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깊은
상처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본격
심리치료소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곤란하다. 지금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묻는 상대의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머뭇거린다. 믿기 어렵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것을 단번에 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상대방의 욕구에 맞추는
게 훨씬 더 편했고,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다 보니 결국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릴 때가
많다. 이런 나의 심리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마음' 그중에서도 '지금 순간의 마음'을 뜻하는 게슈탈트 심리학에 의하면 '현재의 나는 현재의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섞어서 바라본다'고 하여, 과거에 받은 상처가 해결되지 못하면 현재를 온전하게 바라보지 못한다고 한다. 즉,
현재를 바로보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들을 되짚어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감정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심리적인 문제를 고려했을 때 나 역시 과거의 어느 지점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느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겉으로 보기에는 배려심이 깊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비춰져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만큼 어쩌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깊은 상처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로 인해 타인과
연결되지 못한 채 각자 섬처럼 고립되어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한다. 소설 <뉴런하우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저마다 내면에 깊은 상처들을 안고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 있어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김정규 교수는 게슈탈트 이론을 자신의 소설
<뉴런하우스>에 도입하여 저마다 마음에 하나씩 지니고 있는 상처들을 들여다보게 하고 이를 치유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일련의 치유 과정을 그려낸다. 다시 말해, 각자 꽁꽁 숨겨둔 상처들을 가슴에 품고 지냈던 이들이 '뉴런하우스'라는 이름의 셰어하우스에서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찾고, 함께 위로하면서 아픔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자리, 살아 있는 치료 공동체
독일에 유학을 온 지 40년째인 영민은 베를린에서 연인인 한나와 함께 심리치료를 하는 가족치료 연구소를 열어 꽤
높은 명성을 쌓아간다. 그러나 부쩍 향수병에 시달리던 그는 고국인 한국에서 "꿈꾸는 셰어하우스 '뉴런하우스' 전문심리치료사 구함"이라는 홍보글
하나를 읽게 되고 이한빈 대표에게 메일을 보낸다. 이한빈 대표는 제조업 분야에서 꽤 성공한 사업가로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의 일부나마
사회에 환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뉴런하우스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고 설명한다. 뉴런하우스란 이름은 신경 세포처럼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었다고 한다. 즉,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데도 제대로 도움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셰어하우스를 이용하면서 이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다.
전문심리치료사 자격으로 참가한 영민을 포함해 총 아홉 명의 사람들이 뉴런하우스로 모여든다. 나이도 제각각이고 하는
일도 저마다 다르다. 따뜻하고 다정한 성격을 지닌 심리치료사 영민, 과묵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한 인상을 주는 자영업자 이현호(새벽),
매형이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일하는 외향적이고 주도적인 성격의 영석(평화), 과묵하고 무뚝뚝하지만 우직한 면모가 있는 대헌(바위), 상냥하고
쾌활하지만 타인의 눈치를 보고 소심한 구석이 많은 현민(오아시스), 상냥하고 친절한 초등학교 교사 혜수(봄비),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냉정하고
예민한 성격을 곧잘 드러내는 가영(수선화), 얌전하고 수줍은 성격을 지닌 미용사 미진(햇살), 까칠하고 불안해 보이는 성격으로 모임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22세의 여대생 예지(바람)까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은 영민의 주도 하에 주 2회 창문 닦기 대화모임, 이른바 마음 들여다보기 시간을 가진다. 뉴런하우스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 모임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여덟 명의 멤버들은 이러한 과정이 왜 필요한 것인지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기껏해야 현재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얘기해보는 것에 불과했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과 과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임 초반에는 이 때문에 잦은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인간 행동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사실 껍질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을
만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치유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을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들을 억압하여 내면 깊숙이
가둔다. 그것들을 직면하는 것이 아프고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들은 껍질 속에 갇힌 채 우리의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공허와 외로움에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 77p
오아시스는 한껏 자세를 낮춰 모든 걸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돌보기보다는 어떻게 하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은 묻혀버리고, 판단력에
혼란이 오게 된 것이다. 감정을 무시한 채 생각만으로는 판단에 확신을 갖기 어렵다. 우리의 생각은 감정을 기반으로 할 때 힘이 생기며, 방향성이
생긴다. / 121p
하지만 꾸준히 창문 닦기 대화모임이 진행되면서 이들은 점차 현재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들에 주목하고 과거 속에
꽁꽁 묶어둔 상처들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심장마비로 아빠가 돌아가신 뒤 큰아버지 집에서 얹혀서 살다보니 유독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된
오아시스, 늘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타인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본 적이 없는 햇살, 불운한 가정사를 지닌 봄비, 엄마가 원하는
대로 공부도 하고 훌륭한 대학교에 진학도 했지만 제대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는 바람 등 모두들 집단치료과정을 통해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동체를 통해 위로받고 수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각각의 신경 세포인 뉴런들이 서로를 이어주는 시냅스를 매개로 하나의 긴 대롱처럼
연결되어 함께 숨 쉬고, 함께 웃고, 함께 웃는 것이 느껴진다. 한 개의 뉴런에서 생겨난 파동은 시냅스에서 불꽃을 일으켜 다음 뉴런으로
전달된다. 마치 봉화불이 마을과 마을을 건너 연속적으로 이어가듯이 한 뉴런에서 일어난 파동은 다른 뉴런에서도 정확한 공명을 일으킨다. 껍질과
벽이 허물어지며 세포와 세포들은 서로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되어 함께 숨쉬고 교감한다. / 166p
<뉴런하우스>가 심리치료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책을 읽다보면 심리 치료에 쓰이는 몇 가지 기술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중 '상전'과 '하인'이라는 개념의 게슈탈트 이론이 다소 인상적이다. 울고 있는 자신이 바보 같다며 슬픔보다는 분노를
더욱 표면으로 드러내는 수선화의 태도를 보고 영민이 이를 떠올린 것인데, 울고 있는 자기(하인)와 그런 자신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자기(상전)가 대립되어 상전이 규범을 통해 하인의 행동을 통제하려드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상전이란 개인이 자신의 부모나 사회의 행동규범을 내면화시킨 것이며, 하인은 타고난 자신의 욕구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대체로 상전은 하인의 행동을 억압하거나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열악한 어린 시절 환경이나 트라우마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부모로부터 자신의 의견이나 욕구를 수용 받지 못하던 사람에게 이와 같은 목소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상전의 목소리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데도 적용되므로 종종 대인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민은 의자를 두 개
가져다놓고 한 쪽은 상전 의자, 한 쪽은 하인 의자로 명명하여 일종의 역할에 따른 목소리를 내볼 것을 권한다. 그녀는 한 번은 상전의 입장에서,
한 번은 하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봄으로써 지난날의 상처를 더듬고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인생에서 큰 비극은 남이 나를 오해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오해해서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많은 심리적 문제가 내가 나를 오해함으로써 생겨난다. 대표적인 예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야."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나는 어딘가 잘못됐어." 같은 말들이 아픈 오해다. 이 같은 자기 부정들이 내면을 지배하게 되면 끊임없이 마음의 상처를
입힌다.
나를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귀한 존재로 보지 않는 내면의 소음들은,
보통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오해에서 자라난다. 하지만 늦게라도 내가 나를 바로 이해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
363p
이렇듯 뉴런하우스는 아픈데도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 이 때문에 타인은 물론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어
살아온 이들에게 가슴을 열어젖히고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자신도 모르게 등장인물에 이입되어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게 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모두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심리치료라는 영역을 소설화한 작품은 처음이어서 <뉴런하우스>는 색다른 독서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다.