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 성교육 전문가 엄마가 들려주는 43가지 아들 교육법
손경이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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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전문가가 알려주는 즐겁고 건강한 아들 성교육법!

우리 아들에게 올바른 성 의식과 젠더감수성을 전하기 위한 엄마표 성교육!

 

   어느 날,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가 있는데 4살이 된 아들이 "엄마, 쉬는 이렇게 해야지." 하며 허리를 앞으로 기울이며 소변을 누는 시늉을 한 적이 있다. "아, 엄마는 앉아서 소변을 볼 거야. 엄마한테는 고추가 없으니까." 하고 대답을 하니, "왜? 엄마는 고추가 없어?" 하고 질문을 다시 하는 것이었다. 이에 어떠한 대답을 해줘야 아이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꽤 오랫동안 망설였던 것 같다. 남자한테는 있는데 여자한테는 없다는 식의 단순한 대답만으로 이 아이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어느 선까지 설명해줘야 하는 것일까 나 역시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 아이가 좀 더 자라 자신의 몸과 여성의 몸에 대해 궁금할 때가 오고 자라서는 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엄마인 나는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역시나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 '이런 건 아빠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미뤄뒀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나의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성교육에 대한 개념이 사회적으로 정착되어 있지 않았다. 성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은 어쩐지 부끄러운 일이고 감춰야 할 것 같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노골적이거나 변태적인 성향으로 취급받는 세대였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근무하던 서점의 어린이 도서 코너에서 꽤 어린 아이들이 <why 사춘기와 성>이란 책을 유독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기다 첫 성경험의 시기가 언제이냐는 질문에, 이르면 13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대답한 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기사를 읽고 큰 충격에 빠진 적도 있다. 하물며 이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때부터 기본적인 성교육이 실시된다고 하니, 우리 사회가 성교육 혹은 젠더교육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고 있는 만큼 우리 가정 내에서도 즐겁고 건강하게 아이와 성교육 소통을 할 수 있는 방편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어릴 때보다 성 평등 의식이 더 강해진 사회에 맞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나아가 성 평등 의식이 더더욱 강해질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변화를 이끌어 나가게 하려면 부모님이 먼저 젠더감수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평소 집 안에서 부모님이 어떤 젠더의식을 드러내고 있는지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니까요. / 42p

 

 

 

 

 

 

 

성교육의 출발점은 일상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은 부모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교육 방법을 전하기 위한 자녀교육서다. 엄마들이 아들 성교육을 어려워하는 입장을 고려하여 자연스럽고, 편하게, 행복하게, 즐겁게 웃으면서 할 수 있도록 일상처럼 접근하는 법을 알려준다. 특히 성교육이란 것은 한창 성에 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사춘기를 맞이했을 때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성적 결정권자는 자기 자신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엄마뿐만 아니라 남편도 함께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이제 아들을 아들답게 키우는 시대는 끝나 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적 행동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리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상대방의 성에 대해 이해하는 젠더감수성을 일상에서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성 의식과 성 평등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 15p

 

 

 

   첫 번째 장에서는 아들 성교육을 위한 10가지 핵심 원칙을 소개하는데, 사실 아들 성교육과 딸 성교육은 달라야 할 이유가 없음을 원칙으로 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자 아이는 여자 아이 답게, 남자 아이는 남자 아이 답게 라는 인식은 이제 사라져야만 한다. 또 성을 성관계로만 이해하다 보니 딸에게는 성폭력을 피하도록, 아들에게는 사고를 치지 않도록 조심시키는 식으로만 교육하고 있었던 기존의 성교육에서 탈피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성장 단계를 생각하지 않고 부모가 지레짐작으로 너무 많은 정보를 집어넣거나, 내 몸의 주인은 오로지 나라는 자기결정권 교육 없이 오직 성 지식만 가르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올바른 성교육을 위해서는 첫째로 부모가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성교육을 배우겠다는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 부모와 아이가 일상처럼 질문과 대답이 계속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아이의 단계에 맞는 지식을 알려주고, 자기 몸은 소중하므로 그 주인으로서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듯 상대방의 몸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를 먼저 가르쳐줄 것을 독려한다.

 

 

남자는 고추가 있고 여자는 고추가 없는 것이 아니에요. 남자는 음경과 고환이 있고 여자는 소음순과 대음순이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을 바꾸니까 여자는 고추가 없는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남자와 다른 성기를 가진 존재라는 점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까. 이렇게 인식해야 서로를 존중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있다, 없다'가 아니라 '모두 있다'로 남성도 여성도 평등하다는 존중 의식을 키워 주세요. / 49p

 

 

 

 

 

 

   사실 내 아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마음대로 뽀뽀하거나 아이의 몸을 만질 때가 있다. 심지어 아이에게 귀엽다면서 지인이 마음대로 아이에게 뽀뽀를 할 때 아이가 거부를 하면 "네가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하고 나도 모르게 지인을 두둔할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나의 행동이 아이의 감정과 판단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는 점을 책을 읽으며 반성하게 되었다. 비록 내 아이라 하더라도 아이의 몸은 아이의 것이므로 "뽀뽀해도 될까?" 하고 동의를 구하거나 아이가 품을 허락하지 않거나 스킨십을 거부하면 "지금은 엄마랑 안고 싶지 않아? 그래, 알았어." 하고 아이의 기분과 감정을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아이의 감정과 판단을 존중한다는 신호를 계속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지금 나는 뭘 원하고 있지?' '지금 내 감정이 어떻지?' 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네 몸의 주인은 너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스스로 자기결정권과 스킨십 예절을 익히게 하는 이러한 시도가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와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유념해야겠다.

 

 

 

이제 더 이상 무조건 욕구를 억누르라고만 가르치는 성교육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안전하고 책임 있는 성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중략)… 연인 사이에 우발적으로 첫 섹스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서로 어떻게 처음 관계를 가질지 아무 대화도 안 하고 눈치를 보다가 갑작스러운 시간에 낯선 장소에서 준비도 없이 하는 섹스인 것이죠. 이런 섹스만큼은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 주셔야 합니다. 계획 섹스.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 136p

 

  앞서 말했듯이 2016년 '청소년 건강 행태 온라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내 중고등학생들의 첫 성관계 연령이 13.1세이며, 성관계 경험이 있는 비율은 조사 대상의 6.3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놀랍지만 이게 현실이다. 나의 아들이라고 예외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여자 친구를 사귀느라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혹시 모를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느라 아들의 연애를 방해할 수도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자가 말한 대로 평소 꾸준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아이가 부모님에게 연애를 감추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모가 걱정하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서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나름의 방법을 찾아보는 게 중요한 듯하다. 특히 정확한 피임법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스킨십을 비롯한 성관계는 상대방도 동의할 때 할 수 있는 것이지 상대방이 거부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필요하다. 상대방이 거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을 대하는 기본 중의 기본임을 아이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 꼭 선행되어야겠다.

 

 

 

 

 

 

   이 외에도 책에는 아이의 자위행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이가 부모의 성관계를 봤을 때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아이가 성폭력을 당했을 때 취해야 할 행동 등은 무엇인지 당황하지 않고 아이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시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실려 있다. 책의 말미에는 성교육 추천 도서나 성교육 동영상, 저자와 아들이 직접 나눈 섹스 토크 동영상이라든지, 성폭력 신고 전화번호도 기재되어 있으니 참고로 하면 좋을 듯하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을 읽으며 성교육이라는 것은 성관계를 중심으로 한 교육이 아니라 올바른 성의식은 무엇인지, 성 평등은 왜 중요한지, 젠더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임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언젠가 해야겠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 아들은 누구꺼?" 라고 질문했을 때 "엄마꺼"가 아니라 "내 꺼"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나의 성적 자기결정권만큼이나 타인의 결정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도록 아주 사소한 데에서부터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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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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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희망이자 도시의 존폐를 결정 지을 운명의 경기를 앞둔 베어타운!

희망과 용기, 좌절과 상처, 공동체의 의미를 이처럼 유려하게 담아낸 작품은 없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도입부가 던지는 난데없는 몰입감에 덜컥, 마음에 쇠꼬챙이 하나가 던져진 기분이다. <오베라는 남자>를 시작으로 하여 <브릿마리 여기 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에 이르기까지 전작에서 보여줬던 프레드릭 배크만식의 화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낯선 문장이다. 나를 비롯하여 이미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이라면 이번에는 '하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 마을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겠구나 하고 짐작하였을 테니 말이다. 하여 이 십대 청소년이 앞으로 저지르게 될 끔찍한 결말이야 어찌되었든 결국엔 작가 특유의 스토리 구조에 따른 작법을 고수할 것이라는 뻔한 예상 따위를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도입부가 그러했듯 베어타운을 둘러싼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이야기의 전개양상이 전작들과는 사뭇 달라서, 적응이 필요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반가웠다고 표현한다면 이상할까. 그도 그럴 것이 또다시 비슷한 괴짜 인물이 등장하여 정형화된 스토리와 캐릭터에 함몰된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좀 실망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어타운이라는 이 작은 공동체 속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한 작가의 소설 세계가 이제는 점점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나로서는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반가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스포츠가 누군가에게는 정치가 되어버리는 순간

 

 

   베어타운은 사냥과 낚시와 자연 친화적인 환경으로 한때 '아무리 즐겨도 부족한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추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해마다 일자리와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 경제가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이어져온 '하키'에 대한 애정만이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또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다시 말해 이 도시에 있어서 하키는 도시의 자부심인 영예로운 스포츠이자 도시의 존폐와 궤적을 함께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셈이다.

 

 

 

 

 

 

   열일곱 살의 천재 하키 소년 케빈이 이끄는 청소년팀은 곧 있으면 열릴 준결승전을 앞두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우승을 한다면 지역 의회에서 하키에 중점을 둔 신설 고등학교 후보지를 결정할 때 전국에서 가장 실력이 우수한 유소년팀을 보유한 이 도시를 무시할 수 없을 거라는 기대, 그 팀이 이 도시에서 세우는 미래 계획의 구심점이 되어 새로운 아이스링크, 컨퍼런스 센터와 쇼핑몰이 차례차례 등장하여 단순한 하키가 아니라 관광, 트레이드마크, 자본이 될 거라는 정치적인 계산이 짙게 깔려있는 까닭이다. 이렇듯 소설은 지독한 완벽주의자인 케빈을 필두로 팀의 또 다른 구심점이자 케빈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는 벤이, 가난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빠른 스피드를 가진 아맛 등이 연출해내는 하키라는 스포츠의 묘미와 소년들의 우정, 경쟁, 질투심을 그려나감과 동시에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른들만의 세계를 날카롭게 묘사해나간다.

 

 

 

'문화'는 아이스하키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의외의 단어다. 모두들 문화를 운운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조직이 다들 자기들은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승리하는 문화뿐이다. 수네도 알다시피 모든 세상이 마찬가지지만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승자를 사랑한다. 딱히 호감이 가는 부류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승자들은 대개 강박적이고 이기적이며 배려심이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 이기기만 하면 그들을 좋아한다. / 66p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153p

 

 

 

 

 

 

   문제는 이를 몸과 마음으로 체감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특히 동료들로부터,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으로 성장하고 있던 이 천재 소년 케빈의 자만은 어느 날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하는 불상사로 이어지는데, 팀과 마을의 운명을 쥔 절대절명의 결승전을 망쳤다는 이유로 오히려 성폭행 사실을 고발한 마야와 그녀의 식구들을 향해 쏟아내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은 그들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가 된다. 이 과정에서 성폭행 과정을 보았으나 함구하고 있었던 아맛에게 스스로 정직할 것을 다독이는 파티마와 딸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가슴으로 껴안으려했던 엄마 미라가 보여주는 부모의 사랑은 이 어지러운 사회가 여전히 지켜야 할 숭고한 믿음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치던 라모나의 음성은 작게는 소설 속 내부에, 크게는 우리 사회 전체에 내던지는 통렬한 외침으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아이를 낳으면 너무 작은 담요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덮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아이가 생긴다. / 155p

 

 

"공동체는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서로의 역할을 존중한다는 뜻이지. 가치는 우리가 서로 신뢰한다는 뜻이고. 서로 사랑한다는 뜻" 다비드는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고 난 뒤에 다시 물었다. "그럼 문화는요?" 수네는 좀 더 진지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화에선 어떤 걸 허용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어떤 걸 권장하는가라고 본다." / 291p

 

 

 

 

 

 

   묵직한 두께감에서 알 수 있듯, 소설 <베어타운>은 성폭행, 성과주의, 빈부격차, 진실을 침묵하는 것들에 대항하는 목소리 등을 다양한 가족 형태와 인물군을 통해 다채롭게 그려나간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장황하거나 이질적이지 않고 작품 속에 잘 응집해낸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간의 작품들이 그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 쓰는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데서 그쳤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우리의 수많은 감정과 사회적 통찰, 사유하는 과정들을 침착하게 스토리와 엮어 조직해내는 능력이 꽤 탁월해졌다는 느낌이다. 이것이 그의 다음 작품을 우리가 또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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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18~2019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한혜원.김미정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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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자들을 위한 필수품,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신주쿠에서 디즈니랜드까지 도쿄 여행자들을 위한 알짜배기 맞춤 여행 가이드북!

 

 

  사실 일본 여행을 계획해보자면 도쿄는 크게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본의 수도로 가장 트랜디한 문화를 선도하는 쇼핑 천국이자 소문난 맛집이 즐비한 곳이기는 하지만 도시적인 느낌이 앞서는 까닭에 일본 고유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더군다나 아이까지 있으니 이왕이면 오키나와나 교토 같은 여행지를 더욱 선호하게 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다가올 2020년에 제32회 하계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슬쩍 관심이 기울기 시작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가장 큰 국제 스포츠 대회가 열리는 만큼 미리미리 도쿄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신주쿠에서 디즈니랜드까지 다채로운 일본 문화의 향연, 도쿄

 

 

   지하철 노선도만 보아도 눈이 어지러울 만큼 복잡하고 번화한 도시, 도쿄. 분명 갈 곳은 많은데 어디를 콕 집어서 가야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시작부터 막막해진다. 신주쿠, 하라주쿠, 롯폰기, 긴자, 분명 어디 하나 익숙하지 않은 이름 하나 없는데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역시 여행가이드북이 절실해진다. 믿고 찾는 여행 가이드북, 바로 <도쿄 셀프트래블>.

 

 

 

   <도쿄 셀프트래블>은 내게 꼭 필요한 도쿄 여행 정보만을 쏙쏙 담아 놓은 알짜배기 맞춤 여행가이드북이다. 도쿄를 방문하는 여행자의 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쿄 여행의 1번지 '신주쿠', 일본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패션의 거리 '시부야', 오타쿠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케부쿠로', 보물찾기를 하듯 아기자기한 숍들이 즐비한 10대들의 명소 '하라주쿠', 최첨단 복합문화지역인 '롯폰기', 일본 고유의 특성과 기품을 잃지 않는 '긴자', 우리나라 청담동과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지유가오카', 부유층과 상류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유럽풍 쇼핑가 '에비스'와 '다이칸야마', 사람 냄새가 나는 진짜 일본 동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우에노', 에도시대의 정서를 담은 옛 번화가 '아사쿠사', 대표적인 비즈니스 중심지이자 상업지구인 '마루노우치', 도쿄사람들이 뽑은 가장 살고 싶은 곳 '기치조지', 독특한 트랜드를 엿볼 수 있는 '시모키타자와', 어린 자녀가 있는 이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여행지 '오다이바'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 외에도 '요코하마', '가와고에', '가마쿠라', '에노시마', '닛코', '하코네', '도쿄디즈니리조트' 정보까지 함께 다루고 있으니 다양한 여행 정보를 두루 섭렵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mission in Tokyo'에서는 미식 천국 도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와 추천 맛집, 일본 대표 체인 레스토랑 및 커피숍, 브런치 식당 등을 하이라이트만 모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수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장인의 고집을 지켜오고 있는 맛집들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서라도 가보고 싶어진다. 앞서 도쿄 여행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했던가. 백 번 취소하고 또 취소하며 도로 주워 담아야겠다. 스시, 돈카츠, 소바, 돈부리, 라멘 등 각종 먹거리들의 향연이 펼쳐져있는 이 도시에 어떻게 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외에도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돈키호테, 다양한 드러그스토어, 똑똑한 쇼퍼들을 위한 다채로운 브랜드 숍, 고급 체인 호텔에서부터 실속 있는 선택 에어비앤비 숙소 정보까지 하이라이트로 제공하고 있으니 참조하자.

 

 

 

 

 

 

   책에는 어디를 가도 좋지만 막상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는 나 같은 초보자를 위해 일정별, 콘셉트별 맞춤 가이드 코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도쿄 여행을 다녀온 주변 사람들을 보면 흔히 밤도깨비 여행을 많이들 다녀오곤 하는데, 아이가 있는 우리 가족은 2박 3일이나 3박 4일과 같은 여유로운 일정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에 'Plan 4. 가족과 함께 버라이어티하게 즐기는 도쿄 3박 4일 코스'에 일단 집중해볼까 한다.

 

 

 

   여기서는 첫날에 오다이바를 중심으로 한 일정을 추천한다. 오다이바라는 지역명은 생소한 편이지만 레인보우 브리지나 해변공원,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기억하기 쉬울 듯하다. 추천 일정을 따라가 보자면 네덜란드의 유명한 블록 레고를 이용해 만들어진 테마파크 '레고랜드'를 방문한 다음 종합 쇼핑센터인 '아쿠아시티'에 들러 쇼핑을 하고, '라멘국기관'에서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야경을 보며 산책하는 경로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온천 시설을 즐길 수 있는 '오에도 온천'에서 에도시대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주의할 점은 오다이바의 경우 도쿄 메트로가 다니지 않는 지역이라 교통 이용은 다소 불편하지만 무인전동차인 유리카모메, 린카이선을 이용하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하니 참고해야겠다.

 

 

 

 

 

 

   이튿날에는 아이와 함께 도쿄를 간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꿈과 희망의 성지 '도쿄 디즈니랜드'를 잊지 말아야겠다. 책에서는 인기관광지이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많이 붐비는 이유로 입장권은 사전 구매하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몰리는 주말에 피해 미리 동선을 정하고 움직일 것을 권고하므로 이를 유념해야겠다. 이어 셋째날에는 우에노와 아사쿠사 방문을 추천한다. 일본 최초의 동물원인 우에노 동물원과 공원이 있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으로는 안성맞춤이겠다. 또 도쿄 관광 1순위인 아사쿠사에서는 센소지라는 큰 사찰과 최첨단 자립신 전파탑인 도쿄 스카이트리도 꼭 빼놓지 말아야겠다. 또 마지막 날은 긴자에 들러 쇼핑을 하고 미도리 스시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 후에 돌아오는 일정인데, 이대로만 따라 해도 도쿄 여행의 꽤 성공적인 마무리가 될 듯하다.

 

 

 

 

 

  이처럼 도쿄는 어디를 가도 손색이 없는 도시이지만 그만큼 선택하기가 어려워 미리 계획을 짜놓는 것이 매우 중요할 듯하다. 이에 책에는 각종 명소에 대한 정보를 비롯하여 가는 길, 주소, 오픈 시간, 전화번호, 웹사이트, 팁 같은 핵심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사전에 잘 챙겨서 알찬 여행을 계획해보자. 이왕이면 다가오는 하계올림픽에 맞춰서 계획을 세워본다면 더욱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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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 물리학 - 런던 대학교 물리학 교수가 들려주는 일상 속 과학 이야기
헬렌 체르스키, 하인해 / 북라이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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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움직이는 사소한 원리를 알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물리학 교수가 들려주는 일상 속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근처에 실외사이클경기장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나와 짝을 이뤘던 친구들이 마침 사이클 선수들이었기에, 응원 차 그곳을 찾아가 연습하는 장면을 종종 지켜보기도 했다. 수십, 수백 번을 찾은 곳이지만 나는 늘 기이한 형태의 경기장에 늘 경악하곤 했다. 이 어마어마한 경사를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오직 회전력에 의지해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아찔한 높이의 경사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방법이란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것밖에 없어 보이는 이곳에서 자칫 속도를 줄이기라도 하면 얼마나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어떻게 너희는 넘어지지 않고 저 말도 안 되는 경사를 타고 유유히 달릴 수 있는 거지? 나의 이런 의문은 아무렇지 않다는 친구들의 표정에 늘 별 것 아닌 듯이 묻히고 말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내내 그 이유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다양한 의문들을 만난다. 토스트기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기에 절묘하게 빵을 구운 후 적절한 때에 빵을 밖으로 밀어 올릴 수 있는 것인지, 며칠 전에 뜯은 탄산수가 어째서 아직까지 잔뜩 기포를 머금을 수 있는 것인지, 형광물질이란 게 대체 무엇이기에 어두운 밤이 되면 환하게 빛을 밝힐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세상은 온갖 궁금한 것들로만 이뤄져있는데 그것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세상을 움직이는 까닭에 잊고 살게 된다. 거기다 뼛속까지 이공계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늘 의문은 그저 의문으로만 남을 뿐이다.

 

 

 

   그러던 나는 얼마 전 사소한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아이가 목욕을 하면서 자동차 장난감과 공을 함께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자동차는 물속으로 가라앉았지만 공은 가라앉질 않으니 손으로 계속 누르면서 나에게 "엄마, 이거 왜 이래? 밑으로 내려줘."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단순히 "공은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뜨는 거야." 라고 말했지만 그 이유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줄 수 없었다. 고작해야 부력이라는 원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줄 수는 있겠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지 몰라 금세 난감해지고 말았다.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이런 위기를 더 자주 마주하겠구나, 생각하니 과학적 소양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에 고민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일단 기본 과학 교양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나는 마침 <찻잔 속 물리학>이라는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일상 속에서 엿보이는 물리학의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놓은 책인 것 같아 호기심이 일었다.

 

 

 

 

 

 

세상은 물리학 패턴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다

 

 

   <찻잔 속 물리학>은 물리학자인 런던의 대학 교수가 찻잔 속 소용돌이부터 얼음물에서 헤엄치는 오리가 동상에 걸리지 않는 이유에 이르기까지 일상과 자연의 현상들을 물리학 법칙으로 쉽게 풀어낸 과학 에세이다. 팝콘이 터지는 원리에서 날씨가 일으키는 현상을 설명하는 '기체법칙'을 시작으로 하여, 균형과 회전의 원리가 녹아든 지구의 가장 큰 엔진 '중력', 작은 규모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힘의 원리를 설명한 '표면장력과 점성', 고유진동수와 열역학의 법칙이 녹아든 '평형을 향한 엔진', 토스터와 적외선 파동 및 돌고래와 소리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파장의 생성', 보이지 않는 열이 움직이는 원리를 살펴볼 수 있는 '원자의 춤', 자전거나 피자 반죽의 마법을 통해 흥미로운 회전의 세계를 소개하는 '회전의 규칙', 우리 주변에 늘 산재하고 있는 '전자기', 끝으로 인간과 지구, 문명 등 넓은 의미에서 과학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은 물리학 패턴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라는 저자의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아주 작은 원자와 세포를 비롯하여 지구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에서 물리학의 일정한 패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질량이 고정된 기체의 압력은 부피에 반비례하고, 온도는 압력에 비례하며, 압력을 고정하면 부피는 온도에 비례하는 이 '이상기체의 법칙'에 내연기관과 열기구가 움직이고 팝콘이 튀겨진다는 사실이 날씨라는 현상으로 귀결되는 내용은 참 흥미롭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공기 분자는 이상기체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며 태양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바다에 에너지를 잃거나 구름이 형성되면서 생기는 응결로 에너지를 얻고 우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러한 사실은 대자연의 움직임이 스스로 얼마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지 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지구의 중력은 우리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는 무언가를 집어 들 때마다 지구 전체의 중력에 저항한다. 태양계가 거대한 이유는 중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력이 다른 모든 인력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특징은 범위다. 중력은 약하고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더 약해지지만 우주에서 매우 먼 거리까지 세력을 미쳐 다른 행성과 항성, 은하 들을 당긴다. 당기는 힘은 약하지만 이 미약한 힘의 장에 의해 우주가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 76p

 

 

따뜻한 바다는 태양에너지를 담는 거대한 배터리와 같다. 움직이는 바닷물은 에너지를 지구에 배분한다. 또한 지구의 기상 패턴 뒤에는 열 염분 순환이라는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극단적 기상 상황을 잠재우는 안정적 열 저장고 위에서 변덕스럽고 얇은 대기층이 움직인다.

모든 관심은 대기가 받지만 배후 세력은 바다다. 지구본이나 지구의 위성사진을 볼 기회가 있다면 바다를 그저 대륙 사이를 메우는 파란 공간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천천히 움직이는 거대한 해류를 이끄는 중력을 상상하면서 파란 부분이 지구의 가장 큰 엔진임을 기억하자. / 93p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흥미롭고 편리한 혼란을 일으킬 뿐 어떤 종류의 물질도 움직이지 않고 오직 에너지만 이동하는 '파동'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는 대목도 재미있다. 파동의 원리를 이용한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와이파이라는 것을 통해 다양한 파동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 그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취득하는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자연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생태계 전체에 작동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엿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수염고래, 대왕고래, 긴수염고래, 밍크고래를 포함한 모든 고래는 서로 멀리 떨어진 채 의사소통을 한다. 고래는 돌고래가 내는 짧은 소음을 들을 수 없고 돌고래를 고래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바다는 모든 소리를 담고 생물은 이 거대한 정보의 저장고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한다. 따라서 바다에는 광파와 음파가 넘치지만 존재하는 방식은 공기 중과 완전히 다르다. 바다 아래에서는 소리가 최우선이기 떄문에 광파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고래와 돌고래는 색맹이다. / 188p

 

 

 

   책 속에는 평소 일상 속에서 실험해볼 만한 것들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그 중 날계란과 삶은 계란을 구분하는 법을 다룬 부분은 평소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남겨볼까 한다. 첫째, 껍질을 까지 않은 날계란과 삶은 계란을 옆으로 누인 다음 굴려보자. 두 계란이 몇 초 동안 회전하면 윗부분에 손가락을 대서 회전을 갑자기 정지시킨다. 계란이 멈추면 손가락을 뗀다. 이때 날계란은 다시 회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체인 삶은 계란은 껍데기를 손가락으로 멈추면 회전을 완전히 멈춘다. 계란과 껍데기가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계란의 회전을 손가락으로 멈추면 껍질만 회전을 멈춘다. 안에 있는 액체는 껍질과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회전을 멈출 이유가 없으므로 계속 회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우리 인체에서도 감지된다. 우리의 양쪽 귀에는 반원 형태의 작은 관이 있고 여기에는 날계란과 행동이 비슷한 액체가 채워져 있는데, 우리가 회전을 하다가 멈추면 액체가 담긴 관은 멈추지만 그 안의 액체는 계속 움직이는 까닭에 우리는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각운동량보존 법칙'이다.

 

 

 

 

 

 

   <찻잔 속 물리학>을 읽다보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물론, 인간이 이를 이용해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두꺼운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벽돌의 크기와 다름없는 초기 핸드폰과 같이 기술 발전의 과도기를 겪어본 적이 있었던 나로서는 점점 더 얇아지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라는 기술 발전이 놀랍기 그지없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기술의 발전과 문명의 혜택을 입은 아이들이라면 이 조차도 더 이상은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문에 아이가 이러한 혜택에 어떠한 의문도 없이 그저 누리기만 한다면 조금은 씁쓸할 것 같다. 언젠가 아이가 커서 이 책처럼 다양한 과학 교양서를 가까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이 이토록 신비롭고 흥미로운 법칙들로 이루어진 놀라운 산물임을 늘 감사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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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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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육상병기가 살인병기로 돌변하여 복수의 총구를 겨누다!

최고가 되고 싶었던 자들의 끝없는 욕망이 불러일으킨 끔찍한 잔혹사!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그 이름, 추리와 서스펜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 이젠 그의 작품이라고 하면 작품에 대한 소개나 평가는 둘째 치고 일단 사서 읽어보자 하는 심리가 드는 몇 안 되는 작가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의 기준에 의하면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후에 출간되고 있는 작품들은 분명 그의 이름값을 증명할 수 있을만한 작품들이 다수를 이룬다. 하지만 이전의 몇몇 작품들은 기대를 밑도는 것들이 있어 그의 명성에 의구심을 품게 될 때가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1992년에 출간된 작품 <아름다운 흉기>가 최근 다시 리커버 개정판으로 나왔다는 소식에 당연히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과연 그에 대한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우려가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괜한 기우였나 보다. '역시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다!' 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집착이 낳은 괴물

 

 

   어둠 속 생활도 이제 곧 끝이야. 스포츠 닥터인 센도 고레노리는 희열에 찬 음성으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한 여인에게 나직이 속삭인다. 자신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육상계의 최종병기, 그녀가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것에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때 4명의 침입자가 그의 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직 국가대표 허들 육상선수인 유스케, 전직 국가대표 체조선수 사쿠라 쇼코, 전직 국가대표 단거리 육상선수 나와 준야, 마찬가지로 전 역도 일본 챔피언인 안조 다쿠마 일행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센도 고레노리의 별장을 침입해 파일 하나를 찾으려 시도하지만 이를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었던 센도가 나타나 일이 곤란해지고 만다. 마침 센도가 총을 들고 있어 그것이 꽤 위협적일 뿐만 아니라 전직 유명 육상 선수들의 명예를 건드리는 발언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일행은 결국 그를 죽이게 되고, 방화를 저질러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문제는 이를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고 있던 목격자가 있었으니, 바로 센도 고레노리의 '그녀'다. 그녀는 한 사람씩 얼굴이 가장 잘 보이는 영상을 찾아내 출력한다. 침입자는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센도의 플로피디스크를 통해 이들의 신상명세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모두 최근까지 스포츠계에서 활약한 실적을 가지고 있고 현재도 그 실적을 바탕으로 각자의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이다.

 

 

 

이 자들이 그를 죽였다…… 죽이고, 불태웠다. / 35p

 

 

 

   캐나다에서 센도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온 뒤, 세상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오직 육상계의 최고 병기가 될 날만을 꿈꾸며 센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그녀는 이제 복수를 결심한다. 자신이 머물고 있던 창고를 수색하기 위해 찾아온 경찰관을 목 졸려 살해하고 그의 권총을 빼앗은 뒤, 센도를 죽인 4명의 용의자들을 찾아 하나씩 처단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선다. 뜻밖의 화재 사건 속에 드러난 센도의 죽음, 경찰관까지 잇따라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경찰과 언론이 이를 주목하는 가운데 용의자였던 4명의 전직 선수들은 센도의 그녀가 자신들을 죽이러 오리라는 섬뜩한 예감과 마주하게 된다.

 

 

 

"그건 아마…… 센도의 비밀경기일 거야."

"비밀병기? 그게 뭔데?"

준야가 얼굴을 찡그렸다.

"센도에게 직접 들은 적 있어. 강력한 헵태슬론(heptathlon) 선수를 하나 키우고 있다고 했어."

"헵태슬론?"

다쿠마가 되묻자 유스케가 대답했다.

"육상 7종 경기를 말하는 거야. 첫날에 100미터 허들, 높이뛰기, 포환던지기, 200미터 달리기, 이틀째에 멀리뛰기, 창던지기, 800미터 달리기를 하고 각 종목의 총점을 겨루는 여자 경기야."

"이봐, 농담하지 마. 그럼 그게 여자가 한 짓이라는 거야? 여자가 경찰 목을 졸라 죽였다고?" / 59p

 

 

 

 

 

 

   타란툴라 같은 소녀. 그녀가 세상에 나타난다면 모두가 놀랄 만큼 강하고 빠른 그 힘에 압도되리라던 센도의 음성을 쇼코는 잊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신장은 무려 1미터 90센티미터, 웬만해선 지치지 않는 체력과 완성도 높은 근육을 자랑하며 몸 전체가 최종병기나 마찬가지인 그녀가 만약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로 돌변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쿄 턱밑까지 다다랐음을, 한 명씩 차례차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그 공포란 독자들의 마음까지 섬찟섬찟하게 만든다.

 

 

 

이 녀석인가…… 존야는 숨을 멈췄다. 갈색 피부, 표범같이 예리한 눈, 야성적이며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멋진 근육에 감싸인 장신. 그는 순간 이 적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 194p

 

 

 

   <아름다운 흉기>는 타란툴라라고 불리는 그녀의 시점과 4명의 용의자 시점, 경찰의 시점을 교차반복하면서 사건을 구성해나간다.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괴력의 흉기로 돌변한 그녀가 4명의 용의자들을 추격하는 데에서 오는 긴장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자의 서슬퍼런 기운에 용의자들이 느끼는 두려움, 1미터 90센티미터에 이르는 장신의 살인마와 죽어나가는 피해자들의 연관성을 쫓아 사건의 진상을 좁혀나가는 경찰관들의 객관성을 갖춰 이야기를 한층 입체적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놀라운 서스펜스를 완성하는데 기여한다. 특히 차를 타고 도망치는 존야의 뒤를 쫓으며 투창용 창을 던지는 장면은 그녀의 압도적이고 정확한 힘에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 온몸이 수축될 만큼 최고라 할 만하다.

 

 

 

 

 

 

   이처럼 1미터 90센티미터에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여성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비현실적인 긴장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묘미라면, 성공을 향한 집착과 개인의 일그러진 욕망들로 점철된 인간의 뼈아픈 진실들을 담아내고 있어 소설의 무게감을 더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공하고 싶어서, 성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도핑, 살인, 은폐라는 선택을 감행한 이들을 보면, 어쩌면 괴물은 살인마가 되어버린 타란툴라가 아니라 그녀를 살인마로 만든 그들 모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저마다 추악한 흉기를 감추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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