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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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의 서정성과 기묘한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일본 문학의 거장이 낳은 신작!

무언가를 지키고자 했던 간절함, 풀꽃들이 전하는 수수께끼 같은 진실!

 

 

 

   "토마토야, 잘 자라라." 4살 된 나의 아이가 자신이 키우고 있는 토마토 모종에 물을 주며 꼭 이렇게 말을 하곤 한다. 아이는 꼭 그렇게 말해주어야만 토마토가 잘 자랄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이처럼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에겐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끊임없이 얘기해주어야만 하는 대상이 있다. 이를 테면 씨앗을 틔우고 자라는 이 땅의 모든 생명들, 나의 아이,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으로부터 다정한 속삭임과 눈길, 너를 언제나 지켜주겠다는 단단한 믿음과 같은 신호를 충분히 느끼고 자라야 하는 대상들이며 그래야 비로소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일본 서정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의 신작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반드시 지켜야만 했던 한 여인의 애틋한 염원과 간절한 소망이 담긴 맹세에 관한 이야기다.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올 거야. / 158p

 

 

 

풀꽃들이 들려주는 수수께끼 같은 진실

 

 

   오바타 겐야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왔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기쿠에 고모의 시신을 인도받게 된다. 그는 곧 기쿠에 고모의 고문 변호사인 수잔 모리로부터 약 41억 8천만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조카인 겐야에게 양도하겠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접하고야 만다. 게다가 그녀가 살았던 랜초팔로스버디스의 고급저택까지 물려받게 된다. 밤에는 태평양의 파도 소리가 들리고 넓은 정원과 훌륭한 나무, 석재로 꾸민 아름다운 집이다. 이 엄청난 상속 내용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도 잠시, 수잔 모리는 유언장에서 삭제된 마지막 다섯줄의 내용을 언급하며 그를 더욱더 충격에 빠뜨린다. 죽은 줄로 알았던 고모의 딸 레일라가 여섯 살일 무렵 마트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그녀를 찾게 된다면 70퍼센트를 레일라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인 것이다.

 

 

 

   무려 27년 째 살아 있는지조차도 행방을 알 수 없던 레일라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겐야는 그녀를 추적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살아 있다면 지금쯤 33살이 되었겠다고 생각하며 겐야는 사립탐정인 니콜라이 벨로셀스키에게 레일라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맡긴다. 그 사이 겐야는 겐야대로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고모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그녀의 일생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의 편지들, 노트북의 비밀번호, 서른 세 개의 거베라 화분 등과 같은 곳에서 미스터리 같은 단서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치 당신의 딸 레일라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처럼, 그것을 겐야가 알아채주었으면 하는 것처럼 묘한 것이어서 겐야를 의문에 빠뜨린다.

 

 

 

   한편 사립탐정이 레일라의 행방을 찾는 동안에 겐야는 고모의 저택에서 그녀를 사랑하던 이들과 만남을 가지고, 또 아름다운 정원의 정취와 따스한 햇볕의 온기를 느끼는 일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모가 남긴 수프 레시피로 사업을 구상할 계획을 세우고, 고모가 생전에 만들어보고 싶어했다던 정원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풀꽃 속에 담긴 고모의 바람을, 속삭이던 맹세에 응답하기 위해서.

 

 

기쿠에 씨는 레일라가 얼마나 영리하고, 마음씨가 얼마나 고우며, 모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대요. 어른이 되면 키도 크고 다들 돌아볼 만큼 예뻐질 거야, 그렇게 되도록 이 꽃밭에게 부탁해보자, 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레일라의 마음과 꽃, 풀, 나무의 마음은 말을 할 수 있어. 꽃도 풀도 나무도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말해줄 거야. / 393p 

 

 

 

 

 

 

   소설은 사립탐정 니콜라이 벨로셀스키가 행방불명이 된 레일라로 짐작 되는 아이의 모습이 찍힌 CCTV영상을 복원해오면서 커다란 전환을 맞이한다. 그럴 리 없다고 마음속으로 타이르고 되뇌었던 생각들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소설은 놀라운 반전을 드러낸다. 기쿠에 고모가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 어떠한 마음으로 이 저택에서 살았을 것인지, 평생토록 가슴앓이 하며 살았을 그녀의 일생을 떠올리며 겐야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소설은 마냥 미스터리에 몰두하지도, 그녀의 기구한 사연에 침잠하지도 않고 내내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따스한 온기와 희망을 전하려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건 굉장해요. 오늘 이렇게 호화로운 저녁을 먹을 수 있다니…….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생에는 살아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이 무진장 흘러넘친단다, 하고 늘 말해주었어요. 주술처럼 말이에요. / 191p

 

 

어떤 인간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이지요. 그것이 불분명하면 인간은 의지해서 설 소중한 뭔가를 갖지 못한 채 생애를 마쳐야 합니다. / 385p

 

 

 

 

 

 

   평온한 일상 뒤에 우리는 저마다 기구한 사연 하나쯤은 숨긴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설명하지 못할 홀로된 고독과 외로움을 서정문학의 거장답게 매우 섬세한 필치로 우아하게 완성해낸 작품이라 유독 기억에 남을 듯하다. 알아듣지 못할 풀꽃들조차도 진심으로 말을 걸면 반드시 응해올 거라는 소설 속의 문장처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늘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야 후회도 미련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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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명작 산책 - 내 인생을 살찌운 행복한 책읽기
이미령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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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가 들려주는 명작 이야기!

 

 

 

 

   지난해에 읽은 책들을 쭉 세어 보니 무려 백 하고도 세 권을 더 읽었더라고요. 특별히 많이 읽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숫자에 무척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던 단조로운 일상에 책이 주는 즐거움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상상할 수 없었던 낯선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겠지요. 뭐,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는 애초에 '이야기'라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책에 이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나에게 반드시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내가 들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그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라고요.

 

 

 

   <YTN 자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로 무려 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다던 이미령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은 '무지한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기도 하였고, 콘크리트보다 더 딱딱하게 굳은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어루만져주기도 하였고, 딱 내 눈알 크기 밖에는 보지 못하는 세상을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도록 동공을 홀짝 열어주기도' 하였다고요. 쉬지 않고 '천 권에 가까운 책을 읽어대자 그제야 사색이 일렁이고 나와 다른 자에 대한 여유 있는 관조의 틈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독서의 양이 삶의 질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자는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 울림이 컸던 책들, 나의 벗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을 고민 끝에 골라 그것으로 하여금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저마다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 싶었나봅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어느 지점을 함께 해준 책에 대한 진솔한 독서 일기이자, '나는 왜 책을 읽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담아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이 커지고 사색을 일렁이게 하는 지성들과의 만남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총 48편의 명작을 크게 다섯 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습니다. 찬란하지만 서글픈 인생을 관조하고, 청춘의 시간을 더듬어가기도 하며, 자연이 들려주는 생명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오만한 세상에 뒤통수를 날리기도 하고 인생의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는 지점에 이르러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찬란하게 슬픈 생명의 법칙을 다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를 쫓는 인간의 단상을 그린 <고도를 기다리며>, 자연주의자의 삶을 다룬 <월든>과 같은 명작들은 꽤나 익숙하지만 그 외에는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살짝 망설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간 저는 독서론에 관한 책이라 하면 약간의 편견이 있던 터였습니다.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에는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입니다. 저의 생각을 비교판단하기보다 그저 저자의 생각대로 작품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러한 저의 고민은 기우에 그쳤습니다. 마치 라디오 방송에서 사연을 들려주듯 저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책의 한 단편들은 굳이 읽어보지 않았다하더라도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으니까요.

 

 

 

 

 

 

   여러 책들 중에서 외투 한 벌에 담긴 쓸쓸한 실존을 다룬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라는 작품이 퍽 인상에 남습니다. 관청의 9등 문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너무나 낡아서 걸레로도 쓰지 못할 자신의 외투가 더 이상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칼날 같은 한파를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솜씨 좋은 재단사는 더 이상 수선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그의 외투를 보며 이참에 새로운 외투 한 벌을 마련하라고 권했어요. 외투 한 벌을 마련하는 일이란 그의 봉급을 다 털어 넣어야 할 정도로 사치와 다름없었지만, 그는 돈을 아끼고 아껴서 결국 아주 멋진 외투를 마련합니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고급 천을 써서 맵시가 나는 이 외투를 입는 순간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날개가 달린 것처럼 황홀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한밤중에 광장에서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맙니다. 그는 곧 혈안이 되어서 외투를 찾아 나서지만 상심만이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이내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하고 혀를 찰 법도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게 되는 절망감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쓸쓸한 실존, 그 덧없으면서도 가장 버거운 삶의 무게! 우리는 저마다 그런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그 쓸쓸한 실존.

아까끼가 평생에 단 한 번 장만한 고급 외투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신분들의 눈에는 허섭스레기로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령이 되어버린 아까끼가 자기 몸에 딱 맞는 관리의 외투를 빼앗은 뒤 사라지고 말았다는 내용은, 인간 희로애락의 무게와 부피는 누구에게나 아주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요. 더 가지려고 머리를 굴리고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작품입니다. / '외투' 중에서 29p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며 살면 명예나 체면이 상실되는 시기에 쉽게 감정이 상하여 나약해지며",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을 가지고 살게 되므로 일상이 단조롭고 권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그의 정체성"일 수도 있으며, 이렇게 남이 만들어낸 정체성에 휘말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늘 자신을 설명해주어야 하고", 이런 삶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중에서 102p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역시 단연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교개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종교개혁에 관해 배우기를, '신과의 소통이 소수 특권층에게만 허락되었다고 고집하던 세력들에게 분연히 맞서 피로써 쟁취해낸 자유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를 주도한 칼뱅이 사실은 구교의 교황이나 황제보다 더 무시무시한 힘으로 종교의 자유를 외치던 시민들을 자신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사상의 자유도 빼앗았으며 그야 말로 '칼뱅이 법이요, 법이 칼뱅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철저히 배척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어느 무명의 신학자 한 사람이 칼뱅의 종교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막 스무 살을 넘긴 미셀 세르베투스는 참으로 맹랑하고 무모할 정도로 칼뱅에게 신학적 견해를 묻는 대범함을 보였습니다. 이에 칼뱅은 하늘 아래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를 비판한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은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라고요. 오늘날이라고 이와 다를까요. 우리는 누구나 의견을 낼 권리가 있고 다양한 견해를 포용해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때때로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을 때 불쾌감을 느끼거나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통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백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 230p

 

 

 

 

 

 

   이렇듯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명작을 엄선하여 이를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볼 것을 권합니다. 그것은 결국 '책 읽기'라는 행위를 필요로 하겠지요. <천천히 읽기를 권함> 편에서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행복하고, 천천히 읽어가는 동안 행복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책을 덮으면서 행복하면 됐지 더 바랄 것이 뭐 있을까요' 라고 하였듯 그저 책을 가까이 하고 일상처럼 여기면 되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며 힘들 때는 위안이 되고,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그저 감동을 느낍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 덕분에 꽤 오랜만에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그런 소중한 계기를 선물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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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디블 가족 -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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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통화 가치가 몰락과 함께 국가적 대위기가 찾아온다면!

정부와 사회, 개인의 역할에 관한 냉엄한 고찰과 소름 끼치도록 대담한 이야기에 매혹되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은 21세기 이후의 세계 패권을 결정짓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화폐'가 될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중국의 위안, 일본의 엔, 유로, 마르크 등은 달러나 파운드와 같이 기축 통화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계속해왔다. 그만큼 국력은 화폐와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지속적인 달러의 약세, 중국이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머지않아 실현된다면 미국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찾아올 것인가에 대해 이미 곳곳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소설 <케빈에 대하여>로 이미 국내에서도 꽤 많이 알려진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맨디블 가족>을 통해 이와 같은 의문이 실현되고야 만 2029년의 미래를 연출해냈다. 너무나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소름끼치는, 이 대담하고도 기묘한 이야기가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을 해야 하는 삶, 그것이 진정 빈곤한 삶이었다." / 239p

 

 

 

   <맨디블 가족>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한 금융 쿠데타로 인해 한순간에 달러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미국 사회에 몰아닥친 전쟁 같은 공포를 그려낸 소설이다. 9.11 테러를 겪고, 글로벌 금융위기에 뒤이은 세계경기 침체를 맞아야 했던 시절을 지나 2024년에는 주요 인터넷의 인프라가 마비되는 사태를 겪었던 미국인들은 이제 겨우 과거의 공포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중국발 금융 쿠데타로 인해 가지고 있던 금을 정부에 몰수당하고 가진 재산이 휴지조각이 되는 충격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미국의 중산층 가족을 대표하는 맨디블 일가 역시 이 갑작스럽고 비자발적으로 붕괴된 자신들의 일상에 끔찍한 공포가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금 일어나는 이 모든 일 말입니다. 채무 포기, 주식 시장 붕괴, 금 회수, 무자비한 대기업들의 방코르 보유 금지……. 배부른 자본가들의 연금이 날아가 버리고 갑부들의 두툼한 포트폴리오가 화형당하고……. 이 모든 게 지금까지 이 나라에 일어난 일들 가운데 최고의 일이라고요. 알아들어요? 이젠 통제할 수 없어요. 알아들어요? 잔뜩 멋을 부리고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고급 마티니를 홀짝거리며 아직도 부족한 게 과연 남았는지 고민하고 오늘은 또 어디에 10억 달러를 쓸까 골몰하는 지대추구자들. 누구는 이 나라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있고 누구는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난방을 켜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가고. 미국은 그런 나라로 건립된 게 아니었잖아요. 알아들어요?" / 145p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일로 인해 파괴된 것이 아닌, 이른바 시스템의 붕괴는 자연재해보다도 치명적이고 잔혹하다.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과다 통화 제작은 지독한 인플레이션을 야기시키며 대부분의 일자리를 앗아갔고, 아이들은 꿈을 잃어야했으며, 각종 약탈 및 도덕적 해이들은 세상이 눈 깜짝할 새에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은 97세의 나이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부유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더글러스 맨디블을 통해서 재산의 대부분을 잃은 몰락한 부유층의 전형을, 시립 노숙자 보호소에서 근무하는 플로렌스를 통해서는 위기 속에서 악착같이 가족을 건사해내려는 주부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플로렌스의 제부인 로웰에게서는 현실감 없이 여전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지식인의 허울을 그려내며 저마다 경험해서 느끼는 혼란과 공포들을 매우 입체적으로 묘사해낸다.

 

 

 

우리가 수십만 달러를 들여 그애들 머릿속에 넣어준 것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거라고. 게다가 난 우리가 애들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잘못 키운다는 얘기가 아니야. 그애들은 한 번도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하룻밤 사이에 역경과 자제와 실망을 배우라고 해야 하나." / 214p

 

 

"도덕적 해이에 대해선 아버님 말씀이 맞는 것 같다.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잖아. 미래를 위해 저축한 사람들. 미래를 믿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그리고 미래에 닥칠 모든 것을 책임질 생각으로 저축을 해둔 사람들이라고. 윌링, 네가 못마땅해하는 비관주의는 그런 배신감에서 나온 거야.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기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거든. 거대한 몹쓸 장난에 당한 기분이라고." / 342p

 

 

 

   소설은 국가와 정부가 자신의 기능을 잃고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상, 즉 디스토피아를 떠도는 유목민에게 자유란 무엇인지 국가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생생하고도 철저하게 담아낸다. 이는 소설의 주축을 이루는 맨디블 가의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윌링이 자라 2047년에 이르러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삶은 어떤 식으로든 지속되어야 하기에 윌링은 불완전하지만 또 그대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가려 한다. 훗날, 윌링이 사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시스템을 믿지 않고 그 시스템의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당 시스템은 영원히 파괴되어버린다. 통화정책보다 훨씬 더 인플레이션을 부추긴 요소가 무엇이었던가. 달러는 무가치하며 내일은 더 무가치해질 것이라는 사회의 자기충족적 추정이 아니었던가. 놀랍게도 세상은 우리의 상상에 따라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무법 도시에 사는 것처럼 행동하면 실제로 무법 도시가 되어버린다. / 420p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에 사는 것보다 더 지독한 상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두가 떠나고 싶어 하는 나라에 사는 것이었다. / 484p

 

 

 

 

 

 

   이처럼 <맨디블 가족>은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저자의 이력답게 사회 문제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토대로 완성해낸 사회소설 중 단연 역작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우리 사회에 떠도는 다양한 음모론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이슈들을 한 데로 조직해낸 능력이 너무나 탁월해서 섬뜩할 지경에 이르니 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공포와 비극을 일종의 블랙코미디처럼 위트 있게 표현해낸 부분들로 하여금 읽는 재미까지 선사하니, 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문학에게 기대하는 모든 묘미를 이 책 한 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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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심리학 - 너의 마음속이 보여
송형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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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관계심리학!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얼마 전에 지인과 함께 한 모임에서 나를 두고 이런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첫 인상은 깍쟁이 같은 느낌이 있었달까. 지내고 보니 엄청 착한 성격이란 걸 알았지." 이 말에 나는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내가 깍쟁이 같았다고?" 그간 나에게 그런 구석이 있을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말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타인은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한 거울 같은 존재'가 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될 때 좋은 근거를 얻을 수가 있다. 어쩌다가 상대가 나를 오해하게 된 것인지 되짚어봄으로써 문제가 발생한 관계인 경우 해결 방안을 모색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음으로써 성장한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타인이 보이는 나쁜 행동에 대해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 심리학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정신 감정편'에 출현하여 멤버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해 화제를 모았던 송형석 정신과 의사 역시 자신이 집필한 <위험한 심리학>을 통해 관계 심리학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타인의 마음에 대해 파헤쳐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겪다 보면 그때그때 나 자신의 모습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너를 배운다

 

 

   <위험한 심리학>은 독자 스스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남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 지 고민해보기 위한 심리학 개론서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인을 어렵게 느끼고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뭐 어려울 것 없다. 남들이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인간인지나 확실히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잘 써먹어나 보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해도 좋을 재미있는 심리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겉모습이나 사소한 행동, 말투, 말의 속도와 간격 등 사람의 성격을 보여주는 여러 요소들을 통해 '사람을 간파하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이어 2장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대상관계 이론, 융의 인격 분류 등과 같이 '심리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도구'들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명령하듯 대하는 사람이나 늘 자신이 대화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통해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의 유형을 살펴보고, 반대로 4장에서는 뜬구름만 잡거나 의심이 많은 사람처럼 '타인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의 유형까지 함께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5장에서는 타인과 눈도 못 마주치거나 변명만 늘어놓는 등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타인에게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들'의 유형까지 살펴봄으로써 일종에 문제 있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를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모색해본다.

 

 

 

   저자는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순서를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일단 첫 번째로 평소 사람들의 성격에 관한 책을 읽고, 자신만의 의견도 만들어보는 등 다양하고 숙련된 경험을 미리 습득해볼 것을 권한다. 두 번째로는 상대방을 만난 후, 모습이나 행동, 대화 하나하나마다 떠오르는 선입견을 일단 머리에 저장한다. 이때 선입견인 만큼 멋대로 생각해도 좋지만, 선입견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반대의 경우까지도 다양하게 가정보아야 한다. 세 번째는 상대방이 나의 기대와 어딘가 맞지 않는 행동을 보인다면 머릿속에 그 부분을 잘 기억해둔다. 그 부분이 그 사람의 특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에게서 떠올린 것들을 단어 혹은 이미지로 바꾸어서 머릿속에 죽 나열해본다. 이를 퍼즐 맞추기라고 하는데 여러 조각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다 보면 특정한 사람의 형상이 떠오를 것이다. 이를 테면 내가 얻어낸 이미지 조각들이 도도함, 행복, 웃음, 자신감이라면 어딘가 밝고 약간 거만한 사람이 보일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퍼즐의 그림이 잘 맞지 않을 때가 있다면 당신이 잘못 보았든가 원래의 선입견이 잘못되었든가 둘 중 하나임으로 일관성 없는 조각을 끄집어내라. 원래는 수줍고 어리숙한 사람이지만 후천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자신감을 얻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서로 다른 조각들을 모두 갖고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물론 풍부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상대방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관계 형성에 꽤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아무리 오래 만나도 전부를 파악할 수는 없는 존재다.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볼 때 내가 아무리 꼼꼼하게 상대방을 파악해서 이야기해주더라도, 상대방이 그에 동의할 확률은 한 5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30퍼센트 정도는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고, 30퍼센트 정도는 맞는 얘기를 했지만, 상대방이 스스로를 잘 몰라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중복되는 10퍼센트의 경우는 무엇일까? 바로 상대방도 나도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 48p

 

 

상대방이 주로 쓰는 단어가 무엇인지 잡아낸 다음, 그 단어의 특성을 분석하라. 혹은 그 사람이 쓰는 단어 가운데 남들이 잘 쓰지 않는, 특별히 강렬한 것이 있다면 이 역시 눈여겨보라. 말에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모두 녹아 있다. / 62p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껄끄러운 상대가 있다면 무조건 피하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읽는 법과 그 근간이 되는 심리학 이론을 짚어줌으로써 보다 현명하게 대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일러준다는 것이다. 자신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과장된 감정으로 표현하는 '연극성 인격 장애', 규범이라든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기능 자체가 결여된 이들을 가리키는 '반사회성 인격 장애',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극단적으로 모르는 타입의 경우를 가리키는 '아스퍼거 증후군', 친밀한 대인관계에 대해 고통을 느끼며, 관계 맺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분열형 인격 장애' 등이 그러한 예다. 단순히 '나와는 잘 맞는 않는 사람', '저 사람 참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네'라고 판단하기보다 이러한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지, 보다 더 넓은 시선으로 더 큰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나쁘게 보였던 이들의 마음을 이전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나의 내면의 폭 역시 점점 더 넓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반응을 할 때 그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서로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이 내가 미워서 자꾸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거나 나를 우습게 보고 무시하는 투로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사실은 그 사람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행동을 유도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쉽게 말해, 상대방의 반응은 내 탓이 수도 있다는 것이다. / 98p

 

 

 

 

 

 

   저자는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 마음을 아는 데 왕도란 없다는 것. 끝없는 관찰과 끊임없는 탐구심만이 사람 마음을 보는 정확한 눈을 키워준다'는 말로 이 책의 핵심을 요약한다. 특히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가 가장 인간다운 거라는 말이 가장 와 닿는다. 결국 우리의 삶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라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기에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낄 때, 더불어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싶을 때 이 책이 그때마다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것 같다. 평소 가볍게 읽기 좋은 관계 심리학 서적을 찾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추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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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환상과 은유로 홀로코스트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소설!

기존 소설의 형식을 과감하게 탈피한 독창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한 대학살을 가리켜 '홀로코스트'라고 말한다. 유년시절, 나치의 박해를 피해 숨어 지냈던 유대인 소녀의 <안네의 일기>를 통해 처음 접했던 홀로코스트에 대한 희미한 기억은 영화 <피아니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 소설 <더 리더>를 통해 더욱 뚜렷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지만 그 무엇도 '왜 그들은 학살당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피해자로서, 살인자는 살인자로서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이 비극의 내부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들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자기 안의 무엇이 죽었고, 또 무엇을 죽여야만 했는지, 이 강렬한 고통의 역사 속에 담긴 온갖 감정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실된 반성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문학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는지 그 역할을 충실히 보여준 작품이자, 환상과 은유라는 놀라운 기법으로 새로운 홀로코스트 문학의 지평을 연 남다른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상처는 그렇게 전이된다

 

 

  어느 날, 나치에게 살해당한 줄로만 알았던 엄마의 외삼촌인 안셸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의 등장이 마치 신호탄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엄마와 아빠는 밤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은 '저 멀리'로부터 얻은 공포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홉 살 소년 모미크는 이들이 한사코 쉬쉬하는 '역사에서 이름을 지워버려야 마땅한', '저 멀리'의 존재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들 주변을 서성거리지만 도무지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모미크는 분명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어떤 무서운 존재인 '나치 짐승'이 아름다웠을 땅 '저 멀리'에 저주를 걸어놓았을 것이라 상상하며 이 미지의 존재에 저주가 걸린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모미크는 나치 짐승의 실체에 가까이 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참 엉뚱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나치에 희생된 자의 경험이 그것을 겪어보지 않은 다음 세대에까지 어떤 식으로든 유전처럼 전이되는 광경을 드러내고 있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난 더 이상 못하겠어." 나는 울먹이며 두 사람에게 각각 말했습니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 너무 끔찍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예전처럼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겠어?" / 178p

 

 

 

 

 

   그러고 보면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홀로코스트 2세대로 상징되는 모미크가 자신에게로 전이된 이전 세대의 공포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저 멀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서른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이제 분명해졌지만 여전히 그것은 진흙처럼 들러붙어 그에게서 쉬이 떨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2장에서 4장까지는 작가가 된 모미크의 시선에서 자신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 브루노 슐스가 나치에게 총살당하기 전의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안셸 할아버지가 수용소장인 나이겔에게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삶의 유예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육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나간다. 마지막 장에서는 생존자이나 이후의 삶을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년 시절의 이웃들을 소환해내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 새로운 역할자로서 살아나가는 과정을 그려나가기도 한다.

 

 

 

 

 

 

   놀랍게도 저자인 다비드 그로스만은 그 어떠한 소설에서도 보지 못한 환상적인 기법과 은유, 백과사전의 형식을 빌린 소설이라는 독창적인 기술을 사용하여 홀로코스트라는 묵직한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직조해낸다. '왜 유대인인가?' 하는 이 이해 불가한 물음에 대해 소설은 "유대인이 되는 법, 유대인 같은 표정을 짓는 법, 유대인과 똑같은 냄새-예를 들면 할아버지, 무닌, 막스와 모리츠에게서 나는-'짐승'을 미치게 한다는 냄새를 풍기는 법에 관해 알아봐야 할 것"이라는 꽤나 은유적인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곳곳에서 신비로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무척이나 난해할 때가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이 일련의 비극 앞에서 어떤 언어가 이것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듯, 관념과 사념을 넘나드는 언어의 롤러코스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나라, 우리의 공기, 우리의 정의관, 너희가 도덕이라 부르는 것이 되겠지. 우리는 천 년 동안 번영할 테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야. 만약 누군가가 새로운 이념을 들고나온다면 우리와 싸워야 하겠지. 거기서 우리가 진다면 그들이 옳다는 뜻일 거고. 세상 이치가 그래. 이 전쟁에서 너는 패자의 편에 있어. 승자는 우리야. 내 아들이 읽게 될 역사책에는 그렇게 쓰여 있을 거야. 우리가 승자라고." / 399p

 

 

어쨌든 그 영혼은 제 것입니다…… 제 유일한 소유물이죠. 그것이 그토록 냉담하게 파괴되는 것은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죽이기 전에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죠. 그러니 지금 제가 즐겁게 당신 안에서 뉘우침을, 단 한 번의 찌릿한 통증이나 양심의 가책을 찾게 해주세요. 당신에게 연민이 있다고 믿게 해주세요. 왜냐하면 저에게는 이 작은 허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518p

 

 

그러니까 당신들은 우리에게서 환상을 빼앗았습니다, 지옥에 대한 환상을요…… 지옥에도 환상이 필요합니다. 약간의 무지와 비밀스러움도 필요하죠…… 그래야만 희망이, 예상만큼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옥을 항상 용암이 끓고 배럴 속에서 아스팔트가 부글거리는 곳으로 상상했는데 당신들이 나타나서, 죄송합니다만, 당신들이 나타나서 우리의 상상이 얼마나 시시한지 가르쳐 주었죠……." / 524p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하지만 읽어봄직하다는 생각은 든다. 읽었던 장면을 다시 읽어보고, 또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보는 독서를 한다는 게 독자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기는 하나 이 작품이 쌓아올린 문학의 남다른 가치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며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묘한 감동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 순간 다비스 그로스만이라는 이름을, 두터운 페이지가 직조해낸 이 깊은 상상력을 어떤 식으로든 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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