

   한 해가 저물어 갈 즈음이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다이어리를 구입하는 일이다. 간단한 스케줄만 기입할 수 있는 실속형도 좋지만 최근에는 스토리를 겸비한 '다이어리 북'이라는 형식의 책도 접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인생이 명랑해지는 야옹이 라이프" <고양이 다이어리 북>이라니. 이 독특한 제목의 다이어리 북에 어쩐지 마음이 사로잡힌다.

 

 

 

'묘생 만렙' 고양이가 매일이 행복한 특급 비법을 전수합니다

 

 

   다이어리 북을 펼쳐보면 귀엽고 깜찍한 고양이들의 사진들에 한 번 놀라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저자의 글귀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곧 있으면 따뜻한 계절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하게 눈밭을 거니는 고양이에서부터 회색 구조물에 고개를 기대고 늘어지게 잠을 청하는 한량 고양이, 장독대에 올라앉아 이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고양이까지. 고양이 사진첩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양의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음은 물론, 그간 다양한 고양이 관련 저서를 출간한 저자답게 '길고양이 보고서', '고양이가 전하는 인생 명언' 등으로 풍성한 읽을거리까지 제공한다.

 

 

 

'고양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있지.

당신도 그래.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까 그냥 거기 있어. 어디 가지 말고.

/ 12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옹 중에서

 

 

 

 

 

 

   <고양이 다이어리 북>은 1년 계획에서부터 한 달 계획, 일주일 계획, 프리노트 등 다이어리가 갖추어야 할 기본 형식에도 충실하다. 반드시 1월부터 작성할 필요가 없는 만년 다이어리 형식이기에 언제든지 사용해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다. 거기에 2019 아깽이 달력과 귀여운 냥스티커까지 부록이 수록되어 있으니 꾸미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9년의 나는 둘째 아이의 출산으로 육아맘에 전념해야 하는 한 해가 되겠지만,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행사 일정과 둘째 아이의 다양한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다이어리의 도움이 벌써부터 절실해진다. 두 아이들을 돌보느라 미처 챙기지 못하는 일정들을 잘 단속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지쳐있을 때 다이어리 북 속 냥이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독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책의 마지막 띠지에 있는 행운의 고양이 카드로 응원의 기운도 으쌰으쌰 받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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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셀프 트래블 - 2018-2019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홍은선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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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나고야 핵심 여행지 총망라!

대도시답지 않게 고즈넉한 정취를 품은 매력적인 도시, 나고야 자유여행 가이드북!

 

 

   일본 부권의 중심지이자 국토의 중간에 위치한 나고야. 일본의 3대 도시로 꼽힐 만큼 대도시이지만 관광지로는 어쩐지 생소한 곳이다. 떠오르는 명소들이 즐비한 도쿄, 후쿠오카, 오키나와에 비해 나고야 하면 기껏해야 나고야성이나 레고랜드 정도가 아는 게 전부일 정도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매력이 더 많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나고야 셀프트래블>이었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인지도나 인기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특유의 향토 요리는 일본 내 각지에서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고 대도시답지 않은 한적함까지 엿볼 수 있을 만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인만큼 금세 나고야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일본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날 추억의 장소가 될지 모를 그곳, 나고야

 

 

   일본 내에서 지역 경제의 발전이 뛰어난 도시로 유명한 나고야는 우리나라의 울산광역시에 비교되기도 한다. 실제 무역 흑자의 70%를 벌어들인 적이 있을 만큼 '큰돈'을 모으는 지역이다. 그에 비하면 아직 관광 도시로선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특한 식문화와 교통 인프라 등으로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미처 알지 못했던 나고야의 매력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여행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나고야 셀프트래블>는 크게 나고야와 나고야 근교로 나눠서 소개한다. 나고야에서는 일본 중부 여행의 중심지인 나고야역 주변, 나고야 제1의 번화가인 사카에, 오감 만족의 상점가들이 즐비한 오스, 도시의 랜드마크인 나고야성 주변, 수족관, 자연 여행으로 가족 여행으로는 인기 코스인 나고야 남부를 소개한다. 이어 나고야 근교로 도예 체험이 가능한 도코나메, 고성의 운치를 품은 이누야마, 현지인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인기 만점인 구와나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 누가 나고야를 인기 없는 도시라고 했던가? 책에서는 나고야에 대한 일반 정보와 미션, 추천 일정 외에 '나고야에서 꼭 해봐야 할 모든 것'을 소개하는데 주요 랜드마크를 비롯하여 놓치면 섭섭할 근교 도시의 명소들은 하나같이 여행자들의 시선을 끈다. 특히 나고야는 지역 특유의 요리들로 유명한데, 밥을 뜻하는 메시라는 단어를 붙여 일명 '나고야메시'라는 칭호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향토 요리부터 특정 가게에서 시작돼 널리 퍼진 메뉴나 특이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창작 요리까지, 그 수와 형태도 다양하니 꼭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바삭바삭한 장어구이를 작게 잘라 가득 올린 장어 덮밥인 히쓰마부시와 한 TV방송에서 연예인이 무척 먹음직스럽게 먹어서 꼭 맛보고 싶었던 미소오뎅도 맛보고 싶다.

 

 

 

 

 

 

| 나고야역 주변

나고야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중부국제공항에서 열차를 타고 들어오거나 시내를 잇는 지하철역과 근교 도시로 향하는 열차 및 버스센터까지 자리한다. 또한 수많은 쇼핑센터와 유명 식당들이 여행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검정색 정장을 입은 채 걸음을 재촉하는 회사원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복잡한 도시 안에서 획일화된 복장과 머리 스타일은 또 하나의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 63p

 

 

 

   나고야 여행의 시작점이자 중심지인 나고야역 주변에는 구경할 것, 먹을 곳, 살 만한 데가 많다. 볼거리로는 노리다케의 숲과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을 추천한다. 메구루버스를 타면 한두 정거장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이동도 편리하다. 또한 수많은 상점과 레스토랑이 지상과 지하를 안 가리고 꽉꽉 채워져 있으며, 도시 여행을 진수를 느껴보고 싶다면 미들랜드 스퀘어의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감상해볼 것을 권한다. 이 외에도 여행 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의 사용자 평가에서 나고야 식당 부문 1위에 빛나는 히쓰마부시 맛집 마루야 혼텐, 이름과는 다르게 나고야를 대표하는 음식 타이완 라멘 맛집 미센, 병아리 모양의 귀여운 피요링 푸딩을 판매하는 카페 잔시아누는 꼭 들려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오타쿠들의 성지라 불리는 오스 지역에도 눈길이 간다. 만화책, DVD, 게임, 피규어, 장난감 등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세계 각국의 국기를 내걸고 선보이는 다국적 요리와 상점들도 즐길 수 있으니 오감만족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특히 나고야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는 레고랜드는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팩토리, 브릭토피아, 미니랜드, 어드벤처, 레고시티 등 7개의 지역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고 하니 아이가 있는 우리 식구에겐 꼭 들러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다.

 

 

 

 

 

| 이누야마성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으로, 현재의 모습은 1537년 오다 노부나가의 숙부가 지은 것이다. (중략) 천수각은 지하 2층과 지상 4층으로 지어졌으며 안으로 들어가기 전 신발을 벗어야 한다. 출입구를 통해 지하층으로 들어가면 천수각을 지지하는 돌담과 굵은 대들보 등이 보인다.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올라갈 때는 물론 내려올 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사람이 많은 때는 특히 더 조심하도록 하자. 최상층인 망루에 오르면 강과 마을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물든 모습을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일본의 국보로도 지정돼 있다. / 200p

 

 

 

   이누야마는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소설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기에 이름이 꽤 익은 곳이다. 덕분에 <나고야 셀프트래블>을 읽으면서 이곳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는데, 그 중 이누야마성이 단연 인상적이다. 벚꽃이 만개했을 때도 아름답지만 가을에는 단풍이 물든 모습도 볼 수 있다 하니 단풍으로 가득한 이누야마성도 무척 기대가 된다. 또 시끌벅적한 관광명소가 아닌 차분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여행자에게는 우라쿠엔과 이누야마 조카마치에서의 산책도 추천하니 고즈넉한 일본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여행지일 듯하다.

 

 

 

 

 

 

   <나고야 셀프트래블>의 저자는 나고야 여행을 결심했다면 꼭 보고 싶은 명소나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래야 일정을 짜는 게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서는 나고야 여행 준비에 필요한 기본 정보와 출국에서 도착까지 안전하고 편리하게 교통을 이용하는 방법, 나고야 중부국제공항 이용법, 열차 노선도, 나고야 시내의 인기 관광명소를 운행하는 버스로 여행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메구루버스 이용법 등 꼭 필요하고 실용적인 정보들을 함께 제공하고 있으니 자유여행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나고야는 일본 여행지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인데 <나고야 셀프트래블>을 읽으며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번화하지만 도시 자체가 번잡하지 않고 여유가 있으며 고고한 특유의 정취까지 갖춰져 있어 마음이 넉넉해지는 여행을 기대하게 된달까. 반전 매력이 가득한 나고야로의 여행을 꿈꾼다면 <나고야 셀프트래블>의 힘을 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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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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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용기, 좌절과 상처, 공동체의 의미를 유려하게 담아낸 프레드릭 배크만의 새로운 대표작!

스페셜 에디션 버전으로 만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선물 같은 이야기!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도입부가 던지는 난데없는 몰입감에 덜컥, 마음에 쇠꼬챙이 하나가 던져진 기분이다. <오베라는 남자>를 시작으로 하여 <브릿마리 여기 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에 이르기까지 전작에서 보여줬던 프레드릭 배크만식의 화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낯선 문장이다. 나를 비롯하여 이미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이라면 이번에는 '하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 마을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겠구나 하고 짐작하였을 테니 말이다. 하여 이 십대 청소년이 앞으로 저지르게 될 끔찍한 결말이야 어찌되었든 결국엔 작가 특유의 스토리 구조에 따른 작법을 고수할 것이라는 뻔한 예상 따위를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도입부가 그러했듯 베어타운을 둘러싼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이야기의 전개양상이 전작들과는 사뭇 달라서, 적응이 필요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반가웠다고 표현한다면 이상할까. 그도 그럴 것이 또다시 비슷한 괴짜 인물이 등장하여 정형화된 스토리와 캐릭터에 함몰된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좀 실망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어타운이라는 이 작은 공동체 속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한 작가의 소설 세계가 이제는 점점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나로서는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반가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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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어타운은 사냥과 낚시와 자연 친화적인 환경으로 한때 '아무리 즐겨도 부족한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추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해마다 일자리와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 경제가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이어져온 '하키'에 대한 애정만이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또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다시 말해 이 도시에 있어서 하키는 도시의 자부심인 영예로운 스포츠이자 도시의 존폐와 궤적을 함께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셈이다.

 

 

  열일곱 살의 천재 하키 소년 케빈이 이끄는 청소년팀은 곧 있으면 열릴 준결승전을 앞두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우승을 한다면 지역 의회에서 하키에 중점을 둔 신설 고등학교 후보지를 결정할 때 전국에서 가장 실력이 우수한 유소년팀을 보유한 이 도시를 무시할 수 없을 거라는 기대, 그 팀이 이 도시에서 세우는 미래 계획의 구심점이 되어 새로운 아이스링크, 컨퍼런스 센터와 쇼핑몰이 차례차례 등장하여 단순한 하키가 아니라 관광, 트레이드마크, 자본이 될 거라는 정치적인 계산이 짙게 깔려있는 까닭이다. 이렇듯 소설은 지독한 완벽주의자인 케빈을 필두로 팀의 또 다른 구심점이자 케빈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는 벤이, 가난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빠른 스피드를 가진 아맛 등이 연출해내는 하키라는 스포츠의 묘미와 소년들의 우정, 경쟁, 질투심을 그려나감과 동시에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른들만의 세계를 날카롭게 묘사해나간다.

 

 

'문화'는 아이스하키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의외의 단어다. 모두들 문화를 운운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조직이 다들 자기들은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승리하는 문화뿐이다. 수네도 알다시피 모든 세상이 마찬가지지만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승자를 사랑한다. 딱히 호감이 가는 부류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승자들은 대개 강박적이고 이기적이며 배려심이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 이기기만 하면 그들을 좋아한다. / 66p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1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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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베어타운>은 성폭행, 성과주의, 빈부격차, 진실을 침묵하는 것들에 대항하는 목소리 등을 다양한 가족 형태와 인물군을 통해 다채롭게 그려나간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장황하거나 이질적이지 않고 작품 속에 잘 응집해낸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간의 작품들이 그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 쓰는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데서 그쳤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우리의 수많은 감정과 사회적 통찰, 사유하는 과정들을 침착하게 스토리와 엮어 조직해내는 능력이 꽤 탁월해졌다는 느낌이다. 이것이 그의 다음 작품을 우리가 또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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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롭게도 99그램 스페셜 에디션으로 만나는 <베어타운> 버전에는 의외의 선물이 하나 더 담겨있다. 작지만 고급스러운 양장의 부록으로 만나는 <세바스티안과 트롤>이라는 이야기다. '세바스티안은 유리 공 안에서 산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스노우 볼과 꼭 닮은 유리 공 세상 속에 들어간 세바스티안이 점점 부모와 외부로부터 단절된 채 그 속에서만 생활을 하다가 자신을 응원해주는 트롤을 만나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내용이다.

 

 

  "저 아이는 어딘가 이상하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수군거렸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듯 언제부턴가 세바스티안은 유리 공 안에서만 생활하기 시작하는데,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리의 두께도 두꺼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평범한 트롤이라고 소개하며 나타난 녀석이 그동안 세바스티안을 괴롭혔던 이름 모를 공포와 무서워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선다. 그러면서 세바스티안은 그간 자신을 괴롭혀온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유리 공 밖에서 살 용기를 가지게 된다.

 

 

세바스티안은 유리 공의 지평선에 서 있는 그들을 본다. 그들은 그가 겁에 질릴 때까지 딱 그만큼만 기다린다. 그들은 그가 겁에 질리면 좋아한다. 그들은 그가 겁에 질리면 진격한다. 아픈 모든 것, 이름 모를 모든 공포, 세바스티안이 무서워하는 모든 것. 모든 침대 및에 숨어 있던 괴물과 그의 머릿속 가장 어두운 방 안을 지키고 있던 모든 것. 어린 아이가 속에 담을 수 있는 모든 걱정이 이제 그와 트롤을 향해 곧장 달려온다. 어린아이들의 내면은 항상 어른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 25p

 

"이건 눈물이야!" 트롤은 세바스티안의 귀가 있음직한 곳에 대하 마주 외친다.

"누구 눈물?"

"너! 네가 지금까지 속으로 삼켜왔던 눈물! 내가 얘기했잖아, 내가 얘기했잖아!!!"

"뭘!?"

"유리 공 위에 금이 가든지! 아니면 네 위에 금이 갈 거라고!" /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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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하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소년 세바스티안의 마음이 만들어낸 작은 방을 유리 공이라는 은유적 대상으로 표현해낸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작지만 꽤 깊은 울림을 전한다. 언젠가 내 아이가 자라 자신만의 심연에 빠져들어 나와 외부로부터의 소통을 거절할 때가 찾아온다면 나는 책장에서 기꺼이 이 책을 찾아 건네주리라.

 

 

  <베어타운:99그램 스페셜 에디션>은 두꺼운 내용의 소설을 이렇게 4권 분량으로 나눠서 엮어놓으니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읽기에도 용이하고, 무엇보다 가벼워서 가방 안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 꽤 편리했다. 특히 곧 있으면 한 해도 저물어 갈 테고 연말연시에 이웃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특별판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믿고 읽는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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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경계인들의 고뇌 속에서 촉발되는 고독과 혼란을 향한 애도, 그리고 자기 고백!

 

  <경계인의 사색>이라는 책에서 송두율 교수는 '경계의 이 쪽에도, 저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라 하여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규정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경계인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과 서, 안과 밖, 선과 악, 속박과 자유, 위와 아래 그 모호한 경계의 주변부를 맴돌며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이며, 나는 어디에 속해있고, 어느 쪽을 갈망하는 것인지, 자신의 실존적 가치와 정체성을 저울질하며 끊임없이 헤매고 있는 존재들인 까닭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양 진영의 한계에 서 있는 망명자야말로 단수의 눈이 아닌, 복수의 눈을 갖는다'고 설파하며 경계인들의 유동적이고 객관적인 삶을 낙관하기도 하지만, 정작 수많은 이 시대의 경계인들은 자신의 삶을 정확히 규정짓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불완전함에 오늘도 흔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민자로서 스스로를 '미국인과 한국인의 중간에 선 경계인'이라 밝힌 바가 있던 소설가 임재희는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당신의 파라다이스>에 이어 자기 응시를 향한 시도들을 계속해간다.

 

 

 

 

 

 

떠나간 자, 돌아온 자, 머무른 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경계인들의 고뇌 속에서 촉발되는 고독과 혼란 속에 머물러 있는 자들의 이야기이며 애도의 표상이자, 자기 고백으로 탄생된 아홉 편의 단편소설집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떠나간 이민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자, 한국에서 여전히 머무르고 있는 자, 이렇게 세 부류로 집중된다.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한 채 정서적 뿌리를 찾아 떠도는 인물들로 궤를 같이 한다.

 

 

 

   한국을 떠날 때 왜 떠나느냐고 물었던 사람들처럼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명쾌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는 「히어 앤 데어」의 동희, 잇따른 사고로 끝모를 불행을 껴입고 살던 여인이 그것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제 자신을 되찾고자 결심하는 「동국」, LA 다운타운 한복판에 위치한 헌책방에서 발견한 한국적인 것에 위안을 받으며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들을 애도하는 「라스트 북스토어」의 나,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고향 마을에서 부모의 흔적과 자신의 근원에 접속하려는 「천천히 초록」. 무지개가 선명한 하와이 마노아에서의 삶을 갈망했고 또 그것을 이루었지만 검은 웅덩이로 변해가는 연못처럼 침잠해져가는 「로사의 연못」 속 부부, 남편과 이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소통의 부재에 빠지고 마는 「분홍에 대하여」의 셀레나, 창피하게 여겨졌던 자신의 이름이 입양되기 전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소중한 언어라는 깨닫는 「압시드」, 미국인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근원인 한국 즉, 엄마가 살아가는 공간과의 끈을 쉬이 놓칠 수 없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속 폴, 댈러스에 있는 엄마의 집으로 향하는 삼남매의 이야기를 담은 「로드」까지.

 

 

 

불분명한 것들이 오히려 진실 같았다. 캔 맥주나 방금 내린 커피가 손에 들려 있는 날은 더 오래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를 밤안개가 자욱한 날들이 이어졌다.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의 의식만이 분명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딱히 공간성도 시간성도 없는 원초적인 그리움 같은 게 뭉실뭉실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 「히어 앤 데어」 34p

 

 

나는 와락 반가움과 함께 판소리 LP판을 사 들고 태평양을 건너왔을 어느 이민자를 떠올렸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이민자가 나이거나, 내 동생이거나, 내 엄마이거나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 「라스트 북스토어」 79p

 

 

화병의 물은 썩고 꽃은 시들었다. 먹다 남은 샌드위치에 하루살이가 윙윙거렸다. 모든 것에서 악취가 풍겼다. 내 몸에서도 악취가 풀풀 나는 것만 같았다. 어정쩡하게 미국에서 살다 다시 어정쩡하게 한국으로 돌아와 사는 내 삶에서 풍기는 냄새 같았다. / 「천천히 초록」 100p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인물이지만 모두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모든 경계인들이 공통으로 사유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났지만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고, 돌아왔지만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며, 머물러 있지만 동질감을 잃어버린 사람들. 「히어 앤 데어」에서 '그 어느 곳도 온전히 편한 곳은 없었다. 모든 게 완벽하게 서로 엇비슷했다.' 는 동희의 고백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도 완전하지 못함을, 그 어느 곳에서도 완전할 수 없음을 막연하게나마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희에게 '어디에서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는 여자의 말이 보다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폴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아들'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과 '형' 노릇을 해준 사람을 떠올렸다. 양말 장수 아저씨와 공항 체크인 데스크 직원 그리고 택시 안에서 들었던 거친 목소리의 주인공까지. 그들이 잘 지내야 엄마가 잘 지낼 것만 같았다. /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218p

 

 

"나를 떠올리면 그림의 한 부분이 지워지거나 뭉개져 있는 느낌이 들어. 시간의 한 부분이 뭉텅뭉텅 잘려나간 느낌이 든다고. 그런 기분 모르지? 머리와 다리만 있는 몸으로 사는 느낌.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살 거냐는 질문도 하지 마. 날 자꾸 몰아내는 것 같아. 어디에서 사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 「천천히 초록」 101p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네 개의 알파벳은 한 남자의 슬픔이고, 유언이고,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라는 말이군요. 음. 일리가 있어요. 겨우 네 개밖에 모르는 알파벳으로 아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아비의 마음을 최선을 다해 표현한 거라고요? 나머지 알파벳을 잘 깨우치며 살 수 있도록 아들을 부탁하는 아비의 마음이 담긴 거라고요? / 「압시드」 191p

 

 

 

 

 

 

   폴에게 말끝마다 "네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몰라서 그래." 하고 꼬리를 달던 남자의 말이 유독 울컥이게 한다. 네가 이곳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너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그 단호한 한 마디가 던지는 소외에 몸을 웅크리고 등을 돌려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루만져지는 듯해서 어쩐지 슬퍼졌다. ‘넌 여자가 아니라서 잘 몰라’, ‘엄마가 안 되어보면 모르는 거야’, ‘넌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아니니까’. 누군가에게 숱하게 말했고, 누군가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말들 아니었던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을 중심이라 여기고 경계 밖으로 등떠밀었던 건 과연 누구였던가, 문득 그 불편한 기억들을 되짚어보게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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